전에 글이 명종에서 끝나서, 흉악한 부자관계에 대해서 쓰려고 했으나,
선조의 아들들은 실록을 조사하다가 기가 차서 아예 선조의 아들들에 대해서 쓰기로 합니다.
어떻게 된 게 선조의 아들들은 하나같이 개차반입니다.
선조의 아들들은 유명한 사람들이 다음과 같습니다.
임해군 - 권력형 부정축재자이자 마피아 두목
광해군 - 왕이 되자 본격적으로 재벌이 되기 위해 앞장서서 해 쳐드시다가 복수의 화신에게 자리를 빼앗긴 왕
정원군 - 임해군보단 조금 임팩트가 약했지만 광해군한테 농락당하고 홧병으로 간 마피아 부두목. 막장 인조의 아버지
순화군 - 힘없는 사람 위주로 해마다 심심하면 10명 정도씩 죽인 사이코패스
영창대군 - 유일한 적통인데 먼 조상 이방석의 예를 따라 형에게 슥삭을 당함. 커서 뭐가 되었을지는 모르겠으나 형들에 버금가는 미친 짓을 했을지도 모르나 너무 어렸을 때 죽어서 그런 거 없음
예. 어떻게 된 게 형제들이 하나같이 갱단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번 포스팅은 The Gang Brothers - 선조의 아들들입니다.
우리 갱단 4왕자 중 최고봉인 임해군 편입니다.
임해군은 4왕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편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그의 나이는 21살이었습니다. 임진왜란 전에는 임해군의 잘못은 따로 나오지 않습니다. 실록에서 조사해보면 임진왜란 전에 임해군 이진은 두번 나옵니다. 한번은 그가 허명의 딸과 결혼했다는 것과, 또 한번은 해주에서 백성의 전답을 빼앗았다는 내용이죠. 이 때가 임진왜란 9개월 전인 1591년 10월의 기사입니다. 윤두수가 해주에 갔을 때 임해군이 백성의 전답을 빼앗았다는 소문이 돌아 알아보니, 장인 허명이 임해군의 이름을 빌어 전답을 약탈한 것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앞으로 나올 선조의 하해같은 사랑(?)과 임해군의 권력형 비리사건을 찬찬히 뜯어보면, 사실 이 사건도 임해군이 했으나 허명이 한 것으로 실드를 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20살 때 임진왜란이 터집니다. 동생 순화군(당시 13살)과 함께 함경북도로 가라는 명령을 받는데, 국경인이라는 사람이 5천 군사를 모은 후 습격하여 왕자 및 추종한 군사, 신하들을 사로잡습니다. 그리고 함경도 쪽으로 올라오고 있던 가토 기요마사에게 왕자를 넘기죠. 가토 기요마사는 포박에 묶인 두 왕자를 보고 깜짝 놀라 "니네는 니네 왕자를 이렇게 함부로 다루냐?" 하면서 풀어주고 오히려 후하게 대접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선조한테 "님하, 니네 아드님 두분 내가 모시고 있으니 항복하세효. 안 그럼 왕자 우리나라로 끌고 감." 하고 친서를 보냅니다.
다행히 명나라에서 심유경이 일본과 협상을 하여 왕자들은 풀려납니다. 그리고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은 이왕 이렇게 잡은 끈을 계속 활용하겠다고 생각하여 임해군을 통해 전쟁기간 동안 계속 편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임해군은 전쟁기간 동안 주로 명나라 사신 접대를 하는 일을 합니다.
선조는 임해군은 글러먹었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세자 책봉을 위한 글에서도 임해군은 병이 있고 사람들의 원망을 받고 있다 정도로 둘러댑니다. 실은 처음에는 "날랜 개와 사나운 매를 좋아하며 재물을 탐하므로..." 라는 말이 있어 "이건 너무 노골적인 거 아니냐? 니네 일 그따구로 할래?" 라고 해서 스리슬적 바꾼 말이라고 합니다. 실드는 쳐 주지만 무슨 일을 맡길만한 놈은 아니다...라는 뜻이죠.
그리고 1597년 신하들도 이건 못 참겠다 싶었는지 드디어 임해군이 잘못한 걸 꼬지르기 시작합니다. 어떤 거냐구요?
**군사비밀 누출~!!!
임해군은 청정과의 악연, 명나라 심유경과의 인연으로 인해 주로 외교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해드렸는데, 임해군의 노비 중 이덕룡이 군사비밀을 누설한 죄로 좌포도청에 잡혀갑니다. 우리의 임해군 이진은 "이덕룡이 내놔!" 하면서 좌포도청의 서원의 아내를 잡아 가둡니다. "드...드리겠습니다!" 를 외친 좌포도청장. 그리고 이번엔 우포도청에서 "희남"이라는 자가 군사비밀 누출로 잡혀들어갔네요. 이번엔 색다르게 동생 정원군 이부와 함께 "좋게 말할 때 내놔! 이건 절대로 형(임해군)이 시킨 게 아니라 내(정원군)가 자발적으로 한 거임" 이라는 내용으로 빼갔습니다. 전쟁 중에 군사비밀을 노출한 자를 옥에서 빼가다니 멋지지 않습니까? 그리고 좌포도청 우포도청 하나같이 "드...드리겠습니다!"를 외친 권력형 비리 사건 1 입니다. 1이라고 한 건 이게 한두건이 아닌지라...
사건 해결 : "어 사헌부에서 이야기한 게 내가 살펴보니 맞는 말이네. 임해군은 어려서부터 나쁜 놈이었는데 이번엔 지동생까지 협박해서 하니 거참. 모든 게 내가 아들 잘못 가르친 탓이다. 노비들을 잡아다가 벌주고, 파직은 시키지 말자."
결국 그냥 용서합니다.
파직은 하지 말라고 했으나 조선의 신하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저번에 세자 책봉문에서 임해군이 성정을 잃고 병에 걸려서 맏아들이나 세자를 못 시킨다고 해놓고, 명나라에서 사신이 오면 접대하고 늘 같이 불러서 명나라 사신과 만나게 하시는데, 세자 책봉문과 말이 다르니 나중에 명나라가 물어보면 할말이 없네효. 그러니 앞으론 임해군 사신 시키지 마셈." 이라고 이이첨이 간해서 그렇게 시킵니다. 사신 안 시키고 그냥 탱자탱자 놀게 하자, 우리의 임해군은 슬슬 나쁜 길로 빠지기 시작합니다.
1598년 4월
선조가 임해군 이진을 부릅니다. 그런데 술먹고 취해서 안 갔습니다. 군사기밀 누출했을 때도 파직 안 시켰는데 선조 열뻗쳐서, "그놈 파직시켜!" 라고 합니다.
1599년 10월
파직까지 되었으니 먹고는 살아야 겠죠. 그래서 우리 임해군 나으리는 방납이라는 사업을 하십니다. 방납이란, 조선에선 각 고을의 관아에서 조정에 공물을 바칠 때 쌀, 베, 그리고 특산물을 바치는데 현물로 바쳤습니다. 그런데 현물이라는 게 가다가 상할 수도 있는터라 그냥 돈으로 보내면 그걸 받아 대신 사서 납품하는, 일종의 조달청 역할을 하는 건데 그걸 관청이 둔 게 아니라 권세가 충만하신 분들이 하는 거였죠. 그걸 우리 임해군이 시작한 겁니다.
사실 임해군 말고 다른 왕자들도 모두 방납을 해 처먹긴 했습니다만, 그 중에 임해군이 특히 심하게 해먹었기 때문에 장령이라는 벼슬을 하던 최동립은 "임해군이 최고로 나쁜 놈이어서, 임해군만 벌주면 나머지도 알아서 벌 줄 거라 생각해서 임해군만 방납했다고 했어효. 생각해보니 다른 애들도 죄있는데, 임해군만 나쁜 놈이라고 했으니 내가 잘못했음." 이라고 합니다.
1601년 3월 19일
주인을 배반하고 달아난 노비 혹은 빼앗은 노비들이 임해군의 집으로 도망쳤습니다. 도망친 노비도 있고 임해군이 빼앗은 노비도 있지만, 도망친 노비들을 보면 밝혀진 것만 유수, 군수, 참봉 등 말직이라도 관리였던 사람들의 노비입니다. 하도 많아서 조사하려고 형부에서 노비를 불러 조사중인데, 임해군의 종들이 관청에 와서 관리들을 협박해서 노비를 빼 갔습니다.
지금으로 치자면, 경찰서에 잡혀온 범인을 "누구 맘대로 왕자님 사람을 잡아와? 죽고 싶어?" 라면서 협박한 후 범인을 빼 온 것 되겠습니다. 덜덜덜
파직을 하라고 지평 이진빈이 이야기하였으나, 선조는, "잘못이 있더라고 그 하인만을 다스려라." 고 또 용서해 줍니다.
4월 4일
3월달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황해 병사 최원이 청탁을 받고, 관군 2백여명을 데리고 근무지를 이탈하여 마을을 약탈한 사건입니다. 그래서 최원은 파직이 되었는데, 최원을 파직하자고 이야기했던 대사간(지금으로 치면 감사원장)이 마침 어머니가 몸이 아파 휴가를 내고 병문안을 갑니다. 병문안 곳은 백천으로 황해에 있는 곳이었죠. 어머니 병문안도 할 겸 워낙 큰 사건이라(지금으로 치면 동네에 주둔한 군대가 주변마을을 약탈한 셈 허덜덜) 조사를 해 보니, 전말은 이랬습니다.
임해군의 종 한명이 봉산에 사는 백성의 밭을 빼앗으려다가 싸움이 붙어, 살인사건이 났으니 조사해 달라고 감사에게 고소를 합니다. 그래서 감사가 황해 병사를 부르죠. 관아가 빈틈에 종이 "난 임해군의 종이다. 니네 병사좀 빌리자. 존말할 때 내놔." 하면서 병사 2백을 끌고 갑니다. 왕자님 명이라는데 누가 막을 수 있었을까요. 그 2백명이 황해병사의 깃발을 달고 봉산에 들어가, 마을 하나를 약탈해 버린 겁니다. 피해는 2명이 타죽고, 1명이 맞아 죽었으며, 집 50여채가 불타고 재산과 가축들을 쓸어간 참담한 사태였습니다.
결국 대사간 김상용은 "제가 잘못 알고 죄없는 사람을 파직시키라고 했으니, 저도 파직시켜 주삼." 이라고 한 겁니다.
이젠 뭐- 거의 마피아 두목급이죠? 아니다. 마피아는 적어도 정부군을 이끌고 저러진 않으니 이건 뭐...-_-;
참고로 최원이라는 사람도 참 무능한 사람인데 우리 선조님하는 한번 찍은 사람은 계속 신임하는 분이십니다. 이순신 장군만 두고두고 괴롭혔지 다른 분들은 그냥 싸고 돌았어요. 이 최원이라는 아자씨도 원래 전라남도 병사인데, 겁을 먹고 강화도로 병사를 끌고 갔다가 죄다 얼어죽게 만들고, 진주성이 포위되었을 때는 충분한 군사가 있었는데도 도망쳤던 아저씨에요. 이 아저씨가 황해병사를 했는데 전임자가 바로 이순신과 동명이인이었던 바로 그 이순신입니다. 위의 사건은 특이하게도 선조가 전말을 알았는지 몰라도 "최원이 그럴 리 없다. 아랫사람이 한 거니 최원을 벌 줄 수는 없네요." 라는 명령을 내렸네요.
1602년 7월
이야~ 이제는 아예 백주대낮에 사람을 때려 죽입니다.
주부를 했던 소충한이라는 사람을 궁궐이 보이는 곳에서 몽둥이로 때려 죽였습니다만, 형부에서 조사를 하려고 보니 시체가 없다네요? 으잉? 그래서 소충한의 가족보고 나오라고 했는데 이번엔 가족들이 안 나오네요? 이건 뭐...-_-; 소충한이라는 사람은 실록에 1593년에 한번 등장하는 사람으로, 왜군 포로에게서 조총의 제조방법을 알아오라고 시킨 걸로 한번 나오는데 바로 다음 등장이 이 죽음입니다. 7월에 죽었는데 미적미적하다가 시신이 없어서 옆집사람에게 물어보니, 맞아죽었다는데 술을 먹고 다음날 죽어서 죽은 다음날 바로 묻었다네요? 그런데 어디에 묻었는지 아무도 몰라...그리고 가족을 부르는 건 죽은 사람 가족을 불러서 또 가둬둔다는 것도 문제가 있다면서 안 불러, 그렇게 3개월을 끌었으니 사건이 유야무야 끝나고 맙니다.
11월
임해군이 가토에게 사로잡혔을 때 득강이라는 사람을 만납니다. 같이 붙잡혔는데 임해군을 잘 모셨고, 그동안 임해군의 나쁜 짓을 앞장서서 행하던 앞잡이였죠. 그런데 그가 잠깐 밖에서 할 일이 생겼습니다. 임해군에게 첩과 노비 둘을 맡기고 일을 하고 돌아왔습니다만, 임해군은 "무슨 소리냐? 니가 언제 맡겼어?" 라고 해버린 거죠. 득강은 열이 받아 불손한 말(아마...See Foot 이겠죠?)을 했는데 그걸 임해군도 들은 겁니다. 임해군은 형부에 득강을 찌릅니다.
"득강이라는 놈이 있는데 그놈이 왜적을 따라 약탈을 했던 놈이에요. 잡아주세요~"
신고가 들어왔으니, 그것도 왕자님의 신고이니 안 잡을 수도 없고 득강을 금부에서 끌고 갑니다. 그리고 득강을 때려 죽입니다. 그런데 금부는 역모나 패륜 등의 대형사건만 조사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왕자님이 "조사해 임마!" 한마디에 일반 죄수를 끌고 가서 조사한답시고 매를 때려 죽인 겁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냐구요? 범인을 조사하다가 범인이 죽었으니 끝.
왕자님 맘에 안들면 10년동안 모신 충신도 한마디로 갈아내는 겁니다. 헐
1603년
이제 왕족들이 대놓고 "내가 임해군이다! 재물을 내놓아라!" 하면서 양반집을 털기 시작합니다. 이언경과 이계윤이라는 종친이 배흥립의 집을 턴 것이죠. 배흥립은 어디서 많이 들어보셨죠? 이순신 밑에 있으면서 여러 전공을 세운 장수이기도 합니다. 마침 배흥립은 그때 경상우수사로 경상도에 부임해 있었는데, 왕족이 자기 집을 털었으니 기분이 어땠을까요? 선조는 두 왕족을 엄벌에 처하라고 합니다. 임해군이라는 한마디에 관리들이 벌벌 떠니 임해군의 이름을 파는 거죠. 임해군을 잡아다가 족쳐야 이런 일이 없는데, 본체는 놔두고 짜가들만 때려잡으니 이게 뭐냐, 라고 사관이 의견을 써둡니다.
10월
이번엔 훈련도감의 포수들이 왕자들 집으로 도망쳤네요? 그냥 두면 왕족들이 사병을 기르는 건데...이러면 나중에 역모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는 중죄입니다. 선조는 이번에도 왕자들을 그냥 봐주고 도망친 포수들만 잡아 족칩니다.
12월
우리 임해군의 이름을 길이 빛낼, "유희서 살해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사건은 정말 기가 차다 못해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당시 선조에게 신하들이 어떤 맘을 먹었을까를 알게 해줍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우리의 임해군은 광해군 즉위 1년차에 사망하게 됩니다. 이 거대한 사건의 전말은 이럴습니다.
영의정 유전에게는 유희서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유희서는 선조실록에 여러번 등장합니다. 아버지가 정승이었기 때문에 본인 역시 여러 번 벼슬을 하는데요, 명나라에 구원을 청하러 갔다가 기녀랑 잔 것이 명나라 장수에 발각되어서 개쪽을 당한 적도 있고, 경기 감사 시절에는 뇌물을 받고 중죄인의 처벌을 미룬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조는 그를 아껴서 종사관-부제조(어의 관리)에 이어 "유성군"이라는 칭호까지 내립니다. 왕자에게나 붙이는 "군"을 내려줄만큼 나름 선조가 아끼는 사람이었어요. 물론 선조가 말년에 아끼던 사람들이라는 게, 특히 여기 임해군과 얽히는 사람치고 유능한 사람은 한 개도 없다는 게 없다는 게 참 특이합니다만(최원, 유희서). 유희서가 죽기 직전 포천에 유전의 묘소를 정리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화적떼 30여명이 포천을 습격하여 유희서가 사망합니다. 이게 참 대단한 일인데, 포천은 지금도 가깝지만, 당시에도 경복궁과 하루안에 도달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가까운 포천에서 화적떼에게, 선조가 "군"까지 내린 중신이 죽음을 당해? 엄청난 일이죠. 말하자면 국무총리가 휴가중에 조직폭력배에게 칼침맞고 사망 뭐 이런 겁니다. 허덜덜덜...
그런데 말입니다. 이 화적떼가 통 잡히질 않습니다. 이게 8월에 있었던 사건이었는데요, 10월에 되어서야 경기도 광주에서 "설수"라는 도적떼의 수장이 잡힙니다. 설수는 임해군의 종 중 김덕윤(궁 안에서 임해군의 손님을 맞이하는 종으로, 종이지만 문자에도 밝았고 예의도 알아야 했으므로 제법 빠와가 있었다.)의 부하 춘세가 연루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춘세가 잡아온 다음날 사망합니다. 그리고 설수와 같이 붙잡혔던 황복도, 조사전에 사망합니다. 전옥서(감옥을 관리하는 관청. 지금 드라마 설중화를 참조하시라.)에서 뇌물을 받고 농간을 부린 것이죠. 그리고 설수도 죽어버립니다. 결국 우두머리라 판단했던 김덕윤도 잡아들입니다. 그리고 김덕윤도 다음날 죽은 채로 발견됩니다. 이 정도면 농간이 심해도 장난이 아니게 심하죠?
그런데 설수의 수하 중에 박삼석이라는 자가 있었습니다. 이 자가 사건의 전말을 불어 버립니다.
진실은 이렇습니다. 유희서는 이미 한번,기녀를 끼고 자다가 명나라 장군한테 걸렸다고 했죠? 아마 그 기생이 애생이라는 의주의 기녀였을 겁니다. 애생은 제법 예뻤고, 유희서는 이 애생을 데리고 와서 본인의 첩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임해군이 이 애생을 보고 말았어요. 우리는 임해군이 마음에 들면 그냥 뺏는다는 것을 잘 알아요. 그런데 유희서는 본인도 나름 "군"이에요. 그래서 임해군이 달라는데 쌩깠죠. 애생은 애생대로 유희서보다는 기세등등한 왕자님이랑 함께 있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안 보내주네? 임해군-애생-김덕윤이 짝짝꿍이 되어 유희서를 죽이기로 합니다. 김덕윤은 설수를 시켜서 유희서를 죽인 거죠. 이게 진실입니다만, 임해군은 이 모든 증거를 없애기 위해 설수를 죽이고, 김덕윤을 죽인 겁니다.
박삼석의 고변으로 인해 애생도 잡혀옵니다. 그리고 임해군의 종들도 잡혀옵니다. 그리고 대질심문에서, 우리 박삼석씨는
"죄송합니다. 이게 모두 다 무고였습니다."
읭? 씌바 뭐야 이게! 이제와서 이게 무슨 소리여! 박삼석의 무고 파문은 대단했습니다. 설수는 사실 포도청에서 잡아온 게 아닙니다. 유희서에게는 유일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아들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다니다가, 설수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잡아온 것이죠.
유희서 살인사건은 첩(애생)이 지아비(유희서)를 죽인 패륜사건이었으므로, 금부에서 조사하자는 의견도 나올 정도로 큰 사건이었습니다. 한편, 김덕윤은 이미 죽었으므로 시신을 내주었는데, 김덕윤의 시신을 떠메고 임해군의 종 30여명이 유희서의 집에 쳐들어갑니다. 그리고는 유희서의 궤연(죽은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꽃등으로 장식한 불교식 장식) 앞에 김덕윤의 시신을 던지고, "유희서의 어미, 아내, 자녀들은 이 시신을 함께 먹으라. (이 자가 유희서의 원수다.)" 라고 합니다. 아니 시신을 먹으라굽쇼? 어처구니없는 현상에 유희서의 가족들이 멍하니 있자, "왜 안먹냐?" 하면서 유희서의 유족들을 두들겨 패기 시작합니다. 다행히 옆집사람들이 구제해 주어 죽지는 않았습니다만, 피해자 유족들이 어찌 이런 꼴을 당해야 하나요.
그리고 다음날, 이제는 칼과 활로 무장한 40여명이 담을 넘어와 "시신을 내놔! 감히 따라오는 자는 죽을 것이다!" 라면서 시신을 다시 뺏아갑니다. 이 정도면 완전 개판이라 할 수 있겠지요?
사건은 어떻게 흘러갔을까요. 이 말도 안되는 사건은 잘 해결되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