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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동화-잠자는 숲속의 공주
게시물ID : panic_846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케이시스
추천 : 12
조회수 : 4424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0/11/07 00:11:45


 

깊고 깊은 숲 속에는 아직 아무도 본 적이 없는 성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주위에는 찔레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있어 사람들의 접근을 막았다. 

다만 멀리서 바라보면 길게 자란 나무들 위로 솟아 있는 

몇 개의 탑을 희미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 여러 가지 소문이 나돌았다.


 "숲 속에는 유령이 나오는 낡은 성이 있어."


"아냐. 유령이 나오는 게 아니라 전국의 마법사들이 그곳에서 모임을 갖는대."


"그곳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무서운 마귀가 살고 있대. 

 그 마귀들은 아이들을 닥치는 대로 납치해서 잡아먹는다는 거야."


"아냐. 내가 듣기로는 찔레나무로 둘러싸여 있는 성에는 

 아름다운 공주가 100년 동안의 깊은 잠을 자고 있대."
 

 

전설의 공주 이야기를 듣고 유럽 각지에서 청년들이 찾아왔다. 

비극의 공주를 구출해서 사랑과 권력을 모두 움켜쥐려는 야심에 불타는 청년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조금이라도 성으로 다가가면 찔레나무가 마치 사람의 손처럼 얽어버려 

그들은 가시에 찔려 많은 피를 흘리고 죽거나 심하게 다쳤다.
 

사실 신비의 성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었다.
 
성의 왕비는 결혼한 이후 아이가 생기지 않아 슬픔에 잠겨 있었다.
신에게 기도를 하고 부부가 함께 영지 순례를 하고 영험하다는 온천을 찾아다니는 등 

모든 수단을 강구해 보았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시어머니인 태후는 가끔씩 왕비를 조용히 불러 임신한 기색이 없느냐고 물었다. 

왕가의 후계자를 보지 않고는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없다는 것이 태후의 입버릇이었다. 

통풍과 중풍 등 노화 현상이 나타난 태후는 얼마 전부터 

서서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시어머니는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왕비를 힘들게 만들었다. 

가시 돋힌 말은 예사였고 때로는 왕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왕비를 비꼬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는 걸 어떻게 해요?"


"약초를 먹어보는 게 어떻겠느냐."


"약초요?"


"요술사들은 보름달이 떠 있는 밤에 여러 가지 질병에 효과가 있다는 약초를 캐기 위해 

 숲 속으로 들어간단다. 그러니까 내가 아는 여자를 한번 만나보아라. 

 불임이나 불로불사에 효과가 있는 약초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여자야."


그 당시에는 약초를 사용하면 마녀라는 의심을 받았기 때문에 

그야말로 목숨이 걸린 일이었지만, 시어머니의 성화를 견디지 못한 왕비는 굳게 결심하고 

그 방법을 이용해보기로 했다.


왕비는 반신반의하면서 시녀에게 요술사를 찾아 데려오라고 명령했다. 

왕비 앞으로 불려온 여자는 처음에는 잔뜩 경계하여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왕비의 간청에 못 이겨 이윽고 왕비의 요청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성에서 나간 여자는 해가 저물자 망토 안에 약초를 넣은 작은 자루를 감추고 다시 나타났다.


이때부터 왕비의 생활은 바뀌었다.
성 안 깊숙한 곳에 위치한 방에 몇 명의 시녀들이 모여 남모르게 약초를 다렸다. 

다른 시녀들은 약초를 짓이겨 말린 다음에 동물의 지방을 섞고 그 위에 향료를 뿌렸다.


그러나 목숨을 건 모험도 왕비에게 아이를 선사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시어머니의 구박은 계속 이어졌다. 아니, 더욱 심해졌다. 

사실 왕비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원인이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 나라로 시집을 온 첫날밤 새하얀 잠옷으로 갈아입고 이불 속에서 몸을 웅크린 채 

왕비는 왕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왕이 이불 속으로 들어온 기색이 느껴지자 온몸이 굳어져버렸다.
이윽고 왕의 입술이 왕비의 입술을 찾았다. 

다음엔 왕의 손이 잠옷 안으로 파고 들어 봉긋 부풀어오른 유방을 애무했다. 

그 손이 다시 하복부로 옮겨가더니 아무도 밟지 않은 무성한 수풀을 헤쳤다. 

왕비는 수치심과 불안 때문에 몸이 굳어진 상태에서 애부를 받았다.
하지만 왕은 흥분하여 서둘러 왕비의 잠옷을 벗겼다. 

어슴푸레한 달빛 아래에 막 알몸이 드러나려 하자 왕비는 나지막이 비명을 지르며 저항했다. 그때까지 왕비가 받은 교육을 통해서 볼 때 남자의 시선 앞에 알몸을 드러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왕비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고, 초조해진 왕은 강제로 그 몸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날 밤, 왕은 거의 강간을 하듯이 왕비를 범했다.
그때부터 왕비는 완강히 왕을 거부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왕은 초조한 모습으로 자기를 거부하는 왕비를 폭력적으로 범했다.
왕비는 허무한 저항을 되풀이하면서도 어찌해야 좋을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왕과 동침을 해서 후계자를 낳는 것. 

왕비에게 주어진 의무는 그것뿐인데 어떻게 그것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
왕비는 밤이 오는 것이 무서웠다.
아무런 기쁨도 느낄 수 없는 남녀의 행휘. 

잠옷을 벗고 몸을 열어주는 자신의 모습을 다른 눈으로 관찰하고 있을 뿐인 왕비. 

차갑게 식은 시체 같은 몸을 강제로 벌리고 자신의 분신을 밀어넣는 왕...
성이란 이처럼 여자에게 아무런 기쁨도 안겨주지 않는 것일까? 

이렇게 폭력적이고 야만적이며 마음을 비참하게 만드는 행위일까?
그러나 왕비도 여자였다. 

누군가에게 알몸을 맡긴 채 따뜻하고 부드러운 애무를 받고 싶다는 욕망을 

분명히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상대는 왕이 아니었다.
 
어느 여름날, 왕비는 혼자 숲 속의 샘물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잔뜩 가라앉은 공기 속에서 나무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정적 속에서, 

왕비는 어느 틈엔가 음란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멋진 청년이 나타나 아직도 젊고 아름다운 왕비의 몸을 끌어안는 상상이었다.
예의범절, 엄숙한 분위기, 그리고 엄한 규정... 성에서의 생활은 너무 지루했다.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젊고 늘씬한 청년이 나타나 안아주기를 원했다. 

볕에 그을린 눔름한 팔에 안겨 온몸이 녹아버릴 듯한 뜨거운 애무를 받고 싶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몸이 하나로 융합되어 건강한 아이를 잉태하고 싶었다. 

그렇게 되면 왕비로서의 지위가 안정될 것이다.


잠시 후, 왕비는 자기가 그런 망상에 잠겨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퍼뜩 정신을 차렸다. 

몸과 마음이 모두 대자연 속에 있다는 해방감, 상큼한 풀냄새, 

잔잔하게 흐르는 물소리, 귓속을 간지럽히는 새들이 지저귐... 

그런 것들이 조화를 이룬 상쾌한 느낌이 이렇게까지 긴장감을 풀어놓았던 것일까.


왕비는 물 속에 몸을 담그고 망상에 젖었던 흥분을 가라앉히려 했다.
그때 문득 고개를 든 왕비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멀리서 알몸의 청년이 물  위로 몸을 내밀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줄곧 저곳에 있었을까? 내 모든 행동을 빠짐없이 바라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옷을 벗고 샘물 속으로 들어오는 모습도 봤다면...'


왕비는 도망치고 싶었지만 너무 큰 충격 때문에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잠시 후 청년이 결심을 한 듯 왕비에게로 다가왔다.


"용서해주십시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서..."


맑은 목소리였다. 

청년의 검게 그을린 피부, 늠름한 어깨, 늘씬하게 뻗은 팔과 다리, 

마치 그리스의 조각처럼 아름다운 나체... 왕비는 자기도 모르게 현기증을 느꼈다.


"당신은 누구세요?"


"숲 속의 사냥터를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이 숲에 살고 있나요?"


"네, 저기 안쪽의 오두막에 살고 있습니다. 숲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왕비는 잠시 주저하다가 이렇게 물었다.


"나를 계속 보고 있었나요?"


"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옷을 벗고 이 샘물에 들어오는 것도?"


"그래서는 안 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아름다워서 그만..."


청년은 순진하게도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보통 때라면 특별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을 청년의 목소리가 

왜 이렇게 맑은 메아리가 되어 귓속을 파고 드는 것일까? 

이 남자는 여자를 안아본 적이 있을까? 

마을 축제 때 들꽃처럼 소박하고 생기에 넘치는 아가씨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본 적이 있을까? 그 싱싱한 육체를 끌어안고 쾌락의 봉오리를 맛본 적이 있을까?
그때 왕비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이쪽으로, 나를 따라와요."


두 사람은 샘물을 나와 풀 위에 누웠다. 

그리고 어느쪽이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몸을 끌어안고 격렬한 키스를 나누었다. 

얼마나 사랑스런 청년인가. 

 

"여자가 이끌어주지 않으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듯 순진해 보였다.


청년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정신없이 왕비의 가슴을 움켜쥐더니 

얼굴을 묻고 유두를 물었다. 왕비는 어머니처럼 여유 있는 눈초리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청년의 손을 천천히 자기의 가장 소중한 비밀의 숲으로 이끌었다.


"믿을 수 없습니다. 꿈을 꾸는 것 같습니다."


청년이 황홀감에 젖어 중얼거렸다.
왕비는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서 자기도 꿈을 꾸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두 사람은 하나로 맺어졌고 청년이 왕비의 몸 속에서 절정에 이르렀을 때 

왕비도 자기의 몸 안에서 뭔가가 부드럽게 폭발하는 소리를 들었다. 

처음 느끼는 만족감이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려보니 청년은 옆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왕비는 그 탄력 있는 나체를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내가 만족하듯 이 청년도 만족하고 있다. 이 얼마나 건강한 행위인가. 

 이 얼마나 상쾌한 행위인가. 지금까지 혐오하고 두려워했던 행위가 

 이렇게 상쾌하고 즐거운 것이었다니. 이렇게 자연스러운 것이었다니...'


마치 숲 속에 사는 요정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왕비는 몸과 마음을 모두 청년에게 내맡겼다. 

자연 속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제 가요. 오늘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요."


왕비가 그렇게 말하자 청년은 서둘러 일어나더니 나무 위에 걸어두었던 옷을 입기 시작했다.


"또 만날 수 있겠습니까?"


청년이 셔츠에 팔을 끼우다 말고 머뭇거리며 물었다.


"아니, 아마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을 거예요."


그 말에 청년의 얼굴이 슬픈 빛을 띠었다. 

그러나 잠시 후,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바람처럼 재빨리 모습을 감추었다. 

왕비는 알몸인 채로 혼자 남아 아직도 꿈 속에 젖어 있는 듯한 기분을 맛보았다.
정신을 차리자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죽은 듯한 정적이 주위를 감싸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잠깐 동안의 백일몽을 꾼 듯했다. 

왕비는 결심을 하고 일어섰다. 

끝없이 이어지는 지루한 일상생활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매우 짧은 시간이었을 텐데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묘하게도 그 청년과의 만남 이후, 왕비는 왕의 방문을 그다지 싫어하지 않게 되었다.
왕비의 변화를 즉시 간파한 왕은 매우 기뻐하며 그녀의 육체를 안았다. 

왕비는 이제 어슴푸레한 달빛 아래에서 나체를 드러내는 것도 거부하지 않았다. 

아니, 왕이 바라는 경우에는 그보다 훨씬 대담한 행위에도 응할 수 있게 되었다.
왕은 그런 왕비의 변화를 보고 마침내 자기의 뜻이 통한 것이라고 기뻐했다.

왕도 예전처럼 폭력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왕비의 육체를 부드럽게 끌어안고 충분한 애무를 한 다음에 하나가 되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왕비는 자기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달이 차서 태어난 아이는 진주처럼 아름다운 공주였다. 

기대했던 아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라 전체가 기쁨에 들떴다
모든 교회의 종이 울려퍼지며 왕가 후손의 탄생을 알렸다. 

그 종소리는 마을을 오가는 상인들, 밭에서 괭이질을 하는 농부들, 

그리고 숲 속에서 나무를 베는 나무꾼들의 귀에도 울려퍼졌다.


왕비는 갓 태어난 아이를 소중하게 끌어안았다. 

문득 이 아이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하는 불안감이 느껴졌지만 

이내 고개를 저어 그런 생각을 떨쳐버렸다. 

이것으로 더 이상 시어머니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 

왕비로서의 역할을 멋지게 완수했다. 

그리고 왕비로서의 지위도 이게 확고해졌다.


왕도 기다리던 아이의 탄생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궁전에서는 공주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한 세례 의식이 화려하게 거행되었다. 

연회석에는 일곱 명의 선녀들이 초대되었다. 

당시에는 선녀를 초대해서 갓 태어난 아이의 미래를 예언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일종의 유행이었다.


세례식이 끝나자 초대받은 사람들이 성 안의 거실에 모였다. 

그 곳에는 금은으로 만들어진 식기와 와인이 커다란 대리석 테이블 위에 줄지어 놓여 있고, 

진귀한 과일과 고기와 생선 요리가 금테를 두른 화려한 접시에 담겨 테이블이 좁다는 듯이 

진열되어 있었다.


화려한 옷을 차려입은 손님들의 옷자락 끌리는 소리가 한동안 이어지고 나서 

이윽고 만찬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산해진미를 마음껏 즐겼다. 

조용한 대화가 오가고 화려한 관현악기의 음악에 맞추어 여자들이 춤을 춘 뒤에 

드디어 초대받은 선녀들이 공주의 축복을 비는 인사말을 하게 되었다.


첫번째 선녀가 말했다.


"공주님은 아름다운 여자로  성장할 거예요."


 

그러자 두 번째 선녀가 말했다.


"공주님은 마치 천사처럼 상냥한 분으로 자랄 거예요."


 

이어서 세 번째 선녀가 말했다.


"공주님은 최고로 우아한 분으로 자랄 거예요."


 

네 번째 선녀가 말했다.


"공주님은 춤을 잘 추는 여자로 자랄 거예요."


 

그리고 다섯 번째 선녀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여섯 번째 선녀는 악기를 잘 연주하는 능력을 선물했다. 

왕과 왕비는 기쁜 표정으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문지기가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늙은 선녀 한 명이 

검은 망토로 몸을 감싸고 거실로 들어왔다. 

사실 왕과 왕비는 그 선녀를 일부러 초대하지 않았다. 

그 선녀는 말버릇이 나쁘고 예언도 제대로 못한다는 이유에서 사람들이 싫어했다. 

어렵게 얻은 아이에게 이상한 예언을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초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늙은 선녀가 들어오는 것을 본 일곱 번째의 젊은 선녀는 

상대가 문제를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즉시 몸을 숨겼다. 

뭔가 안 좋은 일이 발생하면 자기의 능력으로 갓 태어난 공주의 운명을 지켜줄 생각에서였다.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받았다는 것에 화가 난  선녀는 왕과 왕비에게 인사를 하기는커녕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한번 노려본 뒤에 이렇게 선언했다.


"공주가 열다섯 살이 되면 북에 찔려 피를 흘리면서 쓰러져 그대로 죽을 것이다."


사람들은 너무나 가혹한 예언에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왕비는 현기증을 느끼고 비틀거렸다. 

얼굴을 붉힌 왕은 왕비를 부축하면서 이렇게 외쳤다.


"그 무슨 터무니없는 말이냐? 공주가 죽는다고? 그럴 리가 없다."


그러나 선녀는 대답도 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려 거실을 나가버렸다.
그러자 몸을 숨기고 있던 일곱 번째 선녀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왕 앞으로 나아가 이렇게 말했다.


"제 힘으로는 조금 전의 예언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어요. 

 하지만 안심하세요. 공주님은 북에 손을 찔려 쓰러지기는 하지만 죽지는 않을 거예요. 

 다만 100년 동안의 깊은 잠에 빠질 것이고, 

 100년이 지나면 왕자님이 나타나 공주님을 잠에서 깨워줄 거예요."


사람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늙은 선녀의 에언때문에 연회를 계속할 기분이 아니었다. 

어색한 공기가 거실을 가득 에워쌌다. 

술이 깬 손님들은 줄지어 자리를 떴고, 결국 왕과 왕비만이 남았다.


일곱 번째 선녀가 늙은 선녀의 예언을 완화시켜주기는 했지만 

어쨌든 공주가 열다섯 살이 되면 깊은 잠에 빠지는 것은 틀림없다. 

어차피 예언을 완화시켜줄 거라면 열다섯을 육심으로 연장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생각한 왕과 왕비는 일곱 번째 선녀까지 원망했다.
 
기껏해야 북에 찔리는 정도로 100년 동안의 깊은 잠에 빠진다니... 

왕은 고민에 빠졌다. 

예언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나라 안의 모든 학자들이 초대되어 왕과 함께 머리를 쥐어짰다. 긴 침묵이 지난 뒤에 이윽고 한 학자가 입을 열었다.


"제가 생각하기에 북은 일종의 비유인 것 같습니다."


"비유라고?"


"예를 들면, 북에 손이 찔려 피를 흘린다는 것은 공주님이 15세에 초경을 맞이하여 

 어른이 된다는 뜻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아이로서의 죽음'을 뜻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실을 뽑는 것은 여자들이 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북은 여자의 소중한 장소에 있는 작은 돌기물이 아니겠습니다. 

 즉 공주님은 15세 때에, 그 곳을 희롱하는 장난을 하다가 

 실수로 처녀성을 잃는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자위의 죄를 범한 벌로 깊은 잠에 빠진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아니, 아닙니다. 북은 그 모양으로 볼 때 남근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공주님은 15세가 되면 그것에 찔려 처녀성을 잃는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격심한 통증과 대량의 출혈 때문에 정신을 잃고 

 그대로 잠이 든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뭐라고? 북이 남근이라고?"


시집을 갈 때까지 순결한 처녀이기를 바라는 왕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말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좋겠느냐? 

 어떻게 해야  공주를 그런 위험한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막을 수 있겠느냐?"


"공주님을 모든 남자들로부터 격리시킨 상태에서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주님을 위험한 잠에서 지키려면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 들 옆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를 듣고 있던 왕비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 청년과의 꿈 같은 한 때를 왕비는 잊은 적이 없었다.


'공주가 결혼 전에 처녀성을 잃는다고? 

 이 청순한 갓난아이가 그런 음란한 공주로 자란다는 것인가? 

 이것은 죄가 아닐까? 왕을 속이고 다른 남자와 몸을 섞은 내 죄 때문이 아닐까? 

 내 몸에 흐르는 음란한 피가 공주에게 유전된 것이 아닐까?'


왕비는 무서운 운명에 조용히 흐느낄 뿐이었다.


"여보, 어떻게든 이 아이를 무서운 운명에서 지켜주세요."


왕은 울면서 애원하는 왕비를 힘껏 끌어안고 이렇게 약속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 손으로 귀여운 공주를 지켜주겠소."
 

남편이 보여주는 남자다운 의연한 태도에 왕비는 왕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공주를 지킨다는 그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처음으로 왕과 왕비의 마음이 하나가 되었다. 

마침내 두 사람은 이상적인 커플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었다.


그 청년과의 한때는 잊자. 아니, 잊어야 한다. 왕비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결심했다.
왕은 우선 나라 안의 모든 베틀과 북을 남김없이 불태워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북은 누에고치나 마에서 실을 뽑는 베틀에 딸린 도구로 

그 길이가 20~30센티미터인 가늘고 긴 막대기다. 

양 끝이 가늘고, 한가운데에 실을 감은 뭉치인 꾸리라는 것이 들어 있으며, 

위쪽으로 구멍이 뚫려 있고, 구멍 입구에는 꾸리가 솟아오지 못하도록 

눌러놓는 역할을 하는 대나무로 만든 북바늘이 걸쳐져 있다. 

이것으로 씨실을 풀어주면, 그 안에 들어 있는 꾸리가 물레에서 뽑아낸 실을 감는다.


일찍이 유럽의  여자들은 철이 들 무렵이 되면 베틀을 이용해서 실을 뽑는 일을 배웠다. 

남자는 사냥을 나가거나 가축을 돌보는 한편 전쟁에 참가해야 했기 때문에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다. 그럴 경우 남자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실을 뽑아 옷을 만드는  것이 여자들의 하루 일과였다.
중세 당시, 철들 무렵의 여자들은 긴 겨울밤이면 공동으로 베를 짜는 방에 모여 

열심히 실을 뽑았다. 

여자들이 모여 한 가지 일에 전념하는 모습은 남자들에게 뭔가 비밀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젊은 남자들은 뭔가 구실을 만들어 베 짜는 방으로 들어가서 

아가씨들에게 수작을 걸었다.
밤이 이슥해져서 나이 든 여자들이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면 

청년들과 아가씨들의 억제되어 있던 성욕이 밀실의 어두운 불빛 아래에서 서서히 해방되었다. 즉 베를 짜는 방은 음란한 만남의 장소였다.


이런 습관 때문에 '북'은 뭔가 성적인 내용과 연결되었고, 

그 모양 때문에 '남근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며, 

그 것에 찔리는 행위는 처녀 상실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왕비는 고민했다.


'내가 무서운 죄를 지은 것이 아닐까? 

 그리고 갓 태어난 공주는  그 죄의 씨앗이 아닐까? 

 공주도 언젠가 나와 같은 죄를 짓는 것이 아닐까?'


부디 공주만큼은 자기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공주만큼은 자기처럼 음란한 죄를 짓지 않기를, 

그리고 좋은 남자에게 시집을 가기 전까지는 순결한 처녀이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왕은 전국에 베틀과 북의 사용을 금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것은  결국 베 짜는 방에셔의 추잡한 행위를 완전히 소멸시키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
또한 왕은 나라 안의 모든 베틀과 북을 모아 성 앞의 광장에 쌓아놓고 불태워버렸다. 

신하들은 무엇 때문에 그런 명령을 내리는 것인지 

이유를 확실히 몰랐기 때문에 불평을 늘어놓았고, 

어떤 신하는 마침내 왕이 제정신을 잃었다고 비웃기까지 했다. 

하지만 왕은 분명히 제정신이었고 진지했다.


소중한 공주는 처녀여야 한다. 

멋진 왕자와 결혼할 때까지는 순결한 몸이어야 한다. 

타오르는 거대한 불꽃을 바라보면서 왕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기도했다.
이윽고 배틀과 북을 모두 불태운 왕은 나라 안의 음탕한 남녀를 모두 붙잡아 엄벌에 처했다. 

혼전 성교, 동성애, 매춘 등은 모두 금지되었고 

이 규정을 어긴 자는 채찍질을 당하거나 머리를 깎여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본보기가 되었다.


예를 들면, 남자에게 돈을 받고 몸을 판 여자는 머리가 깎이고 

알몸에 타르를 바른 모습으로 거리를 돌아야 했다. 

그러면 지나가는 구경꾼들이 여자에게 쓰레기와 오물을 던졌다.
그리고 남자가 미혼녀와 정을 통하거나 매춘녀와 몸을 섞으면 

그가 유부남인 경우에는 간통죄로 체포되었고 

독신인 경우에는 상대 여성과 즉시 결혼시켰다. 

수많은 감시원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곳 저곳을 감시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함부로 행동할 수 없었다.
 
한 동안은 평화로운 생활이 흘러갔다. 

일곱 선녀들의 예언대로 공주는 아름답고 상냥하고 춤도 잘 추고 우아한 여자로 자랐다. 

공주를 보살피는 일은 시녀들만이 담당했다. 

남자인 시종은 공주 옆에 얼씬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왕비의 뜻을 받아들인 왕은 묘한 결심을 했다. 

 

공주를 사내아이처럼 키우자고 한 것이다.
공주는 남자처럼 무릎 근처에 장식용 단추가 달린 짧은 바지와 소매가 달린 옷을 입었다. 

머리도 짧게 깎았고 남자 같은 말투를 사용했다.
공주가 짧은 머리카락과 반바지 차림으로 궁전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신하들 중에는 말세라면서 한숨을 내쉬는 사람도 있었다. 

 

또 그와는 반대로 소년 같은 분위기 때문에 

공주의 미모가 더욱 돋보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마치 미소년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모습에 가슴이 설렌다는 사람도 있었다.


공주가 잘 돌아가지도 않는 혀로 소년처럼 말을 하거나 

검술을 배우면서 기합을 넣으며 칼을 휘두르는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귀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성에서 무도회가 열려 이웃 나라의 왕후와 귀족들이 초대되었다. 

고상한 모습으로 화려하게 차려입은 남녀들이 넓은 거실에 줄지어 늘어서서 

악대가 연주하는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공주는 아직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무도회에는 참석할 수 없었으므로 

대기실에서 시녀들과 함께 그 광경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정말 아름다운 여자들이야. 저 드레스는 무엇으로 만든 것이지?"


화려하게 빛나는 수정 샹틀리에, 

드레스 위로 드러난 귀부인들의 하얀 가슴, 

그리고 그 가슴 위에 찬란하게 빛나는 다이아몬드와 루비 등 동양에서 건너온 수많은 보석들, 

턴을 할 때마다 고래뼈로 만든 코르셋에 의해 잔뜩 부풀어지는 드레스, 

그리고 비단 옷자락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공주는 옆에 있는 시녀에게 말을 걸었다.


"나네트, 나하고 춤 한번 추자."


공주는 시녀의 허리에 팔을 감고 우아한 동작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남장을 한 공주가 하이힐을 이용해서 턴을 하는 모습이 매력이 넘쳤다. 

다른 시녀들도 하던 일을 멈추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중에는 길게 한숨을 내쉬는 시녀도 있었다. 

시녀들은 공주가 여자라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린 듯했다. 

이때부터 남장을 한 공주는 성 안에 있는 여자들의 아이돌(idol)이 되었다.


또 언젠가는 공주가 부왕을 따라 숲으로 사냥을 나간 적도 있었다.
날카롭게 울려퍼지는 호각소리, 

대지를 뒤흔드는 말발굽 소리, 

그리고 사냥개들이 짖어대는 소리, 

산에 메아리치는 총성, 

사냥을 하는 남자들의 우렁찬 고함소리...


"아버지, 저기에 사냥감이 있어요."


그렇게 소리치고서 공주는 앞을 가로지르는 사슴 한마리를 쫓아 말을 몰았다. 

어찌나 빨리 달리는지 왕이 서둘러 시종들에게 명령하여 공주를 말리라고 했을 정도였다.


"왜 말리는 거예요? 이렇게 재미있는데..."


시종들의 만류에 어쩔 수 없이 되돌아온 공주의 얼굴에 불만스런 표정이 뚜렷했다. 

그런 공주를 보고 쓴웃음을 지으면서 왕은 공주를 제대로 키우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점차 여자라는 사실을 잊어가고 있는 공주.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은 기ㅣ쁜 것이지만 

자기가 여자라는 사실을 부정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자에게는 여자의 행복이 있는데, 

여자에게는 여자의 아름다움이 있는데... 

왕은 왕비의 뜻대로 공주를 남자처럼 키우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왕은 공주가 자신의 몸을 만지거나 거울에 비추어보지 못하도록 금지시켰다. 

그래서 때로는 공주가 내 몸을 왜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느냐고 신경질을 부리기도 했지만 

시녀들은 왕의 명령대로 공주의 행동을 제한했다.


연애소설을 읽을 수도, 나체 그림을 볼 수도 없었다. 

곤충이나 동물의 성적인 행위도 공주가 볼 수 없도록 조치했다.


성적으로 엄하다는 면에서 보면 가장 먼저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이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왕조다. 

현모양처인 빅토리아 여왕이 지배했기 대문에 음란성에 대해서는 특히 엄했던 시대였다.


예을 들면, '다리'라는 말이 이상한 여운을 풍긴다는 이유에서 사용을 금지시켰다. 

사람의 다리뿐 아니라 의자나 피아노의 다리까지도 음란한 여운이 풍긴다는 이유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도록 감추어야 했다.


다리를 leg라고 말하지 않고 limb(손발을 가리키는 단어)라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표현했고, 

'와이프'라는 말도 성적인 여운이 풍긴다는 이유에서 '레이디'로 바꾸어 불렀으며, 

유방을 가리키는 breast(가슴)이라는 단어도 이상하다는 이유에서 bosom(품)이라는 

단어로 표현해야 했다.


그 밖에도 여성은 자기의 방에 남성의 그림을 걸어 두어서는 안된다, 

책도 남성 작가의 작품과 여성 작가의 작품을 따로 꽂아두어야 한다는 등, 

지금 생각해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규정이 많았다. 

바로 그런 빅토리아 왕조 시대 같은 규정 속에서 공주는 자라야 했다.


그러나 아무리 직선적인 남자의 옷으로 부드러운 육체의 곡선을 감추어도, 

아무리 청결하고 순결한 것들로 공주의 주위를 감싸도, 

공주가 여자로서 성장하는 것만큼은 막을 방법이 없었다.
공주의 몸은 남자의 옷 안에서 점차 볼륨을 갖추어 갔다. 

초경도 시작되었으며, 소중한 부위가 검은빛을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 때로는 온몸이 뜨겁게 타오르는 듯한 묘한 감각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현상인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공주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육체만 성숙해졌고, 

몸 안에 존재하는 세포들의 여성적인 감각만 성숙해질 뿐이었다.
 
드디어 공주가 열다섯 살이 되었다.
어느 날 왕과 왕비가 오랜만에 외출을 했다. 

성은 쥐죽은 듯이 조용한 정적에 싸였다. 

지루한 공주는 문득 성 안을 탐색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왕과 왕비가 외출하자 마음이 풀어진 시녀들은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옆에서 이것저것 잔소리만 늘어놓는 시녀들이 잠에 빠져 있자 공주는 해방감을 느꼈다.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는 식으로 참견하고 간섭하는 시녀들에게 

공주는 충분히 질려 있었다.


공주는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며 마음껏 구경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 뒷마당으로 돌아가자 작은 문이 하나 있었다. 

문에는 열쇠가 그대로 꽂혀 있었다. 

열쇠를 돌리자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면서 

돌로 만들어진 좁은 나선형 계단이 나타났다.


나선형 계단을 올라간 공주는 마침내 천수각에 이르렀다.
탑 꼭대기의 다락방으로 이어지는 작은 문을 열자 낡은 가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서진 의자나 테이블, 찬장 등이 가득 쌓여 있고 낡은 촛대들이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그런 가구들 틈에 역시 낡아빠진 긴 의자가 놓여 있고 그 위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성에서 일하는 시종이었는데, 그곳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한 시녀가 좀처럼 오지 않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남장을 한 공주가 나타나자 남자는 기절할 정도로 깜짝 놀랐다. 

그러나 공주의 아름다운 모습을 확인한 순간, 참을 수 없는 욕망을 느꼈다.


 '정말 아름다워. 언제 보아도 최고의 미인이야.'


오래 전부터 먼발치에서 공주를 바라볼 때마다 어린 나이에도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끌렸었다. 

그러나 도저히 손길이 닿을 수 없는 벼랑 위의 꽃으로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가까이, 바로 눈앞에 나타나다니...


"이곳에는 어떻게 오셨습니까?"


"응. 성 안을 구경하고 있는 중이야. 그런데 여긴 너무 지저분하다."


공주가 남자 같은 말투로 대답했다.
남자 옷을 입고 이씨었지만 봉긋한 가슴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람쥐 같은 순진한 눈동자, 꽃봉오리처럼 도톰한 입술...
아직 남자의 때가 묻지 않은 과일을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남자의 머리 속에 가득 채웠다. 

시녀를 기다리는 동안 초조감 때문에 잔뜩 부풀어 있던 욕망이 

분출할 곳을 찾아 신음하고 있었다. 

그 욕망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공주에게로 쏠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남자는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런데 너는 누구니? 남자가 왜 여기에 있는거야? 

 나는 남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라.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남자들과 말을 나누거나 가까이 가면 안 되거든. 사실 흥미는 많은데."


"그럼 이쪽으로 오십시오, 공주님. 제가 남자가 어떤 것인지 가르쳐드리겠습니다.
 남자는 긴 의자에 공주를 앉히고 옷에 손을 가져갔다.


"재미있는 게임을 하지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프거나 무서운 게임은 아니니까요."


웃옷을 벗기고 바지를 벗기고 속옷을 벗기자 공주의 알몸이 조금씩 드러났다. 

그래도 공주의 얼굴에는 부끄러운 빛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남자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부끄럽지 않습니까? 남자 앞에서 알몸이 되었는데요."


"아니, 왜 부끄럽지?"


공주는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건 게임이라면서? 빨리 너의 알몸도 보고 싶어. 자, 이제 너도 옷을 벗어야지."


남자가 옷을 벗자 공주는 눈을 빛내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두툼한 가슴, 탄력 있는 허리, 무성한 수풀, 그리고...


"건강해 보이는데. 어라, 이런 곳에 털이  나 있네. 우와, 유두가 이렇게 작아? 

 이상하네. 시녀들의 몸과는 전혀 달라. 어라?"


점차 남자의 하반신으로 눈길을 옮기던 공주가 갑자기 놀라며 물었다.


"이게 뭐야? 막대기처럼 생긴 것이 끄덕끄덕 움직이네. 이게 도대체 뭐지?"


"공주님, 이건 이렇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남자는 짐승처럼 공주에게 덤벼들었다.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낀 공주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성인 남자의 힘을 당할 수는 없었다.
힘에 밀려 긴 의자에 쓰러진 공주는 비밀스런  부분에 

남자의 단단한 물체가 강렬하게 파고들자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의자가 피로 물들면서 공주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버렸다.
순간 제정신으로 돌아온 남자는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서둘러 공주에게 옷을 입혔다.


"큰일났다! 공주님이 쓰러지셨다!"


그리고 이렇게 소리친 뒤에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그 소리를 듣고 성 안 여기저기에서 시녀들과 시종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탑 꼭대기의 다락방에 쓰러져 있는 공주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때부터 소동이 벌어졌다. 

공주의 얼굴에 물을 끼얹고, 속옷을 느슨하게 해주고, 코에 알코올을 갖다 대고, 

관자놀이에 향수를 발라주고 했지만 공주는 깨어나지 않았다.


성으로 돌아온 왕과 왕비가 이야기를 듣고 달려왔다. 

처음에는 충격 때문에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지만 

이윽고 션녀의 예언을 떠올리며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받아들였다. 

왕은 공주에게 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히고 가장 멋진 방으로 옮겨 

금은으로 자수를 놓은 비단 천장이 딸린 침대에 눕혔다.
 
생각해보니 공주에게 여자 옷을 입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런 일로 여자 옷을 처음 입히다니... 

슬픔이 복받친 왕과 왕비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지금까지 남자로서 키운 탓에 공주는 여자로서의 기쁨을 전혀 몰랐다. 

불평 한마디 한 적이 없지만 공주에게는 그것이 큰 불행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공주를 불행에서 구하기 위한 부모로서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정신을 잃기는 했지만 공주의 얼굴은 지금까지와 다름없이 생기가 넘쳤다. 

장미 같은 얼굴과 산호 같은 입술이 마치 천사처럼 아름다웠다. 

눈을 감고 있기는했지만 희미한 숨결이 들렸기 때문에 

죽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왕은 공주가 깨어날 때까지 이대로 편안하게 잘 수 있도록 내버려두라고 명령했다.


한편, 15년 전에 늙은 선녀의 예언에서 공주의 목숨을 구해준 일곱 번째 선녀는 

공주가 쓰러지는 사건이 일어난 그때 성에서 1만 2천 리 떨어져 있는 먼 나라에 가 있었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고서 즉시 불을 뿜는 네 마리의 용이 끄는 마차를 타고 

하늘을 날아 성으로 향했다.


성에 도착한 선녀는 왕과 왕비의 조치에 만족해했다. 
단, 100년 뒤에 공주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성 안에 혼자 있으면 외로울 것이라 생각하여 

성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공주와 함께 잠재우리고 했다.


선녀는 손에 들고 있던 마법의 지팡이를 휘둘렀다. 

왕과 왕비, 귀죽들, 시녀와 시종들, 관리들, 하녀들, 요리사, 병사, 

하인, 마부, 마굿간에 있는 말과 닭, 그리고 공주의 애완견까지 

선녀의 지팡이가 닿으면 모든 것들이 즉시 잠에 빠졌다.


말은 마굿간에서, 개는 거실에서, 파리는 벽에 달라붙은 채 잠이 들었다. 

아궁이에서 타오르던 불길도 그대로 멈추었고 주방에서 구워지던 고기도 그대로 멈추었다. 

바람도 멈추었고 정원의 나무들도 성장을 멈추었다.


이어서 성 주위에 찔레나무가 심어졌는데, 그것들은 빠른 속도로 자랐다. 

찔레나무의 날카로운 가시는 서로의 멈을 얽어 사람이나 짐승이 지나갈 수 없도록 만들었다. 찔레나무는 즉시 성보다 높이 자라 마침내 성 전체를 감쌌다. 

그에 따라 성은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가끔식 그 근처에 사냥을 나온 귀족들이 높은 찔레나무  너머로 보이는 탑이 무엇이냐고 

마을 사람에게 물었다.
마을 사람들은 각각 자기가 들은 소문을 이야기했다. 

어떤 사람은 유령이 나오는 낡은 성이 있다고 대답했고, 

어떤 사람은 전국의 마법사들이 모임을 가지는 성이 있다고 대답했다. 

또 어떤 사람은 그곳에 사람을 잡아먹는 무서운 악마가 살고 있는데, 

그 악마들은 아이들을 닥치는 대로 납치해서 잡아먹는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아름다운 공주가 잠들어 있는 성이 있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잠들어 있는 아름다운 공주의 전설은 곧 온 나라에 퍼졌다. 

소문을 듣고 여기저기에서 왕자들이 찾아와 찔레나무를 헤치고 성으로 다가가려 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찔레나무는 마치 사람의 손처럼 서로의 몸을 강하게 얽어매고 있었기 때문에 

왕자들은 가시에 찔려 많은 피를 흘리고 죽거나 심하게 다쳤다.


그래도  공주의 전설을 듣고 각지에서 찾아오는 청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비극의 공주를 구출하겠다는 기사도 정신 때문이기도 했지만, 

실은 더욱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왕자의 신분으로 태어나더라도 성을 상속받을 수 있는 장남을 제외한 둘째나 셋째는 

성에 머무를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수도원으로 들어가거나 다른 곳의 왕을 받들 기회를 찾거나 

스스로의 능력으로 다른 성을 얻는 수밖에 없었다.


기사들의 신분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둘째나 셋째는 어린 시절부터 다른 가문으로 들어가 

수업을 쌓고 무예를 닦았다. 

그러나 성장해서 그 가문에서도 나오게 되면 시험을 통해 출세할 기회를 붙잡거나 

돈 많은 미망인의 남편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잠자는 공주를 구하고 왕의 허락을 받아 사위가 되어 한 나라를 손에 넣는다는 것은 

당시의 둘째나 셋째들의 꿈이었다. 

많은 왕자들과 기사들이 끊임없이 잠자는 공주를 구하려 했던 배경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많은 세월이 흐른 어느 날, 한 왕자가 사냥을 나왔다가 성 근처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찔레나무 너머에 있는 탑을 발견한 왕자는 마침 지나가는 노인에게 

그 탑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노인은 아는대로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찔레나무 너머에는 성이 있고 그 곳에는 아름다운 공주님이 잠들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100년이 지나면 왕자님이 찾아와 공주를 잠에서 깨워 결혼하게 된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왕자님들이 찾아와 찔레나무를 헤치고 성으로 다가가려 했지만 

 아직까지 살아 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답니다."


왕자는 정말 로맨틱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 성으로 들어가서 잠자는 공주를 보고 싶었다. 

어린 시절부터 훌륭한 스승에게 검술을 배웠고 

많은 실전을 치른 경험을 갖고 있는 왕자는 자신이 있었다.


"그 성으로 가보고 싶습니다. 길을 가르쳐주십시오."
 

노인은 위험하니까 가지 말라고 말렸지만, 왕자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사실은 바로 그때가 공주가 잠든 지 정확히 100년이 되는 시기였다. 

그래서 왕자가 성 쪽으로 다가가자 묘하게도 찔레나무들이 저절로 길을 열어 

그가 지나갈 수 있게 해주었다.


이윽고 넓은 길이 나오고 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왕자가 문득 뒤를 돌아보니 따라와야 할 시종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왕자가 지나가자 즉시 찔레나무들이 다시 얽혀 뒤따라오는 사람들을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문을 열고 앞마당으로 들어가자 등골이 서늘한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이곳 저곳에 죽음이 그림자가 감돌고 이씨었고 사람과 동물이 여기저기에 쓰러져 있었다.
하지만 문지기가 포도주가 담긴 글라스를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들이 죽은 것이 아니라 잠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성 안으로 들어간 왕자는 대리석이 깔려 있는 거실을 지나 계단을 올라가서 

병사들의 방으로 들어갔다. 

병사들은 무기를 들고 정렬한 채 하품을 하고 있었다. 

다른 방에서도 귀족이나 귀부인들이 서 있거나 소파에 앉아 잠에 빠져 있었다.


이곳 저곳을 확인하며 계단을 올라간 왕자는 

마침내 성에서 가장 안쪽에 위치해 있는 황금으로 및나는 방을 발견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보니 방 안에는 비단 장막이 쳐져 있고 

천장이 딸려 있는 침대가 놓여 있었다. 

뛰는 가슴을 달래며 장막을 걷자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미녀가 반듯이 누워 있었다.


내부에서 빛이 발산하는 듯한 장밋빛 뺨, 

붉은 기운이 감도는 눈두덩, 

산호색의 도톰한 입술, 

그리고 새하얀 목덜미... 

왕자는 이렇게 아름다운 소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왕자의 입술이 공주의 입술 가까이에 다가갔다. 

희미한 숨소리를 내며 내뿜는 공주의 숨결이 뺨을 간지럽혔다. 

드레스 위로 가슴에 손을 대자 봉긋 부풀어오른 유방의 탄력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잠들어 있는 공주는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왕자는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공주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부드러운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히며 달콤한 감촉이 전해져왔다. 

순간적으로 훙분을 느낀 왕자는 공주의 입술을 힘껏 빨아들였다.


바로 그 순간, 마법이 풀린 듯 잠들어 있던 공주가 갑자기 눈을 떴다.


"어머, 당신은 누구세요?"


공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왕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는... 왕자입니다. 공주님을 구하러 왔습니다."


왕자는 자기도 모르게 머뭇거리며 간신히 대답했다.


"당신이 제 왕자님이군요?"


공주는 싱긋 미소를 짓고 왕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당신을 기다렸어요."


공주의  사랑스런 말투에 완전히 매료된 왕자는 

흥분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몰라 그저 사랑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공주가 왕자보다 더 차분하게 말을 잘하는 것은 특별히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공주는 꿈 속에서 왕자를 만나면 가장 먼저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줄곧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꿈 속에서 어느 친절한 선녀가 나타나 공주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예를 들면, 그녀가 남장을 하고 다녔지만 사실은 여자라는 것, 

앞으로 긴 잠을 자는 동안 그녀는 여자로서 성장하게 되고 

그 성장이 원숙하게 이루어졌을 때 그녀 앞에 멋진 왕자님이 나타난다는 것, 

그리고 두 사람이 결혼하여 함게 인생을 보낸다는 것 등이었다.
 
두 사람은 몇 시간 동안이나 이야기에 열중했지만 그래도 할 말이 너무 많았다. 

이윽고 궁전 안의 모든 것들이 잠에서 깨어났다. 

사람들은 즉시 예전처럼 자기 의 임무를 수행하려 했지만 배가고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왕자는 공주의 손을 잡고 일으켜세웠다. 

공주가 입고 잇는 의상은 멋진 것이기는 했지만 

왕자의 눈에는 노파들이 입는 고루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왕자는 굳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의상을 입고 있어도 공주는 지나칠 정도로 아름답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거실로 들어가자 이미 자리에 앉아 있던 왕과 왕비가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이 온 것이었다. 

왕과 왕비는 왕자의 멋진 풍채와 에의바른 말투에 만족했다. 

이런 왕자라면 틀림없이 공주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들은 시중을 드는 시녀 몇 명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물리치고 

가족끼리 단란한 식사를 했다. 

물론 왕자도 함께였다.


식사를 하는 도중에 플루트와 바이올린으로 우아한 음악이 연주되었다. 

지금은 어디에서도 들어보기 어려운 오래 전의 음악이었지만, 

행복감에 취해 있는 왕자에게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랑에 취한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식사를 마치고 즉시 성 안의 예배당에서 두 사람의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식이 끝나자 시녀가 두 사람을 침실로 안내하고 장막을 쳤다.
그러나 두 사람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공주는 이미 100년 동안이나 잠을 잤기 때문에 전혀 피곤하지 않았고, 

왕자는 행복감에 취해 잠이 오지 않았다. 

두 사람은 침대에서 오랫동안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다.


시종의 남근에 의해 파열된 공주의 처녀막은 

친절한 션녀의 도움으로 원래대로 복원되어 있었다. 

신혼의 잠자리에 얼룩진 선명한 붉은 피는 공주가 분명한 처녀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왕자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했다.
 
왕자와 공주의 행복한 결혼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곧 두 사람 사이에 여러 가지 견해 차이가 발생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100년이라는 시간차가 있었기 때문에 하는 일마다 의견이 대립되었다. 

가치관과 상식이 달랐고 패션이나 유행에 관한 의견도 달랐다.
현대와 비교하면 시대적 흐름이 느리긴 하지만 100년의 세월은 결코 적은 차이가 아니었다. 100년이 지나는 동안 세상은 크게 바뀌어 있었다. 

의상 하나만을 보다라도 100년 전에는 없었던 

후프스커트라는 나무통 모양의 드레스가 크게 유행하고 있었다. 

스커트가 너무 부풀어 있어서 문을 지날 때에는 옆으로 지나가야 했고, 

에스코트하는 남자는 한 걸은 앞이나 뒤에서 따라가야 했다. 

앉을 때에는 과거보다 세 배나 더 넓은 장소가 필요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후프스커트로도 부푼 정도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 

이번에는 '파리의 엉덩이'라는 유행이 나타났다. 

쿠션이나 패드를 천에 부닥하여 여자의 엉덩이를 인공적으로 크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제는 풍만한 유방만이 여자의 매력이 아니었고, 

뒤로  솟아오른 여자의 엉덩이가 남자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공상을 불러을으켰다. 

그리고 신발은 가죽이 아닌 비단이나 마로 만들어진 끝이 뾰족한 하이힐로서, 

금실이나 은실과 보석으로 장식되었다. 

단단하게 동여맨 코르셋과 크게 부풀린 스커트를 입고 

높이 올려 묶은 머리의 균형을 잡아야 하는 귀부인들이 

이런 신발을 신고 걷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언젠가 공주는 후프스커트를 높이 치켜든 채 무릅을 굽히고 쭈그린 자세로 비틀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 여자를 본 적이 있었다. 

공주가 흉내를 내보려 했지만 도저히 불가능했다.


게다가 피부에 붙이는 스티커가 대유행이어서 

별, 초승달, 원, 하트 등 여러 가지 모양이 있었다. 

그 스티커는 붙이는 곳에 따라 각각 다른 의미를 나타냈다. 

 

예를 들면, 눈 옆에 붙이면 정열, 

코 옆에 붙이면 수치를 모르는 사람, 

입술 옆에 붙이면 요염, 

뺨 한가운데에 붙이면 애교....


그리고 헤어스타일은 유니크한 것이 유행했다. 

머리 위 1미터 정도의 높이에서 묶은 헤어스타일은 한 번 보면 도저히 잊을 수 없을 정도였다. 머리 위에다 언덕이나 작은 강, 오두막, 정원을 만들기도 하고, 

장식용 꽃이 시들지 않도록 물을 담은 항아리를 머리 위에 올리기도 했다. 

또한 보석으로 새공을 한 작은 새가 장미꽃 위에서 날개를 펴고 있는 모양을 연출하기도 했다.
높이  솟아오른 머리는 마차를 탈 때 매우 불편했다. 

천장에 닿기 때문에 마차에 타고 있는 동안에는 창문밖으로 얼굴을 내말고 있거나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머리를 보호해야 했다.


어쨌든 이런 유행의 변화를 따라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많은 기술자들이 들락거리며 

공주를 위해 유행의 최첨단을 총동원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공주는 실수투성이였다.
어느 귀부인의 티파티에 초대를 받았을 때였다. 

공주는 찻잔에 담긴 짙은 갈색의 액체를 보더니 무슨 약초를 달인 물이냐구 물었다. 

귀부인은 깜짝 놀랐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이건 커피라는 음료예요."


"커피요?"


"원두를 갈아서 뜨거운 물에 우러낸 것인데, 터키에서 건너온 차 종류예요. 

 어느 나라의 황제는 커피를 매우 좋아해여 아침에만 여덟 잔을 마신대요. 

 위장병에 효과가 있다고 그래서 이곳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어요. 

 마을에는 커피하우스라는 가게가 늘어나고 있고, 이제 서민들까지도 이 맛을 즐기고 있지요."


그 말을 듣고 공주도 한 모금 마셔보았지만 너무 써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 때문에 귀부인들의 비웃음을 샀다.


그리고 그 시절에 유행한 연극이나 음악, 소설 등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귀부인들과 담소를 나눌 경우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아 비웃음만 살 뿐이었다. 

그때마다 공주는 자기가 뭔가 실수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떤 점이 이상한 것인지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게다가 주변 국가에서는 세대교체가 이루어져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왕 위엥 올랐고, 

공주가 알고 있던 사람들은 아무도 살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이웃 나라의 무도회에 초대를 받아 참석해도 

사람들은 낯선 사람을 대하듯 공주를 대했다.
그때마다 공주는 기분이 나빠 말없이 돌아옸고, 

그럴 때마다 왕자와 말다툼이 벌어졌다.


"이제 두 번 다시 이런 곳에는 오고 싶지 않아요. 

 아무리 당신의 명령이라 해도 들을 수 없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신경 쓸 필요 없잖아."


왕자는 점차 자기가 왜 이런 여자와 결혼했는지 후회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뛰어난 미인이라고 생각했던 공주도 

지금 생각해보면 지난 세기의 유물에 지나지 않았다. 

행동이나 말투도 부자연스러웠고, 격렬한 애무에도 

소극적인 태도로 몸을 사리며 정숙한 척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왕자는 밖에서 즐거움을 구하게 되었다. 

그 당시 귀족들 사이에는 교외에 '푸치 메존'이라는 것을 두는 것이 유행이었다. 

별장에 화려한 가구들을 갖추어놓고 그 곳에 마음에 드는 여자를 두는 것이었다.
벽이 모두 거울로 이루어져 있는 침실 주위에 좌석을 만들언호고 

열시구명을 퉁해 침실에서 벌어지는 파렴치한 행위를 들여다보는 푸치 메존도 있었다. 

귀족들은 때로 동료들을 모아 난교 파티를 즐기기도 했다.


왕자도 그런 푸치 메존을 두었다. 

돈으로 산 여자를 안는 쪽이 정숙한 척 몸을 사리는 공주를 안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기 때문이었다. 돈을 주고 산 여자는 어떤 요구에도 응하였다. 

예를 들어 채찍을 사용한 섹스나 다른 남녀와의 난교 섹스에도 그녀들은 기꺼이 응해주었다.
이것도 그 당시 유행의 하나였는데, 왕자는 때로 여자에게 남장을 시켜 즐기기도 했다.


짧은 커트 머리에 쥬스트콜(무릎까지 내려오는 상의), 그리고 반바지에 긴 양말. 

그곳은 공주가 100년 전에 몸에 글쳤던 복장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지만 

유니섹스한 색기를 풍긴다는 점에서는 비슷했다. 

그런 여자는 사냥도 즐겼고 남자가 추는 춤도 잘 추었다.


왕자는 공주에게도 과거에 그런 경험이 있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 

왕과 왕비, 그리고 시녀들이 그 점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끔 애인에게 걸치게 하는 복장이 설마 공주가 예전에 했었던 복장이라는 사실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남편이 푸치 메존에 빠져 있다는 소문을 들은 공주는 분한 마음에 입술을 깨물었다.
남장이 어울리난 여자라고? 한심해. 그런 식으로 상대 여자를 경멸하던 공주는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남장이라는 단어가 귀에 익었기 때문이었다.


"남장? 남장이라고?"


그 말에는 묘한 여운이 있었다. 

왜일까? 남장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공주는 오랜 세월 동안 잠을 자면서 과거의 기억이 단절된 부분이 있었다. 

그 몇 년 동안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수도 없어 혼자 고민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워낙 바쁘게 생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궁금증은 잊혀져갔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기묘한 일이 있었다.
수많은 옷상자 안에 몇 벌 뒤섞여 있던 남자 옷.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누가 입었던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혹시 그 남자 옷에 내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아줄 열쇠가 감추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을 느낀 공주는 그 날 밤 몰래 의상실로 들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옷상자를 하나하나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남자옷을 찾아냈다.


무릎 근처에 장식용 단추가 달린 짧은 바지와 소매가 달린 웃옷, 그리고 긴 양말... 

그것들은 화려하기는 했지만 분명히 지난 세기의 유행을 말해주고 있었다.


'내가 이런 옷을 입었던 것일까? 왜?'


그 남자 옷들은 물론 지금의 공주에게는 너무 작았다. 

그러나 거울 앞에 서서 그 옷들을 몸에 대어보았을 때, 

문득 잊혀졌던 과거의 기억들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그래, 나는 남자아이였어!'


그때부터 물밀듯이 과거의 기억이 밀려왔다. 

아버지와 함께 사냥을 다녔던 기억, 펜싱 연습을 했던 기억, 시녀와의 댄스, 

그리고 탑 꼭대기의 다락방에서 시종에게 당했던 일...


갑자기 공주의 행동이 바빠졌다.
이번에는 왕자의 의상실로 들어가 역시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옷상자를 뒤졌다. 

그리고 자수가 놓여 있는 겉옷과 레이스가 달려 있는 웃옷, 망토, 짧은 바지, 긴 양말, 

새하얀 조끼와 감색 벨벳까지 꺼내어 거울 앞에서 그것들을 걸쳐보았다.
큰 키의 공주에게 그 옷들은 마치 맞춤복처럼 잘 맞았다.


힘껏 동여맨 허리, 늘씬한 다리, 그리고 풍만한 가슴이 묘하게 도착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공주가 봐도 가슴이 설렐 만큼 색기가 흘렀다.
공주는 황홀한 표정으로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왕자가 만나는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는 모른다. 아름다운 여자라는 소문만 들었다. 

 새하얀 피부에 늘씬한 다리가 눈이 부실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워도 나만큼 남장이 잘 어울릴까?'


공주는 그런 모습으로 침실 거울 앞에 앉아 왕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이렇게 매일 밤 왕자의 귀가를 기다리는 것도 어느새 습관이 되어 있었다.
지금쯤 왕자는 푸치 메존에서 그 여자를 안고 있을까? 

여자는 왕자의 팔에 안겨 어떤 추태를 연출하고 있을까?
여러 가지 상상이 거듭되자 머리 속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런 고통스런 밤이 지금까지 얼마나 많았던가? 그리고 오늘 밤도?


그때 소리도 없이 문이 열렸다.
왕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공주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공주는 벌써 질투에 불타는 눈으로 왕자를 노려보며 

가시 돋친 말을 두세 마디 던져야 했다. 

그러면 왕자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변명을 늘어놓아야 했다. 늘 같은 패턴이었다. 

하지만 오늘밤은....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문 쪽에서 왕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왕자의 발걸음이 가까워지는 기색이 느껴지더니 

이윽고 거울에 왕자의 놀란 표정이 비쳤다.


"이렇게 아름다울수가! 정말 요염해보여. 당신 맞아? 정말 당신이야?"


그 순간 등 뒤에서 왕자가 힘껏 공주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공주를 들어올려 침대로 가더니 단추를 하나하나 풀었다.


"당신에게 이런 취미가 있었다니. 나는 재미없는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당신이 몰랐던 거예요. 아니, 지금까지 나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도 않았잖아요."


사실은 더 많은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공주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왕자의 손길에 알몸을 드러낸 채 곧바로 관능의 폭풍에 휘말렸기 때문이었다.
실로 자극적인 빔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맛본 적이 없는 관능의 밤이었다. 

공주는 지금까지의 고통을 완전히 잊고 뜨겁게 타오르며 거침없이 교성을 질러댔다. 

공주의 뜨거운 몸 안에서 세포 하나하나가 환희에 떨며 폭발했다.
이것이 사랑인가?
진정한 소유란 이런 것인가?
지금과 비교하면 그 동안의 밤은 어린아이의 장난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왕자에게 모든 것을 내던졌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몸과 마음을 모두 왕자에게 주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준 것이 없었다.
이때부터 왕자와 공주는 예전처럼, 아니 그보다 훨씬 가까워졌고, 

다음날부터 왕자의 귀가가 매우 빨라졌다.
그리고 얼마 후 공주는 왕자가 후치 메존에 완전히 발길을 끊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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