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4일에 글을 썼는데, 중간 이후가 잘렸어요.
뒷 부분을 다시 써서 완성작으로 올립니다)
육아 2를 쓸 때가 가을이었는데, 무심하게 겨울과 봄이 지나고 불멸의 여름이 옴.
찜통 여름에도 육아는 매일임.
육아는 세월 감각을 무디게 하는 재주가 있음.
난 진정 모든 계절의 흐름을 감성으로 느끼는 아름다운 심성의 여인이었었음. 나의 아름다운 감성을 녹조 라떼로 만든 건 바로 유전자 1,2임.
해가 바뀌었으므로 유전자 1은 초딩 6학년, 유전자 2는 6세임. 한 살씩 더 좝수신만큼 엄마빠도 한 살씩 더...중년이 되었음.
중년을 무심하게 받아 들고,
아무렇지 않게 전진하는 우리 남푠님의 생일이 바로 오늘임.
태어났더니 삼복더위, 학창 시절에는 방학 중, 성인 이후에는 휴가 절정기에 생일을 맞이하는 우리 남푠은 올해도 최고치 더위 35도에 생일밥을 먹음.
지난 주부터 유전자 1,2에게 눈치를 주었음
"8.4일은 아빠 생신이야~."
유전자 1 ㅡ 네. 선물 생각하고 있어요.
유전자 2 ㅡ 그럼 케익 사야져, 엄마가.
짜잔 오늘 저녁
유전자 1 ㅡ 오늘은 피자 세트를 먹는 게 좋겠어요.
엄마 ㅡ 오오 네 선물이야?
유전자 1 ㅡ 그러고 싶지만 아빠가 사주신대요.
엄마 ㅡ ㅡ.ㅡ;;
맥주와 음료, 피자 세트를 두 손 가득 들고 등장한 남푠.
셀프 세팅하며 즐거움.
두 유전자의 눈은 오로지 피자.
엄마의 권유(?)로 생일 노래를 부르는 두 유전자.
리듬에 영혼없는 유전자 1과
빨리 부르고 빨리 먹고픈 유전자 2.
영혼없는 유전자 1이 못마땅한 엄마는 시비를 검.
엄마 ㅡ 노래에 영혼이 없어도 너~~~무 없다.
유전자 1 ㅡ (운동하고 와서) 힘드니까.
엄마 ㅡ 힘들어도 예의는 갖추어야지.
유전자 1 ㅡ 하...
엄마 ㅡ(날을 세우며) 왜 예의 갖추는 거 싫어???
유전자 1 ㅡ 하..엄마빠는 왜, 나를 낳았어요????
두둥 !!!!
아빠 생신을 기념하여 너의 탄생 설화가 궁금한거임?
남푠과 나는 까칠한 유전자 1의 문제 출제 유형을 잘 알기에 모범 답안 찬스를 쓰기로 함.
(이어 씀)
모범 답안을 말하기로 남푠과 눈치코치를 주고 받았으면서도, 육아 13년째 아직도 속 가벼운 어미인 나는 발끈함.
유전자 1 - 엄마빠는 왜, 나를 낳았어요????
엄마 - 너가 태어날 줄 몰랐지 !!
내뱉고도 아차 싶어서 남푠 눈치를 봄. 남푠님은 유전자 1의 반항 게이지를 멈추려는 사명으로 긴급 모범 답안 투입.
남푠 - 낳았더니 너더라. 너를 낳아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유전자 1 - ‘나’라는 걸 미리 알았으면 안 낳았겠죠.
엄마 - 미리 알았으면 더 빨리 낳으려고 간절히 간절히 기도했을거야.
유전자 1 - 왜요?
엄마 - 엄마빠한테 가장 어울리는 아이는 ‘너’ 밖에 없으니까.
남푠 - 맞아, 너 밖에 없어.
유전자 1 - 내가 왜 엄마빠랑 어울려요?
엄마 - 어울릴 수 밖에 없어. 너 운동하지? 전국의 초등 선수들이 100명도 넘잖아. 그 선수들 중에서 지역 1위를 뽑고 전국 1위를 뽑고,
그렇게 뽑힌 세계 선수들을 또 모아서 세계 1위를 뽑지?
그 선수는 누가 봐도 훌륭하고 멋진 실력을 가지고 있잖아?
너도 그래.
넌 아빠의 아기씨 중에서 가장 빠르고, 가장 똑똑하고, 가장 마음씨 좋은 아기씨가 1위해서 태어난거야.
그런 아기가 엄마빠랑 안 어울리면 태어났겠냐? 그건 신이 정한 규칙이야.
남푠 - 맞아, ‘너’는 우리랑 가장 어울리는 아기야.
유전자 1 - 근데 부모가 아이들을 버리는 건 안 어울리는 거에요?
엄마 - 가족의 운명을 억지로 끊는거지. 고무줄을 가위로 자르는 것처럼.
유전자 1 - 왜요? 어울리는 아기가 태어난다면서요.
엄마 - 부모는 목숨을 걸고 아기의 생명을 지킬 수 있어야 해. 이 아이가 안전하게 자라도록 키울 수 있어야 부모가 되는 거야.
그런데, 아기를 키울 환경을 준비하지 못했는데 아기 먼저 낳았거나 아기한테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부모들도 있어.
그런 부모들은 신이 정한 규칙을 어기는 거지.
그래서 가족이라고 부를 수 없어. 어울리게 태어났지만 어울리지 못한거야.
남푠과 나는 유전자 1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모범 ‘가족애’를 집중 공략함.
유전자 1은 자기 자신이 반항할지언정, 가족 구성원끼리 불화가 생기는 꼴을 보지 못함.
본인이 동생을 괴롭히는 건 놀아주느라 괜찮은거고,
엄마가 동생을 혼내면 갑자기 가족방위대로 변신해서 악당 엄마로부터 천사 동생을 지키느라 눈에 불을 켜고
“그렇게 어린 동생을 혼내면 안돼죠!” 하며 엄마한테 훈계질을 함.
친할머니께서 친할아버지를 타박이라도 할라치면 유전자 1은 “할머니는 우리 할아버지 불쌍하게 왜 자꾸 화내요?”하며 따짐.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멀뚱멀뚱 거리 두고 걸어가면 유전자 1은 그런 장면을 견디지 못하고 두 분의 손을 맞잡게 하며
“손 좀 잡고 다니라요. 서로 안 사랑하냐요? 뽀뽀도 해요.” 함.
그런 기특한 녀석이 정작 엄마빠가 모처럼 어깨를 감싸고 걸어볼까 싶은 찰나에는
“엄마빠는 변태에요? 왜 밖에서 안고 다녀요? 사람들 보는게 좋아요?”라고, 박대를 함.
엄마빠는 자기만 봐야하나 봄.
어쨌든 그런 유전자 1은 가족애와 반대 개념인 ‘그건 가족이 아니지.’라는 말을 매우 경계함.
남푠 - 맞아, 그래서 엄마빠는 동생이랑 너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건강한 음식을 주고, 아프면 치료 받을 수 있게 하는 거야.
몸만 생명이 있냐? 정신도 생명이 있지? 그래서 즐거운 생각과 필요한 교육도 시키면서 키우는 거야.
엄마 - 아기를 키우는 일은 너무나 힘든 일이라서 엄마빠도 아이에게 규칙을 정해준거야.
유전자 1 - 근데, 나는 내 맘대로 좀 하고 싶어요.
남푠 - 그럼 나가서 혼자 살아야지.
엄마 - 맞아, 그 방법이 있네. 나가서 혼자 살면 되겠네. 그럼 그건 가족이 아닌거지.
유전자 1 - @.@ 나가서 사는 건 싫고요...그냥...내가 하고 싶은대로..영혼없이 노래 불러도 안 혼나면 좋겠어요.
엄마 - 너, 아빠가 피자 안 좋아하는 거 알지? 글고 너도 피자를 평소에 좋아한 건 아닌데 오늘따라 먹고 싶었던 건데도 아빠는,
아빠 생일에 아빠 돈으로 아들이 먹고 싶은 피자로 셀프 생일상을 차렸어.
아빠야 말로 아빠가 하고 싶은대로 해도 되는 날인데,
아들의 축하 노래도 영혼없이 들으면 가족의 사랑이 느껴지겠냐?
남푠 - 아니야, 내 생일이더라도 난 내 아들이 먹고 싶은 걸 사주는 게 더 행복해. 괜찮아.
엄마 - 엄마빠가 싫을 때도 당연히 있겠지, 엄마도 어릴 때 외할머니가 다른 엄마들처럼 상냥하고 따뜻하게 표현하는 사람이랑 바꾸고 싶었어.
엄마 생각대로 되었으면, 지금 너가 좋아하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다른 사람이겠지.
유전자 1 - 그건 싫어요.
엄마 - 너가 정말 정말 사랑하는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도 아빠가 바꾸고 싶다고 생각했다면 다른 분으로 바뀔 수도 있겠지.
유전자 1 - 아니에요.
엄마 - 친할머니는 이 더운 날 아빠 낳느라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더워서 낳기 싫다고 발버둥 치셨을까? 더위는 생각도 안하셨을걸.
그래서 엄마도 아빠를 만날 수 있었고, 아빠는 너를 낳을 수 있게 된거지.
우리 할머니 고생하셨는데 전화 한 번 하자.
시트콤에서 다큐멘터리가 된 유전자 1과의 대화는 이렇게, 친할머니와 통화하는 것으로 종료가 되었음.
친할머니는 오로지 우리 유전자 1이 건강하게 지내는지, 뭣 좀 먹고 살이 쪘는지,
나물 보다 고기를 더 많이 먹으라고 신신당부하시느라 유전자 1의 탄생 설화는 듣지도 않으심.
까칠 반항아 유전자 1이 삐딱선을 타면 우리 부부는 이렇게 모범 답안 찬스로 다큐를 찍음.
다큐 한 번씩 찍으면 유전자 1은 밧데리 충전되듯 한 칸 한 칸 충만한 가족에너지로 부드러워지는데,
나는 밧데리 방전되듯 스물스물 기가 빠져서 허기 짐.
오늘도 유전자 1호 집을 짓기 위해 우리 부부는 땡볕에 벽돌을 등에 지고 날랐다고 생각함.
이 집은 부실 공사로 무너지는 일은 없을 거임. 부성애가 넘치는 남푠이 현장 소장을 맡았으므로.
물론 꼼꼼하게 지었어도 결로가 조금 생기거나, 조명이 하나 안 들어오거나, 하수도가 막힐 수는 있음.
그건 모성애가 조금 모자란 내가 중간 중간 점검을 안했기 때문일 거임.
해결할 수 있는 하자는 내가 좀 더 애쓰겠음.
육아에 완벽한 부모는 없음. 나는 왜 하자투성이 집을 짓는 엄마이지?라고 자책만 하지도 않기로 했음.
내가 아무리 육아를 잘했더라도 우리의 유전자 1은 까칠했을거임. 그건 이 아이의 태생임.
까칠한 아이가 자기가 하고픈 일 잘하면서 살 수 있도록 부모로서 애써야겠다는 생각 뿐.
아, 남푠이 오늘의 다큐를 끝내면서 유전자 1에게 이런 말을 했음.
남푠 - 엄마빠는 우리 아기를 좋은 어른으로 키우고 싶어.
유전자 1 - 엄마빠는 나 사랑해요?
으헛, 너 여태 뭐 들었냐. 난 재빨리 대답했고, 남푠은 영혼을 담아 말했음.
엄마 - 응.
남푠 - 당연히 사랑하지. 좋은 어른으로 커서 너도 너처럼 사랑스러운 너의 아기를 낳으면 좋겠어.
유전자 1 - 아빠는 나를 분명히 사랑해요, 근데 엄마는 영혼이 없어요.
엄마 - (하...대체 이 다큐는 언제 끝나는 거야)...어머, 엄마 영혼이 거기까지 못 갔나봐~
엄마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지는 너가 너를 키워보면 알게 될거얌~
남푠 - 여보 ! 좀!!!
유전자 1 - 그것 봐요, 엄마 미워..그래도 난 엄마가 좋다요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큐 끝.
* 덧 1. 오늘 저녁,
유전자 1 - 엄마도 이런 생각해본 적 있어요? 세상이 나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
나는 진짜 뭔가 진짜 그런 것 같아요.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뭔가 설명할 수는 없는데...뭔가 진짜 내가 뭘 하려고 할 때 세상이 내가 그걸 할 수 있게 퍼즐처럼 똭! 딱 맞게 세상이 움직이는 거죠.
엄마 - 그건 자기 자신을 매우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는 경우가 많아.
유전자 1 - 엄마는요?
엄마 - 그걸 자꾸 묻는 이유는, 오늘 개막한 리우올림픽 첫날 경기들 중에
너가 좋아하는 종목이 똭! 있는 것도
세상이 너를 위해 올림픽을 똭! 움직여 준 것 같은
느낌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하고 싶은거지?
유전자 1 - 네 맞아요 !
엄마 - 진짜, 세상이 너를 위해 움직이나봐~~~ (하...나르시즘 아들이여...)
그런 의미에서 우리 같이 배구 볼까?
2016 리우 올림픽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 모두 자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