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품에서 눈물을 흘리는 홍혜화를 물끄러미 보던 사내가 이내 눈길을 돌렸다.
"하암~ 생각보단 재미없었네..."
안경을 다른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을 그저 유흥거리로 삼던 사내가 하품을 하며 중얼거렸다.
다른 대상을 물색하는 사내-
이윽고, 사내의 눈에 들어온 것은 공원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한숨을 푹푹 쉬어대는 젊은 청년이었다.
"하아... 어떻게 하지...."
청년은 천근어치의 무게가 자신의 어깨를 누르고 있는 것마냥 머리를 두 손으로 꽁꽁 싸매고 연신 한숨을 쉬고 있었다.
사내는 깜짝 놀래켜줄 요량으로 슬그머니 청년 옆으로 다가가 말을 건넨다.
"한숨을 천 번 쉬었을 때야 비로소 인생을 조금 알게 된다고 하죠?"
"헙... 누구세요?..."
청년은 놀라서 미처 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사내를 쳐다보며 말했다.
"무슨 일로 그렇게 고민하시는 건가요~~?"
정장 차림의 사내가 활짝 웃으면서 장난스레 말했다.
청년은 그저 지나가는 도인정도로 생각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떠나가는 뒷모습에 대고 소리치는 사내--
"미래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여기로 다시 오세요~~ 10년 뒤의 모습이 궁금하다면요~"
급히 발걸음을 옮기던 청년은 잠깐 멈칫 했으나 곧바로 다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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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사내를 다시 찾아간 건 이틀 뒤, 회사에서 상사에게 무참히 짓밟히고 난 후였다.
"헤~ 다시 오셨네요~?"
사내는 마치 청년이 다시 올 줄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저기... 그 때 말씀..."
"아~ 10년 뒤 모습을 보여준다는 거요? 그럼요~ 밑져야 본전이니 한 번 믿어보세요~"
청년은 자신이 하는 행동이 전혀 말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내의 말에 혹하고 있다는 것이 우스워서 썩소를 지었다.
어차피 자신의 주변에 고민을 진심으로 들어줄 사람도 없다는 생각에 고민이나 풀자는 기분으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사실 저는 어렸을때부터 부모님 말씀만 들어온 모범생이었어요.. 그래서 꿈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그저 기대치를 채워주기 위해 명문대, 석박사 학위, 대기업까지 들어왔죠,"
청년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하자, 사내는 언제그랬냐는듯 장난기없는 표정으로 청년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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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제가 하고 싶은건 연극인데!!! 왜 제가 행복하게 살수도없이 이렇게 끌려다녀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연극을 했을때 미래가 너무 불안해서...."
청년은 울분을 토해내듯 계속해서 말했다.
한참을 쏟아내던 청년이 숨을 골랐다.
사내는 청년이 잠잠해지자 입을 열었다.
"10년 뒤를 볼수있으면.. 미련이나 후회없이 살수있지 않겠어요? 정해진 운명이니까요."
사내는 청년에게 안경을 건네주며 말했다.
"이 안경이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뒤를 보여줄겁니다. 당신이 회사에서 평범하게 살고있을지, 아니면 회사를 나와 배우의 길을 걸어서 성공했을지... 혹은 실패했을지... 그저 안경을 쓰기만하면 됩니다"
청년은 안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도 미래가 궁금하지 않은건 아니었지만 더 큰 고민이 그의 마음속을 헤집고 있었다.
사내는 그의 마음속까지 읽을 수는 없었기에 갸우뚱거렸다.
청년은 한참을 안경을 바라보았다.
지금껏 안경을 내어주었을 때 한번도 보지 못한 반응과 표정이었다.
"거짓말같으면 한 번 써보기만 해보세요~ 손해될 거 없잖습니까?"
사내는 청년을 떠보았다.
그렇게 얼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미동도 없이 안경을 보던 청년은 사내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감사해요. 못 믿는건 아니지만 안경은 됐어요. 덕분에..... 어쨌든 감사합니다"
청년은 예의바르게 인사하더니 홀가분한 표정으로 곧장 길을 떠났다.
사내는 여때껏 본적없던 반응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이내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상당히 재밌었네~~ 다음엔 누구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