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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황개는 도대체 어디의 태수가 된 것인가.
게시물ID : history_2658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푸른미르
추천 : 1
조회수 : 112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8/10 00:42:09
무릉만이(武陵蠻夷)들이 반란을 일으켜, 성읍을 공격하고 수비하자, 이에 황개에게 태수직을 맡겼다. 이때 군중에 병사로 쓸 만한 사람은 5백명이어서 직접 대적하기 어려우니, 이에 인해 성문을 열어두고 도적들이 반쯤 들어올 때 이에 공격하니, 수백 명을 참수하고 나머지들은 모두 달아났으며, (만이의 측에 넘어간) 읍락(邑落)들을 모두 회복하였다. 우두머리들은 주살하여 토벌하고, 귀부하여 따르는 자들은 사면하였다. 봄부터 여름에 이르기까지, 침구(侵寇)하는 난리가 모두 평정되었고, 여러 유수(幽邃)의 파(巴), 예(醴), 유(由), 탄(誕)읍의 후(侯)와 군장(君長)들이 모두 지조와 절개를 바꾸어, 예를 받들어 알현하기를 청하니, 군의 경내가 마침내 깨끗해졌다. 
후에 장사(長沙)군 익양(益陽)현이 산적들의 공격을 받자, 황개가 또다시 토벌하여 평정하였다. 
편장군(偏將軍)이 더해지고, 관직에 있다 병으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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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개가 어디의 태수직을 맡았는지 분명하게 기록되어있질 않습니다. 문맥상 무릉태수가 된게 더 맞다고 보는데 밑에 구절엔 장사군도 언급하고 있어서 장사태수도 배제할 수 없을것 같아요. 
일단 무릉만이가 형주에 사는 이민족의 통칭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런저런 기록을 보다보니, 장사만/영릉만/계양만/창오만이 모두 있어요. 

http://contents.nahf.or.kr/item/item.do?levelId=jo.d_0003_0116_0010_0080 

http://contents.nahf.or.kr/item/item.do?levelId=jo.k_0006_0097_0140_0050 

http://contents.nahf.or.kr/item/item.do?levelId=jo.d_0003_0116_0020_0060 

따라서 무릉만이는 말그대로 무릉군에 살고있던 이민족으로 보는게 맞는거같아요. 다만, 무릉만이들이 장사군에 쳐들어와서 퇴치했다라는 가설도 가능성이 있구요. 
황개는 215년경 즈음에 죽었기에 유비가 형남4군을 공략하고 촉지에 무릉태수 기록이 없기에 형남4군중에 무릉군은 오나라가 통치하는 말그대로 오촉의 형남 공동 통치 가능성을 생각하고 가설을 만들었었는데 기록중에 유비 또는 관우가 형주 전역을 관할했다는 식의 기술이 있어 폐기했습니다. 

따라서, 두 가지 정도 가설이 존재할것 같습니다. 

1. 황개는 장사태수가 되었다. 

2. 황개는 익양대치 시점에 손권이 형남 3군을 공격하고 황개를 무릉태수로 임명하여 무릉에 파견했다. 

정도가 될것 같은데, 
이 가설들에 대해 많은 의견이 오가길 바랍니다.
출처 http://blog.naver.com/smh2829/220783889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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