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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아프길 바란다. (약스압)
게시물ID : love_817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쉬크
추천 : 2
조회수 : 59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8/10 07: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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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따금 내가 너무 성급했었나 하는 생각이 아직까지 들기는 하지만, 그 때 보여준 너의 행동은 아직도 가슴에 못처럼 박혀있다.

    너를 좋아하게 됐을 때는 고등학교 2학년 말 쯔음.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고 있었을 때였던 것 같다. 1학년 때 친구의 소개로 스치듯 얼굴만 알고 있던 너였고, 2학년 때 친해진 내 친구를 통해 다시 알게 되었었다. 

   한창 그룹을 지어 끼리끼리 어울려 다니고 있을 때쯤. 어느새 너는 내 맘 속에 깊숙히 들어와 있었다. 내가 만나고 좋아하는 사람은 하자투성이라고 비웃던 친구 말처럼 너도 어쩌면 남들이 보기에 하자가 있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좋지않은 가정환경과 애정결핍. 형제들 사이에 끼어 느끼던 열등감과 부채의식이 뒤엉켜 너는 고등학교 시절 내내 불안했고, 우울했다. 나는 내가 감히 그것을 채워줄 수 있으리라 나를 과신했었고, 그 기대는 결국 산산히 부서졌다. 

  하지만 나도 좋은 친구로 남으려고, 너의 최고의 이해자가 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어쩌면 내가 목표했던 학과가 심리학과가 되어 버린것이 너를 위해 그 시절 찾아봤던 이런 저런 정보들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 3 때 같은 반이 된 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옆자리에 앉을 수 있는 일도 잦았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시간을 꼽으라면 아직도 고 3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때는 너를 그만큼 좋아했다. 아니 사실 지금도 너를 좋아하는 것 같다. 

   하지만 수시에 합격한 네가 더이상 야자에 남지 않을 무렵부터, 나는 점점 힘이들었고, 결국 수능을 망쳤고, 목표로 하는 대학에 떨어졌으며, 재수를 할 기회마저 박탈당했다. 하지만 고향에 있는 학교에 다님으로, 너와 같은 시간을 더 공유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평소 늘 길게만 느껴졌던 겨울이 가고, 어느새 눈이 녹아 봄이오고, 신입생으로 돌아간 우리의 대학생활이 시작 되었다. 나는 너를 보고 싶은 때가 많아서 꽤 자주 연락을 하는 편이었고, 너는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이 되지 않는 일이 많았다.

   그래도 친구들과 모일 때 볼 수 있어서, 이따금 영화를 본다던지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던 중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말,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 너를 보면서 이번엔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주지 않았다. 너를 보면 감정이 넘쳐서 쏟아져 나와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그러다 기말고사를 볼 때쯤. 네가 군대를 갔다는 소식을 다른 친구에게서 전해들었다. 내가 아무리 연락을 줄였다 한들, 그게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릴 이유가 되었을까. 그 말을 전해 듣고는 말 그대로 멘붕에 빠져 잡히지도 않는 시험을 보고 그 학기는 끝이 났다. 

  그러다 7월이 절반쯤 지났을까, 일요일 아침부터 집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평상시 같으면 자고 있었을텐데, 그 날 따라 네 전화를 받으려고 했었는지 일찍 일어나 있었다. 나한테 처음 전화를 한다는 것. 자대 배치를 받았다는 것. 사람들이 괜찮은 것 같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 자기는 말한 것 같은데, 말을 못 전해서 미안하다는 것. 5분도 안되는 짧은 통화였지만 그 잠깐의 통화동안 그간 쌓여있던 불만과 짜증이 눈녹 듯 녹아내렸다.  

  그 뒤로 두어번 나온 휴가에서도 얼굴을 봤고, 딱 한번이지만 면회도 갔었다. 전역 후 이런 저런 약속들로 바쁜 너를 보면서도 이제 더 자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두어달 쯤 지났을까 가볍게 술이나 한잔 하자는 말에 한껏 단장을 하고 너를 만나러 나갔다. 약속에는 내가 좀 늦었던 것 같다. 


  미대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너는 아직도 짧은 밤톨같은 머리위에 항상 쓰던 빨간 캡을 쓰고, 군대에서 썼다던 싸구려 시계를 차고 있었다. 누가 공대생 아니랄까봐 체크무니 남방에 후줄근한 청바지. 누가봐도 참 데려가기 싫은 그런 모습이었다. 

  그때 술을 꽤나 많이 먹고, 나는 술김에 너에게 고백을 했고, 넌 날 찼다. 사실 그렇게 되리라 하는 생각이 절반, 너는 너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라는 말에 기대를 걸었던 허황이 절반이었다. 하지만 허황은 그저 허황이었고, 그럼에도 나와 친구로 지내고 싶다는 말에 난 내가 싫다며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그 뒤로도 몇차례 연락을 하고 한 두번인가 본적이 있었다. 영혼 없는 웃음과 그럼에도 아직 너를 좋아하는 나를 어르고 달래서 쥐어 짜낸 자리. 그러다 너는 일을 해야한다며, 그 거지 같은 가족들을 위해 돈을 번다며 부산으로 떠나겠다고 했고, 나는 그 길을 떠나지 말라며 말렸지만 결국 넌 떠나버렸다. 

  그 뒤로 한 두번 너무 지친다며 전화가 왔었고 난 그때마다 바보처럼 그 긴 얘기를 들어주고 있었다. 일이 힘들다는 둥. 본인이 누굴위해 일하는데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둥. 일하면서 만난 친구가 있는데 또라이 같다는 둥. 뭐 이런저런 얘기들을 들으면서 아직도 너랑 연결이 되어있는 느낌에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 한 1년쯤 너는 죽은 듯 연락이 끊어졌었다. 번호도 바뀌었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너를, 난 그때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facebook을 통해 연락이 닿았고, 넌 나에게 할 말이 있다며 날 불러냈다. 

  다른 친구와의 약속이 있었지만 다소 무시한 채 너를 만났다. 너는 지난 2년간 내 생각을 많이 했고, 고민도 많이 했다면서 나를 붙잡고 너의 절절한 감정을 토해냈다. 분위기가 너무 격해져서 단골이었던 술집을 나와 한적한 공터로 자리를 옮겼다. 

  그 자리에서 들은 말은 뜨거운 고백이었고, 너의 2년간의 혼란이었고, 그 당시 너의 진심이라고 느껴졌다. 숫제 프러포즈 같은 낯부끄러운 말을 듣고 내 입꼬리가 귀에 걸리는 것을 가까스로 부여잡으려고 내가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를것이다 너는. 

  그리고 그 며칠 뒤는 네 생일에 난 선물을 들고 널 찾아갔고, 너를 만나 행복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채 이주도 되지 않았다. 점점 뜸해지던 연락은 아예 그쳤고, 넌 이내 연락을 멈췄다. 

  나를 진짜 생각한다면 먼저 연락을 할 거라는 주변 사람들 말에 기다리고 기다린지 한달. 결국 너는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고, 난 너를 좋아했던 기간만큼이나 조바심이 났다. 그래서 너에게 일방적인 폭언을 뱉어버리고선 나도 연락을 끊었다. 

  내가 좀 더 차분히 기다렸다면, 다른 결말이 나왔을까. 아니면 네가 꽤나 취해서 한 말이라고 다시 친구로 지내자고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아직도 머리를 맴돈다. 그랬다면 지금과는 다른 결말이 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이따금 떠오르니까.

  그 뒤로 다시 일년이 지났다. 너에게 연락하고 싶지만 연락하지 않을 것이고 널 만나고 싶지만 만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미워할 수가 없고, 잊을수가 없다. 이런 내 자신이 싫다.  

  그래서 난 네가 아팠으면 좋겠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 만큼. 내가 너를 좋아했던 시간만큼. 내가 너로인해 아팠던 만큼. 네가 아팠으면 좋겠다. 그 아픔으로 네가 나를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거지같은 바램으로. 그럴리야 없는 부질없는 바램으로. 

  나는 네가 아프기를 바란다.
출처 나, 그리고 그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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