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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의 일상
게시물ID : readers_1246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태도
추천 : 2
조회수 : 358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4/03/30 16:17:59
 
 
일요일 날이면 집 앞 카페에 간다. 담배도 끊고 롤 아이디도 해킹당하고 회사도 안 가니 마음이 허전해서 집 안에 있으면 견디기가 힘들어진다. 일요일 아침의 카페는 조용하면서 활기차다. 조용한 카페 안에는 로스터기에서 생두 돌아가는 소리와 팝콘 터지는 듯한 소리, 곧 이어 구수한 탄내가 난다. 이 때 쯤이면 읽던 책에서 눈을 돌려 작은 로스터기에서 깔때기를 빼어 볶고있는 생두를 확인하는 사장을 본다. 젊은 사장은 냄새를 킁킁 맡고는 콩의 색깔을 확인한다. 오늘은 어떤 커피 볶으세요? 하고 물어보면 코스타리카 따라주와 에티오피아 예가체프를 볶는다고 대답한다. 예가체프 다 볶으면 바로 내려주세요. 사장은 처음에는 갓 볶은 커피는 맛이 없어요. 며칠 지나야 가스가 빠져서 맛있어져요. 하더니 요즘은 네 알겠습니다. 하고 만다. 당골인데 말 좀 더 붙여주면 안되나 하며 속으로 투덜대고는 읽던 책으로 눈을 돌린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매사에 부정적이고 세상에 불만이 많다.
기분 좋은 글은 아니지만 할 일이 없기에 의무적으로 쳐다본다. 책을 보며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카페 밖 도로의 차 소리, 커피 콩 쏟아지는 소리, 갓 볶은 커피 콩의 열을 식히려 돌아가는 팬 소리,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까지..
나른하게 만든다. 봄날의 햇살은 눈을 간질이고 커피향은 온 몸을 간질인다. 의자에 축 늘어져 앉아있다가 책을 내려놓고 눈에 묻은 나른함을 비벼 떼어낸다. 무료함에 사장에게 말을 걸어본다. 커피는 언제 되나요? 병에 원두를 담고 있던 사장이 흘끔 돌아본다. 이제 곧 해드릴게요. 종이에 내려드릴까요 융에 내려드릴까요? 잠깐 고민하는 척 하고는 종이에 내려달라 답한다. 융드립은 내 취향이 아니다. 주방을 나누는 바의 의자에 올라 앉는다. 사장은 원두 두 스푼을 전자저울에 계랑하더니 몇 알 뺀다. 그라인더에 원두를 쏟으니 그라인더는 게걸스럽게 울며 날카롭게 원두를 갈아댄다. 갈아진 예가체프의 달콤한 풀 향기가 몸에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사장은 종이를 접어 드리퍼에 알맞게 끼운다. 싱크대 정수기의 물을 커피포트에 끓인다. 원래 물부터 끓이지 않으셨나요? 하고 물으니 갓 볶은 커피를 내릴때는 가스 날아가는 시간이라도 늘이려고 물을 나중에 끓인단다. 뜨거워진 물을 주전자와 컵, 커피 받는 서버에 넣어 예열한다. 적당한 굵기의 커피가루를 드리퍼에 쏟아붓고 수평을 맞춘 뒤 예열된 서버에 올린다.
뜨거워진 주전자에 뜨거운 물을 붓고 드리퍼 위에서 원을 그려본 후 가느다란 물줄기로 원을 그린다. 커피는 부드러운 초코빵처럼 둥글고 탐스럽게 부풀어 오른다. 커피가루에서 맡던 향이 물을 만나 색다르게 진해져 전해온다. 숫자를 세어본다. 20..19..
1까지 세고나니 사장이 주전자를 손에 쥔다. 아까보다 굵은 물줄기로 부풀어오른 커피가루 위를 적신다. 노란빛을 띈 물이 조금씩 양을 더해가며 떨어지고 점점 색깔이 짙어진다. 다른 커피보다 맑은 것이 실것 같다. 커피 위에서 원을 그리던 주전자가 멈추고 드리퍼를 치운다. 노란빛 띄는 갈색의 물을 컵에 따르고는 여기요 하고 내민다. 그러고는 다시 제 할일을 찾아 떠난다.
아무렴 어때 하고 커피잔을 들어 향을 맡는다. 꽃향기와 풀향기가 섞여있다. 고구마향도 언뜻 섞여있는 것 같다. 시겠지?
마셔본다. 뜨거운 커피가 아리고 쓴맛을 대동해 혀를 공격한다. 혀는 곧 마비된다. 마비된 혀는 신맛을 찾는다. 레몬?
레몬즙같다. 역시 시군 하며 안면근육을 일그러뜨린다. 앞으로 예가체프는 먹지 말아야지 하고는 무관심한 세상 속에서 무관심한 책 속으로 무관심한 시선을 던지며 무관심한 시간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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