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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울린 남편의 엉뚱함 (feat.선물 못하는 남자)
게시물ID : humorbest_124800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언제꿀떡먹나
추천 : 59
조회수 : 9313회
댓글수 : 20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6/05/05 21:52:01
원본글 작성시간 : 2016/05/05 08: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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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날씨는 어떤가요? 독일은 이제 좀 날씨가 좋아지고 있어요. 

그런데, 결게에 이런 글 계속 올려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소심해지고 있는 아지매입니다. ㅠ

오늘은 일단 풀고 갈게요 ㅋㅋ

독일에는 진달래, 철쭉이 없음으로 오늘도 음슴체 갑니다.


-------


우리 남편으로 말할 거 같으면 선물이란 걸 거의 해본적 없는 사람임. 

본인 말로는 선물 센스가 없어서 그렇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세심하지 못해서 평소에 그 사람이 뭘 좋아하고 필요한지 캐치를 잘 못하는 것 같음. 

남편은 로맨틱하고 좀 거리가 먼 사람임. 

로맨틱? 그거 뭐임? 먹은 거임? 좋아~ 와구와구. 하면서 먹어치울 그런 사람임. 

우리가 만나고 결혼하고 지금까지 햇수로 6년차지만, 

결혼기념일, 생일, 크리스마스 이런거 다 합쳐서 이제까지 선물 딱 두번 받아 봄. 

한국이야 크리스마스는 축제보다 휴일이잖음? 

유럽이 다 그렇듯 독일도 엄청 축제분위기에 선물 꼭 챙겨서 주고 받고 그러함. (많이들)

20151224_182718.jpg
사진 보이심? 흔한 독일 크리스마스 선물 파티 하는 건데, 

파란색 동그라미가 남편이 나한테 처음으로 선물다운 선물 같은 선물을 한 역사적인 날이었음. 

그런데, 보시면 아시겠지만, 선물 포장? 그런거 뭐임? 아마존 배송 상태 그대로 날것의 상태로

집에서 굴러다니던 쇼핑백에 위에 막지도 않고 선물 다 보이게 넣어둠. 

그러면서 자기 처음으로 선물샀다고 혼자 막 들떠서는 슈렉의 고양이 눈을 하고선

궁피 팡팡 해달라는 것임. 그래서 주먹으로 퍽퍽 잘했다고 해줌. ㅋㅋ


이 선물을 받게 되기까지 5년을 잔소리하고 막 졸라도 보고ㅋㅋ 눈물겹게 ㅠㅠ

그래서 처음 받은 선물임. 


원래 선물 같은 거 어렸을 때는 그랬지만, 나이 들어가면서는 그냥 대충 하게 됨. 

안 주고 안 받기 하자해서 별로 많이 섭섭하진 않는데...

이게 나중에 아이한테도 그럴것이고 시댁 식구들한테도 이건 아닌 거 같은 생각이 들었음. 

무엇보다 자꾸 결혼기념일이랑 생일 선물을 한번에 퉁치는 것임. 

(선물도 안하면서? ㅋㅋ )


남편이 두번 선물 했다고 했잖슴?

아래 사진이 첫번째 선물이었음. 

2012-12-24_13.01.38.jpg

아주 커다란 박스를 신문지로 몇 겹이나 열심히 포장함. (그래도 기특기특 ㅎ)

박스를 열어 보니 다시 작은 박스가 들어 있고 다시 박스를 열어 보니 또 박스.

그런식으로 서너 박스를 포장하고 정작 선물은 주먹만한 물건을 다시 신문지로 돌돌.

열어 보니 그 선물은 바로 비눗방울. 

왼쪽 사진에 보면 파란색 조그만 거 보이심? 저걸 그리 포장한 것임. ㅋㅋ


도대체! 왜! 왜 때문에!! 비눗방울을 내게 선물한 거지?
물어보면 나름대로 이유는 또 있음.

눈오면 멍멍이 마냥 좋아하고 봄이 되면 민들레 뽑아다 후후 불면서 좋아하는 중년의 외국인 아내. 

민들레 홀씨를 한번에 다 날려 버려야 소원이 이루어진다며 볼에 바람 빵빵하게 넣어선

훅훅 불어대는 아내. 

거리에서 커다란 비눗방울 이벤트 하면 좋다고 그 앞에서 

어린아이 마냥 넋 놓고 구경하는 걸 보면서 비눗방울 선물 하면 좋아할 줄 알았다고 함.  


하면서 덧붙이는 말이, 구하기 어려웠다고. 허허허.

어이, 남편, 토마스 씨! 그래도 그건 좀 아니지 않아? 


2013-08-23_17.45.31.jpg

정말 센스가 없어도 이렇게 없나..ㅎ


이런 센스를 잘 아는 시어머니가 남편 대신 내 생일과 결혼식 날 커다른 꽃바구니를 선물로 주셨음.

위에 사진임. 남편한테 아직 못 받아본 꽃을 시어머니께서 선물해 주심. ㅠㅠ

이게 내가 받아본 유일하고 꽃 선물이지만, 

그래도 나란 여자, 그냥 어이없어 웃고 말았지 많이 섭섭해 하진 않았음. 


그러다가 문득, 

잘 챙기지 않는 남편이다보니 최소한 일년에 한번은 챙겨받아야겠다 싶었음. 

내년 부터는 한국에서 한 결혼식 날짜를 결혼기념일로 정하고 

생일은 따로 생일만 챙기기로 했음. 

원래 독일에서 시청결혼식 한 날을 결혼 기념일로 했는데, 그게 내 생일이었음. 


그런데, 여기서 문제 발생. 비슷한 사람끼리 만난다더니..

한국에서 결혼 날짜를 내가 잊어버림. ㅋㅋ 

어디에 메모를 해두지도 않고 그냥 기억이 나지 않음. ㅠㅠ



토마스씨에게 물어봤음.

우리 한국 결혼식이 언제야? 

당연히 모를 거라 생각했는데, 그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음.

그 어떤 생일 선물보다 감동이었음. ㅇㄱㄹㅇ. ㅋㅋ

워낙 날짜 기억 못 하는 남편인 걸 잘 알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에게는 선물도 선물이지만 이런 반전은 선물보다 더 큰 감동을 받기도 함.

(남자들이 놓치는 부분인데, 여자들은 선물로 인해 관심과 사랑을 느끼고 싶은 것임.

얼마전에 베오베였나, 베스트에서 5천원 꽃 선물하진 남편분이 좋은 예)



이런 나의 노력(?)에 그가 이제 선물 다운 선물을 처음 한 것임. 

지난 크리스마스에 휴대폰 케이스와 헤어 고데기.

웃긴건, 갖고 싶어하니 선물 해 놓고 머리카락 망가진다고 쓰면 옆에 쪼르르 와 앉아서

계속 잔소리 시전함. 

오 마이 갓. 오 마이 갓. 하면서 안전 과민증 유감없이 발휘해주심.;;;


로맨틱하지도 않고 선물 못하는 남편이 날 조금 감동 시킨 이야기 하기 위한 부연 설명이 넘 길었음. 

(죄송합니다 ㅠ)


독일의 겨울은 해가 거의 없음. ㅇㅇ!! ㅇㄱㄹㅇ!!

아침에 해가 들어도 곧 우중충해지거나 장대비를 쏟아내기 일쑤며,

아침부터 쏟아지는 비가 잠깐 멈추는 사이 눈부신 햇살이 내리쬐다가도

곧 다시 우중충해지기도 함. 하루에도 날씨가 변화 무쌍함. 

종일 볕이 드는 날이 잘 없음. 


이곳에서 나고 평생을 살아온 독일인들도 겨울이 되면 우울우울 열매를 먹은 듯 침울해짐.

그러니, 유학생이나 나 같은 이주민들은 오죽하겠음?

외국인들은 겨울만 되면 매일 하루에 한 번씩 다짐함. 


"이 지긋지긋한 독일의 겨울 날씨. 

내가 올 겨울 지나고는 반드시 독일을 떠나고 말테다."


이런 다짐을 수없이 반복하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할 때쯤이면

어느새 봄이 와서 꽃이 피고 파릇파릇해진 나무들 사이로 

겨우내 사무치게 그리웠던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함. 숨통이 트임.

좀 좋다 싶으면 다시 겨울이 옴;; -_-

그리고는 다시 이를 갈며 내년 봄엔 꼭 떠날 생각을 하게 됨.

독일에서 산다는 것은 이런 반복을 하며 사는 것임. 

독일 이민 오실 분들은 북쪽은 피하세요. 전 따뜻한 남쪽사는데도 이럼.ㅠ


내가 독일에 온 첫해는 독일에서도 40년 만에 최악의 일조량을 자랑했던 악명 높은 해였음.

이런 악랄한 날씨에 익숙한 독일인들 사이에도 자살이 급증했을 정도였음.

12,1,2,3월까지 볕이 들었던 날이 열흘도 되지 않았음.

그것도 하루 종일 볕이 든 것이 아니라, 하루에 잠깐이라도 볕이 들었던 날까지 포함해서 임.


그럼 눈이라도 펑펑 오던가. 딱 한번 눈이 오는 것 같더니 그냥 비만 주구장창 옴.

그때 정말 지독하게 우울해서, 독일에서 못 살겠다고 매일 남편에게 우는 소리를 했음. 


내가 눈으로 눈사람 만드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데, 

독일에 와선 미니 눈사람도 못 만들겠다고 별거 아닌 걸로 죽는 소릴 함.

착한 우리 남편은 그런 내 불평에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고 늘 받아줌.


"조금만 기다려. 곧 봄이 올 거야. 

봄이 오면 독일에서 살게 된 게 아주 조금은 좋다고 느끼게 될 거야."

"그러니까!! 그놈의 봄은 언제 오냐고!!!!! 그 전에 난 우울해서 죽어 버리고 말 거야."


그래도 시간은 흘렀고 독일에도 봄이 왔음.


4월의 어느 따뜻한 봄 날, 

일찍 일어난 남편이 나를 흔들어 깨움.


"여보. 여보 일어나. 일어나요. 빨리~"


어색한 한국어에 애교 섞인 목소리로 나를 깨웠지만, 나는 더 자고 싶어서 화를 내버림. 


"슬푸다. 일어나요. 빨리."


잠결에 화낸 것이 미안하여 억지로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 세웠음.

일어나자마자 남편에게 등 떠밀려 부엌으로 감. 

맛있는 거 만들었나? 하면서 게슴치레 한 눈으로 어기적 어기적 따라감. 

부엌문을 열어젖히며 남편은 한쪽 손을 펼쳐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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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 눈 와요. 눈. 예쁘다!"


순간 정말 눈꽃인 줄 알고 잠이 확 깸. 

KakaoTalk_20160422_032103346.jpg


그렇음. 그냥 부엌 창문으로 가득 하얀 꽃이 가득 만개해있었음.

그 모습이 너무 예쁘고 아름다워서 마치 눈꽃이 핀 나무 같았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났음.


"왜요. 예쁘다. 안 예쁘다?"

"아니. 예뻐. 정말 예뻐. 고마워."


그때 왜 멍충이처럼 눈물이 났는지 잘 모르겠음.

그렇게 혹독한 첫겨울을 보내고 이제는 그런대로 겨울을 잘 지내고 있음.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 우리 집 앞에 필 눈꽃을 기다리며 오히려 설레설레함.

KakaoTalk_20160422_032110971.jpg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집 부엌엔 눈꽃이 피었음. 

이 꽃을 볼때면 그때 일이 떠오르면서 울 남편 잘해줘야지 하는데,...

오늘도 투닥거리며 싸웠음.ㅋㅋ (토마스 씨 미안 ㅠ)


한국 벚꽃 못 본지 4년, 5년 쯤 된거 같음. 

며칠 전 꿈엔 진달래, 철쭉이 너무 보고 싶어서 막 울면서 한국을 헤멨음. 

그런데 결국 못 보고 꿈에서 깸. ㅋ

왜 독일엔 진달래 철쭉이 없는 것임? 


독일 남자 재미없고 로맨틱하지 않기로 유명한데, 

우리 남편은 아니지만, 꼭 그렇지도 않음. 

로맨틱한 독일 남자(http://todayhumor.com/?freeboard_1296875)도 있음. ㅋㅋ

-

긴글 읽어주셔서 항상 감사해요! 쓰다보니 별 감동은 없네요. ㅎㅎ ^^;;;;; 


출처 내 과거의 어느 날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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