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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엘룬에 대한 이런 저런 짧은 이야기입니다. (完)
게시물ID : history_1250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tetraisol
추천 : 8
조회수 : 88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11/09 19:52:44
텝 텡그리 코코추는 보드지긴 가문의 충직한 신하입니다, 그의 아버지 몽릭은 예수게이가 살아생전부터 가문을 섬기던 사람이었고 징기스칸이 어머니 후엘룬의 남편으로 맺어줄정도로 굉장히 신뢰하고 또 아끼던 이로서, 그의 아들 텝 텡그리 역시 항상 자신의 옆에 앉힐정도로 믿음을 주고 있었습니다.

비단 그러한 그의 가문 배경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텡그리 즉 샤먼이 유목민족에 차지하고 있던 비중은 이루 말할수가 없는 일입니다, 16세기 티베트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까지 몽골 초원에서 샤머니즘이라는 종교는 그 들을 지탱하고 이끄는 기둥과도 같은 존재로 길흉화복을 점치고 하늘과 소통하는 것을 넘어 질병과 부상을 치료하는 의료부분에 까지 유목민족 사회 깊숙히 자리잡은 이들이었지요.

또한 하늘의 신에게 권위를 의지하던 유목 민족 국가들의 특성이 고스란히 남아있던 터라, 징기스칸 역시 신의 권위를 굉장히 필요로 했습니다, 그런 부분을 텝 텡그리는 잘 채워줄수 있었지요, 그랬기에 징기스칸의 신뢰를 고스란히 받을수 있었는데 문제는 역시 권력이라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그 어떠한 미녀보다도 매력적이고 산해진미에 비할수 없는 그 것 에서 비릇되었습니다.

점차 힘을 갖게된 텝 텡그리의 가문은 대칸 징기스칸의 가문에 비할정도로 성장하게 되었고, 하늘아래 태양은 둘일수 없다는 고금의 진리에 따라 가문의 힘을 쇠약하게 만드는 데 주력하였습니다, 그 방법은 징기스칸의 성격을 이용하는 것 이었지요.

징기스칸이 가족이라 할지라도 신뢰를 잘 주지 않고 끊임없이 견제를 한다는 것을 이용하여 이간질을 반복했는데 징기스칸은 그 이간질을 의심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과 대등해질수 있는 동생들의 싹을 쳐내기 위한 본보기로서 징기스칸 자신과 한때 의형제였던 자무카와 더불어 초원을 재패할 이로서 손꼽히던 자신의 아우 카사르를 선택했습니다.

그 결정적 계기는 다름 아닌 텝 텡그리가 받아온 신탁이었습니다, 신탁에 따르자면 초원을 먼저 지배하는 것은 테무진이지만 그 권세는 오래가지 않을것이고 테무진의 바로 뒤를 이어 카사르가 초원을 지배할것이라 하였지요, 텝 텡그리는 이 신탁을 매우 조심스럽고 또 두려워하며 카사르를 죽일것을 권유하였습니다.

이에 징기스칸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말을 타고 카사르의 천막으로 달려가 그를 끌어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옷을 벗기고 수레에 묶어버렸지요, 실제 죽일려고 했거나 아니거나 알수는 없는 노릇이나 카사르에게 심각한 위협을 느낀것만은 분명한 순간이었는데 그 때 어머니 후엘룬이 등장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수레에서 묶여있던 카사르의 소매를 몸소 풀어주고 모자와 허리띠를 카사르에게 돌려주었다. 화가나서, 분을 이기지 못하고 다리를 꼬고 앉아 자기의 두 젖을 꺼내 두 무릎 위로 넘쳐 내리게 하고는  "보았느냐? 너희가 빨던 젖이 이것이다. 

이 물어찢지 못해 제 자궁을 물어 뜯는 놈들아! 제 배꼽을 자르는 놈들아! 카사르가 뭘 어쨌느냐? 테무진은 나의 이 젖 하나를 비웠다. 카치운과 막내 둘이서 이 젖 하나를 비우지 못했다. 카사르가 있어서 내 젖을 둘다 비워 내 가슴을 시원하도록 가라앉혀, 내 가슴이 시원해 진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재능있는 테무진은 가슴에 재능이 있고 나의 카사르는 활 쏘는 재능이 있기 때문에 활을 쏘며 이반해 나간 것을 활로 쏴서 귀순해 들어오게 한 것이다. 겁에 질려 이반해 나간 것을 멀리서 쏴서 귀순해 들어오게 한 것이다. 이제 적을 무찔렀다고 하여 카사르를 못 보는구나! 네놈들이!" 하고 꾸짖었다. 

- 몽골비사


몽골비사에 기록된 후엘룬의 전기중 가장 처절한 부분일것입니다, 이미 어린 시절부터 권력에 심취하여 이복 동생을 죽인 전적이 있는 테무진이 이제는 자신의 친동생에게 마저 칼을 겨누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후엘룬은 더이상 그를 말릴수 있는 힘이 없었습니다, 몸은 노쇠했고 자신의 공로는 이미 부정당했기에 권력도 없었지요,

그랬기에 그녀는 유일하게 남은 모성애를 통해 징기스칸을 자극 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를 가라 앉히고 나서 칭기즈 칸이 "어머니를 화나게 해서 두렵고, 두렵구나. 부끄럽고 부끄럽다." 하고는 "우리가 물러나자" 하며 물러났다. 

어머니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카사르의 백성들을 뺏고 1천 400의 백성만 남겨주었다. 

어머니가 알고 그 생각으로 곧장 지름길을 택한 사연은 그러하다. 

- 몽골비사

그러나 징기스칸의 생각은 변함 없었기에 목숨만은 살려놓는 대신 그의 영향력을 완전히 제거하였습니다, 그랬기에 어머니 후엘룬이 느꼈을 비통함은 더욱 컸을것 입니다, 더이상 자신으로서는 아들의 독선을 막을수 있는 방법이 없었을 것은 둘째치고 자신의 위치를 다시금 돌아볼수 있었을테니 말이지요.

물론 텝 텡그리의 모반 사건은 뒤로도 이어집니다, 테무게 옷치긴이 형을 대신하여 반 개혁 인사들이 모여든 텝 텡그리의 척추를 고이 접어줌으로서 끝나게 되는데 아무튼 이 사건은 비단 신권을 왕권이 넘어선 사건에서 그치는 것은 아닌것 같습니다.

어찌본다면 징기스칸이 어머니 후엘룬의 영향력를 넘어선 진정한 의미의 '징기스칸의 몽골제국'이 만들어진 사건이라 보아야 하겠지요.

후엘룬은 징기스칸이 어려웠던 한때를 넘기게 해준 원동력이자 그의 지도력과 성격등 많은 것을 선물해준 혈육이자 제국의 공신이었던 것을 떠나 그의 정치적 라이벌이었습니다, 가치관, 생각 등 둘은 절대로 양립할수 없는 평행선만을 달릴 존재였지만 그녀의 혜안을 무시할수는 없었습니다,

징기스칸이 카사르를 죽이기 직전까지 내몰았던 그 일 이후 왕실의 불안정성을 눈치챈 많은 몽골 귀족들이 텝 텡그리에게 몰려들었습니다, 그리하여 테무게 옷치긴이 하늘과 소통하는 자를 '사고'로 죽이기 전까지 몽골제국이 끌어안았어야 했던 문제를 그녀는 진작에 알고 있었을것입니다.

그랬기에 항상 몽골 제국의 건설 이후 징기스칸의 대척점에서 그의 결정에 대립하고 또 침묵할수 밖에 없었을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모자간의 갈등 표출은 몽골 제국의 초기 주요한 정치갈등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그 정치 갈등이 그녀가 우려하는 정치적 문제가 되었는데 이 것을 극복함으로서 간단하게 말하자면 어머니를 넘어섬으로서 징기스칸은 오롯히 왕권을 세울수 있었지요.

참 씁쓸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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