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왕비는 신도비, 태왕릉은 고국양왕릉"
광개토대왕비(자료)
(서울=연합뉴스 2005/08/02) 김태식 기자 =
백승옥 함안박물관 학예연구사는 한국고대사학회가 4-5일 계룡산 동학사 입구 동학산장에서 '집안지역 고구려 왕릉의 제문제'를 주제로 개최하는 제7회 하계학술대회에서 이런 주장을 담은 논문을 제출한다.
주최측이 미리 배포한 논문 '중국 집안 지역 고구려 왕릉의 피장자 문제 : 태왕릉ㆍ장군총을 중심으로'에서 백씨는
백씨는 우석대 조법종 교수가 이 자료를 지난해 1월에 국내에 처음 소개하면서 주장한 '광개토왕릉 확정설'을 정면 반박하면서
이 청동방울은 중국측 발굴보고서에 의하면 2003년, 태왕릉 남쪽 하단부 구(溝. 도랑의 일종)를 조사할 때 청동 부뚜막을 비롯한 다른 유물 30여 점과 함께 출토된 것으로 여기서는 "辛卯年 好大王 ○造鈴 九十六"이라는 12자가 확인됐다.
5번째 글자 '大'(대)는 발음이나 뜻 모두 太(태)와 통용됨은 말할 나위가 없으니, 이 문구에 나오는 '好大王'(호대왕)은 '好太王'(호태왕)과 같을 것임은 두 말이 필요없다.
백씨는 이 '好太王' 혹은 '好大王'이 여느 고구려왕의 시호에는 항용 붙는 수식어일 뿐이며,
이런 시호에 '好太王'이란 말이 들어갔다 해서, 그것이 곧 광개토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다른 고구려왕의 시호에도 이런 문구는 흔히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는 그의 독창적인 견해는 아니다. 일부에서는 그런 지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씨는 이 논문에서 문제의 청동방울에 적힌 문구는 신묘년이라는 해에 호태왕의 무당이 방울을 만들었다"는 의미가 되므로, 당연히 이 방울이 출토된 태왕릉은 신묘년에 축조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발판으로 백씨는 신묘년은 광개토왕 즉위년이기도 하면서, 그의 아버지 고국양왕이 죽은 해이므로 신묘년에 만든 방울을 부장한 태왕릉은 당연히 고국양왕릉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백씨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광개토왕 생전 업적을 잔뜩 나열하고 있는 광개토왕비의 성격을 중국에서는 이미 진(晉)-송(宋) 시대에 유행하는 신도비(神道碑)의 일종으로 간주한다.
신도비란 말 그대로 무덤으로 통하는 길, 귀신이 통하는 길에 세우며, 더욱 중요한 점은 그런 신도비가 중국에서는 묘를 기준으로 동남쪽에 세우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에 있다고 백씨는 강조한다.
그런데 신도비인 광개토왕비는 장군총을 기준으로 정확히 동남쪽에 위치하며, 이로 볼 때 광개토왕릉은 장군총으로 보아야 한다는 결론을 냈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email protected]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