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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공단"이나 "그림자들의 섬"이란 영화 보신 분 있나요?
게시물ID : sisa_76031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신4
추천 : 4
조회수 : 30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9/09 23:54:10
어찌 되었는지 영화게시판에 없어서 시사 게시판에 올립니다. 전자의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가상의 이야기가 섞인 하나의 Faction에 가까운 것이고, 후자는 실제로 일어난 일은 재편집하여 만든 르포르타주입니다. 이 영화들을 거론한 이유는 시사게시판에 올리는 내용이 영화인 점에서 의아할 줄 모르나, 지난 한국사회의 비극과 고통을 보여주고, 그것이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기억납니다. 최강서 열사가 죽음을 택했을 때, 그 비극의 시간이 2012년 12월이었습니다. 대선 이후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희망이 사라진 이유로 죽음을 택한 노동자의 죽음, 한진중공업이 대기업이라 하더라도 실제 노동자의 삶은 엉망입니다. 한진중공업하면 김진숙 씨가 생각나고, 85호 크레인이 생각날 겁니다. 홀로 외롭게 크레인에 머문 그 분을 멀리서 소식을 접할 때면 마음이 아픕니다.

사실 제 친구도 산업재해로 죽었습니다. 매일 노동자들이 안전사고로 죽어가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은 사회에서 저는 절망이란 늪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죽음, 노동자라고 하면 사실 한국사회에서 무식하거나 더럽거나 귀찮은 존재로 여깁니다. 다른 친구의 손톱을 보니 기름때가 끼여 혹시나 선보러 갈 때도 그게 참 무안하다고 생각하더군요. 

그렇습니다. 제가 이 글을 적는 이유는 진보라고 외치는 매체와 지식인에 대한 배신감입니다. 진보매체와 지식인에서 중요한 점을 놓칩니다. 바로 주체와 대상입니다. 그들은 직접 산업재해의 노동자의 삶을 모르고, 그들의 가족과 어떤 얼굴로 있는지 모릅니다. 심상정 대표에게 유감인 것은 그분도 젊은 시절 위장취업을 했다면 그 공장이나 노동자의 생활을 알았을 겁니다. 그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아가는지 말입니다.

약간 뒤통수 치는 글일지도 모르나, 대선과 총선에서 항상 등장하는 주제가 무엇입니까? 경제, 사회, 국방, 여성, 교육, 지역사회 등등입니다. 주체와 대상의 분리에서 현대사회는 인터넷과 교통이 발달해도 우리가 여기 혹은 다른 곳에서 부딪힐 경우 서로가 어떤 직위인지 혹은 무엇을 하는지 성별조차 모릅니다. 오유에 활동하는 유저가 남성이 많을 것이라 하는 진보매체의 개소리를 보면 당황스럽습니다. 시사게시판은 모르나, 적어도 패션이나 옷을 입은 후 인증을 올리는 게시판에는 여성이 더 많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남초라는 말에 동의하지 못하는 것은 오유는 시사게만이 아니라 다른 게시판이 있다는 점입니다. 노동문제와 오유 게시판, 그리고 시사게시판 이 모든 게 연계성이 없어 보이나, 정점은 있습니다. 한국사회는 다양한 부류의 인간이 존재하고, 거기에 우리가 모르거나 알 수 없는 세계, 혹은 낯설지만, 알아갈 수 있는 사회가 있습니다. 진보지식인은 다양성 그리고 더 나아가 그 다양성을 존재해야 하는 사회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겁니다.

그림자들의 섬을 보면 노동자의 비참한 삶을 들려줍니다. 김진숙 씨가 어느날 일을 하다가 옆에 있던 동료가 산업재해로 죽은 것을 보았습니다. 회사에서 그분의 죽음을 두고 이미 시나리오를 작성했고, 안전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로 작성했습니다. 김진숙씨가 죽은 노동자와 같은 방향으로 귀가했었습니다. 그 당시 그분이 집앞에 도착하면 집의 어린 3남매가 아버지의 다리와 팔에 달라붙으면 좋아라 하고 웃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아버지가 죽어도 돌아오지 않아도 대문 앞에 지키고 있었습니다.

여성 노동운동가 김진숙 씨는 남성노동자의 죽음을 보고 사회적, 혹은 인간적 문제에 눈을 떴습니다. 위로공단을 보면 1970년대 여공의 비참한 생활이 나옵니다. 그녀들은 아직도 가난과 싸웁니다. 삼성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린분도 나오고, 마트에서 힘겨운 노동조건도 나옵니다. 제가 메갈을 용서할 수 없지만은, 앞으로 대선과 총선에서 생각해야할 중요한 부부닝 바로 이 문제들입니다.

노동문제, 생계걱정과 비정규직 그리고 산업재해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비극입니다. 만일 제대로 된 시스템을 구비하지 않으면 많은 노동자는 희생당하고, 그들의 죽음과 동시에 그 가족들은 생계수단의 절박함과 가족을 잃은 슬픔에 절망할겁니다. 국방문제 많은 젊은이들이 병영의무에 끌려가 한 해 많은 장병이 사고사가 의문사로 죽습니다. 이들의 가족은 남녀의 구분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가족이 죽었을 뿐입니다.

<또 하나의 약속>에서 여성노동자인 딸을 잃은 아버지는 실제 삼성을 두고 싸워옵니다. 그런데 메갈이나 워마드에서 그녀와 그 가족을 위해 싸운 이야기는 들은 바도 없습니다. 심지어 뉴스에서 미혼모가 아이를 죽게 만들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공포에 떨어도 아무런 위로와 지원을 해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습니다. 식당에서 시간당 5000~6000원 받는 이모들의 서러움도 들은바도 없습니다.

전 메갈과 워마드에 대해 아주 부정적으로 보나, 이 글은 그들만을 향한 비판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아픔과 비극을 담았습니다. 진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왜 저 영화를 제가 말했겠습니까? 우리 주변에 아픈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에 대해 우리는 직접 도움을 주는 것에 대해 한계점이 있으며, 그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법적인 보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저번 총선에서 저는 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대표는 정의당을 선택했습니다. 김종대 위원이 국방군사문제에 대해 잘 알기 때문입니다. 정의당이 만일 진짜 노동자의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면 산업재해로 죽은 많은 노동자들, 그리고 그 가족들을 생각하면 저래선 안되고, 진보매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에 산업재해로 죽은 지하철 스크린도어의 노동자가 조롱당한 것을 보면서 참 세상이 말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제 친구의 죽음이 기사화로 전 국민에게 알려졌다면 제 친구 역시 번식탈락되었다는 말을 봤을지도 모르겠다는 우울감이었습니다.

글 제목은 영화지만, 글 내용은 영화하고 밀접하거나 서로 다른 내용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눈을 돌려서 안 될 문제입니다. 전 진보매체와 지식인들이 가식적이라 여기는 이유가 바로 저런 문제를 실제 옆에서 경험하고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러운 현장, 죽음이 넘치는 세계,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사회에서 진보라고 떠드는 저들이 공격하는 진보청년들이 바로 제 친구처럼 혹은 한진중공업의 노동자들처럼 혹은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입장을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으로 제가 가장 낙담한 건 진중권 교수였습니다. <레퀴엄>이란 책을 보면 진중권 교수가 과거 군복무를 의무병으로 군병원에서 근무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군병에서 자살 내지 사고사로 죽어가는 청년들의 시체가 수시로 들어옵니다. 그때 누가 가장 많이 아퍼하는가? 남자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을 낳기 위해 배앓이하던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여성이 아닌지 그들은 인간이 아닌지? 명예OO라고 하는 것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진보가 지켜주지 않으면 누가 지켜줍니까? 참으로 슬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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