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五年, 春三月, 京都地震, 壞民屋, 死者百餘人.((혜공왕) 15년 3월 수도에 지진이 일어났다. 민가가 무너지고, 백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9권의 기록입니다. 서기로는 779년이고요.
사망자가 백여 명이나 발생했을 정도면 이번보다도 훨씬 큰 지진이었을 겁니다. 안돼도 규모 6.0~6.5 정도는 됐겠죠.
이외에도 고려사나 조선왕조실록에서 '지진'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수백 개 이상의 기사 중에 경주나 금주(김해)에서 지진이 났다는 기록이 거의 절반 가까이는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기록들을 좀 더 면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단순히 어디에서 언제 지진이 발생했다는 것 뿐 아니라
역사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 여러가지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 같아요.
이를테면 한반도(특히 동남권)의 지진은 일본이나 중국의 대지진과도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렇다면 중국이나 일본의 지진 기록과도 대조해보고 연관성을 찾는 작업이 필요하겠죠.
아무튼 이번 지진을 통하여 대한민국의 지진 대비가 한심한 수준이라는 게 드러난 만큼,
앞으로의 지진에 대비하는 데 역사 쪽에서도 할 일이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