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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romi - Tom and Jerry Show
게시물ID : music_557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맥키
추천 : 5
조회수 : 89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0/11/14 14:41:33
야마하가 밀어주고 버클리가 자랑스러워하는 이제 갓 30살 넘긴 일본 피아니스트 히로미입니다. 칙 코리아와의 협연으로도 유명하고 지금 재생되는 동영상 속의 곡인 톰앤제리쇼는 건반계의 전설 오스카 피터슨이 극찬하기도 했죠. 밑의 내용은 퍼온 내용입니다. 2004년에 쓴것 같아요. (http://blog.paran.com/yonjay/4350998) Hiromi Uehara(히로미 우에하라) 일본이름으로는 우에하라 히로미가 되죠(세이지 오자와나 오자와 세이지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일본의 젊은 여자 재즈 뮤지션 히로미는 1979년생으로 시즈오카출신으로 6살때 피아노를 시작했습니다. 엄마손을 붙잡고 동네 피아노 학원쯤 다녔겠죠. 초기에 선생님으로 부터 기본적인 피아노 두들기기에서 부터 악보보다는 음악에서 느껴지는 주관적인 느낌들을 직관적으로 때리는 '니 맘데로 치세요'를 배웠다고 합니다. 히로미가 회상하는 피아노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다. "그녀의(아마도 여자였나 봅니다) 에너지는 너무도 강렬했고, 정말로 감정적이었죠(So emotional). 내게 피아노로 어떤 다이내믹스 같은 것을 표현하길 바랄때는 좀 처럼 테크니컬한 용어들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만약 악보가 어떤 열정이 가득한 곡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이야기 했죠. 빨갛게 쳐보렴(Jay:흐흐 원문은 play red 입니다. 멋진 표현이죠, 멋진 선생님입니다. Play Red!) 또는 부드럽고 달콤한 음악일때는 '푸르게 치는게 좋겠네'(이번에는 Play Blue!)라는 식으로 말이죠. 나는 정말로 그때 내 맘속으로 부터 느껴지는 데로 연주를 했죠. 내 귀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지는데로 말이죠 " 그녀가 첫 피아노 레슨과정을 마친 뒤 1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야마하 음악학교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때 보다 직관적인 연주방식에 한층 더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그녀 나이 12살, 이때 대중들 앞에서 연주하기 시작했고 때때로는 꽤 실력있는 오케스트라들과도 연주를 했다. "14살이었을때, 체코슬로바키아에 갔었죠. 그리고 체코 필하모니와 연주회를 가졌어요. 대단한 경험이었죠. 그런 프로페셔널한 오케스트라와 협연한다는 것은 정말로..." 10대 중반에 이르자, 히로미의 관심은 점차 클래식 뿐만 아니라 재즈에도 관심을 보이기 시잣하는데, 17살때 칙코리아를 만날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그녀가 재즈의 길로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다. "도쿄였죠. 칙코리아는 야마하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었죠. 그때 도쿄에 레슨을 받으러 들린 일이 있었는데, 레슨 선생님들 일부에게 칙코리아를 보고 싶다는 말을 했었어요. 그리고 칙코리아 앞에 앉게 되었죠. 그리고 그가 아무거나 쳐보라고 하길래 뭔가를 연주했어요. 그러자, '즉흥적으로 그냥 쳐볼 수 있겠니?'라고 하자, 그럴 수 있다고 했죠. 그리고 칙코리아와 2개의 즉흥연주를 그자리에서 갖게 되었죠. 그러고 난 뒤 내일 시간이 있냐고 하길레 있다고 했어요. 마침 그 다음날이 자신의 연주회이니 연주회에 한번 오는게 어떻겠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연주회에 가게 되었어요. 연주회가 끝날 무렵, 칙코리아가 무대에서 제 이름을 불렀어요. 그래서 무대위로 올라가서 그와 함께 몇가지 즉흥연주를 즉석에서 했었죠" 몇 년 뒤, 닛산을 비롯한 일본의 대기업들의 광고용 음악을 만들고 나서, 히로미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1999년의 일이다. 보스턴에 있는 버클리 음대에서 음악공부를 하게 되었고, 히로미는 2003년 졸업하게 되었다. 이미 미국에 왔을때 그녀의 음악적 감수성이 점차 넓어질데로 넓어져 있었고, 버클리에서의 경험은 그녀의 영역을 한층더 강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버클리에 다니는 동안, 한국에서도 나름대로 잘나가는 뮤지션이 하나 있었으니 그가 김동률이다. 이때 김동률은 히로미와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 듯 싶다. 그녀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나중에 버클리 음대에 잠시 다녀온 사람 말로는 이 곳에 가면 제 아무리 수재라도 그저 평범한 연주자 수준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 출신 뮤지션들이 연주가 아닌 모두 작곡으로 학위를 받는 이유가 그런데 있다고 한다. 가는 순간 절망에 빠지고 좌절 금지 스피커를 가득 붙히고 살아야 한다는...) "음악을 보는 눈이 정말로 넓어졌죠. 어떤 사람들은 재즈에 몰입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클래식에 열정적이었어요. 그리고 어떤 이들은 락음악에 심취했죠. 모두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이 흠뻑 빠져있었죠. 그들은 항상 서로를 이렇게 이야기 해요. '이 친구는 최고라니까!', '아니야, 진짜 최고는 이 녀석이라니까' 이런 식이죠. 그러나 정말 모든 사람들이 대단했죠. 나는 어떤 음악에 갇혀있지 않고 모든 쟝르의 음악에 거리낌이 없었어요. 메탈에서 클래식음악들까지 어떤 음악들도, 정말로 모든 음악들을 들을 수 있었어요" 버클리에서의 정신적 지주중에 한 사람은 베테랑 재즈 베이시스트인 리처드 에반스였다. 그는 편곡과 관현악법을 가르쳤다. 에반스는 히로미의 Telarc 데뷔앨범인 Another Mind의 공동프로듀서로서 히로미의 아티스트로써의 성장에 누구보다도 관심이 많았던 오랜 친구이기도 한 아마드 자말도 그와 함께 첫 음반의 작업의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히로미는 그저 놀라움 자체였죠. 그녀의 음악, 그녀의 넘치는 재치와 영감은 그녀에게 상상할 수 없는 상당한 수준의 음악적 높이를 순식간에 쌓아올리게 만들었습니다" 아마드 자말의 말이다. 이제 25살, 히로미는 그녀를 둘러싼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들에서 항상 영감을 떠올리는 끊임없는 가능성이라는 문턱 위에 서있다. 그녀의 음악 그 자체처럼, 그녀에게 영향을 주는 것들은 무한하다. "바하를 사랑하요. 오스카 피터슨을 사랑하죠. 프란츠 리스트를 사랑하고 아마드 자말도 사랑해요. 그리고 Sly 와 Family Stone, Dream Theater, King Crimson 같은 사람들도 좋아하죠. 또 한편으로는 칼 루이스와 마이클 조던같은 스포츠 스타들로부터도 많은 느낌을 받기도 해요. 근본적으로, 대단한 정말로 대단히 커다란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많은 영감을 받게 되요. 그들은 정말로 내 마음 속에 직접적인 느낌을 만들어주니까요" "내 음악에 이름을 붙이길 원치 않아요. 다른 사람들은 내가 하는 것들에 이름을 붙일 수 있겠죠. 그것은 단지 내가 들어왔던 내가 배웠던 것의 집합체일 따름이죠. 그것은 클래식 음악의 일부일 수도 있고 또는 락음악의 일부일 수도 있죠. 또는 재즈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그것에 특별한 이름을 붙이고 싶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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