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주 주말에 제가 겪은 일입니다.
금요일에 오랜만에 동네친구를 만나 술잔을 기울였는데 그날따라 술이 참 달더라구요.
한참을 마시다가 친구는 물회를 사서 자기 집에서 한 잔 더 하자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했습니다.
마침 친구네 부모님은 여행을 가신터라 자기네 집에서 마음 편히 술을 마시자고 하더군요.
친구네 집이 이사한 뒤로는 가본 적이 없기도 해서 집구경도 할겸 그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동네횟집에서 물회를 사고 친구 집에서 마시는데 역시 술은 집술이 최고였습니다.
친구네 아버지가 찬장에 몰래(?) 숨겨놓으신 중국술도 몰래(?) 들이키고
새벽 2시쯤 술에 취한 친구와 저는 잠을 청하기로 했습니다
친구는 자기 방 침대를 양보했지만 저는 원래 아무데서나 잘 자는 체질이라 거실 쇼파에서 잔다고 말했습니다.
오랜만에 술을 마셔서 그런지 바로 잠들었는데, 그 때 갑자기 이상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꿈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쇼파에 자고 있는 제 옆에 어떤 여자가 서 있었는데
그 여자는 하늘색 옷을 입고 원피스인지 넝마인지 구별이 안되는 허름한 옷을 입고
긴 머리카락을 흩으러뜨리고 씻지 않은 듯한 얼굴로 저를 바라 보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우두커니 서서 저를 지켜보던 그 여자는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너... 뚱뚱해, 너 뚱뚱해..."
제가 남들보다 덩치가 있는 편이기도 하고 최근에 살이 찌긴 했지만 왠지 꿈인데도 울컥하더군요.
하지만 제가 울컥하든 말든 상관없이 계속 그 여자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계속 똑같은 말을 점점 더 빠르게 큰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하더니..
너.. 뚱뚱해.. 너 뚱뚱해 너 뚱뚱해 너 뚱뚱해! 너 뚱뚱해! 너 뚱뚱해!!!! 너 뚱뚱해!!!!!
이히히히히히히ㅣ히히히히ㅣ히힣ㅎ히ㅣ히ㅣㅎ 이히히히히ㅣㅎ히히히
하고 기괴한 목소리로 미친 듯이 웃어대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놀란 저는 순간 이게 악몽이구나라고 생각하고 바로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오랜만에 악몽이라 등에 식은 땀이 나있고 놀란 마음에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6시더군요.
무서운 마음에 친구방에서 친구랑 같이 잘까?라고도 생각해봤지만 해도 뜨고 있었고
귀신보다 친구녀석이랑 부둥켜 안고 자는 게 더 더러무서워서 친구네 거실의 TV를 켜고 무서움을 달랬습니다.
TV를 보다보니 마음이 조금 안정되서 다시 스르르 잠이 들었고 악몽없이 꿀잠을 잤습니다.
자다보니 정오 쯤에 친구가 저를 깨웠습니다. 식탁에는 친구가 끓인 해장라면이 있더군요.
라면을 흡입하다가 친구한테 넌지시 새벽에 꾼 꿈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나 : 야 나 어제 악몽꿨다.
친구 : 무슨 악몽?
나 : 나 소파에서 자는데 어떤 미친 여자가 나보고 뚱뚱하다고 비웃던데.
친구 : 아~ 그거 우리집에 있는 귀신이야.
나 : ??????????
친구가 너무 태연하게 말하길래 오히려 제가 더 놀랐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막 따지듯이 말하기 시작했죠.
나 : 야 그게 귀신인지 니가 어떻게 알어?
친구 : 니 꿈에 나온 여자 하늘색 옷 입고 머리 길지?
나 : ......
친구 : 가끔 나 잘 때도 나 보고 비웃어ㅎ
나 :
너무나 태연하게 제 꿈 속 여자의 인상착의를 말하는 모습에 순간 소름이 끼쳤습니다.
친구는 마치 일상생활을 얘기하듯 말하면서 태연하게 라면을 먹더라구요.
너무 놀란 저는 친구에게 여러가지를 물어봤습니다..
친구가 이사온 뒤로 가위도 자주 눌리고 이상한 꿈을 많이 꾼다고 하더군요.
자기도 처음에는 놀랐지만 하도 자주 그런 일이 있다보니 하나도 안 놀랐다면서..
친구는 자기네 집이 음기가 강해서 그런 게 아니냐는 자체적인 해석(?)까지 내놓더니
나쁜 귀신은 아닌 거 같으니까 해프닝으로 넘기라고 웃더군요. 거기서 웃음이 나오냐
제 꿈에 나온 사람이 제 친구 꿈에서 계속 나왔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친구가 인상착의까지 미리 맞추는 경험은 처음이라.. 조금 놀라긴 했지만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아무튼 그 날부터 혹시나 그 하늘색 옷을 입은 영혼이 혹시 저를 따라와서 제 꿈에 다시 나올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 이후 꿈에는 그 여자가 안 나왔네요.
.......아직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