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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식성
게시물ID : panic_906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안개낀숲
추천 : 11
조회수 : 3278회
댓글수 : 15개
등록시간 : 2016/09/16 02: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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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오늘도 흰쌀밥이다.

그녀와 결혼한지 벌써 6년이 됐지만, 우리는 단 한번도
흰 쌀밥외에 다른 밥을 먹어 본 적이 없다.

흰 쌀밥만을 먹어서 그런지, 요즘은 몸도 예전과 다르게 비대해졌다.
이제는 건강을 챙겨야 될 나이인데...

사실 난 어렸을때부터 잡곡밥을 즐겨먹었다.
특히 흑미를 백미와 찹쌀과 적절히 섞어놓은 그 밥을 가장 좋아했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껏 흰 쌀밥외에는 그 어떠한 밥도 먹지 않았다.
덕분에 나도 결혼 후 6년째 잡곡밥을 거의 먹어보지 못했다.

심지어 그녀는 갓 지은 밥 외에는 손도대지 않아서, 항상 밥을 먹을때마다
딱 먹을만큼만 밥을 짓는 버릇이 있었다.

"자기야. 티비에서 봤는데 이렇게 매일 흰쌀밥만 먹으면
건강에 안좋대. 도정안한 쌀에 영양성분이 다 있는데,
흰 쌀은 그건 다 제거해버리고 탄수화물만 남은거라고 하더라구"

아내는 그런말을 하는 나를 넌지시 쳐다보더니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려
설거지를 하기 시작한다.

'후...이런말이 통할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잡곡밥을 먹었겠지'

혼자 옛날 먹던 밥상을 생각하며 생각에 잠겨있는동안, 어느새 아내는
설거지를 다 끝냈는지, 출근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두번째 서랍에 쌀있으니까 점심은 알아서 챙겨먹어요"

그녀는 계속되는 업무로 인해 스트레스가 쌓였는지 아침부터 많이 피곤한 듯한 표정으로 
나에게 힘없이 인삿말을 한 후 집을 나섰다.

오늘부터 휴가인 나는 괜시리 아내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5일동안 쉬는데 설거지는 내가 할걸 그랬나...그래 저녁은 내가 차려놔야겠다.'

아내가 떠나고 난 후, 나는 미안한 감정도 잊어버리고 어느새
간만에 맞은 휴가를 만끽하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새 해가지고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시간 참 빨리가네...가만있자, 밥부터 해야되는데 밥이 어딨다고 했더라?'

'아! 두번째 서랍!'

나는 가스렌지 아래에 있는 서랍중 두번째 서랍을 열었다.
안에는 흰 쌀밥들이 투명한 플라스틱 통들에 잔뜩 담겨있었다.

'어차피 다 흰쌀이니 아무거나 꺼내서 지으면 되겠ㅈ....어???'

흰 쌀들이 담겨져 있는 통들 사이에, 조금은 독특한 쌀이 있었다.

'저거 설마....'

나는 망설임없이 그 통을 꺼내들었다. 

쌀 안에는 검은 흑미와 동글동글하고 누르스름한 조그마한 조가 흰 쌀과 반반씩 섞여있는 잡곡쌀이 들어있었다.

"아니 이 여편네 잡곡밥은 죽어도 안먹으면서 언제 이런걸 다 만들어놨대?"

나는 간만에 맛있는 잡곡밥을 먹을 생각에 벌써부터 들떠있었다.
옆에 있는 계량컵을 들어, 망설임없이 잡곡쌀을 퍼서 물을 붓고 취사버튼을 눌렀다.

밥이 다 익어가고 반찬들이 다 만들어졌을 때 즈음, 현관문에서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삑삑삑 삐빅- 공동현관문이 열립니다.'

"나 왔어요"

아침보다 두배는 더 피곤해보이는 아내가 반 시체처럼 집에 들어오더니, 
이내 집에서 나는 음식냄새를 맡고는 시체같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당신이 밥도 다 차려놓고?"

막 밥을 뜨고있던 나는 그런 말을 하는 그녀를 뒤돌아 쳐다보며 밥 주걱에 덕지덕지 붙은 남은 밥들을
깨끗하게 먹어치우면서 되려 물었다.

"당신이야말로 웬일이야? 흰 쌀밥만 먹더니 잡곡쌀을 다 만들어놓고? 엄청 맛있어서
당신 오기전에 벌써 한그릇 먹었어. 당신오면 또 같이 먹으려구."

아내는 내 이야기를 듣고는 이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나에게 말했다.

"잡곡이라뇨? 무슨잡곡?"

"이거봐, 이거 당신이 만든거아냐? 조랑 흑미랑 쌀이랑 골고루 섞어논 잡곡밥이 있길래 내가 잡곡밥 했지~"



내가 내민 밥통을 그윽하게 쳐다보던 그녀가 이내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악!!!!!!!!!!!!!!!!!!!!!!!!!"



나는 순간적으로 그녀의 비명에 놀라기보다는, 짜증과 화가 밀려왔다.
그간 흰쌀밥만 먹어오며 쌓여왔던 설움이 한꺼번에 물밀듯이 터져나왔다.


"아니 당신, 아무리 잡곡밥이 싫어도 그렇지 너무하는거 아니야? 무슨 벌레보듯이 비명을 질러??"


그러나 그녀는 내가 큰소리로 화를 내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는 이내 화장실로 달려가
헛구역질까지 하기 시작했다.


"정말 짜증나네 X발!!!!"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나는 더 이상 참지못하고 잡곡밥이 든 쌀을 바닥에다가 내팽겨쳐 버렸다.

거실 복도에 잡곡쌀이 팍! 하고 퍼지며 사방에 흩뿌려졌다.


그리고 난 곧 그녀가 왜 그렇게 비명을 질렀는지 그 이유를 꺠닫게 됐다.










흰 쌀 곳곳에는 흰 쌀만큼 많이 섞여있는 검은 흑미, 아니 쌀벌레들이 꿈틀꿈틀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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