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대기번호 476번 손님~"
행복은행 대리 이희준은 각광받는 사원이었다.
말쑥한 외모, 몸 곳곳에 배어있는 매너. 부드러운 목소리와 서글서글한 웃음까지.
그는 대학교 독서 동아리에서 만난 5년 사귄 여자친구와 2년전 결혼하였고, 몇 달 전에는 아내를 닮은 귀여운 아들까지 얻어 주위의 여사원들에게는 꿈의 대상이었다.
"아...나도 이희준 대리같은 남친이 있었으면!"
"하...나는 우리 남편이 이대리 반의 반의 반만 했으면 소원이 없겠다."
칭찬이 되로, 아니 말로 쏟아질 때마다 그는, 감사합니다. 하며 웃어 넘기고는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은행에 신입 여사원이 들어왔다. 이름은 김민지.
그녀는 스물 다섯 살의, 갓 사회에 발을 들인 예쁘장한 아가씨였다.
"안녕하십니까, 신입 사원 김 민지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민지씨 사수되는, 이 희준 대리라고 합니다."
빙긋이 웃어보이는 희준의 호의 담긴 웃음에, 김민지는 그만, '뿅' 가버리고 말았다.
"저어, 희준 대리님 여자친구 있어요?"
"여친은 없지."
"정말요?"
김민지가 화색하며 웃자, 옆에 있던 박 대리가 찬물을 끼얹었다.
"처자식이 있을 뿐."
쿠궁!
김민지의 마음에, 무거운 납덩이가 가라앉는 듯 하였다.
"그나저나 태준이는 많이 컸어?"
"예에, 이제 말을 하려는지, 아바아바 하는데 정말 귀여워 죽겠다니까요."
"야아, 그때가 귀여울 때지! 이제 좀만 있으면....아, 상상하기도 싫다."
"하하하, 그런가요?"
이 대리가 가족과 관련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면, 김민지는 늘 귀를 쫑긋 세우고 내용을 낱낱이 엿들었다.
행복은행 사원이 된 지 엿새째. 김민지는 그가 참 화목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보통 여자라면 이런 데에서 포기할 쯤도 한데, 김민지는 달랐다.
그때부터, 김민지의 스토킹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