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野話)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첫 번째 밤, 광대패 속의 여인. : http://todayhumor.com/?bestofbest_258683
야화(野話)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두 번째 밤, 절지당(絶指堂). : http://todayhumor.com/?bestofbest_260495
야화(野話)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세 번째 밤, 원귀의 저주.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294072
야화,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네 번째 밤, 개천에서 태어난 괴물(上)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296198
야화,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네 번째 밤, 개천에서 태어난 괴물(下)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299037
야화(野話)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다섯 번째 낮, 쥐떼.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302935
아직 냉랭한 바람이 산천을 휘감는 가운데, 이제 막 열기를 북돋는 동이 트기 시작하는 무렵이다. 태양이 내리는 양기가 채 지면에 와 닿기도 전이건만 홍량이는 물통 두 개를 들고 내와 집을 오가며 물동이에 물을 채우고 있었다. 새 날이 시작됨을 알리는 태양보다도 더 부지런했던 홍량이는 그 고된 노동에 태양만큼 몸이 뜨거워져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물통을 나르는 홍량이는 아직 물동이를 반 밖에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발걸음이 더욱 분주하다. 어머니가 일어나기 전에 물동이에 물을 가득 채워놓아야 치도곤을 면할 수 있는 탓이다.
다른 아낙들은 물동이를 이고 가서 물을 가득 채워놓은 물동이를 이고 오는 것으로 끝이지만, 홍량이는 아직 물동이를 들 수 있는 나이가 아니기에 작은 물통에 물을 채워 분주히 내와 집을 오가며 집에 놓인 물동이를 채우는 것이다. 그 작은 물통마저도 홍량이에게는 천근같이 무겁다.
“아직도 물 다 길어오지 못한 거니?”
표독스러운 한마디가 집에 들어서는 홍량이를 향해 찔러져온다.
전 날에 쪄 놓은 고구마를 놓고 둘러앉아 먹는 부부.
홍량이의 부모다.
“어머니, 조금만 더 하면 되요.”
“네가 물을 길어 오질 않으니까 허기가 져서 고구마나 먹고 있잖니. 어서 부엌에나 들어가지 못해?”
밥을 지으려면 필요하니 물을 길어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밥 짓는 것도 결국 홍량이의 몫이었다. 아직 잠이 덜 깨어 비몽사몽한 까닭에 딱히 회초리를 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쩌다 기분이 상하면 언제든지 혼날 수 있기에, 홍량이는 잽싸게 물통을 내려놓고 부엌으로 달려간다.
이미 씻어두었던 쌀에 물을 더 붓고 불을 땐다. 여름이기에 부뚜막은 사용하지 않고, 따로 부엌 옆 바깥에 마련해 둔 화덕을 쓴다. 방바닥이 더워지지 않는다 뿐이지, 불가에 머무르는 이에게는 고되기가 매한가지다. 정오의 뜨거운 햇볕을 쪼인 것처럼 맺힌 땀들은 물통을 이고 나를 때부터 맺혔고 지금은 비가 오듯 주룩주룩 떨어진다.
쌀을 불에 올리고 장작을 더 넣은 뒤, 된장과 남은 무 조각을 넣고 국을 끓인다.
연신 화덕의 불을 피우느라 재가 날리고 묻어 땀범벅인 얼굴은 가무잡잡해진다.
후에 잠시 시간이 남아 대청마루의 분위기를 엿본다.
부모가 고구마를 조금 먹다가 다시 잠든 것을 확인하니,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이는 홍량이.
“주인어른 계시오?”
누군가의 목소리가 집 밖에서 들려온다.
이런 이른 아침부터 손님이 다 있는가 싶어 홍량이는 급히 손의 재만 털고 일어나 문간으로 향한다. 그 곳에는 금박에 푸른 도포가 인상적인 사내가 서 있었다.
“누구세요?”
홍량이는 최대한 예를 갖추어 손님을 맞이했다.
지체 높은 사람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비단 옷에 금박을 두르고, 빛깔 고와 보이는 부채를 들고 있으니 땀 흘려 일해야 먹고 사는 부류의 사람은 아닌 듯 했다.
“혹여 홍량님 되시는지요?”
“… 저를… 아세요?”
느닷없이 홍량이의 이름을 부르는 사내.
당황한 홍량이는 의아함보다도 낯선 상황에서 오는 불안감이 더 컸고, 쭈뼛거리며 사내를 마주했다. 그러함에도 사내는 더욱 깍듯한 모습으로 홍량이에게 말을 건넸다.
“무녀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평소 집안일은 손도 대지 않던 부부이건만, 웬일인지 스스로 마을에 나가 먹을거리를 사오고 이어서 다담상(茶啖床)을 내왔다. 평소에는 보기 힘든 달달한 다식과 약과가 먹음직스럽게 놓여 졌고, 고급스러운 향의 국화차가 나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 일이건만, 국화차의 잔은 모두 네 개였다.
부모와 손님이 한 잔씩 받고도 한 잔이 남는다.
“어서 들거라, 차가 식겠구나.”
평소에는 결코 들을 수 없었던 어머니의 자상한 목소리.
홍량이는 적응이 되지 않는 까닭에 쉽사리 잔을 받을 수 없었다.
혹여 자기가 눈치도 없이 잔을 들거나 상을 같이 받았다가 치도곤이라도 치르는 것은 아닌지 싶어 으레 겁부터 난다. 자신의 몫으로 나온 다과와 차가 놓인 작은 상.
개인적으로 받는 자신만의 상은커녕, 홍량이 본인이 부모의 밥상을 차리고 나면 홀로 부엌에 웅크리고 남은 잔반이나 누룽지 집어 먹던 것이 일상인지라 어찌 할 바를 모르며 당황한다.
“무녀님은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호호, 아무렴요. 좋은 것은 가장 먼저 먹이고 가장 먼저 입히며 마음을 다해 키웠답니다.”
애정 어린 부모의 행세를 하며 손님에게 극진한 모습을 보인다.
손님은 사람 좋은 미소를 띠고, 어리둥절하는 홍량이를 바라본다.
그제야 넋을 놓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자신의 앞에 놓인 약과를 집어 먹는 홍량이.
향이 좋은 국화차는 아무래도 좋았다. 평소 먹지 못했던 달달한 과자가 홍량이의 마음을 홀딱 빼앗아버리는 것이다. 말랑말랑 차지며 달달한 다식도 좋았고, 끈덕지고 달콤하기 이를 데 없는 약과도 좋았다. 단단하고 고소한 강정이나 폭신폭신하고 향긋한 유과도 너무나 좋았다. 군침이 줄줄 흐르는 터라 목메지도 않았다. 그저 그간에 먹을 수 없었던 맛난 것에 대한 행복감과 쌓이고 쌓인 허기가 함께 솟구쳐 허겁지겁 과자들을 집어먹을 뿐이었다.
“얘!!!”
순간 떨어지는 어머니의 한소리에 덜컥 겁이나 손과 입을 멈추고 눈만 동그랗게 뜨는 홍량이. 기겁하여 몸이 얼어버린 모습이 되고나서, 입안에서 그토록 달콤함을 주던 과자도 그 맛이 더는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천천히 먹으렴, 체 하겠다 호호.”
다시 유들유들한 목소리로 변하는 어머니.
평소와는 다른 그 태도는 조금도 익숙해지질 않는다.
손님의 앞에서 게걸스럽게 과자를 집어먹었기 때문일까. 손님은 홍량이만을 주목했고, 그 손님의 눈치에 부부는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홍량이는 귀한 손님인데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구나 싶어, 연신 움직이던 입조차 내버려두고 입에 한가득 과자만 물고 가만히 굳어버렸다.
“무녀님은 잘 지내지 못하셨나봅니다.”
친근한 미소를 띤 손님은 그 표정 그대로 웃으며 말한다.
한창 웃는 낯이나 그 모습에 도리어 얼어버린 것은 홍량이의 부모.
“분명 그간 매달 전해드린 돈은 무녀님을 남부럽지 않게 키워달라는 조건이었을텐데요.”
분명 똑같은 낯이지만 그의 목소리는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그들의 손에 들린 국화차는 아직도 그 열기가 식지 않아 뜨겁게 김을 피워내고 있었으나, 그들이 느끼는 것은 오로지 살벌한 냉기 뿐 이었다. 시퍼런 칼날 같은 찬바람이 그 냉기로 살을 찢는 한겨울의 모습처럼 달달 떨리는 그들의 손은 찻물이 겨우겨우 넘치지 않을 정도만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일반 양민이 열 명은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을 매 달 드렸건만, 매번 사치나 노름으로 모두 써버리신 모양입니다. 제가 그런 소식도 듣지 못하였을 줄 아셨습니까?”
“아니 나리 그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조한 오늘까지 별 소리 하지 않고 조용히 넘어간 것은 그래도 주어진 책무를 다 할 것이라 믿고 신뢰한 까닭이었습니다만,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그제야 손에 들린 잔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으며 변명을 해보려 하는 부부.
그러나 부부가 채 입을 열기도 전, 사내의 입에서 노기어린 명령이 먼저 터져 나왔다.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그 순간 아무 소리도 없이 적막하기만 하던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며, 방문을 열어젖히고 여러 장정들이 우루루 들어섰다. 그들은 순식간에 부부를 붙들어 포박하고, 납죽 엎드리게 만들었다.
“이 자들을 끌고 가라! 내 추후 죄를 묻고 목을 치고 말 것이다!!”
“아이고 나리! 그게 아니옵니다! 억울하옵니다!”
“홍량아! 말 좀 해 보거라! 우리 다 죽게 생겼다!!”
울고불고 기겁을 하며 목소리를 높이던 부부는 장정들에게 끌려 나간 뒤, 곧바로 조용해졌다.
무섭도록 사무치는 적막감이 손님과 홍량이 사이에서 맴돈다. 장정들과 부모가 모두 나가 단 둘만 남은 방. 홍량이의 입 속에는 어머니의 한소리에 씹는 것을 멈추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물려져 있는 과자가 한가득 이었다. 손님은 어느새 노기를 지우고, 다시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홍량이를 대했다.
“개의치 마시고 편히 드십시오. 모두 무녀님을 위한 것들이옵니다.”
입에 물려진 과자를 다 씹어 삼키자마자 사내는 홍량이에게 목이 메지 않도록 차를 권했다.
오물오물 과자를 먹은 홍량이는 사내의 말에 차를 꼴깍꼴깍 넘긴다. 그리하자 사내는 남긴 것들은 손을 대지 않아도 좋으니 같이 갈 데가 있다며 홍량이를 집에서 데리고 나왔다. 부모가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에게 포박되어 끌려갔건만, 홍량이는 그보다 집에 두고 가는 남은 과자가 아깝다는 생각이 더 들었다. 스스로도 그런 생각은 하면 안 된다고, 부모의 안부를 더 걱정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였으나 어찌나 그 달콤한 과자가 좋았던지.
사내는 이윽고 크고 휘황찬란한 가마에 홍량이를 태웠다.
홍량이는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좌불안석했으나 가마꾼들은 능숙하게 홍량이를 태우고 성큼성큼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가마의 옆에는 홍량이를 데리고 나온 사내가 말을 타고 함께 이동하고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귀하신 무녀님을 겁박(劫迫)할 이는 이제 없사옵니다.”
계속해서 홍량이를 달래는 사내의 모습에도 홍량이는 안심할 수 없었다.
대체 무녀라는 것은 무슨 소리인지 싶었으나 겁에 질린 까닭에 묻지도 못하고 그저 가마에 몸을 실은 채 길을 따라나서는 것뿐이다.
마을은 항상 눈에 보이는 곳에 있었으나, 홍량이는 부모의 명령에 마을로 갈 수 없었다.
거기다 홍량이의 집은 마을 근처의 산 아래에 있었고, 꽤나 가까운 거리이건만 아무도 발걸음을 하지 않는 까닭에 마을 구경은커녕 부모 외에 다른 이를 보는 일도 요원한 일인 것이었다.
난생 처음 방문하는 마을의 모습에 넋이 나갈 법도 한 일이나, 홍량이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모습들은 따로 있었다.
그 처음 보는 사람들이 홍량이가 탄 가마가 지나갈 적마다 바닥에 엎드려 경건히 절을 올리고 있는 것이었다. 특별한 날 음식을 차려놓고 조상을 모실 때나, 혹은 부처님을 향해 절을 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자신이 다른 이들의 절을 받다니. 더욱 홍량이의 혼란은 가중되었고, 결국 유일하게 아는 사람인 사내의 눈치를 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머지않아 홍량이는 어마어마하게 큰 기와집에 도착했다.
그 집은 문간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 넓이나 깊이를 알기 어려울 정도로 큰 건물이 몇 채 있었고,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들어갈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한 채가 홍량이가 살던 집의 열 배가 훨씬 넘었으니 그 기세가 오죽하랴. 홍량이는 그 중, 한 가운데의 가장 큰 건물에 들어갔다.
그 건물 앞에 당도하자 가마는 바닥에 내려졌고, 약간의 어지럼증과 욕지기가 나던 와중이라 너무나 달갑게 땅에 발을 디뎠다. 그 후 곧바로 칼을 찬 무사들에게 호위를 받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선 홍량이를 처음 맞이한 것은 거대한 사람들의 목상이었다.
흉측하게 얼굴이 일그러진 사람들이 창이나 칼을 들고 서있는 거대한 나무 조각상들이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단지 사천왕의 조각일 따름입니다, 수호신이지요.”
수호신이라는 사천왕의 조각상을 지나 조금 더 들어가니, 맛있는 냄새가 한가득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냄새에 자극을 받았는지 허기를 알리는 꼬르륵 소리가 울린다. 두 명의 여인이 홍량이가 그들의 앞에 도착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을 열었다.
그 곳에는 커다란 상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으며, 그 위에는 평생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신기한 음식들이 한가득 자리하고 있었다.
“두고 오신 다과 따위에 신경 쓰실 필요 없으십니다. 허기가 지실 터이니 마음껏 드시지요.”
그 말을 듣자마자 홍량이는 쭈뼛거리면서도 유일하게 깔려있는 방석을 찾아가서 앉았다.
그와 동시에 문을 열어주었던 여인 둘이 다가와 홍량이의 앞에 고기의 살점 따위를 잘라 놓거나 멀어서 닿지 않는 곳의 음식을 조금씩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극진한 대접에 홍량이는 자리에서 일어날 걱정도 없이 모든 음식들을 맛 볼 수 있었고, 긴장감에 젖어 있던 그 표정이 비로소 누그러지며 행복감에 젖기 시작한 것이었다. 맛있는 음식들을 먹을 때마다 감동을 거듭했고, 그 만복감이 기분 좋게 마음을 간질였으나 음식들을 더욱 맛보고 싶다는 마음에 그 뱃속을 더 힘껏 채워나갔다.
큼지막한 멧돼지가 통째로 구워져 올려져있고, 본 적도 없는 홍량이 만한 새가 구워져 있었다. 오색찬란한 전과 탕들이 향긋한 냄새를 자아내고, 맛깔나게 보이는 새콤달콤한 과일들이 곳곳을 장식하고 있었다. 어른의 팔뚝만한 생선들이 탕 속에 들어가 고소한 냄새를 내고, 거칠거칠한 껍질을 가진 까먹는 녹색 속살의 열매는 그 새콤한 맛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여린 불 위에 올려져 따뜻함을 유지하고 있는 그 많은 고기들은 여인들의 말로 소고기라고 하였다.
밥풀들이 한껏 가라앉아 있는 뽀얀 음료는 너무나도 달콤하고 시원했으며, 한 겨울에나 볼 수 있었던 얼음이 가득 띄워져 있었다.
바로 앞에 놓인 흰 쌀밥도 윤기와 기름기가 넘치며 너무나 맛있었지만, 밥으로 배를 채우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모든 음식들이 기쁨 그 자체로 다가왔다.
더는 들어갈 데가 없을 만큼 한가득 음식을 먹은 홍량이는 마지막으로 소화에 좋다는 배의 정과를 먹는 것으로 식사를 끝마쳤다.
“식사는 입맛에 맞으셨습니까?”
“네, 하나같이 너무 맛있었어요.”
행복감을 한껏 드러내는 홍량이의 대답에 사내는 미소로 답을 한다.
그러다 사내는 홍량이의 앞에 부복(俯伏)하고 예를 갖췄다.
“궁금한 것이 많으실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인은 작게나마 이 마을의 대소사를 관리하고 있는 ‘이청’ 이라 하옵니다. 무녀님에 대해서 그들에게 들으신 바는 전혀 없으십니까?”
홍량이는 그저 도리질을 칠 뿐 이었다.
무언가 듣기는커녕 이청이 이야기하는 무녀라는 것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전무한 까닭이다. 그에 이청은 한숨을 푹 쉬고는, 다시 조곤조곤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저희 마을은 항상 무녀님들을 배출해 왔습니다. 매 번 12년이 지나 뱀의 해가 올 때마다 무녀님이 나고 지시는데 이번 무녀님이 바로 홍량님이십니다.”
그저 옛날이야기를 듣는 모양으로 이청의 말에 주목할 뿐인 홍량.
아무것도 모르는 이야기이니 그저 듣고 그렇구나 할 수 밖에 없다.
“홍량이라는 이름은 항상 무녀님을 뜻하는 이름입니다. 그 이유는…….”
잠시 뜸을 들이며 침묵하는 이청. 그 침묵이 길지는 않았으나, 나름대로 난처한 그의 감정이 조금이나마 드러나는 모양이었다.
“저희 마을 해안가에는 ‘홍량거부’ 라고 하는 수신(水神)이 있습니다. 그 수신의 이름을 따서 홍량이라 무녀님들을 칭하는데, 12년마다 한 번씩 무녀님들을 제물로 바침으로써 저희 마을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사옵니다. 실은 부모라고 알고 계시는 그들 부부가 언질을 드렸어야 하는 일인데, 이들이 무녀님 몫의 재물만을 탈취하고 자신들의 임무에 대해서는 몹시도 소홀했던 모양이라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 제, 제물…!”
“미리 진상을 알았더라면 제가 올바르게 처리했을 것이지만, 무녀님들은 항상 준비된 날이 되기까지 최대한 타인의 손을 타지 않는 것이 규율이기에 어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 규율 탓에 마을에서 떨어져 그들의 손에만 무녀님을 맡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이야기 이후로는 뚜렷하게 들리는 이야기가 없었다.
무언가 더 이야기를 하고 마을의 명맥에 대해 이야기 하는 듯 보였지만, 홍량이의 머릿속은 제물이라는 말로 가득 차 있었다.
“조금 더 마음의 준비를 하실 시간을 드리면 좋으련만, 바로 오늘이…”
“그럼 저는 죽는 건가요!?”
뒤늦게 기겁을 하며 소리치는 홍량이.
제물이라 하면 목숨을 바친다는 소리가 아닌가. 갑자기 이렇게 데려와놓고 바로 죽으라니 이게 무슨 말인지. 마치 천둥벼락이 머리라도 때린 듯, 극심한 두통과 어지럼증이 홍량이를 덮쳐오기 시작했다.
다급한 홍량이의 물음에 다시 한 번 한숨을 몰아쉬는 이청.
“부디 도망하거나 거절하지 말아주십시오. 마을의 안녕을 위해서라지만 죄 없는 무녀님을 겁박(劫縛)하고 싶지는 않사옵니다.”
온갖 형형색색의 꽃들이 들어가 기분 좋은 향기를 물씬 피워내는 따스한 욕탕.
홍량이는 그 안에 들어가 여인들의 시중을 받으며 목욕을 했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따스한 목욕이었지만 홍량이의 마음에는 더할 나위 없이 무서운 칼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깊은 수심(愁心)이 들어선 홍량이의 모습을 보면서도 여인들은 그저 한 마디의 말도 없이 정성껏 홍량이의 몸을 씻겨줄 뿐이었다.
고운 비단 옷을 입고, 예쁘게 분칠도 한다.
그 와중에도 마음을 평안하게 한다는 청량한 차도 내오고, 끊임없이 고운 음악도 연주하고 있었지만 홍량이에게는 그저 그것들이 사약이요 곡소리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홍량이는 그 으리으리한 기와집에서 나왔다.
너무나 순식간에 마쳐진 준비의식이라고 생각했건만, 홍량이가 바라본 하늘은 이미 해가 자취를 감춰 어두컴컴해진 뒤였다.
밤새들이 지저귀는 야심한 시각.
많은 횃불들이 홍량이 가는 길을 줄지어 밝히고 있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온 모양으로, 그 행렬이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홍량이가 지나갈 무렵마다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고, 그들의 의식은 몹시도 경건해 보이는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죽으러 가는 길인데 그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홍량이는 지금까지 먹었던 것을 물어내라면 평생이 걸려서라도 기쁜 마음으로 모두 물어낼 것이었고, 짐승처럼 살더라도 당장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청을 비롯한 모든 이들의 의지가 홍량이의 마음을 온통 찌르는 통에 겁에 질려 단 한마디도 꺼내질 못했다.
반항이라도 한다면 꽁꽁 묶어서라도 데려갈 기세였고, 온통 기가 죽어버린 홍량이는 어떤 반항도 하지 못하고 푸줏간에 끌려가는 짐승마냥 죽은 눈을 하고서 겨우겨우 발걸음을 뗄 뿐이었다.
걷는 일이 계속되다 아침마다 홍량이가 물을 길어오며 걸었던 만큼이 지났을 무렵, 횃불의 행렬이 끝나고 있었다.
“저희들의 배웅은 이것으로 끝이옵니다. 이 제단 위에 그저 앉아 계시면 될 따름입니다.”
홍량이가 도착한 곳은, 가파른 해안 절벽이 있는 곳에 놓인 돌 제단 앞이었다.
먹물을 온통 엎어놓은 것 같은 시커먼 하늘에 묻혀 그 끝을 알 도리가 없는 절벽의 높이.
단지 깎아지른 절벽의 모습으로 보건데 그 어떤 것도 그 위에 오르기를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절벽에는 난생 처음 보는 거대한 물결이 일어 연거푸 그 몸을 부딪치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 벼락이라도 떨어지는 듯 천지를 가득 메우는 굉음들이 홍량이의 귀와 정신을 온통 혼란스럽게 헤집었다.
그저 홍량이 하나만 두고 바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데, 그들의 눈동자에는 뚜렷한 공포심이 자리하고 있어 그 동공을 세차게 흔들고 있다. 홍량이는 이들이 돌아간 뒤에 바로 도망을 할까 생각하였으나, 그것 또한 요원한 일인 것이었다. 해안 절벽은 가파르기에 도저히 오를 수 없었고, 반대편은 파도가 세차게 절벽을 때리며 소용돌이 치고 있는 물지옥이었다. 도망하려면 왔던 길을 돌아가는 수밖에 없는데, 이들이 지키고 서있지 않을 리가 없는 것이었다.
따라온 수행인들은 홍량이가 올라선 제단 위에 갖은 음식들을 차려두고, 급히 홍량이에게 절을 한 뒤 부리나케 도망질해 버렸다.
“마을을 위해 스스로를 공양하시는 그 경건한 모습, 정말 감읍할 따름입니다. 저는 평생 잊지 않을 것 이옵니다, 무녀님.”
이청 또한 그 마지막 말을 남기고 황급히 자리를 떠나 버렸다.
세차게 몰아치는 파도소리에 모든 소리가 먹혀 들어간다.
불빛 하나 없는 시커먼 해안 절벽은 횃불을 든 사람들이 모두 떠나자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에 휩싸였다. 눈을 감으나 뜨나 안보이기는 매 한가지여서, 홍량이는 채 한 걸음을 걷기는커녕 제대로 일어설 수도 없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거센 파도 소리가, 마치 자신을 집어 삼키려는 아귀(餓鬼) 따위의 울음소리로 들린다. 불빛이 있었을 때에도 시커멓게만 보였던 바다인데, 마치 눈을 감은 듯 온 천지가 그림자뿐인 지금은 오죽할 것인가. 목을 조르는 것 같은 공포감에 숨도 쉬기 힘들어졌고, 몸은 바들바들 떨려오지만 스스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저 어둠속에서 무시무시한 무언가가 나타날 것만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말로는 홍량거부라는 수신이 와서 잡아먹는다 하지 않았나.
저항도 할 수 없고 그저 죽을 때만을 기다린다 하니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러나 울음소리라도 낸다 치면 그 소리를 듣고 무언가 잡아먹으려 아가리를 들이댈까 겁이나 끅끅대며 울음소리만큼은 집어삼켜댄다.
쏴아아아 쏴아아아아
마치 벼락이 세차게 쏟아지는 폭풍 속에서나 들리던 우레 같은 소리들이다.
점점 몸을 가누기 힘들어지고, 숨통은 더욱 막혀왔다.
그러다 홍량이는 정신을 잃었다.
몽롱한 정신이 흐릿한 환상을 펼쳐 놓는다.
일어나고 나면 기억하지 못 할, 그런 모습들을 본다.
물속에 머리를 담근 듯 물거품 소리가 사방을 메우고 귀는 먹먹하다.
눈꺼풀 없는 거대한 눈이 홍량이를 집어 삼킬 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꿈을 꾸었다.
찌릉
찌릉
찌릉
주변을 맑게 울리는 청아한 방울 소리.
홍량이는 문득 그 소리에 정신을 되찾고 깨어났다.
주변은 몹시도 고요했고, 단지 멀리서부터 울려오는 그 방울 소리만이 홍량이의 귀를 간지를 뿐이었다.
부스스 깨어난 홍량이는 눈앞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을 바라본다.
저 멀리서 선명한 불빛 하나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은 여전히 제단 위에 누워있었고, 정신을 잃은 와중 몸부림을 쳤던 모양인지 제사 음식들은 바닥에 죄다 떨어지고 엎어져 못쓰게 되어버린 뒤였다. 그나마 그런 모습들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앞에서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불빛 덕이었다.
점점 그 모습이 가까워지니 머지않아 그 모양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초롱을 들고 있는 붉은 비단옷의 소녀였다.
머리는 묶거나 땋지 않고 그대로 두었으나, 곱게 내려오는 그 모습이 마치 검은 폭포와 같이 보였다. 그 소녀가 들고 있는 초롱의 끝에 방울이 달려 맑은 메아리를 내고 있었다.
흡사 괴물이나 요물 따위의 무시무시한 모습이 아닌, 말 그대로 예쁜 소녀가 은은히 밝은 초롱을 들고 다가오자 홍량이의 낯에는 화색이 돌았다.
“으응? 네가 홍량이니?”
소녀는 몹시도 궁금하다는 듯 귀엽게 말을 건네 왔다.
그저 초롱불에 지나지 않건만, 어느 때 보다도 따스한 불빛같이 느껴진다.
“으응… 내가 홍량이야…….”
“그래? 나도 홍량이라고 해! 헤헤.”
소녀는 반갑게 홍량이를 향해 인사하며 초롱을 들지 않은 반대 손을 내밀었다.
갑자기 내밀어진 손에 당황한 홍량이는 소녀에게 눈을 마주쳤다. 자신도 홍량이라고 소개한 소녀. 그 밝은 미소에 무서울 법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어이하여 손을 내밀었는지 뒤늦게 깨달아버린 홍량이는 급히 손을 붙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손.
손을 붙잡은 소녀는 생긋 웃더니 그대로 홍량이의 손을 놓치지 않고 잡아 끌었다.
갑자기 잡아끌리는 홍량이는 또다시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으나, 소녀의 말에 따라 나설 수밖에 없게 되었다.
“우리 갈 데가 있어 홍량아. 잘 따라와?”
그리고는 소녀가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는데, 그 곳에는 그 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깊고 깊은 동굴이 자리하고 있었다. 홍량이가 제단 앞에 다다를 때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동굴. 그저 깊게 깎은 듯 가파른 절벽만이 있던 곳에 불현 듯 나타난 시커먼 동굴.
동굴의 입구는 너무나 크고 거대했으며, 길고 거대한 종유석들이 가지런히 위 아래로 돋아나 마치 구렁이나 안강어(鮟鱇魚) 따위의 아가리를 보는 것만 같았다.
그 높디높은 해안 절벽만큼이나 거대한 입구였다.
결국 홍량이는 소녀의 손에 이끌려 동굴 안으로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소녀가 걸을 때마다 그 작은 방울 소리는 동굴을 울리고 해안가를 울렸다.
그토록 거세고 거대한 파도소리가 적막감이 감돌만큼 멎어버린 것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온통 적막만이 감도는 세상.
그 곳에는 한 여자아이의 발걸음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홍량이는 그 고요한 세계에서 귀가 더 예민해졌다. 자신의 발소리, 숨소리,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 그리고 간혹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와 앞 선 소녀의 초롱에서 울리는 작은 방울의 소리.
소녀를 따라 동굴에 들어서고 얼마 후, 홍량이는 서서히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자신을 잡아 이끄는 소녀는 대체 누구일까.
자신 또한 홍량이라고 했으니 전에 바쳐졌던 무녀란 말인가.
그런 것 치고는 나이가 홍량이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니 말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적어도 나이가 스물넷은 먹었을 테니까.
자신이 열 두 살이고 십 이년마다 무녀가 나고 진다했으니 새로운 무녀일리도 없었다.
혹은 홍량이라는 이름이 홍량거부라는 수신의 이름을 딴 것이라 했으니 이 소녀가 그 홍량거부인 것인가 싶기도 했지만, 지금으로써는 어떤 것도 알 길이 없었다. 홍량이에게는 이 소녀에게 그런 것들을 물을 강단도 용기도 그 어떤 강한 심기도 없었다.
“너 되게 무서워하는구나?”
성큼성큼 홍량이를 이끌던 소녀가 고개만 뒤로 돌리고는 장난스레 물어왔다.
홍량이는 갑작스런 이야기에 그저 떨떠름한 웃음을 보일 뿐, 단지 어색함만을 보일 뿐이었다. 애써 공포심을 감추려 하나 그러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 속내를 감추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으나, 마음이 불안감으로 물이 들어 있으니 행동거지 하나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까닭이다.
“너 손이 되게 떨리고 있는 거 알지?”
그제야 자신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음을 감지한 홍량이는 뒤늦게 손에 힘을 주어 떨림을 멈춰보려 했지만 그 긴장감이 그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실은 그 본색을 알 수 없는 이 소녀의 손을 잡는 것 자체가 너무나 두려웠다. 단지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소녀의 손이 몹시도 따뜻한 온기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어느 새인가, 홍량이가 깨닫지 못한 무렵에 둘은 어느 방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 방에 들어서고 나서야 홍량이는 자신이 지금껏 걷던 어두운 동굴과는 전혀 다른 곳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 방은 온통 붉은 빛으로 물이 들어 있었고, 밝은 등불들이 사방에 놓여 환하게 그 모습들을 밝히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길쭉한 모양의 높은 평상이 있었고, 그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찻잔이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소녀는 초롱을 내려놓고 그 앞의 걸상에 다가가 앉았다.
“우리 얘기나 좀 할까? 앉아 홍량아! 헤헤.”
소녀는 자신의 옆에 놓인 또다른 걸상을 두드리며 홍량이를 불렀다.
홍량이는 역시나 쭈뼛대며 조심스레 그 옆에 다가가 걸상에 앉았고, 소녀가 권하는 차를 집어 들었다. 몹시 따뜻한 차인데, 대체 누가 끓여다 놓은 것일까. 차를 한 모금 먼저 마시고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홍량이를 바라보는 소녀. 홍량이는 자신의 잔에 입을 대고 한 모금 머금었다.
지금까지는 전혀 맡아본 적 없던 향긋함이 입 안 가득 흐르고 흘렀다.
꽃이나 과일 등의 어떤 것과도 비슷하다 할 수 없는 또 다른 무언가.
또한 마시고 나서 몸에 한가득 퍼지는 따스함은 마치 봄날의 햇살을 몸에 품은 듯, 뻗어나가는 온기가 몹시 기분 좋게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었다.
“기분이 좀 나아졌니?”
여전히 기분 좋게 웃는 낯으로 홍량이를 들여다보는 소녀.
조금 긴장이 풀린 홍량이는 고개를 조그맣게 끄덕였다.
쏟아지는 비를 맞는 아주까리 줄기마냥 몸을 떨어대던 홍량이는 이제 그 떨림도 멎어 혈색도 한결 나아졌다.
“여기 오는 게 무서웠어?”
“… 응.”
조심스럽게 소녀의 질문에 대답하는 홍량이.
그 대답에 소녀는 몹시 의외라는 듯, 다소 놀라는 모양을 했다.
“어째서?”
정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어오는 소녀의 모습에 홍량이는 더욱 혼란을 느꼈다. 대체 이 소녀는 누구이기에 뭐든지 아는 것처럼 자신을 데려와서는 이런 당연한 것을 묻는단 말인가.
“… 그, 죽는 건 싫으니까…. 홍량거부라는 수신이 나를 잡아먹는다고 했어.”
소녀는 잠시 넋을 놓고 홍량이를 바라봤다.
넋을 놓은 것인지,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 도리가 없었으나 꽤나 긴 시간동안 흘렀던 적막은 명백한 현실이었다.
차를 한 모금 또 마시고는 찻잔을 내려놓는 소녀.
“싫은데 여기는 왜 온 거야?”
밑도 끝도 없이 의미 모를 질문을 하는 소녀에게는 더 이상 어떤 대꾸를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입을 다물게 되어 버렸다. 다시 긴장하기 시작한다고 느끼자 홍량이는 차를 한 모금 더 마신다. 역시 이 차는 효능이 대단하다고 느끼는 홍량이. 의도를 몰라 겪는 당혹감도 기분이 또 한결 풀어지니 마음만은 편해지고 있었다.
“아니야, 대답하지 않아도 돼. 좀 알 것 같아.”
소녀는 그 말을 하고서 차를 홀짝 다 마신 뒤, 홍량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홍량이는 자신의 앞에 내밀어진 손을 본다. 가만히 보고 있는 모양이었으나, 마음속으로는 많은 갈등과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런 몽환적인 곳에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행동하는 이 소녀가 누구인지 하나도 알지 못하니 경외감을 느끼기에 이르렀고, 그 경외감은 홍량이로 하여금 그 어떤 행동도 쉽게 거절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결국 머지않아 홍량이는 소녀의 손을 다시 맞잡았다.
그 방을 나선 후, 다시 걷기 시작한 둘.
방을 벗어나자 다시 그 어두컴컴한 동굴이 나타났고, 초롱의 불빛에만 의지한 채 어두운 동굴 속을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소녀는 간혹 뒤로 고개를 돌려 홍량이를 바라보았으나 그 걸음걸이가 전혀 흐트러짐이 없으니, 마치 초롱 따위가 없어도 이 동굴에서 자유롭게 오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홍량이는 그저 소녀를 따라 걷기만 하다, 문득 눈을 돌려 동굴의 벽면을 살피기 시작했다.
동굴의 벽면은 다소 불그스름하고, 여기저기 주름이 져 있었다. 간혹 보이는 종유석 따위에서 물이 떨어지기도 하였으나 대체적으로 평평하여 오르내림은 별로 없었다.
주변을 한 번 관찰하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자신을 이끌고 있는 소녀의 행색에 눈길이 가 닿았다.
인상적인 붉은 비단은 새로 지은 옷 마냥 그 질감이 곱고 윤기가 흘렀고, 그 옷은 비단이라는 다소 무게 있는 재료로 지었건만 그 치마가 마치 깃털같이 가벼운 듯 종 모양의 자태를 유지하며 하늘하늘하게 흔들려오고 있었다.
이런 귀한 옷을 입은 소녀가 하인도 동행하지 아니하고 이 어두운 밤의 의미모를 동굴에서 자신을 이끌고 있으니 더욱 해괴하기 이를 데 없다. 조금 전 마셨던 차도, 갓 준비한 모양이었으나 그 차를 끓인 주인은 도저히 만나 볼 수가 없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홍량이의 의문은 커져만 가고, 갈피를 잡지 못해 생각은 두려움의 망망대해를 표류하기만 할 뿐이었다.
“자, 여기는 조심해야 해.”
또 다시 얼마간 길을 걸었을 무렵.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긴 돌다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지은 것이 아닌, 말 그대로 순수하게 돌로 이루어진 다리모양의 길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는 천 길 낭떠러지 같았다.
머리 위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시커멓게만 보일 뿐 그 끝이 어디인지 보이지 않았다.
눈앞의 다리만 보일 뿐, 아래 던 위 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거대한 공간이었다.
이상한 바람소리가 주변을 가득 울리고 있었다.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에 좁은 계곡 같은 곳에서 울리는 그런 바람소리였다.
마치 거대하고 육중한 거인이 제 몸뚱이만큼 큰 풀피리를 부는 것 같다고 느낀 홍량이었다.
“흐아아아아!!”
보기만 해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 아래의 광경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시커먼 어둠만이 드리워져 있는 것이었다. 홍량이는 저도 모르게 흐느끼는 듯 비명을 지르며, 기겁해 소녀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 그러나 소녀는 홍량이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 때문에 홍량이는 질겁하며 몸을 달달 떨어댔으나 소녀의 손을 뿌리치려는 행동은 더 하지 못하고 그저 엉덩이만 뒤로 쭉 뺄 뿐이었다.
“이 다리를 건너가면 놓아 줄게, 근데 이 다리는 꼭 건너야 해.”
미소를 띠고 있으나 그 속에는 다소 단호한 의지를 싣고 있었다.
홍량이는 떨리는 다리에 바짝 힘을 주고는 숨을 몰아쉬었다. 왜인지는 몰라도 소녀의 말을 따라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싫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용기가 나지 않아서였는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결국 홍량이는 소녀의 손을 붙들고 다리를 건너기로 한 것이었다.
소녀는 이미 다리위에 서 있었으며, 홍량이도 한 걸음을 내딛어 소녀를 따라 다리위로 몸을 옮겼다.
후우우우우우욱
그 순간 낭떠러지 아래에서부터 바람이 솟구쳐 올라 홍량이를 어딘가로 날려버릴 듯 몰아쳤다. 그에 홍량이는 몸이 조금씩 붕 떠올랐으나, 소녀가 손을 붙들어주는 덕에 날려가는 것만은 면하고 다시 다리에 발을 붙일 수 있었다.
다시는 몸이 띄워지지 않도록 최대한 몸을 구부려 바닥에 밀착하고 걷기 시작한다.
그러다 이번에는 그 흐름이 바뀌어 위에서 낭떠러지로 떨어져 내리는 바람이 불어 닥쳤다.
이에 홍량이는 낭떠러지로 함께 떨어져 내릴 뻔 했으나, 몸을 최대한 낮추고 있던 탓에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기이한 것은 이러한 바람이 위 아래로 연거푸 오르락내리락 하며 몰아친다는 것이었다.
몸이 뜰 것 같다 싶으면 아래로 훅 꺼지고, 또 다시 몸이 떠오르고.
그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 없는 환경 속에서 홍량이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계속 비틀거리고 있었으나, 그 손을 잡고 중심을 잡아주는 소녀의 몸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신비한 일이었다.
이토록 거센 바람이 위 아래로 몰아치는데, 소녀가 쥐고 있는 초롱의 불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단지 그 초롱에 매달린 작은 방울만이 세차게 흔들려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있을 뿐이었다. 소녀의 머리카락 한 올 조차, 미동도 없이 차분할 따름이었다.
“못 견디겠어…!! 도, 도와…!!!”
“조금만 더 참아. 넌 할 수 있어. 정말이야, 홍량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무덤덤하게 홍량이를 이끈다.
그 세찬 바람에 숨도 쉬기 어려울 정도이고 다리 한 번 떼기도 힘들 정도이건만, 소녀는 그저 홍량이의 어떤 것을 믿는지 태평하게만 보였다.
이대로 죽는 것인가 싶었으나, 한 편으로는 이대로 죽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더욱 힘을 쏟았다. 마을 사람들에 의해 죽으러 찾아온 곳이지만, 또한 죽기 싫어 아득바득 힘겨운 걸음을 이어나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홍량이는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숨을 아무리 들이쉬려고 해도 허파에 공기가 들어차질 않았다. 연거푸 가슴을 들썩이며 숨을 들이쉬려 안간힘을 쓰나 그 세찬 바람들은 요지부동인 것이다. 사람 몸을 들었다 놨다 할 정도로 바람이 세차게 부는 데, 정작 허파에 들어가는 바람은 실낱만큼도 없다니 마치 바다 위에서 목말라 죽는 꼴이다.
눈앞에 보이는 세상은 온통 새카맣게 변하고 머리와 손발이 누군가 쥐어짜는 듯 온통 저려온다. 그 갑갑한 고통에 몸부림이라도 한없이 치고 싶지만, 당장 한 걸음 내딛는 것도 힘든 까닭에 그저 다리를 놀리는 것에만 신경을 쏟는다. 어떻게 해서도 숨통이 트이질 않는다면 차라리 빨리 다리를 건너는 것이 요수(要須)인 것이다.
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이었으나 홍량이에게는 차를 끓이는 시간보다도 더 길게 느껴졌던 그 순간. 길고 길었던 다리 위에서의 시간은 끝이 나고, 홍량이는 얼마 후 다리 위를 벗어날 수 있었다.
홍량이의 머리는 산발이 되었고, 기진맥진하여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다리를 모두 건너 내려오자마자 거짓말같이 바람은 더 이상 홍량이를 휘감지 않았고, 쥐가 날 듯 후들거리는 그 다리를 그제야 쉬게 할 수 있었다.
그제야 소녀는 홍량이의 손을 놓아 주었다.
“잘 했어, 잠깐 쉬어도 돼.”
소녀의 그 자상한 말에 홍량이는 그만 긴장이 풀려 정신을 잃고 말았다.
물속으로 빠져 들어간 홍량이는 온통 막혀오는 숨에 몸을 바동거리며 어디로든 올라가려 애를 썼다. 그러나 몸은 거센 물의 흐름에 휘말려 결코 떠오를 수 없었고, 아무리 다리를 휘저어 봐도 시내에서 물장구치는 것과는 다른 일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몸이 편해지며,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깊은 물속에 잠겨있건만 선선한 바람이 부는 새벽의 숲속마냥 맑은 공기가 기도(氣道)를 통해 들어오는 것이었다.
한가득 안겨오는 안락함에 몸은 녹아들 듯 풀렸고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눈앞에 거대한 기포가 부글거리며 수면 위를 향해 올라간다.
홍량이의 한숨이 만들어 낸 기포가 아니었다.
조금 더 아래, 더욱 더 아래.
홍량이의 아래에는 길고 거대한 무언가가 아가미를 통해 홍량이보다도 큰 기포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거대하고 시퍼런 안광이 사방에 어둠뿐인 깊은 바다 아래에서 번뜩인다.
“일어나 홍량아.”
불현듯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홍량이.
땀은 아직도 비오는 듯 했고 손발은 푸들푸들 떨려오고 있어,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긴장감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주변을 살핀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정신을 잃은 뒤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여전히 막 건너온 다리의 앞이었다.
눈앞의 소녀는 홍량이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줄곧 그 자리에 서서 기다린 모양이었다.
“… 우리는 어딜 가는 거야…?”
이제는 발을 떼는 것이 너무나 겁이 난다.
이런 무서운 경험은 더는 겪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이 너를 보내고 싶어 하는 곳으로.”
그 말과 함께 소녀는 빙 돌아서서는 그대로 동굴을 걷기 시작했다.
동굴 벽을 은은히 비추는 소녀의 초롱이 조금씩 멀어진다.
행여나 소녀에게서 떨어질까, 홍량이는 아직도 잘 움직여지지 않는 다리를 애써 일으켜 소녀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말문이 트인 김에 무언가 더 물어보려 했지만, 등을 돌리고 단호히 걸어가는 소녀의 모습은 마치 홍량이의 생각을 부정하는 것 같았다. 더는 말을 붙이기 힘들게 분위기가 변해버렸다.
“홍량거부는 너를 해치려 들지 않아. 너를 해칠 수 없어.”
단지 그 말만 이어서 해 주었을 뿐이다.
왼쪽으로 휘고 오른쪽으로 휘고.
동굴은 외길이었고, 간혹 방향이 좌우로 현저히 바뀌는 것을 빼면 거의 다 직진뿐이었다.
그러나 그 길은 너무도 길어, 계속해서 걷고 있음에도 같은 곳을 맴도는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아까 전에 봤던 종유석 같고, 아까 전에 본 벽 같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전진할 뿐이고, 오로지 한 길 뿐이니 길을 헤맬 일도 전혀 없다. 말로만 듣던 사막을 걷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사방이 모래뿐이니 어딜 가도 같아 보여 헤매고 있는지 아닌지도 모르게 된다던 그 곳.
마을에서 해안 절벽까지 걸었을 때 보다 갑절은 더 걸었다.
어떻게 이런 깊은 동굴이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지만, 그저 앞으로 가는 길에 또 다른 괴로운 일들이 없길 바랄 뿐이었다.
한 편으로는 마음이 푹 놓이기도 했다.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를 일이었으나, 소녀의 그 한 마디가 굉장한 위안이 되었던 것이다.
홍량거부는 자신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그 한 마디.
그러면서도 그런 일에 마음을 놓아야 하는 자신이 너무나 서글퍼져 문득 울상이 된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의 괴롭힘 없이, 그저 열심히 일해 먹고 입으며 자유롭게 사는 것을 꿈꾼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인생은 그런 당연한 것조차도 꿈으로나 겨우 남게 할 만큼 냉혹했다. 고래등 같다던 기와집을 바란 것도 아니었고, 번쩍이는 금은보화를 바란 것도 아니었다. 단지 근심 없이 사는 것 밖에는 바랄 것이 없었던 것이다.
일을 안 하고 놀고먹겠다는 것도 아니고, 남을 괴롭게 하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정직하게 일하며 정직하게 먹고 사는 일 조차도 꿈으로만 맛 볼 뿐인 세상이 지금 이 순간 너무나 깊게 와 닿는다.
“오! 저기 봐! 다 왔어 홍량아!”
갑자기 걸음을 멈춘 소녀는 홍량이를 향해 기쁜 듯 소리쳤다.
소녀의 감탄사에 홍량이는 상념을 지우고 소녀의 앞을 내다보았다.
이른 새벽에 이슬 맺힌 푸른 들판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듯, 녹색의 광채가 눈부시게 머무르고 있었다.
동굴과 길은 끊겼고 길의 맨 끄트머리에는 녹옥석(綠玉石)같이 아름다운 빛을 내는 못이 있었다. 그 못은 넓었고, 그 넓이마저 작아 보일 만큼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었다. 물이 가득 차 있건만 그 못은 그 녹색의 빛을 내면서도 맑고 투명해 그 바닥이 훤히 보이는 것이었다.
아무리 맑고 아름다운 빛깔을 낸다 할지라도 정작 진정 아름다운 것은 따로 있었다.
“저, 저게 뭐야?”
생시인가 싶어 볼이라도 꼬집어 볼 기세로 넋을 잃는 홍량이.
물이 가득 차있는 그 못의 바닥에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광채를 사방에 발하는 것들이 가라앉아 있었다.
온갖 보화(寶貨)들이 한가득 널려있는 것이었다.
“저것들 되게 귀한 거다? 보석 하나로 기와집도 살 수 있을 걸?”
마치 자랑이라도 하는 듯, 소녀는 홍량이를 향해 자랑 아닌 자랑을 찔러보았다.
이 광경이 너무도 놀라워 감히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넋을 놓는 홍량이. 생각이 멎고 눈은 그 보물들을 보고 있으되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 지경이었다.
평생 부모가 귀하게 보관하며 꼬박꼬박 정성들여 세던 엽전이나 구경할 뿐이었던 홍량이였다.
보석이라곤 어머니가 패물이라고 꽁꽁 숨겨두던 금가락지나 비녀에 달린 매우 작은 옥(玉) 조각이 다였다.
하지만 저 못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것들은, 이토록 본 것 없는 홍량이가 보기에도 터무니없이 귀한 것들이었다.
“가지고 싶으면 가져, 들어가서 꺼내오면 다 네 거야.”
보기만 해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보물들을 앞에 두고 몹시 무심하게 이야기하는 소녀. 냉큼 허락해버리는 소녀의 언사가 당황스러운 까닭에 홍량이는 그저 소녀만 바라보게 된다.
절로 침이 넘어가는 보물들.
어렸을 적부터 구박과 회초리질만 당하며 살던 서러운 기억들.
간혹 들었던 부자들의 이야기에 부러워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일이 없던 지난날들.
처음 마을에 들어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좋은 것들을 먹고 입고 또 겪었다.
부자가 되고 나면 이런 것들이 당연해진다고 생각하니 생각만 해도 행복해진다.
“어,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해?”
무척이나 당황한 기색으로 홍량이는 어영부영 제자리걸음을 걸을 뿐이었다.
당장 못에 들어가기만 하면 건져올 수 있는 보물들이 눈앞에 쌓여 있다. 그러나 선뜻 무언가를 행동하기에는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일이었다. 번뜩이는 온갖 보석들의 광채가 홍량이의 동공에 비치고 있다. 하지만 선뜻 나서지 못하는 홍량이는 그저 몸만 들썩일 뿐이었다.
그런 홍량이의 모습에 소녀는 피식 잔웃음을 흘렸다.
눈은 그저 무심히 못을 내려다 볼 뿐이었지만.
“어려운 길은 내가 안내해 줄 거야, 손도 잡아 줄 수 있어. 하지만 걸어가는 건 너의 의지야.”
그저 저 아래에 빛나는 못을 내려다보며 홍량이에게 이야기 한다. 소녀의 말에 홍량이는 그 눈을 돌렸다. 그러나 마주하지는 못했다. 소녀는 그대로 못 만을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걷는 거야.”
그렇게 이야기 하며 손을 내미는 소녀.
홍량이의 앞에는 세 번째로 내밀어진 손이 뻗어져 있었다.
그 손만 잡으면 소녀가 어떻게든 보물이 있는 곳 까지 데려다 줄 것이었다. 심장이 몹시 두근대는데, 어찌나 크게 뛰는지 감싸고 있는 갈비뼈마저 두드리는 것 같았다. 이곳에 오기까지 그 손은 홍량이를 잘 이끌어 주었다. 가고 있는 이 길의 끝이 좋을지 나쁠지는 모를 일이지만, 분명 길을 가는데에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손 너머에 보물들이 있다. 가서 집어오기만 하면 된다는 어마어마한 보물들.
손을 조금 들며, 그 손끝을 떨어댄다.
떨리는 손끝이 소녀의 내밀어진 손을 향해 조금씩 나아갔다. 떨리는 그 손은 요동치는 그 마음을 고스란히 나타내고 있었다. 그리고 손은 소녀의 손에 더 다가갔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고 말았다.
“아니야, 난 저런 거 필요 없어.”
의외의 대답에 소녀는 그제야 못에서 시선을 떼고 홍량이를 바로 보았다.
여느 때 보다도 홍량이는 단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홍량이는 문득 상기되던 모양이 퍽 사그라졌다.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온갖 보화의 땅은 홍량이의 심경에 의해 빛을 잃어버렸다. 그토록 귀한 재화들이건만 홍량이에게 중한 것은 따로 있었다.
“난 그냥 돌아가고 싶어. 뭘 바라고 온 것도 아니야, 그냥 무서운 거 더는 보고 싶지 않아.”
이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그 상기되던 모습은 보물을 가지고 싶어서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단지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무언가를 보게 되자, 행동에 갈피를 잡지 못해서 당황했던 모양이다. 그런 홍량이를 바라보던 소녀는 문득 무엇이 그토록 재미있는지 까르륵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 온갖 광휘로 가득한 못을 향해 걸어 내려갔다.
계단도 길도 없건만, 허공을 디디며 걸어 내려가는 소녀의 모습.
소녀는 물에 서서히 잠겨 들어갔다.
물에 푹 잠겨 들어가건만 그 초롱의 빛은 꺼지지 않는다.
못의 바닥까지 잠긴 소녀는 무언가를 집어 들고는, 다시 서서히 걸어 올라온다.
디딜 길이나 땅도 전혀 없건만 허공을 딛고 올라오는 그 모습은 소녀가 평범한 이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도 보여주는 일이었다. 홍량이가 가졌던 소녀에 대한 경외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이게 정말로 필요가 없니?”
가고 싶다면 같이 가주겠다며 내밀었던 손.
그 손 위에는 난생 처음 보는, 아름다운 보석이 놓여 있었다.
홍량이의 주먹만 한 금강석(金剛石).
한창 찬란히 내리쬐는 햇살을 받아 온통 반짝이며 일렁이는 강가의 수면처럼, 그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넋을 잃을 정도로 아름다운 것이었다.
하지만 홍량이는 소녀의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으로 그런 것은 필요치 않았다.
단지 이곳에서 나가,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 더욱 중요할 따름이었다. 저런 재물이 있다면 너무도 좋을 것이었다. 평생을 궂은 일 없이 호강하며 살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무서운 일들을 겪거나 두려움을 느껴야 하는 것은 사양이었다.
사람들이 죽으라고 자신을 해안 절벽으로 몰아넣은 것이 끔찍했다.
어두컴컴한 동굴 속을 초롱을 든 소녀 하나에 의지하며 걷는 것이 무서웠다.
오면서 겪었던 그 바람이 휘몰아치는 다리는 너무도 싫었다.
자신을 어떻게 할지 모를 그 수신(水神)이라는 것은 감히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홍량이의 그 고갯짓에 소녀는 다시 한 번 웃는다.
“아하하하! 고마워! 정말 고마워 홍량아!”
의미 모를 소녀의 말에 홍량이는 그저 의문만 들었다.
그 감사의 말이 대체 무엇을 보고 나온 말인지.
물에 들어갔다 나왔는데도 꺼지지 않은 초롱.
그리고 하나도 젖지 않은 소녀의 몸.
소녀는 초롱을 들어 그 가장자리를 보여주었다.
찌그러지고 그 모양을 잃은 작은 쇠붙이.
그 모습을 보고서야 무엇이 그 모습을 잃어버렸는지 깨닫게 된다.
이제는 방울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이다.
“난 벌을 받고 있었어.”
다시 한 번 못을 내려다보는 소녀.
눈은 못을 바라보고 있으되 그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보화들에 시선을 꽂을 뿐이었다. 그 시선은 결코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 자리에 묶여 움직이지 못하는 거야. 온갖 보석들을 가득 품고서, 그 보화(寶貨)들에 욕심을 내지 않는 이를 만날 때 까지 형벌이 계속 되지. 탐욕이 없는 자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껴보라고 했어 그 분은.”
감히 가늠하기도 힘든 과거를 이야기한다.
홍량이는 그 말의 제대로 된 의미를 알 길이 없었지만, 그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그 분위기만 어렴풋이 느낄 뿐이었다. 지금까지의 귀엽고 명랑한 말투는 사라지고, 마치 오랜 세월을 살아온 노인마냥 그 자조적인 말투다.
“처음에는 욕망을 보이지 않는 이를 찾기 위해 보석을 쥐어 주었어. 열이면 열 전부 보석을 마다하지 않았고, 오히려 빼앗으려 들었지. 그래서 욕심을 내고 뛰어들면 몸이 녹아내리는 저 안에 보석들을 그냥 내버려뒀어. 난 결코 저것들을 건져주지 않았어.”
문득 초롱에 들러붙듯 달려있는 철 쪼가리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길을 걸어오며 계속 소리를 내었던 방울이었다.
소녀의 몸과 옷, 그리고 초롱과 그 안의 불까지 모든 것들이 멀쩡했지만 그 방울만큼은 심하게 녹아내려 그 형태를 잃어버린 것이다. 무척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쇠붙이가 녹아내리니, 저 못은 어찌나 살벌한가. 사람이 들어가면 그저 핏물 따위로 녹아내려 저 넓은 물들 속으로 사라질 뿐일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보석을 포기하는 듯 했어.”
소녀는 홍량이를 바라본다.
그 눈을 마주한다, 홍량이의 영혼을 들여다보듯.
“하지만 결국 그러지 않았지. 무슨 구실이었는지 오랜 시간 만에 한 명씩, 너 같은 여자아이들을 보내오기 시작했어. 홍량이라는 이름의 여자아이들.”
푸른 안광이 소녀의 눈 안에 머무르고 있었다.
시퍼런 그 불빛.
빛이 나되 전혀 따뜻하거나 밝지 않은 시퍼런 안광.
“그 여자아이들도 항상 똑같았어. 녹아내리지 않은 건, 네가 처음이야.”
무척이나 애틋하게 홍량이를 끌어안는다.
무섭게도 느껴질 법 한 일인데, 홍량이는 오히려 따뜻한 느낌을 받아 그 마음이 편해졌다.
소녀는 홍량이의 눈을 살포시 가렸다. 그 손에 눈이 덮이고 더는 무엇도 보질 못하게 되었지만 그 편안함은 홍량이를 마음 놓고 안식하게 만들어 주었다.
부모에게서도 느껴볼 수 없었던 애틋함이 몸으로 전해진다.
봄날의 따스한 햇볕을 느끼는 듯, 그 소녀의 친애가 느껴져 홍량이는 눈물이 났다.
왠지 모르게 슬프고 기쁘고 안타까웠다.
소녀의 손은 그 눈물로 젖어든다.
그 어떤 것도 녹여버리는 무시무시한 못에 들어갔다 와도 하나도 젖지 않았던 그 손은, 그저 눈물로 인해 젖어들고 있었다.
“고마워, 홍량아.”
울고 있는 홍량이의 눈에서 손을 뗀 소녀.
홍량이는 어느새 전혀 다른 곳에 서 있었다.
주변은 바다였다.
그토록 두렵게만 느껴지던 파도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바다의 위에 서 있었다.
홍량이가 딛고 있는 것은 배였다.
홍량이가 살던 집의 갑절은 될 것 같이 큰 배.
온통 검은 나무로 만들어진 그 배는, 다소 멀기는 하지만 해안절벽을 마주한 모습으로 바다 위에 떠 있었다.
“이 배는 너를 육지까지 데려다 줄 거야. 언제나 행복하게 살렴.”
소녀는 행복한 미소를 띠고 홍량이를 배웅한다.
검은 배 위에 서 있는 홍량이와, 파도가 일렁이는 물 위에 서 있는 소녀.
“잘 가, 홍량아. 잊지 못 할 거야.”
“너도 잘 있어. … 홍량아, 행복해야 해!”
홍량이는 홍량이의 행복을 빈다.
그 말이 무척이나 좋았는지, 홍량이는 가득 만발한 웃음을 짓고 그대로 다시 해안 절벽의 동굴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바다 위를 걷고 걷는다.
이제 동이 트는 무렵인지, 멀어지는 홍량이의 모습과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동굴이 한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홍량이가 동굴 안으로 들어가 사라졌을 때.
쿠구구구구구
한 방향으로 몰려오던 파도가 갈 길을 잃고 그저 제자리에서 들썩이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배 역시 요동치듯 흔들리고, 홍량이는 배의 기둥을 부여잡아 견딜 뿐이었다.
그리고 홍량이가 사라진 동굴을 바라보았다.
그 동굴의 시커먼 입구가 바닥과 천장이 올라오고 내려와 덜컥 붙어 버렸다.
위 아래로 날카롭고 크게 솟아있던 종유석들이 서로 맞물리며 감옥의 창살같이 변했고, 동굴은 그렇게 닫혀 버렸다. 그리고 그 높게 깎아지른 해안 절벽이 무너지고 있었다. 돌무더기들이 쏟아지듯 허물어져 바다 속으로 그 몸을 떨군다.
그리고 드러나는 두 개의 푸른 안광.
그 해안절벽 만큼 거대한 머리가 드러난다.
닫혀버린 그 동굴의 입구는 아가리요, 그 위에 눈꺼풀 없는 눈이 두 개라.
그 머리가 내밀어지자 드러나는 아가미에서는 날숨이 뿜어질 적마다 그 폭풍 같은 물보라가 주변의 바위마저 깎는다. 홍량이의 눈에 보이는 모든 육지들이 제 몸을 유지하지 못하고 흔들려 사라지고 있었다.
동이 터오며 빛이 짙어질수록 더욱 먼 곳 까지 보인다.
지천의 모든 땅이 갈라지며 흙과 바위들은 모조리 흘러내려 수장되고, 그 거대한 몸체가 온통 드러난다. 한 눈에 다 담을 수도 없을 정도로 길고 거대한 몸. 홍량이가 떠나온 마을도 그 몸뚱이 위에 있는지라, 산산이 부숴 져 물속으로 수장된다.
홍량거부.
주변에 보이는 모든 땅들은 그것의 몸이었다.
수신(水神)이 몸을 움직이자, 본디 존재하지 않았던 그 산천초목들은 그 깊고 어두운 바다 아래로 떨어져 가라앉는다.
몸서리 쳐질 정도로 거대한 그 수신의 눈은 잠시 멈추어 홍량이를 바라보더니 그대로 바다 깊숙한 곳으로 머리를 처박는다.
거대한 그 몸은 파도를 만들어내며 머리를 따라 흐르듯이 바다 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큰 지느러미가 요동치는 꼬리마저 물속으로 사라지자, 주변은 진정으로 망망대해가 되어버렸다.
홍량이는 문득 자신의 배를 돌아보았다.
배에는 그 살벌한 못에 가라앉아 있던 수없이 많은 보화들이 실려 쌓여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검은 배는, 하루를 꼬박 걸려 나아가 어느 육지에 홍량이를 데려다 주었다. 홍량이는 또 다시 하루를 꼬박 지내가며 그 많던 보화들을 육지로 옮겼고, 실었던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게 된 배는 그대로 물속으로 잠겨 들어가 다시는 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홍량이는 그 후, 그 보화들을 가지고 몹시도 큰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이들을 도우며 칭송받는 삶을 살았다.
훗날 사람들은 홍량거부라는 존재를 두고, 홍량(妅俍)이를 거부(巨富)로 만들었다 하여 ‘홍량거부(妅俍巨富)’ 라고 칭하기도 하였다.
임금은 이야기가 끝이 났음에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홍량이와 홍량거부,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 부모.
더할 나위 없이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날 임금이 여인을 만나 처음 한 이야기는 과거시험의 재시작에 관한 것이었으나, 여인은 그저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했을 뿐이었다. 임금 또한 어떠한 생각이 있어 그렇겠거니 하고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었다.
“허어, 홍량거부라… 내 어렸을 적 그런 것이 있다고 들어본 적은 있으나 한낱 뱃사람들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거늘…….”
“한낱 뱃사람들의 만들어낸 이야기 일 수도 있지요.”
진실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이야기가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중요한 일이 아니니까.
뒷말은 삼켰으나 역시 임금은 그 말 마저 이해한다.
거짓일 수도 있으나 사실일 수도 있다.
어떠한 의미가 있는 이야기들이라고 인식을 하고 들었기 때문일까. 뚜렷하게 정리할 수는 없어도 많은 것을 느끼게 된 이야기.
두 홍량의 만남에 몰살당해버린 마을 사람들.
그들은 합당한 벌을 받은 것일까 희생당한 것일까.
애당초 홍량거부의 보화를 탐내고, 그 위에 마을을 짓고 살아간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그 탐욕에 여자아이들을 마을을 위한 제물이랍시고 바쳐댄 그 죄질.
자신은 홍량거부와 같다. 한 번의 몸짓으로도 수많은 이들을 사지에 떨어뜨릴 수 있다. 자신이 다시 벌인 과거시험에 희생당하는 이들이 나온다면 그것은 어떻게 감내 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렇다고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없을 노릇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움직이면 분명 피를 보고 목숨을 잃는 이들도 생길 텐데, 그렇다고 그들을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흐를 피들을 어찌 한다는 말인가.
무척이나 진중한 상념에 잡혀, 수심에 잠겨 있는 임금을 뒤로 하고 여인은 침소에서 말없이 나가버렸다.
들었던 이야기에 골몰하는 임금은, 평소와는 다르게 여인이 나갔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비는 여전히 계속 내린다.
밖에서 들려오는 세찬 빗소리가 마치 파도소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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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이주일이 걸려서 올리게 된 글이네요.
실은 쓰던 것이 컴퓨터가 망가져 싹 날아갔답니다 ㅎㅎ
다시쓰느라고 어후... ㅜㅠ
왜 그렇잖아요 엄청 노력해서 다 만들어놨는데 그냥 없어져 버리면 기운 꺾이고 의욕도 꺾이고 ㅜㅜ
그래도 열심히 다시 썼습니다 ㅎㅎ
애초에 우리나라는 용에 관한 이야기가 많고 이무기에 관한 이야기도 많다보니 거대한 괴수 이야기도 많은 것 같아요.
왜 귀수산이나 강철이, 거구귀, 비비 이런것도 많이 있고 ㅋㅋ
다음 작품 역시 별 일이 없으면 연재속도가 유지 됩니다 ㅜㅠ
이번처럼 사고만 안나면요!
길고 긴 글, 읽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ㅎㅎ
공게 여론 보니까 다들 실화괴담이 취향이신거 같던데, 이러다 폐가체험이라도 한 번 다녀와야 하는거 아닌지 ㅋㅋㅋㅋ;;
추석 연휴 일요일 끝까지 행복하고 신명나게 보내시길 바라요! ㅎㅎ!!
출처 | 작성자, 본인, 윈스턴 야화(野話)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첫 번째 밤, 광대패 속의 여인. : http://todayhumor.com/?bestofbest_258683 야화(野話)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두 번째 밤, 절지당(絶指堂). : http://todayhumor.com/?bestofbest_260495 야화(野話)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세 번째 밤, 원귀의 저주.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294072 야화,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네 번째 밤, 개천에서 태어난 괴물(上)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296198 야화,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네 번째 밤, 개천에서 태어난 괴물(下)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299037 야화(野話)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다섯 번째 낮, 쥐떼.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3029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