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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스케치 - '간디의 삶과 메시지', 루이스 피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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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지옥의우유
추천 : 1
조회수 : 34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9/19 19:4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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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강의 서비스 TED에는 수많은 연사들이 등장한다. 비폭력저항이라는 주제를 들고 온 활동가들은 큰 박수로 환영받는다. 그들은 비폭력저항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도 하고, 비폭력저항의 효과와 효율성을 역설하기도 한다. 그들 사이엔 공통점이 있다. 언제나 간디가 언급되는 것이다. 간디는 그 이름만으로 이미 비폭력저항정신의 원류이자 정수로 간주되고 있다. 왜 많은 비폭력저항 운동가 중에 식민지의 더럽고 못살던 인도의 작은 노구를 인류의 성인으로 추앙하는가. 비록 서양인의 시각이지만 그의 지척에서 그리고 정신적 지지자로서 간디를 취재한 루이스 피셔의 유명한 저작인 '간디평전'을 문고판으로 줄여낸 이 책, '간디의 삶과 메시지'에서 이를 밝힌다.

 

 책은 간디를 신비화하거나 간디의 정신을 신앙화하는 것을 철저히 경계한다. 간디의 삶을 최대한 객간적이고 균형있게 다루며 간디의 공과 과를 밝힌다. 오히려 젊고 불완전하고 제국의 양식에 물들어가던 간디가 성인의 길로 들어서고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조명한다. 간디는 자신의 잘못을 수월하게 인정하고 인식하는 유연한 사람이었으며 민중 친화적인 지도자였다. 아마 간디는 루이스 피셔가 자신의 삶을 그리는 방식에 동의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간디의 삶의 목표는 크게 두가지로 볼 수 있다. 제국주의와 그 안에 종교로 분열되고 고통받는 조국을 정치적으로 해방하는 것이 첫째고, 그 조국을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하며 떠받들고 있는 수많은 민초들의 삶을 개선하고 정신을 고양하는 것이 두번째다. 간디의 삶이 증명하듯 그는 후자에 더 많은 무게를 싣고 그 속에 직접 섞여들어 살아내었다. 이 사실은 간디의 정신과 행동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부분이다. 왜 그가 물레잣기를 하고, 채식을 하며 농사를 짓고 민중들과 같은 3등실 기차를 타는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인간을 탐구하는 사람으로서 개인적 관심이 투영된 면도 있다. 책에 언급되었다시피, 간디는 정치적 목표를 성취하는 것, 인간의 지위를 높이는 것보다 그 수단이 되는 인간 자체에 흥미를 가졌다고 한다. 인간 자체가 향상되지 못한다면 그 지위가 높아지고 권위가 생긴들 어떠한 긍정적 힘도 발휘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 자신부터 철저히 연구한 인물인 것이다.

 

 간디는 자신을 육체적으로 연구하고 내면의 정신을 탐구함으로써 매일 성장해 나갔다. 그 결과로 그는 자신의 대한 엄격한 기준과 제제로 자기금욕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 이러한 방식은 사티아그라하로 발현하게 된다. 사티아그라하는 간디를 설명하는데 빠질 수 없는 개념으로서, 타자에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의문하고 고통을 주어 진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를 실천하면 타인도 눈을 뜨고 과오를 버리게 되며 이는 절대적으로 비파괴적인 양식이다. 이것은 간디가 비폭력저항운동을 전개해 나가는데 중심적 정신이 된다. 간디는 이것을 통해 저항운동으로 어떤것을 쟁취하는 결과를 얻더라도 다른 태도로 변질되지 않는 정신적 뿌리를 제공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런 자기금욕적 간디의 삶 자체는 그가 민중속으로 쉽게 스며들어 그들의 정신으로 기능하는 것을 용이하게 했다. 간디는 이런 삶의 태도와 '탐조등을 자신의 내면으로 항하게 해야한다'라는 말은 인도의 민중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의 사람들에게, 다른 종교인들에게 그리고 세계의 지도자와 시민들에게 전했다. 그리고 현재 간디가 갖는 위상을 보면 이는 어느정도 성공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간디의 삶과 정신, 행위 그리고 메시지를 그저 간디라고 칭해도 무방한 이유는 이 모든 요소가 간디 개인으로도 철저히 수렴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간디의 정치적 투쟁도 그 가치가 민중 운동에 못미친다고 할 수 없다. 간디는 이슬람과 힌두교, 일부 기독교도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또한 현재의 파키스탄을 아우르는 민족의 지도자로서, 과도한 세금과 착취에 복속된 노동자와 농민 해방의 지도자로서, 정부 각료들이 정책에 자문을 구하는 정치적 지도자로서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로 수많은 인도인과 영국인이 싸우고 죽었으며 인도의 경제적 부흥도, 통일된 인도 건설도 이루어 내지 못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간디의 이 노력이 거짓되었거나 불충분했다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인도인을 비롯한 세계의 사람들은 이 노력이 흠이 있을지언정 45kg의 성인에게 최선이었음을 인정할 것이다.

 

 간디의 비폭력주의는 두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인간 개개인의 윤리에대한 믿음 이라는 것과 비폭력주의 자체가 분쟁을 예방하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협상하고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간디는 생각했다. 그에 반해 폭력은 그 스스로 영속화하는 속성이 있다고 믿었다. 개인에 대한 믿음은 그의 정신을 이해하는데 초석이 되는데, 예를 들어 그가 사회주의와 맥을 닿는 부분이 있지만 사회주의자가 아닌 이유를 밝힐 수 있다. 그는 철저히 개개인의 역량과 욕망에 대한 자제력을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개인의 가치와 자유에대한 믿음 또한 자연히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간디의 중심사상이 개인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한 '인본주의'에 입각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신념, 행동의 목적이 인본주의로 항햔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 역동적이고 실천적 힘이 바로 인간, 민중에게 있다고 간디가 믿고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진실로 인간을 위한 투쟁과 논쟁의 중심된 힘이 바로 인간 자신에게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내면을 향한 무수한 탐구와 수양으로 이루어진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현실 가능하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간디의 인본주의다. 이런 사티아그라하적 전제가 성립함으로써 우린 타인의 가치도 인식할 수 있어서, 상대가 제국주의의 일원이든 종교가 다른 사람이든 다른 정파에 속해있든 모두 품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간디의 인본주의적 방식이 느리고, 비효율적일지 모른다. 그러나 효율로 땅을 가르고, 빠르게 산업을 키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게 귀결되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지켜보았다.

 

 더구나 우리 사회는 폭력이 만연해있다. 그리고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린 또다른 제제, 폭력을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며 행한다. 그러나 비폭력저항 정신은 이를 단호히 거부한다. 이것이 가지고 있는 강령 때문이 아니라 비폭력저항이 가지고 있는 간디의 기본정신, 즉 믿음이 이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폭력으로 잠시 불안한 평화가 찾아올 순 있다. 하지만 또다른 분쟁이 오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오직 자신과 타인의 선의를 믿고 피해를 입더라도 인내하는 것, 그를 통해 다같이 정신적 고양을 이루는 것이 간디가 우리 세대에 남겨준 커다란 자산이자 인류가 다음 세대에 완성해 이루어낼 가장 빛나는 진보가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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