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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원자력발전소에 지진이 일어난다면
게시물ID : readers_264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춤추는쌀벌레
추천 : 1
조회수 : 26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9/20 21: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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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
갑자기 온세상이 기지개를 피듯 떨었다. 하지만 극히 일부분의 예민한 사람들만 느낄수 있는 아주 약한 지진이였기 때문에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한것만 같았다. 
   '뭐지? 지진이였던거 같은데...? 그럴리가... 우리나라에 지진이 일어날리가 없지. 암 그렇고 말고. 아니 그렇다해도 여긴 고리원자력발전소야. 내진설계쯤이야 튼튼히 잘 되어 있지. 이정도 지진쯤이 무슨 상관이야. 무슨 커피 마시지?' 
커피 자판기 앞에 서서 검정색 묶은 머리에 하얀 셔츠, 검은 치마를 입은 전형적인 회사원의 옷차림을 한 여자. 왼손으론 서류를 든채 동그란 안경을 오른손 중지로 쓱 올리며 생각했다. 아메리카노에 갔던 검지끝이 라떼를 향했다.
   "피식" 
그녀가 스스로 생각해봐도 어이가 없는 일이였다. 자기도 모르게 새어나온 실소는 숨길수 없었다. 웃기다고 생각하며 커피자판기 버튼을 누른 순간,
   "주임님 또 무슨 재미난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히끅!"
   "지이이잉"
갑자기 뒤에서 어깨에 턱 손을 올리며 말을 걸어온 청년의 말에 잠시 딴 생각에 빠져 무방비상태였던 그녀는 몹시 놀라며 딸꾹질을 했다. 그리곤 청년의 손을 어깨에서 신경질적으로 뿌리쳤다.
   "히끅! 아오 깜짝이야. 히끅! 너 이새끼 히끅! 그러지 말랫..히끅!"
   "예? 전 그냥 커피 마시러 온건데 주임님이 딱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말을 걸려던 참에  어깨에 손을 올린거 뿐인데요. 무슨 생각 하셨습니까?"
라면서 슬슬 웃는다. 한눈에 보기에도 좀 잘생긴 외모에 길쭉한 키, 셔츠로 가리지 못한 잔 근육들은 화를 내려던 그녀를 진정시키기엔 충분했다.
   "에휴,,,히끅! 그래...착한 내가 이해해야지..히끅!"
   "빨리 이거 드세요."
청년은 벌써 뽑힌 커피잔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마치 자기가 뽑아준 것 마냥. 그리고 그 커피는 분명 뜨거웠다. 진짜.
   "히끅! 고마..ㅂ..푸우우웁!!"
기습공격으로 깜짝 놀라 방금 뽑힌 커피는 뜨겁다는걸 깜박한 그녀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대가였다. 허겁지겁 입안에 넣자마자 바로 뿜어낸 커피들은 청년의 하얀 셔츠에 적셔졌다.
   ".....이거 어제 샀는데..."
오랜만에 복수를 했다는 생각에 올라가 있던 청년의 입꼬리가 내려왔다. 평상시 일할때 자주 놀리는 주임님을 위한 부하직원의 성공적인 작은 복수였는데....
   "어머, 미안해라. 뜨거운 걸 깜박했네. 새 옷 사줄게 너무 시무룩하지마."
원래의 페이스를 찾은 그녀였다. 딸꾹질도 멈췄겠다, 복수도 했겠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아까전의 지진이 기분탓이였나 진짜였나를 묻기 위해 청년에게 물었다.
   "혹시 아까 지진같은....거....?"
그녀는 말을 끝까지 할 수가 없었다.
   "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
아까전보다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분명 떨렸다. 아니 떨리고 있었다. 주변의 모든 것이 춤을 추듯 좌우로 크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에 놀라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굳어 버린 그녀였다. 그런 그녀의 손을 잡아끄는 크고 단단하며 따뜻한 손이 있었다. 청년이였다. 그녀가 커피를 뿜어버린 상대. 
   "지진입니다!!!! 일단 대피소로 가시죠! 그만 멍때리세요! 주임님!"
그는 그래도 어린시절 일본에서 살아온터라 이런 지긋지긋한 지진엔 익숙했다. 확실히 굳어버린 여자에 비해 달랐다. 그는 위험에 대처하려 신속히 움직였다.
   "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
   "뛰어요!"
   "탁"
   "쨍그랑!" 
그녀는 아무말도 못하고 청년이 시키는대로 했다. 천장에 달려있던 형광등이 그둘이 서있던 자리에 떨어지며 사방으로 산산히 조각나며 박살이 났다. 주변의 모든 것이 좌우로 마구 흔들리며 그탓으로 몸까지 흔들리는 대지진의 경험은 아무나 할 수가 없는 것이였다. 더더욱 지진이라곤 겪어본적이 없는 안전불감증 대한민국 국민들이면 말이다. 멀쩡하던 벽에 금이 가는 소름끼치는 모습과 마구 움직이는 가구들, 엄청난 지진에 당황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공포에 질린 하얀 얼굴로 두리번거리는 사람과 일단 뛰고 보는 사람. 그 와중에 넘어진 사람. 그 사람에 걸려 넘어진사람. 그 사람을 밟고 뛰어가는 사람. 구석에 들어가서 비명을 지르는 사람. 서로가 살기위해 발버둥치는 이 상황. 아비규환이 바로 이것을 보고 말하는 것이리라. 지옥이 존재한다면 바로 이곳이겠지. 하얗게 백지가 되어가는 정신을 필사적으로 붙잡으며 지옥속에서 그는 입술을 씹으며 짝사랑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대피소를 향해 뛰어갔다. 
    "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
    "꺄아아아아아아아악!!!"
    "이곳입니다!! 모두들 빨리 이곳으로 오세요!!! 대피소는 이쪽입니다!!!"
    "콰과과과과광!!"
그래도 세상은 썩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복도의 끝 계단 앞에서 크게 소리를 치는 한 남자가 있었다. 누구였지. 아 그래. 저번에 옆부서에 새로 들어온 신입. 혹여 소음에 자기의 목소리가 묻혀버릴까 두손을 모아 목에 핏대가 설정도로 소리치는 신입. 아마 저녀석은 나중에 포상을 받겠지. 계속 뛰어 심장이 터질것 같은 와중에도 딴 생각을 하는 그녀였다. 청년이 재촉했다.
    "더 빨리!!"
그 용감한 신입을 바라보고 뛰는 여자의 머리를 오른손으로 보호하며 뛰던 그는 생각을 멈추었다. 갑자기 자신의 왼손이 가벼워진 탓이였다. 설마 아닐거야. 옆을 돌아보던 청년은 왼손에 그녀의 손이 없다는 것을 보았고, 더 고개를 돌려 무너진 천장에 깔리는 그녀를 보고야 말았다. 비명횡사란 이런 것인가. 그순간 그의 뇌는 정지했다. 뒤돌아본 상태 그대로 굳었다. 아마 빨리 뛰다가 튀어나온 부리에 걸려 넘어진 것이리라. 
    "아..."
    "콰과과과과광!!"
자연은 자비가 없었다. 한번 분노한 대지는 멈출줄 몰랐고 거대한 떨림은 계속됬다. 천장이 무너지며 떨어지는 날카로운 잔해물에 콧등을 스쳐 피가 나는데도 그는 그자리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선배님!!! 거기서 뭐하십니까!!!!!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신입의 목소리는 달팽이관을 울렸지만 그의 뇌는 사고를 정지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우지지직!"
    "에이씨..."
대지진속에서 무너지는 천장을 맞으며 우두커니 서있는 그를 가만히 둘 수 없었다. 저대로라면 반드시 천장에 깔려 같이 달려오던 여자와 같은 꼴이 될 것이다. 썩을 놈의 이 정의감. 신입은 가만히 서있는 청년을 향해 달리며 소리쳤다. 
    "선배님!!빨..."
    "콰과과과과과과과과광!!!!!!!"
갑자기 어마어마한 충격이 뜨거운 열기와 함께 신입을 삼켰고 모든 것을 잃은 표정을 하고 있는 청년도 마저 삼켜버렸다. 모든 것이 뜨거운 화염에 휩싸이며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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