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그렇게 내게 다가왔지. 짧은 단발머리에 자주색 원피스를 입고 온 너는 고준희 스타일이라는 후배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걸 금세 알았어.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마시는게 커피인지도 모를만큼 달콤했어. 나는 그렇게 너한테 빠지고 있었지... 조심스레 에프터 신청을 할때 나는 혹시 니가 거절하면 어떻하나... 라는 생각과 누가봐도 이쁜 니가 날 만나주겠어? 라는 생각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지. 우린 그렇게 한번 두번 만나고 세번째 떨리는 맘을 안고 너한테 고백을 했을때 넌 내 여자친구가 되었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라는게 어떤건지 그때 첨 알았어. 누가봐도 넌 이뻤고 난 살이 찐 아저씨 같았으니까. 하지만 난 그때 내 문제가 뭔지 잘 몰랐었던거 같아. 바닷가로 여행도 가고 백화점도 놀러가고 영화도 보고 맛집도 가보고 보통의 연인들이라면 하는 데이트를 했지. 하지만 어느 순간인가 넌 내 문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어.
"오빤 보통 남자랑은 달라..."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오빤 대화가 잘안통해. 여자친구한테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남한테 하는 이야기처럼 들려..."
난 당황할 수 밖에 없었어. 그동안 만났었던 여자들한텐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라 니가 무슨 말을 하는건지 잘 몰랐거든. 며칠 후 똑같은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니 불만이 뭔지 알수 있었어.
"오빤 내가 음식 사진을 보내도 그 음식에 대해서 말할뿐이지 맛있겠다. '나중에 같이 먹으라 가자' 라는 식의 반응은 없어. 오빠랑은 잘 안통하는거 같아"
뭔가에 맞은듯 했어. 내가 그동안 그랬었던가?
"오빤 그리고 너무 척을 하는거 같아. 지난번 뱅쇼이야기 할때도 그냥 맛있겠다라고만 해주면 될 일을 오빤 어쩌고 저쩌고 설명... 그런거 진짜 별로야.. 그리고 가로수길 가보지도 않았으면서 아는척 했던것도 별로였고"
나는 그때 첨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객관적으로 들었던거 같아. 제 3자가 아닌 내 여자친구가 이야기하는게 자존심도 상하고 부끄러워지는건 왜였을까..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거 같아. 잘보이고 싶었고 좋은 사람이고 싶었는데 그게 오히려 반대로 가고 있는거 같아서 당황했어. 나는 참 옹졸하고 비겁했지.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변했어야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