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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단편] 해변의 살인 (The Turn of the Tide)
게시물ID : panic_9089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규
추천 : 6
조회수 : 170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9/27 13:4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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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살인 (The Turn of the Tide)

by C.S.포레스터 (1934년 作)


"결국 언제나 그들을 당혹하게 만드는 것은 시체를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문제야. 물론 자네는 그 사실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거야." 의사 매슈가 말했다.

"맞아." 슬레이드가 대꾸했다. 매슈는 이 문제가 우연히 대화의 주제가 되었다고 믿고 있으나, 슬레이드는 매슈가 짐작하는 것 이상으로 이 문제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왔다.

매슈는 슬레이드가 교묘하게 유도해 낸 주제에 빠져들어 계속 떠들어댔다"사실상 그건 매우 어려운 문제라네. 그래서 나는 인간이 왜 어리석게도 살인을 저지르는지 언제나 의아하게 생각한단 말이야."

'자네에게는 모든 일이 다 잘 되어 나가니까 인간이라면 부닥칠 수도 있는 궁지에 대해 알지 못하는 거야.' 슬레이드는 생각했다. "나도 자네와 똑같은 생각을 가끔 하곤 하지." 그는 큰소리로 말했다.

"그래." 매슈는 이야기를 계속했다"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시체란 말이야. 시체도 함께 없애 버릴 수만 있다면 살인자는 훨씬 안전해지지. 희생자가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없으면 살인혐의로 재판을 받을 수 없거든. 자네들 법률가들이 말하는 소위 범죄의 주체라는 게 있어야 범죄가 성립되지. 아무리 어떤 사람에 대한 혐의가 짙다 할지라도 시체가 없으면 경찰은 그를 살인혐의로 체포할 수 없단 말이야. 슬레이드, 자네나 내가 소설가라면 그 문제를 주제로 삼아 소설을 쓸 수도 있을 텐데."

", 자네 말이 옳아"하고 맞장구치면서 슬레이드는 껄껄 웃어 댔다. 그러나 곧 그런 말을 입 밖에 낸 것을 후회했다. 그는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가려고 애썼다. 그는 자기가 즐거워하고 있다는 사실이 겉으로 드러날까 두려웠다. 젊은 스폴딩, 그 건방진 놈의 죽음에 관한 소문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꽤나 소름끼치는 얘기를 나누었구먼, 안 그런가?"자기 친구에게서 평상시와 다른 어떤 기색도 눈치 채지 못한 매슈가 말했다"이젠 이야기도 다한 것 같군. 그게 다 자네가 베푼 훌륭한 저녁식사 덕분이지. 이제 나는 가보는 게 좋겠네. 날씨가 그리 좋지 않을 것 같으니까 말일세."

슬레이드는 매슈가 차에 오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밖에는 비가 세차게 쏟아지는 데다 바람까지 꽤 강하게 불고 있었다. 슬레이드는 즐거웠다. 이런 날씨라면 골목이나 해변가에 나와 서성이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슬레이드는 거실로 돌아와 벽시계를 쳐다보았다. 아직도 한 시간이 남았다. 그는 자기 계획이 완벽한지 다시금 확인해 보며 시간을 보내리라고 마음먹었다. 슬레이드의 법률회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법률회사를 운영하는 젊은 스폴딩은 남의 일에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성가신 친구였다. 그는 슬레이드가 어떤 신용기금을 빌린 뒤 투기성 사업에 투자했다가 모두 날려 버린 사건을 샅샅이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지금 그의 말 한마디면 슬레이드를 감옥에 집어넣을 수도 있었다. 슬레이드는 조석표(潮汐表)를 쳐다보았다. 됐다, 꼭 알맞아. 대조(大潮. 조수의 간만의 차가 대략 반 달 주기로 증감하여 최대가 될 때의 밀물과 썰물). 따라서 오늘밤 썰물일 때 모래펄의 바닷물은 수위가 가장 낮아질 것이다. 게다가 운이 좋게도 수위가 가장 낮아질 때의 시각이 오전 130분이라는 점이다. 스폴딩은 95km 떨어진 그 사무실 지점에서 하루를 보낸 뒤 매주 수요일 밤 1230분 기차로 돌아오곤 한다.

시계 바늘이 매우 빨리 돌아가는 것 같았다. 쇠사슬과 쇠뭉치는 이미 차 뒷좌석에 넣어 두었다. 슬레이드는 자기 책상에서 묘하게 생긴 기구를 꺼냈다. 고리를 만들 수 있도록 양끝에 15cm 길이의 나뭇조각을 묶은 45cm의 튼튼한 줄이었다. 그는 그것을 자기 호주머니에 넣었다.

밖에 나서자 더욱 심해진 바람에 날려 얼음처럼 차가운 빗방울이 얼굴을 때렸다. 그는 차를 후진시켜 차고를 나와 역을 향해 조심스레 운전해 갔다. 역을 지나 골목길로 꺾어 들어가서도 차를 돌려서 대로를 향해 정차시키고 나서 헤드라이트를 끄고 운전석에 앉은 채 기다렸다.

역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기차의 불빛이 보였다. 그러나 세찬 비바람 소리에 파묻혀 기차가 달려오는 소릴 들을 수는 없었다. 기차가 떠나자 역사의 전등불이 하나하나 꺼지기 시작했다. 짐꾼들은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서둘렀다.

곧이어 바짝 긴장하고 있는 귀에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스폴딩이 큰길을 성큼성큼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앞쪽에서 몰아치는 비바람 때문에 머리를 숙이고 걸어갔으므로 그는 골목길에 정차해 있는 자동차를 보지 못하고 지나쳐 버렸다. 슬레이드는 200까지 세고 나서 헤드라이트를 켜고 시동을 걸어 한길로 나가 스폴딩의 뒤를 쫓았다. 헤드라이트의 불빛에 스폴딩의 뒷모습이 나타나자 그는 옆으로 차를 댔다.

"스폴딩인가?" 그는 가능한 한 자연스런 어조를 꾸미느라 애쓰면서 물었다. "내 차를 타지 그래. 내가 바래다 주겠어."

"대단히 고맙습니다." 스폴딩이 말했다. "오늘밤은 걷기에 좋지 않군요."

그는 차에 올라 문을 닫았다. 아무도 그들을 보지 못했다.

"나는 지금 클레이 부인 집에서 카드놀이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일세." 슬레이드가 말했다. "그런데 기차가 들어오는 걸 보니 오늘이 수요일이라, 자네가 집으로 돌아올 거란 생각이 들더군. 그래서 길을 좀 돌아가더라도 자네를 태워다 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지."

"매우 고맙습니다." 스폴딩이 말했다.

"사실은 자네 편의만 생각한 것은 아니라네. 나는 자네에게 베르 신용기금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어." 슬레이드가 말을 꺼냈다.

", 그랬군요. 그러고 보니 제가 지난주에 기금을 상환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었죠."

"그에 앞서 오래 전에 내가 자네에게 얘기했었지. 해먼드가 외국에 있으므로 지금 당장은 힘들다고 말이야."

"제 생각으로는 해먼드와 그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 것 같은데요. 왜 당신은 당장 그 돈을 상환하지 않습니까? 나로서는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습니다. 나는 내 고객에 대한 의무가 있으니까요."

슬레이드는 차를 멈추었다. "이것 보게, 스폴딩. 지금까지 내가 자네한테 부탁이라곤 해본 적이 없었네. 하지만 이번만은 자네에게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고 있네. 단지 석 달이야. 그때까지면 나도 형편이 풀릴 거야."

슬레이드는 그의 부탁이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는 작은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 기대는 너무 희박해서 나무 조각이 묶인 줄을 쥐고 있는 오른손을 호주머니에서 꺼냈다. 그리곤 스폴딩의 좌석 뒤쪽으로 팔을 둘렀다.

"단지 석 달일세, 석 달만 기다려 주게나." 슬레이드는 애원조로 되풀이했다.

"이런 얘기는 더 이상 계속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난 내려서 집까지 걸어가는 게 낫겠군요." 스폴딩이 강경하게 말했다.

스폴딩은 손을 뻗쳐 도어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 순간 슬레이드는 그의 목에 올가미를 걸어 잡아당겼다. 슬레이드는 손목을 회전시켜 스폴딩의 목에 감긴 줄을 죄었다. 가늘고 앙상한 노인의 손목이었으나 미친듯한 그 순간에는 강철같이 강했다. 슬레이드는 나뭇조각을 양손에 잡고 자리에서 몸을 회전시켜 가며 정신없이 꼬았다. 꽉 다문 이빨 사이로 거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스폴딩은 전혀 숨을 쉬지 못했다. 죽기 전에 의식을 잃은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목을 감은 줄은 슬레이드가 감아쥐고 있었기 때문에 시체가 앞으로 쓰러지지 않았을 뿐이다.

이제 시체를 처리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슬레이드는 죽은 자의 무릎을 앞으로 잡아당겨 시체를 한쪽 옆으로 비스듬히 뒤로 눕혔다. 그리곤 폭풍우가 내리치는 밤의 어둠을 뚫고 급히 차를 몰았다. 썰물 때여서 모래는 15km나 멀리 드러나 있었다. 그는 그 길을 훤히 알고 있었다. 길을 잘 기억해 두기 위해 전에 몇 번이나 그 길로 차를 몰았던 것이다. 그가 해변가에 당도했을 때, 깜깜한 하늘 아래 세찬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비바람소리에도 불구하고 펀펀한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저 멀리에서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차에서 내려 반대편 도어 쪽으로 돌아갔다. 문을 열자 죽은 사람이 그의 팔 안에 떨어졌다.

슬레이드는 시체를 부축한 채 차 뒤쪽으로 가서 쇠사슬과 쇠뭉치들을 더듬어 찾았다. 쇠뭉치들을 시체의 호주머니에 쑤셔 넣고 사슬로 시체를 빙빙 감았다. 그 정도의 무게라면 시체가 뜨지 않을 것이다. 또 그것도 지금 같은 대조의 썰물 때 바닷속에 집어넣는다면 아무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슬레이드는 시체를 들어올려 운반하려고 애썼다. 어질어질하고 긴장되어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체력이 부족했다. 슬레이드는 마르고 몸매가 보잘것없는데다 나이도 이미 한창때가 지나 있었다. 이마에서 솟는 땀이 싸늘한 바람을 받아 차가왔다. 순간적으로 그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체력의 부족으로 모든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는 건 아닐까?

그는 죽은 자를 치켜세운 채로 돌아서서 몸을 굽혀 시체를 어깨에 걸쳐 메었다. 그리곤 필사의 노력을 기울여 시체의 팔을 끌어당겨 자기 목에 감고 시체의 두 다리가 자기 허리를 감게 했다. 허리를 굽히고 어깨를 숙여 시체를 업자 간신히 무거운 시체를 운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파도소리가 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 비틀거리며 경사가 느린 해변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발이 부드러운 모래 속에 푹푹 빠졌다. 바닷물은 거의 3km나 빠져 있었다. 그 긴 길을 따라 내려가는 동안 내내 매서운 바람이 비명을 지르면서 몰아쳤다. 슬레이드가 이 곳을 택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한겨울이므로 앞으로 몇 달 동안은 썰물일 때 아무도 이곳으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는 비틀거리면서 쉬지 않고 걸어갔다. 물이 다시 밀려들어오기 전에 물가에 도착해야만 했다. 마침내 어둠 속에서 하얀 해안선이 눈에 들어왔다. 파도가 굉음을 내며 부서지고 있었다.

슬레이드는 몸의 균형을 잡으면서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비교적 깊은 물속에 시체를 처넣을 수 있도록 한 걸음 한 걸음 더 멀리 바다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무릎, 허벅지, 이제 거의 그의 허리까지 물이 차 왔다. 그제야 그는 어둠 속에서 걸음을 멈추고 숨을 헐떡였다.

슬레이드는 등에 업은 시체를 굴러 떨어뜨리려고 한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러나 시체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시체의 양 팔을 잡아당겼다. 그러나 목을 감은 팔을 풀 수가 없었다. 그는 몸을 마구 흔들어 댔다. 허리부근에서 조여진 시체의 다리를 뜯어내려 했지만 꽉 조여진 다리들을 풀 수가 없었다. 공포에 사로잡힌 그는 등에 진 시체를 떨쳐버리려고 미친 듯이 몸부림쳤다. 그러나 시체는 마치 살아있는 양 계속 달라붙었다.

파도가 밀려와 그의 주위에서 하얗게 부서졌다. 썰물에서 밀물로 조수가 바뀌고 있었다. 이제 파도는 질주하는 말처럼 거세게 모래 위로 밀려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짐을 벗어 던지기 위해 다시 한 번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시체는 꿈쩍도 하지 않고 착 달라붙어 있었다. 기운이 다한 그는 이제 물이 차오르는 바다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허우적댔다. 그러나 시체의 무게와 시체의 호주머니 속에 집어넣은 쇠뭉치와 쇠사슬의 무게에 눌려서 그는 넘어졌다.

그는 하얀 물거품이 빛을 발하는 칠흑 같은 바다 속에서 버둥거리며 일어섰다. 그러나 간신히 몇 걸음 떼고 나서는 또다시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스폴딩의 근육은 사후경직이 시작되어 풀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두 팔은 마치 목을 조르듯이 살인자의 목을 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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