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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20대 중반, 지구 반대편에 있는 너
게시물ID : love_1209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미끄럼베어링
추천 : 2
조회수 : 33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10/02 15:4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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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는 만 4년을 넘게 만나고, 1년 전 쯤 헤어졌습니다.

군 전역하자마자부터 만나서, 제 20대 중반은 항상 그녀와 함께였네요.

첫 만남부터 보통은 아니었어요. 전 갓 제대한 반 군인 상태에, 해외라는 장소의 특수성도 있었고, 시작도 그다지 평범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처음엔 그녀가 저를 엔조이 상대로만 여겼고, 저는 그 이상을 바래 끊임없이 구애하는 '을'이었죠.  

계속 정성을 들여 결국 그녀의 귀국 직전에 진심이 통했고, 아낌없이 사랑하고 추억을 만든 것 같아요. 단 둘이 예쁜 섬으로 여행도 다니고.

그렇게 제대로 연애를 시작하자마자 제가 몇개월간 다른 국가에 체류하고,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어 롱디가 되었어요.

연애초라 한창 서로 달아오를 때라, 결국에 롱디 중에 그녀가 제가 있는 곳까지 와서 일주일간 함께 보내기도 했구요. 인생에서 가장 값진 일주일 중 하나였던 것 같네요.

그 후 저도 한국에 돌아갔고, 학기가 시작되며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했습니다. 그녀도 저도 서로 자취하는 터라, 시간이 된다면 장소 제약 없이 함께 보낼 수 있어 좋았어요.

제가 3, 4학년 밥 먹는 시간도 아낄 정도로 몸을 굉장히 혹사시키며 공부했는데, 그 때문에 여자친구가 많이 섭섭해하기도 하고 외로워하기도 했구요. 덕분에 중간에 헤어짐도 있었습니다.

헤어져도 결국 30분도 안 걸리는 거리에 있는 처지여서, 힘들고 외로울 때 서로 찾게 되더군요. 결국 다시 만나기 시작했고, 전 석사과정을 시작했습니다. 

오히려 석사 과정 때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었던 거 같아요. 오히려 그녀가 취업을 하며 시간적, 체력적으로 힘들어 했던 것 같구요.

예전부터 지도교수님께서도 유학을 권하고 계셔서 항상 고민이었는데, 그녀에게도 넌지시 '유학 가지 말고 취업하고 결혼이나 할까?' 라 던지니 무조건 유학 가라고 하더군요. 그녀 성격상 가지말라고 하고 싶어도, 말로는 '너의 미래가 더 중요해'라고 했을 겁니다.

그런데 결국 유학 지원 시기가 오기도 전에 헤어졌습니다. 제가 어느 시점에 잘못을 한 것이 기폭제 역할을 하긴 했지만, 아마 그녀는 그 전부터 우리 사이에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

사실 헤어진 이후에도 서로 종종 연락은 했어요. 20대 중반이 서로에게 종속되다시피 한 사이였는데, 쉽게 떼어낼 수 없었죠. 둘 다 친구를 많이 만나는 타입도 아니었고, 사귈 때도 가장 친한 친구 같은 사이였으니까요.

그녀와 그런 관계를 지속하며, 작년 말 유학에 지원했고, 원하던 학교중 하나에 합격했어요. 축하 의미로 식사도 같이 했구요.

그 얼마 후부터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서로 시덥잖은 톡을 자주 보내곤 했는데, 언젠가 답장이 없더군요. 보통 때 같으면, 바쁜가보다하고 나중에 톡을 더 해볼텐데, 왜인지 모르게 그 때 느꼈습니다. '이게 끝이구나...'하고.

그 이후론 정말 아무 연락이 없었고, 저는 결국 올 여름부터 미국에 와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와서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괴로운 일이 많습니다. 아파서 앓던 적도 여러번 있구요. 여러가지 스트레스성 질환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플 때마다 먼저 생각나는 건, 죄송스럽게도 부모님이 아니고 그녀네요.

앞으로도 많이 생각 날 것 같아요. 안부라도 묻고 싶지만, 더 좋은 사람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 같아서, 혹여 그렇다면 방해가 될까봐 차마 하지 못하겠어요. 연락한들 그녀 입장에선 착잡하기만 할 뿐일테고.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녀는 눈에 이상 징후가 있어 검사 받고 결과 기다리던 중이었는데, 그녀라도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기차는 지나갔지만, 그녀는 저에게 애인 이상, 소울메이트였고 제 중요한 시간을 같이 보내 준 은인입니다.


프라이머리(feat. Beenzino)의 '멀어'에서 나오듯, 배가 고프단 핑계로 집을 나와 옛 여친 집 문 앞까지 가서는, '문을 두드리고 싶지만, 그 정도로 짓궂진 않다'며 돌아서는 파트를 들으며, 차라리 물리적으로 멀어서 그런 짓을 하지 못해 다행인가 싶기도 합니다.


궁상 그만 떨고 자러 가야겠습니다. 재미없이 긴 글 읽느라 수고하셨어요. 한국은 일요일 오후일텐데, 남은 휴일 즐겁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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