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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dit] 다시 시작해
게시물ID : humorbest_126221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기분♡전환
추천 : 43
조회수 : 3103회
댓글수 : 10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6/06/07 07:07:42
원본글 작성시간 : 2016/06/07 04:20:23
*이미 노잼글 세 편을 고이접어 나빌린 상태라...이번에는 그냥 올립니다...
*장자라장장장장편입니다
 
 
 
 
 
 
살면서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없다.
홧김에 던진 말, 돈과 관련된 시행착오 등..
겉보기엔 단순해 보이는 실수라도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월세를 밀리면 집주인이 수도관을 고칠 돈이 모자라 다른 입주자가 샤워를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남편이 회사에서 짤리고 아이들은 병에 걸려 피곤에 지친 어머니는 빨간불을 미처 보지 못해 보행자를 치여 죽일 수도 있다.
이 모든 작은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져 완전히 상관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
이러한 사건들을 모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이 모두를 연결하는 하나의 줄기나 큰 그림이 보인다.
그리고 의도적인 선택은 실로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고 우리도 알지 못하게 생명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한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나더러 선택의 결과를 예측하는 대가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부터 독서는 내가 누릴 수 있는 몇 안되는 호사였다.
책을 읽는 동안은 조용하고 얌전해지기 때문이었다.
나는 소설이라면 작가를 막론하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언젠가 한 번은 공상과학 소설에 빠져 있었는데 그 책에서 나를 사로 잡은 글귀 한 줄이 있었다.
"너의 모든 기억이 사실이 아니라면 어떨거 같니?"
그 책은 무덤 속 시체를 복제해 만든 한 가족의 삶을 다루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집 밖을 나선 적이 없지만 모든 일상의 기억을 주입받은 상태였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집 밖 들판을 달렸던 기억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온가족은 이내 고립된 상태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마치 기억은 가지고 있더라도 실제로 행하지 않은 일은 어렴풋이 구분해 내는 두뇌작용 때문인 것 같았다.
기억이 진짜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다는 개념은 상당히 무서웠다.
만약 내가 살아온 삶이 모두 거짓이라면 어떡하지?
만약 내가 조금 전에 배양실에서 완성되서 나와 이전의 기억은 주입받은 상태라면 어떡하지?
나는 좀 전에 집으로 돌아오던 과정을 하나씩 되짚어 내가 느꼈던 모든 순간이 진짜였는지 곱씹어 봤다.
내가 자각하고 인식했던 모든 순간은 분명 주입된 기억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거짓된 기억에 대한 내용은 점점 잊었고 대신 외계인 침략이나 핵전쟁에 관심이 옮겨갔다.
하지만 불현듯 다시 생각나곤 했다. 
 
내 인생을 1에서 10점으로 점수를 매기자면 3점 정도였다.
내가 14살이었을 때 아버지가 미성년자 성추행으로 감옥에 가셨고 이윽고 어머니는 정신과 치료를 받으셨다.
나는 어땠냐고? 위탁가정으로 가기엔 나이가 많았고, 입양가기엔 너무 상처받은 상태였다.
책에서 현실을 찾는 것을 그만두고 나는 표면으로 끓어오르는 감정은 책이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처음으로 술에 손을 대고 마약까지 이어졌다.
그런 식으로 얼마 간을 살다가 패스프푸트점에서 일하면서 학점이수를 통해 학위라도 따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임신을 하게 되서 세 번에 걸친 낙태 치료를 받으러 가야 했고, 공식적으로 휴가를 낼 수 없어 일자리를 잃었다.
마약빚을 갚을 길이 없어지고 마지막 진료를 받을 돈마저 남지 않아 결국 18살에 아이를 낳게 됐다.
그 때부터 인생은 순식간에 내리막 길로 접어들었다.
19살과 21살에 아이 둘을 더 낳았다. 
두번째 아이는 마약상에게 강간을 당해 생겼다.
그리고 우울증이 생겼다.
덕분에 나는 살이 찌고 당뇨도 생겼다.
결국 왼쪽 다리까지 절단하고 말았다.
아이들 양육권을 박탈당하고 안도감에 눈물이 흘렀다.
23살에 나는 4번째 아이를 배고 벼룩이 득실거리는 매트리스에 몸을 뉘였다.
다 끝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마약 중독을 끊도록 지원을 받을 수도, 날 도와줄 가족이나 친구도 없었다.
내 인생에서 좋은 날은.. 글쎄 있었던가.
공중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던 기억이 난다.
한 때 매끈했던 피부는 거칠어지고 여기저기 움푹 패인 흉터로 가득하다.
눈은 훅 꺼지고 볼은 피로와 스트레스로 축 늘어졌다.
내가 흐느적거리며 움직일 때마다 떡지고 부스스한 머리도 같이 따라 움직였다.
화장실 칸으로 들어가 패트병에 담아온 더러운 수돗물로 수퍼에서 훔쳐온 약을 먹었다.
그렇게 나의 첫번째 인생은 끝났다.
 

 
무릎 위로 책을 덮는 순간 나무와 집들이 웅얼거리는 듯 스쳐 지나갔다.
창문도 그대로고 끈적이며 달라붙는 의자 시트도 여전하다.
처음에는 이 모든 게 진짜였다는 건 전혀 믿을 수가 없었다.
공중 화장실에서 자살 시도를 했을 때 약에 취에 나도 모르게 환영을 본 것이겠지.
하지만 진짜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차가 집 앞에 멈추고 문을 너무 세게 닫는다고 아빠한테 한소리를 들었다.
우리집 고양이가 천천히 걸어나와 내 다리 곁을 맴돌았다.
마치 두번째 기회를 얻은 것 같았다. 
그 때까지도 나는 아빠의 성희롱을 피할 방법을 몰랐다.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빠가 감옥에 갔을 때 술은 무조건 멀리했다.
미래의 내 모습을 알고 있기 때문에 즉시 나는 지방대에 입시 원서를 내고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야간 아르바이트는 다른 패스트푸드점에서 했고 동료를 통해 한 남자를 소개 받았다.
상황은 좋지 않았지만 전보다는 좋았다.
난 할 수 있어.
첫번째 삶을 살았으니 함정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지만, 어떤 실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아무도 모른다.
생리가 늦어지고 있었는데 나는 단순히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 줄 알았다.
다음 날 아침 헛구역질을 하고 나서야 가슴 아픈 선택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눈물이 터져나왔다.
낙태 수술 때문에 아르바이트에서 짤리고 학기를 다 마치지 못했다.
이번에는 다행히 수술을 잘 받았고 저주에서 벗어났다는 축복받은 기분으로 집에 돌아갔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나를 떠난 뒤였다.
둘이서 밤새 얘기하고 낙태가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는데도 그는 아기를 살해했다고 생각했다.
 
어디서 구하면 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약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새로 사는 삶은 결국 이전의 것과 점점 닮아가고 있었다.
당뇨 대신 이번에는 에이즈에 걸렸고, 비참한 삶을 끝내기로 마음 먹을 시기엔 어쩐지 나도 모르게 모든 게 시큰둥해져 마약을 계속 했다.
두번째 기회를 얻었지만 보기 좋게 실패했다.
이번에는 아이가 둘이 생겼다. 남자아이 하나 여자아이 하나.
적어도 비만은 면했다며 씁쓸하게 웃다가 처방없이 살 수 있는 진통제를 씹어 삼켰다.
한움큼을 먹었더니 나른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약효가 온몸을 돌면서 모든 고통과 회의감을 씻겨내주었다.
점점 심장박동이 느려지는 느낌이다.. 조금있으면 완전히 멈추겠구나.
 

 
인조가죽 시트가 진득하게 허벅지에 달라붙었고 나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무릎에 내려놓았다.
창 밖으로 지나가는 집과 나무가 웅성이는 소리가 익숙하면서도 소름끼쳤다.
일부러 크게 깔깔대며 웃었는데 아빠에게 입 닥치라는 핀잔만 들었다.
집에 도착하고서 나는 전화번호부를 뒤져서 아동보호국에 전화했다.
그 뒤로 엄마의 증오가 시작됐지만 아빠가 감옥에 있으니 위탁가정은 피할 수 있었다.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장학금을 받아 명문대 영문학과에 진학했다.
약간의 정신 건강 상의 문제가 있었지만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나는 여자친구를 사귀었다.  
그녀의 이름은 스칼라.
이 때는 벌써 서른 다섯번째 삶이었다.
스칼라는 음주 운전자의 차에 치여 죽었고 나는 우울증에 빠져 곧장 처방약 전부를 한 번에 삼켰다.
빨리 자살을 해서 다음 삶을 살 요량이었다.
거듭해서 인생을 사는 동안 로또에서 큰 돈을 따는 건 일도 아니었지만 어쩐지 엄마나 나는 갑작스러운 큰 돈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스칼렛을 다시 찾아도 매번 내가 나이가 더 들어있어서 나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아무리 노력해도 스칼렛을 살려두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매번 젊은 나이에 일찍 죽었다.
마침내 스칼렛을 찾는 일은 포기하게 됐다.

아빠를 죽이고 나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10살이라는 나이와 정당방위였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 받았다.
마약상을 죽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내가 되려 총에 맞아 입에서 피를 토하며 다음 생에는 꼭 놈을 잡아 죽이겠다고 저주를 퍼부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나에게 몹쓸 짓을 했던 인간들을 모조리 찾아죽이는 일이 삶의 목적이 되었다.
인생이 망가지면 언제든지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무릎에 놓인 책은 세상에서 가장 친숙한 장면이 되었다.
가끔은 인생을 재시작 하자마자 앞자리에서 운전을 하던 아빠의 목을 안전벨트로 졸라서 차사고가 난 뒤 부모님을 두 분 다 죽이기도 했다.  
원래 의도보다 훨씬 더 잔인하게 누군가를 죽이려고 했을 때 처음으로 살인에 실패했다.
사람들의 두 눈에 가득한 공포를 즐기게 된 것이다.
어느 때는 목표 대상이 태어날 때까지 기다릴 때도 있었고, 먼저 죽기 전에 서둘러 쫒아야 할 때도 있었다.
한 번은 살인귀를 다룬 공포영화를 보러 갔다가 내가 웃음을 멈추지 못해 끌려나오기도 했다.
진실한 속죄도 할 수 없었고, 사랑하는 사람 옆에서 눈을 뜨는 행복한 결말도 없었다.
자살을 거듭할 때마다 나는 점점 파멸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영원히 삶이 반복되는 저주에 갇혀있어도 작은 만족을 느낄 수 있었다.
매번 새롭게 시작할 때마다 매번 나에게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이 새로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다음 삶에서 쫒아갈 새로운 표적들..
결국 너도 나한테 언젠간 걸리고 말 거야.. 걸리기만 해보라고..
운전하다가 내 앞으로 끼어들 수도 있고, 식당에서 입을 벌린 채로 음식을 먹는 다던가..
친구들이랑 영화관에서 시끄럽게 웃을 지도 모르지..
네 얼굴을 꼭 기억해두었다가 찾아가겠어.
그러니까 빨리 죽어버리는 편이 좋을 거야.
다음 번에 나한테 걸리면 대단히 후회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출처 The Suicide Engine
https://redd.it/4mfe8u by Cymoril_Melnib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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