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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일이라는 것은 한치 앞을 내다 볼수가 없다.
게시물ID : love_122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남의연애박사
추천 : 11
조회수 : 1786회
댓글수 : 45개
등록시간 : 2016/10/04 11:06:47

몇달 전까지만해도 연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아쉬울 것도 없어 오유에도 주절 거렸었던 적이 있었다.


혼자하는 여행을 좋아하기에 저번달 연휴 기간에 또 혼자 여행을 했다.

행복하게 여행을 마치고 수완나폼 공항 벤치에 앉아서 데스크 오픈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내 옆 벤치에는 어떤 남성 2분이 있었다.

내 바로 옆 남성분께

'저기요, 제 짐 좀 봐주실래요?' 하고 진에어 데스크에 가서 문의를 하고 돌아왔다.

그게 그 분과 나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리고 같이 티켓팅을 했고, 라운지에 가서 간단하게 요기도 하며 수다를 떨었다.

그 분의 나이는 모른다. 

그냥 한국 사람이었고, 친구랑 함께 여행왔고, 여행을 좋아하고, 태국에만 6~7번 방문한 사람.

파손될 염려가 있는 짐들을 기내로 데려가는데, 함께 들어주시는 감사한 분이었다.

캐비넷에 내 짐을 넣을 때에도, 뺄 때에도 척척 다 알아서 해주셨다. 감사했다.

태풍으로 인해 약 1시간 동안 연착되었을 때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이는 나보다 10살이 많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리고 오전 늦게 한국에 입국해서 내 캐리어와 갖가지 물건들을 다 싣고 집 앞까지 데려다 주셨다. 

참 감사했다. 사심은 없었다. 그저 감사했고, 죄송했고, 커피라도 한잔 사드리지 못해 미안했다.

연락처를 물었다.

다음에 커피나 식사라도 대접해드리고 싶다고 했다.

번호를 알려주셨고, 태국 여행 뒷풀이나 하자며 웃으면서 헤어졌다.

사실, 함께 여행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공항 수많은 벤치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던 사람이었는데...

샤워하고 짐을 풀고 정리하고, 갑자기 생각난 그 분께 감사하다는 메세지를 했고, 잠이 들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배가 몹시 고파서 마트에서 식료품을 사려 하는데 연락이 왔다.

본인도 배고프다면서 밥이나 먹자고 했다.

'아....... 그래, 빨리 감사의 표시를 해야겠다.' 라는 생각에 바로 오케이를 했고, 그 분과 합정에서 만났다.

공항에서 보았던 사람이랑 여전히 똑같은 사람이었다.

원래 가려했던 라멘집은 연휴라서 영업을 하지 않았다. 

그분이 잘 아신다는 이태원 나리식당에 가서 삼겹살을 먹었다.

불편하고 어렵지는 않았다. 원래 모르는 사람과도 이야기를 잘 나눌수 있는 내 나름의 친화력 때문일까.

웨이팅 1시간 동안에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분은 서슴없이 자신의 과거 이야기도 했다.

왜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서도 그 분은 그냥 했다.

사실 과거라고 해도 거창한건 아니고 그냥, 가족 이야기 등등~ 그런 류다.

내가 편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내가 계산을 했어야 했는데, 그분이 계산을 해버렸다.

이제 집에 가는 줄 알았다. 

'아... 내가 대접했어야 했는데... 어쩌지...'라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본인이 자주 오는 곳이라며 카페에 차를 세웠다.

그 시각은 밤 11시 정도.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바람도 쐬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또 이동을 했다. 

집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한강공원이다. 12시가 넘은 시각이다.

사람들은 연휴임에도 지방에 가지 않았나보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돗자리를 펴고 치맥을 하고 있었다.

좀 걷다가 버스킹 공연을 관람했다. 태국 이야기를 했다. 여러가지 여행 팁을 알려주셨다.

나는 머릿속에서 계속 메모를 했다. 다음 여행을 생각하니 나는 굉장히 신나 있었다.

난 그때까지 그 분에 대해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여행 잘 아시는 분/짐 들어주신 분/감사한 분/맛집 잘 아시는 분/나랑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분... 이 정도랄까.

그리고 헤어졌다.

다음 날 어쩌다보니 카톡을 하게 됐고, 먹는 이야기와 영화 이야기가 나왔다. 갑자기 심야 영화를 보자고 한다.

하긴, 나도 할일 없고, 그 분도 할일 없고, 연휴에 딱히 이슈도 없고 하니 심야영화를 보기 위해 만났다.

나도 꽤나 즉흥적인 스타일이긴 한데, 그분도 즉흥적인 스타일인가보다.

바로 영화표 예매해버리더니, 픽업 오겠다고 한다. 

맥드라이브 가서 바닐라쉐이크 젤 큰거 2개 사서 밀정을 봤다.

이상한 기류도 전혀 없고, 맘이 편했다.

영화 보고 집에 오니까 새벽 3시다.

자고 일어나서 대충 문자하다가 날씨가 꿀꿀해서인지 센치해지고 그랬다.

그때 제일 친한 친구에게 대뜸 물었다. '10살 연상은 어때?'

그러다가 저녁 때 또 만났다.

부암동에 갔다. 치킨도 먹고, 커피도 마셨다. 참 평화롭고 좋았다. 이야기는 끊기지 않았다.

좋은 곳에 데리고 와주셔서 참 고마웠다. 사실 분위기가 좋아서 그런건지 이 분이 좋은건지 모르겠다.

홍대에는 추석 연휴임에도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고래상점 이라는 카페를 갔다. 티라미수와 생과일 쥬스를 주문했고, 편하게 테라스에 앉아서 바람을 맞았다.

그냥 정말 편했다. 그리고 행복했다.

문자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면 카페에 가서 그냥 멍하니 앉아서 비오는 창밖을 바라보는게 너무 좋다며.

마침 비가 왔고, 한강에 주차를 한뒤, 창 밖을 바라보며 잔잔한 음악을 들었다. 

스르르 잠이 들었나보다. 

깼다. 얼마만큼 잠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분위기가 뭔가 묘해지면서, 그분과 나는 뽀뽀스러운 키스를 했다. 

손도 안잡아봤던 그분과 나는 그날부터 사귀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이루어진 인연이 이렇게까지 될줄 몰랐다.

타국 공항에서 내 옆자리 벤치에 앉아 있던 아재가 어느 새 나의 남자친구라는 사람으로 바뀌는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은 듯 하다.

그리고, 그분과 나, 우리는 이렇게 자연스러운 만남을 하며, 소소하게 만남을 이루어 가고 있다.

참 신기한 만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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