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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되기 전엔 몰랐던 것들"을 읽고...(경험담, 스압)
게시물ID : lovestory_3201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블루마리★
추천 : 3
조회수 : 1417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0/11/18 17:59:24
엄마가 되기 전엔 몰랐던 것들
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umorbest&no=312301&page=2&keyfield=&keyword=&sb=



저는 이번 여름에 둘째를 만난 아줌마 오유인입니다ㅎㅎㅎ
아침에 윗글을 보고 '어쩌면 지금의 내 생활과 같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고는...둘째를 만났을 때의 일들이 떠올라서 오랜만에 글 몇 자 적을까 합니다.

둘째 아이는 급속 분만(precipitate labour)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렇게 위험한 상황에서 태어나는 바람에, 아이의 산소 포화도가 떨어지고 코와 입에 청색증이 왔어요.
해서...태어나서 어미 품에 제대로 안기지도 못하고 바로 신생아 중환자실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저대로 분만 후 입원해서 치료를 받고 있었고요.
덕분에 저와 아이는 첫 대면 하자마자 생이별을 해야만 했습니다. 
다른 병실에서는 아기 울음 소리에, 어른들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는데(모자동실)
제가 있는 곳에는 시어머님과 7살 짜리 딸아이만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어요.
남편은 회사에 휴가 내고 아기 면회 다녀오고 제 수발 드느라 정신 없었고...

병원에서 아이를 검사해보니 뇌출혈과 감염 증세가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다행히도 뇌출혈은 경미해서 일단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고
감염에 대해서는 항생제를 투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남편을 통해 들었습니다.
정말이지...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이었습니다...아예 눈물도 나오지 않더군요.
그래서였는지, 출산 후에도 계속 제 혈압이 떨어지지 않아 간호사들이 수시로 들락날락 했었죠.
잠도 안 오고, 밥도 안 넘어가고...젖은 도는데 먹일 아기는 곁에 없고...
초유라도 먹여야 된다는 생각에 유축기로 모유를 짜서 얼린 후 면회가는 남편에게 들려 보냈어요.
제발 아무 일 없기를...하루라도 빨리 퇴원할 수 있기를...
어미 잘못 만나 고생하는 가엾은 우리 아기 살려 달라고...간절히 빌고 또 빌었습니다.
예약했던 산후 조리원에는 전화를 걸어 사정 이야기를 하고는 취소해 버렸습니다.
아기는 중환자실에서 그렇게 고생하고 있는데 제 몸 하나 편하자고 거기 들어가는 것도 우습고...
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간 날, 집안 청소도 다시 하고 아기 이부자리도 다시 마련했습니다.
산후 조리고 뭐고...제 몸 쉬지 못하는 건 안중에도 없더라고요.
몸이 힘들어서 잠시 의자에 앉으려고 하면 병원에서 고생하는 아기가 생각나서,
아기에 대한 미안함에 다시 일어나야 했습니다.
저녁에는 남편과 함께 아이가 먹을 냉동모유를 들고 면회갔어요.
마침 유치원 여름방학이라, 큰 아이는 어머님 내려가실 때 함께 시골로 갔습니다.

입원 날짜는 3일에서 7일, 7일에서 14일로 점점 늘어나고...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감과 '우리 아기는 괜찮을거야'라는 희망이 엇갈렸습니다.
(살아 있어도 산 것 같지 않다는 느낌...그게 바로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것 같네요.)
다행히 날이 갈수록 아이 상태가 점점 좋아지는지
중환자실의 아기들 중 저희 아이가 제일 잘 먹고 잘 논다고 하더라고요.
분유병으로 80cc를 세 시간 간격으로 먹는다는 얘기를 듣고 희망은 점점 커졌습니다.
주말에 그 소식을 접한 후, 월요일에 아기를 데리고 집에 올 수 있었습니다.
정기적으로 내원해서 지켜봐야 되지만, 현재는 모두 정상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집에 와서 보니 기저귀 발진으로 엉덩이가 짓물러 진물이 배어 나오고 있고
노란 눈곱이 덕지덕지 앉는 것이 의심스러워 안과에 가 보니 결막염이라고ㅠㅠ
(아기들은 눈물샘이 막혀 있는 경우에도 눈곱이 낀대요, 이 경우는 차츰 나아진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계속되는 아이의 병치레에 제 마음은 누더기가 되어가더라고요...
원래 삼칠일 동안은 금줄을 치고 문밖 출입도 안 하는 법인데
그 여리디 여린 것을 품에 안고 병원을 전전할 때는 정말ㅠㅠ
거기에, 병원에 있으면서 분유병에 익숙해지는 바람에
젖을 못 빠는 일이 - 유두 혼동이라고 합니다 - 생겨서
저는 저대로, 아기는 아기대로 고생했죠...참 힘든 날들이었습니다.

지금은 백일이 지나고 4개월이 되었습니다.
키도 크고 살도 오르고...소리 내서 웃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예요.
뒤집기는 2개월 때 했고 지금은 엉덩이를 들면서 앞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낮잠 잘 때는 꼭 제 무릎 위에서 자네요...
두어 시간은 아무것도 못 하고 허리와 다리가 저리고 아프지만 자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그러면서도 숨 제대로 쉬는지 간간히 확인...
백일 때, 수수팥경단과 백설기 준비하면서 비단으로 작은 강릉 주머니를 만들었습니다.
그 주머니 안에 아기의 배꼽과 배냇 손톱과 발톱, 머리카락을 담았어요.
힘들게 태어났지만,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힘든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 그렇게 잘 이겨낸 것처럼 앞으로도 충분히 헤쳐나갈 힘과 지혜를 가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요.

동생 태어나는 순간에도 침착하게 제 곁을 지켜주던 딸아이도 얼마나 대견스럽던지...
회복실에 누워 있는 동안 제 손을 꼭 잡으며 "엄마, 괜찮아. 동생도 괜찮을거야."라고 말하더군요.
유치원 갔다와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비누로 손 씻고 동생 한테 가는 거랍니다.
그 날 이후 저희 딸아이 장래 희망이 의사인데, 의사 돼서 아픈 엄마들과 아기들 고쳐주고 싶다고 하네요.
회사에 휴가까지 내 가면서 집안 일에 아기 면회, 큰 아이 유치원 통학까지...
든든하고 자상한 남편 덕분에 큰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큰 아이 작은 아이 모두 남편이 직접 받았네요ㅠㅠ)
산모가 먹는 미역국의 미역은 가위로 자르는 게 아니라면서 손으로 일일이 뜯어주고
아기 낳고 눈이 나빠진 제가 작업하는 데 불편할까봐
작업등을 비롯한 집안 등을 모두 오파장 램프로 바꿔줬습니다.
어제는 자기가 아기 돌볼테니 노래방 가서 한 시간 놀다 오라고 하더라고요.
아이들 돌보면서 집안 챙기고 일까지 하느라 스트레스 많이 쌓였을 거라면서...
(절 생각해 주는 마음만 받았어요. 급한 용무가 있는 게 아니면 남편과 아이들 두고 혼자 안 나갑니다.)
PC 통신 채팅으로 만나서 지금은 트위터와 페이스북, What`s app으로 대화하지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자기 자리를 지켜주는 그 사람이 너무나 소중합니다.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보니, 그렇게 큰 고비를 한 번 넘겨보니
그제서야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네요.
이제는 정말 좋은 일들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두서 없는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우리 남편 화이팅!!
우리 예쁜 두 천사들~~엄마가 너무너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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