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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해서 겪었던일.
게시물ID : gomin_126444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aGVra
추천 : 13
조회수 : 519회
댓글수 : 130개
등록시간 : 2014/11/19 23:29:45
좋은 직업에 좋은 건강. 좋은 부모님. 좋은 친구들 사이에서 잘 크고 난 항상 긍정적이었는데
 
중학교때 남자아이들의 시선으로 급격히 불어난 살.
 
내가 내의지로 먹는게 아니었고, 돌이킬수없이 뚱뚱해졌다.
 
버스에서의 시선, 길거리에서의 시선은 나의 마음으로 이겨낼수있지만,
 
학교에서의 대놓고 뒷통수에 들리는 험담에는 내 멘탈이 든든하게 견디지 못했다.
 
사춘기가 빠르게와서 여드름투성이에 두꺼운 뿔태안경을 쓴 안경잡이.
 
더군다나 걸을때마다 흔들리는 흉측한 살들. 그것을 욕하는 사람들.
 
여자아이들은 다들 날 좋아해줬다.
 
넌 자신감만있으면된다,넌 안경벗으면 정말 이쁜아이야,난 너가 진심으로 좋아.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남자들의 시선은 더욱더 독해졌다.
 
이미 날 괴롭히는건 외모를 놀리는게 아닌 단지 놀림거리로 몰려 그들에게 쾌락거리였을뿐이다.
 
여름에 반바지를 입을때마다 반에서 가장 마른아이의 다리에 40배라는등. 정말 많은 욕을 들었다.
 
심지어 남자애들은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나한태 '사귀자' 하고 욕하고 침뱉는게 벌칙이었을 정도로.
 
견디지 못하고 학교를 가지 않았다. 매일매일 방에 틀어박혀 울었고 심지어 굶어보기도했다.
 
어느날, 충격으로 일주일동안 물만먹고 굶어 현기증이 날정도였을때 나의 몸무게는 단 3키로도 빠지지않았다.
 
그러다 아버지가 제주도로 출장을 가셨을때 난 다시 폭식을했다.
 
있는돈 없는돈을 털어 매일매일 인스턴트를 먹고 생애 처음으로 담배를피고, 술을 먹었다.
 
차라리 나따위는 폐암이랑 간암으로 뒤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긍정적인 아이의 한 인생을 뚱뚱하다는 그 이유로 14살 아이의 인생은 찌들대로 찌들었다.
 
심지어 난 내방에서 생기는 쓰레기조차 버리지 못했다.
 
부모님도 날 버렸는데 이 쓰레기마저 날 떠나가는데 너무 싫어서였다.
 
 
그렇게 아버지는 참지못하고 내 뺨을 때리셨다.
 
원래 엄한 분이셨지만 뺨을맞는건 처음이었다.
 
 
나의 분을 이기지 못하고 방으로가 손목을 그었다.
 
그 새벽에 바로 응급실을 찾아 갔지만 5cm길이의 두꺼운 흉터는 영원히 없앨수 없댄다.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같은사람은 쓰레기라고 알릴수있는 기회가 된것같았다.
 
그이후로 정신과치료를 받으며 아버지와 나의 사이는 나아지는듯 했다.
 
 
난 그이후로도 놀림을 참지못하고 학교를 가지못했고.
 
할머니댁으로 내려가자는 말에 흔쾌히 수락했고, 결국 경기도에서 전북으로 내려가게되었다.
 
 
난 행복한 생활을 기대했다.
 
나의 꿈을 위해 지금처럼 할머니도 도와주시겠지? 하는 부푼마음으로 내려갔던것같다.
 
그곳도 남녀공학이었지만 저번과는 달랐다.
 
다들 너무나도 착했다. 적어도 내앞에서 나의대한 욕은 대놓고 하지 않는것만으로도 난 너무 고맙게 생각했다.
 
 
1학년 2학기를 마치기전. 갑자기 나에게 학업에대한 스트레스가 생기기 시작했다.
 
평생동안 엄마,아빠는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한적이 없으시다.
 
단지 자신있게,건강하게 커줬으면 좋겠고, 만약 살이 빠진다면 뭐든지 해주시겠다고 날 응원해주셨다.
 
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는 다르셨다.
 
 
내가 공부를 잘하길 원했고 몇번 다녀보지않은 학원을 다시다니며 밤 10시 11시까지 공부했다.
 
그렇게 난 또다른 스트레스로 고통받았다.
 
난 공부하고싶지 않은게 아니었다. 단지 나에게 맞는 학습능력을 원했다.
 
또, 학원선생님은 나에게 더욱더 무리한 부탁을했다.
 
'도움' 이라는 말로 '오지랖'을 포장하고선 나에게 가시박힌 말들을 내뱉었다.
 
학원을 4달 다니는동안. 딱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학교에서 준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으며 학원을 들어갔었는데, 날 보자마자 그랬다.
 
"닌 그렇게 먹으니까 살이 찌는거야"
 
순간 어벙벙해졌다. 무슨말일까, 난 처음으로 먹는걸 눈앞에서 보인건데.
 
심지어 어떤날에는 먹을걸 가지고와서 나를 빼놓고 모든아이들이 냄새를 풍기며 먹은적이있었다.
 
그 장면은 아직도 기억난다. 몇몇아이들이 나에게 권하고있는데 선생님이 말리는 그 모습을.
 
그선생님도 단지 그냥 내모습을 까내리고 싶었던것같다.
 
 
더이상 학원을 다닐수없을때,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더이상 이곳에 있기 너무나도 힘들다고, 혼자 공부하게 해달라고. 대답은 냉정했다.
 
 
"너가 저번에도 혼자 공부한다고 그지랄떨다가 그렇게된거 아니냐"
 
 
 
통화를 종료했다. 학원현관에서 엉엉울었다.
 
 
내가 한말은 전부 거짓말이었다.
 
 
 
손목을 긋고 정신이 나간채로 학교생활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울며 설명했을때도.
 
선생님이 아버지에게 전화하셔서 아이가 견디기 힘들것같다고 연락까지왔어도.
 
내가한말은 믿지않았고. 단지 내가 뚱뚱하고 게을러서 학교가기 귀찮아한다는걸로 이해하고계셨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전화를 해서 털어놓았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그렇게 애원했다.
 
한참 울고 내가 진정이 되었을때, 아버지는 단 한마디만 하셨다.
 
 
"난 그런줄 몰랐지."
 
 
 
정말 기가차서 입밖으로 허. 라는 소리가 나올정도였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순간 울컥했다.
 
 
 
그렇게 난 이혼하고 따로사시는 엄마의 품으로 들어갔다.
 
물론 마지막까지 살빼라. 난 너가 한심하다 소리는 빼먹지않고 들으며 말이다.
 
 
 
 
그렇게 난 여중으로 전학갔다.
 
 
가식이 담기지 않는 순수한 여중생들.
 
날 진심으로 대해주고 겉모습으로 판단해주지 않았다.
 
물론 사실 처음에 전학갔을땐 소위 '양아치' 들에게 단단히 찍히곤했었다.
 
나의 꿈은 음악과 관련된 길로 가는것이다.
 
내가 잘할수있는게 노래와 작곡,작사였기때문에
 
찌질이가 음악을 한다는것은 아주 딱 찍히기 좋은 아이템이었다.
 
 
축제날에 내 모든걸 다보여줬다.
 
양아치들이 내앞에서 아부를 떨며 벌벌길때,
 
그 2분도 안되는 광경이 내인생에 가장 기쁜 순간이기도 했다.
 
 
 
정말 내가 꿈꿀수 없는것이었다.
 
 
 
내 타이틀인 안경잡이,돼지새끼,오크년,냄새나는년
 
더이상 그곳에서는 찾아볼수가없었다.
 
안경잡이는 시력렌즈를 끼며 찾아볼수없는 별명이 되었고, 돼지새끼라는 별명은 곰돌이로 바뀌었다.
 
오크년은 안경을 벗으며 달라진 내모습에 더이상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았고, 냄새나는년은. 뭐, 애초부터 꾸며낸 별명이었던것같다.
 
심지어 난 초등학교때 그 당차고,긍정적인 소녀로 변해있었다.
 
 
공부는 여전히 중간이었다.
 
 
난 그렇게 내 진로를 위한 고등학교를 갔다.
 
 
그 뒤로 그 아무도 날 욕하지 않았다.아니, 내가 신경을 쓰지않았다.
 
 
 
 
 
난 내 몸에 불만이없다.
 
난 내몸을 사랑하고, 남자친구를 사귈생각도없다.
 
그리고 심지어 건강이 나빠져 급사해도 상관없다. 난 내가 내몸을 사랑하니까.
 
 
절대 안경을 쓰지않고, 절대 나에게 조금나는 땀냄새마저 용서할수없다.
 
 
다시는 중학교 1학년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살을 빼는것만이 자기관리인가?
 
내가 좋아하는직업을 가지고, 나에게서 좋은 향기가 나고, 나의 마음이 깨끗하면?
 
그건 자기관리가 아닌걸까?
 
난 살을 전혀 빼고있지 않은것도 아니다, 딱히 고의는 아니었지만 나름 7키로 감량했다. 자랑아닌 자랑이다.
 
난 이렇게 죽기 직전까지 살거다.
 
 
 
 
 
남들보다 금방죽을지도 모르겠지만..
 
 
 
 
 
 
 얘기해주고싶은건.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자기가 자신을 사랑한다면
 
어깨펴주었으면 좋겠다. 웅크리고있으면 그냥 좋은 먹잇감이 될뿐이다.
 
(물론 건강을 위해서 같이 살도 빼자^^;;)
 
자신한태 자기전에 한번씩 사랑한다고 해주자. (이건 누구나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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