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상 '주양육자' 대신 '엄마'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나, 엄마 자리에 아빠나 할머니, 베이비시터가 들어가도 괜찮습니다. 불편함을 드려 죄송합니다^^;;
엄마들은 임신 사실을 주변에 알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아이가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하는 순간까지, 주변의 온갖 크고 작은 참견을 받게 됩니다. 엄마들이 아무리 자신의 양육에 명확한 주관을 갖고, 주체적으로 양육하겠다고 마음속 깊이 다짐하고, 주변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애쓴다고 하더라도, 다른 엄마들이 아이를 기르면서 얻게 되었다는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 교훈들은 무시하기가 어렵지요.
아이의 자율성을 존중해주고 싶어서 최소한의 제지와 훈육으로 아이를 대하고 있다가도, 옆집에 놀러 간 내 아이가 남의 집 거실을 온통 난장판으로 만들고, 정리하라는 엄마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을 때, 그런데 그 집의 아이는 자신의 엄마가 "정리할 시간이네"라고 안내하자마자 친구가 어지른 장난감까지 깨끗하게 정리하는 것을 보게 된다면, 아무리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던 엄마라 하더라도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그 집 엄마가 "아이들을 엄하게 키워야 버릇이 나빠지지 않아요"라고 한 마디 조언이라도 덧붙인다면, 자신이 지금까지 행해온 양육의 방식이 내 아이를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이리저리 휘둘리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TV 속 육아 프로그램에서 아이를 다루는데 유능한 전문가가 버릇없는 아이의 팔과 다리를 성인의 무게로 눌러 포박하고, 아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안 돼!" 하고 엄하게 훈육하는 것을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화가 나면 마구잡이고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부수고, 가족들에게 폭력까지 서슴지 않던 TV 속 아이가 전문가의 무게 아래서 점점 진정되고, 심지어는 사과하며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것을 내 눈으로 보고 나면, 내가 내 아이를 너무 풀어놓고 키우는 것일까, 아이에게 더 엄격한 훈육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 올라오기도 하지요.
반대로 아이를 엄하게 양육하던 엄마는 다른 집 아이들이 수용적인 환경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자신의 엄마에게 스스럼없이 애정표현을 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불안해질 수 있습니다. 아이의 버릇이 나빠진다고 오냐오냐하지 말라고 남편에게 주장해왔지만, 막상 아빠와 더 친한 아이를 보며 불편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어릴 때 아무리 풀어놓고 길러도, 결국 아이가 크면 적당하게 스스로 조절할 줄 알더라'라고 말하는 선배 엄마의 조언에,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던 엄마의 엄격한 양육방식을 바꾸어야 하나 하는 고민도 하게 되고요.
아이를 기르는 육아 방식에 모범답안이 있냐고 물어보시면, 없습니다. 진부하지만 '상황에 따라 다르다'가 정답인지도 모릅니다. 상담비를 지불하고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러 가면, 엄마의 질문에 대답을 하기에 앞서 수많은 정보들을 요구합니다. 상담가는 엄마의 성격이나 아이의 기질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엄마 아빠의 원가정 경험, 임신했을 때의 기분 상태, 아이가 제왕절개로 태어났는지 자연분만으로 태어났는지에 이르기까지, 아이의 문제행동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내용까지 궁금해합니다.
상담가는 두 아이가 똑같은 형태의 문제행동을 보인다고 해도, 서로 상반되는 대안을 코치할 때도 있습니다. 화가 나면 엄마의 얼굴을 때리는 아이에 대해, 어떤 엄마에게는 '아이가 관심을 가질만한 즐거운 자극을 빠르게 제공해주세요'라고 조언해드리고, 또 다른 엄마에게는 '아이의 손을 강하게 쥐고서 "화가 나도 엄마를 때릴 수는 없어"라고 알려주세요'라고 조언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손톱을 깨무는 아이에 대해 작년에 상담받았을 때는 다른 것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아이의 주위를 환기시키라는 코치를 받았는데, 올해는 아이에게 손톱을 깨무는 것의 결과를 알려주고, 설득을 통해 아이를 이해시키라는 코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같은 상담가에게 상담을 받았다고 하더라도요!
눈치채셨겠지만 특정 상황에서 엄마가 취하면 좋을 양육적인 태도라는 것은 아이의 발달, 기질, 지금까지의 경험에 따라, 또 엄마의 기질과 성격, 양육가치관, 양육패턴에 따라, 그리고 상황이 가지는 특성에 따라 매번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똑같이 아이스크림을 사줄 수 없는 상황에서라도 '정말 간절하게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서 떼를 쓰는' 경우와, '지루해서, 뭐라도 즐거운 자극이 있었으면 해서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떼를 쓰는' 경우는 다르게 반응해주어야 하지요. 아이의 특질뿐 아니라, 아이를 양육하는 엄마의 특질에 따라서도 바람직한 양육 방식이라는 것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옆집 아이가 잘 클 수 있었던 그 집의 양육방식'이 우리 집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기도 합니다. TV 속 전문가가 근사하게 상황을 역전시킨 훈육 방법이 내 아이에게는 무용지물이 되기도 하고요. 결국 엄마는 이 방법 저 방법을 바꿔가며 써보다가, 육아책에서 '양육에는 일관성이 중요하다'라는 잔인한 문구를 보고는 다시 한 번 무력감을 경험합니다. 이미 너무 많이 흔들려와서 이제 와 어디에 맞춰 일관성을 유지해야 할지조차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좋은 엄마의 양육에는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원칙들이 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유지해야 하는 태도가 있고요. 아이가 성장하는 모든 순간에 엄마로써 제공해주어야 할 의무와 역할이 있습니다. 엄마의 행동과 반응은 상황에 따라 매번 달라져야 하지만, 그 모든 행동과 반응들은 이 원칙 안에서 변화해야 하는 것이지요. 오늘은 그 변하지 않는 '좋은 엄마가 가지는 역할의 원칙'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애착 이론을 기반으로 하는 몇몇 상담기법들은 치료사가 '좋은 양육자'의 역할을 하도록 요구합니다. 이를 위해서 치료사를 양성하기 위한 과정에서는 예비 치료사들로 하여금 '좋은 양육자'가 가져야 하는 특성들을 공부하고, 몸에 익히고, 여러 상황을 직, 간접적으로 경험해보도록 하지요. 치료사가 만나는 아이들은 저마다 모두 다른 발달과 특성을 가지고 있고, 어제의 그 아이와 오늘의 그 아이 역시 다릅니다. 치료사가 되는 과정은 입문 단계에서 배우는 '좋은 양육자의 원칙'들을 다양한 대상과 상황에 맞게 적용해보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래전부터 전문가들은 '좋은 엄마'가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원칙을 발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이를 위해 자존감, 사회적 유능성, 자아실현, 도덕성 등의 영역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사람들이 어릴 때 어떤 양육을 받아왔는가를 연구했지요. 그 결과 좋은 양육자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몇 가지 역할(특성)들을 발견했고, 이를 치료 장면에서 증명해왔습니다. 치료사가 아이에게 직접 좋은 양육자가 되어 아이들의 마음, 발달, 행동을 변화시키기도 하고, 엄마로 하여금 좋은 양육자가 되도록 훈련시키기도 합니다.
상담기법마다 조금씩 다른 용어와 표현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대략적으로 다음의 네 가지 원칙이 좋은 엄마가 갖추어야 하는 특성들입니다. 좋은 엄마는 (1) 신뢰롭고 따를 수 있는 성인이어야 하고, (2) 아이의 신호에 반응적이어서 정서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하며, (3) 따뜻하고 보살펴줄 수 있어야 하고, 마지막으로 (4) 아이의 적절한 도전을 지지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신뢰롭고 따를 수 있는 성인 어떠한 상황적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첫 번째 원칙은 아이에게 신뢰롭고 따를만한 성인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지혜롭고 단단하고 큰 어른이 되어주세요. 아이의 세계는 불완전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두려운 공간입니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고 명확하지 않은 모든 것들을 시험해보고, 확인해보아야 하지요. 엄마는 아이의 삶에 가이드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아이는 엄마라는 안전한 피난처 안에서 여러 새로운 시도들을 경험할 수 있어요. 아이의 불안감과 불신감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엄마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입니다.
엄마가 신뢰롭고 따를 수 있는 성인이 되어주는 것은, 마치 아주 편안한 매너를 갖춘 다정한 남자와 데이트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근사한 남자와의 데이트라면 처음 가보는 프랑스 고급 식당이라 하더라도 어떤 포크를 집어야 망신을 당하지 않는지 걱정하고 불안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음식이 나오면 그에 필요는 식기가 무엇인지 친절하게 알려줄 테니까요. 내가 잘못된 포크를 들기를 기다렸다가 무안을 주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이 나오자마자 내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낸 후 들어야 할 포크를 내가 잘 볼 수 있도록 살짝 들어줄 거예요. 프랑스의 테이블 매너를 미리 달달 외게 해서 '바깥쪽부터였나? 안쪽부터였나? 이 음식에 사용하나? 저 음식에 사용하나?'하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장 편안하게 익힐 수 있도록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방법으로 알려줄 거예요. 처음 와 본 공간이지만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게 해주지요.
혹은 경력이 많고 유능하기로 소문난 여행 가이드와 함께 여행을 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맹수가 있는 정글에 나를 내려놓지 않을 거예요. 물론 놓치기 아까운 멋진 경치를 그냥 지나치지도 않을 거예요.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멋진 정글의 풍경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겠지요. 예상치 못한 크고 작은 사건들이 생겨도 어리바리한 나를 도와 문제들을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을 수 있어요. 그는 베테랑이니까요.
이렇게 멋지고 신뢰로운 성인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아이의 몸과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안전을 확보해주고 엄마와 함께 있을 때만큼은 안심해도 된다는 확신을 주시는 것이 먼저입니다. 아이가 넘어져 다칠까 봐 자전거를 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도 다치지 않도록 보호장비를 착용시켜주세요. 날이 추우니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두툼한 외투를 준비해두었다가 아이가 추위를 느끼면 입혀주세요.
아이가 해야 할 행동을 구체적으로 지시해주시고, 명확하게 안내해주시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엄마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더 자주 지시하고 안내해주세요. 허리디스크로 고생을 했던 환자에게, "앞으로 방문을 지날 때마다 양 팔을 들고 천장을 보며 만세를 하세요"라고 의사가 안내한다 해도, 실제 방문을 지날 때마다 만세를 할 수 있는 환자는 거의 없습니다. 의사가 "방금 방문을 지났는데 왜 만세를 안 했어요?"라고 물어보면 환자는 아마 이렇게 대답하겠지요. "아, 맞다!" 아이들에게 집에 들어오면 신발을 가지런히 벗으라는 지시는 '아이가 저절로 집에 오자마자 신발부터 정리할 수 있을 때까지' 해주세요. 비난이나 비꼼이 아니라, 지시와 안내가 필요합니다.
지시와 안내는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할수록 좋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맛있는 걸 좀 먹자"는 남편의 전화에 꽃단장을 하고 외출 준비를 마친 채 기다리고 있었더니, 집에 돌아온 남편이 맛있는 음식을 해놓지 않았다고 화를 낸다면 어떨까요? 마실 물이 든 유리컵을 가지고 식탁으로 오고 있는 세 살배기 아이에게는 "조심해서 가져와"라고 말하기보다는, "유리컵을 두 손으로 잘 잡고 물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살금살금 걸어서 와"라고 말해주세요. 혹은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따라 할 수 있도록 시범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명확한 지시이자 안내일 수 있습니다.
요구나 명령보다 '자연스러운 규칙'이 아이가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는데 더 도움이 됩니다. 엄마의 말에서 자연스러운 흐름과 순서처럼 느껴지는 규칙이 많을수록 좋습니다. '손 씻고 와. 손 씻어야 간식 줄 거야.'보다는 '손 씻고 간식 먹을 거야'하고 안내해주세요. 사소한 뉘앙스의 차이처럼 보이지만, 아이의 저항을 줄이고, 다른 방법을 시험해볼 여지를 줄일 수 있게 해줍니다. 집 안에 당연한 규칙들, 질서들, 흐름들이 많아야 아이와 엄마가 실랑이하는 시간이 줄어듭니다. 물론 온 가족이 지켜야겠지요.
때때로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에, 도리어 아이에게 어리광을 부리거나 혀 짧은 어린아이 소리를 내며 아이에게 억지를 부려보기도 합니다. 혹은 아이에게 독립성과 자율성을 길러주고 싶다는 의도로 '엄마는 잘 몰라'의 자세를 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의 마음속에서는 실제 의도와 전혀 다른 일들이 생깁니다. 여행 가이드만 믿고 간 오지 여행에서 가이드가 '혼자서 한 번 해보세요. 어려움이 생기면 제가 도와드릴게요.' 하고 한 발 뒤에 서 있는 것과, '여기가 어디인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저 대신에 어떻게 좀 해보세요'하고 말하는 것은 감수해야 하는 위험이 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를 불안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 좋은 엄마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입니다.
반응적이고 즐거움을 공유하는 성인 두 번째 원칙은 아이의 신호를 읽고 반응해주시는 것입니다. 더불어 아이가 느끼는 정서를 바로 그 타이밍에 함께 공유하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나는 너에게 관심이 있고, 나는 너와 함께 하는 시간을 좋아한단다. 엄마는 아이에게 너는 나에게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네가 즐거워하는 모습은 나를 즐겁게 만든단다' 하는 메시지를 전달해주어야 합니다.
대부분 아주 갓난아기일 때에는 엄마가 자연스럽게 아기를 기쁘게 하기 위해 반응적이고 즐거움을 공유합니다. 까꿍 놀이나 배에 바람 불기, 숨고 찾기 등의 전통놀이들은 대부분 양육자와의 즐거운 상호작용의 자연스러운 형태이지요. 엄마는 아이를 관찰하다가, 아이가 웃는 것을 보고 더 큰 미소로 답해주고, 아이가 더 큰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양손 뒤에 숨어도 보고, 아이 배에 얼굴을 부벼보기도 하고, 아이가 관심을 가질만한 재미있는 소리를 내보기도 합니다. 엄마의 노력에 아이가 반응을 보이면 엄마도 행복해지고요. 아이는 자신의 반응으로 즐거워지는 엄마를 관찰할 수 있고, 자신이 엄마에게 의미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결국 아이는 자기 자신이 특별하고 가치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느껴지는 경험을 하게 되지요.
아이를 잘 관찰하는 엄마는 아이의 감정이 변화하는 것을 민감하게 캐치해낼 수 있습니다. 엄마는 아이가 지나치게 흥분하거나 화나거나 스트레스받았을 때, 아이를 가까이 안고 등을 쓸어주거나, 아이의 눈을 바라보면서 잔머리를 넘겨주거나, 고개를 끄덕이면서 '쉬-' 소리를 낼 수도 있습니다. 아이의 정서에 반응하는 엄마를 경험하면서, 아이는 자연스럽게 흥분을 가라앉히고, 자신을 달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조절능력의 시작이 엄마의 반응성에서 오는 것이지요.
따뜻하고 보살펴주는 성인 좋은 엄마 역할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세 번째 원칙은 아이를 따뜻하게 보듬고, 위로해주고 진정시켜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좋은 엄마는 부드러운 접촉을 제공하고, 공감과 위로를 통해 아이의 흥분된 감정을 잘 조절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아이의 애정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줍니다. 아이는 엄마를 통해 안정되고 위로받을 수 있습니다.
부드럽고 따뜻한 스킨십은 생각보다 아이들에게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즉각적으로 스트레스와 불편감을 해소해주기도 합니다. 보드랍고 푹신한 침구에 온몸을 뭍었을 때의 기분을 떠올려보세요. 피부에 닿는 편안함은 이완에 빠른 효과를 가져옵니다. 게다가 단순히 아이의 내면적인 불안이나 불안정감을 완화시키는데서 그치지 않고, 아이 자신이 사랑스럽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해줍니다. 또한 엄마의 따뜻함은 아이로 하여금 엄마를 '정서적 베이스캠프'로 믿고 따르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때때로 스킨십을 불편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 아이들에게도 편안한 스킨십은 필요합니다. 아이가 부드럽고 편안하다고 느끼는 스킨십의 종류와 강도가 다를 뿐이지요. 이불 속에 숨어 있는 아이의 발을 찾아 만지거나, 로션을 단순히 문지르는 대신 손등에 로션으로 예쁜 별 그림을 그려주거나, 손바닥 발바닥을 종이에 대고 따라 그려주는 등 조금 더 재미있는 방식으로 스킨십 해볼 수 있어요. 더 가벼운 터치로, 혹은 조금 더 단단한 터치로 스킨십 해줄 수도 있고요. 스킨십이 익숙해질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이불을 사이에 두고-손수건을 사이에 두고-직접 신체를 맞대고 터치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해볼 수 있어요. 엄마로부터 편안한 스킨십을 받지 못한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약간의 예외는 있을 수 있지만 타인과 따뜻한 정서를 공유하고 기분 좋은 스킨십을 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소위 철이 일찍 들었다고 말하는, 거짓 성숙된 아이들에게도 따뜻하고 보살펴주는 성인의 역할이 꼭 필요합니다. 아이가 나이답지 않게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행동을 보여주면, 부모님은 그 아이를 어른처럼 대하기 쉽거든요. 아이가 어떤 이유에서 성숙해 보이는가와 관계없이, 이 아이들에게도 부드럽고 따뜻한 스킨십과 애정표현을 전달해주는 엄마가 필수적입니다.
적절한 도전을 지지해주는 성인 마지막으로 좋은 엄마는 아이의 발달에 적합한 수준의 도전과제를 제공해주고, 아이가 조금 더 노력해보고, 가벼운 위험을 감수하여 극복을 경험하고, 자신감을 느끼고, 성취를 즐길 수 있도록 격려합니다. 결과의 책임이 오롯이 아이에게만 지워지지 않는 작은 과제들은 아이를 성장시키고, 유능감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엄마는 아이의 베이스캠프가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안전한 베이스캠프가 있어야만 마음 놓고 도전할 수 있습니다.
평소 생활에서 경험하는 지나친 도전과제들은 아이를 더욱 불안하게 하고, 짜증 내고 공격적인 행동을 하도록 야기합니다. 아이들은 '그 과제를 해내기에는 내 능력이 부족하다'라고 인정하기보다는 '이 과제는 유치해, 이 과제는 지루하고 재미없어'라고 합리화하는 것이 더 쉽다고 여깁니다. 실제로 아이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발달과 능력을 초월한 요구를 끊임없이 받고, 성취감보다는 스트레스와 좌절감, 불안감을 경험하기 쉽습니다. 좋은 엄마는 의도적으로 아이에게 적합한 수준의 크고 작은 자극과 도전과제를 주고, 아이가 그 도전을 성취하면서 얻게 되는 다양한 정서적인 반응들을 공유하고 지지해줄 수 있습니다.
엄마의 울타리 안에서 안전하게 경험하는 도전은 반드시 능숙함과 새로움이 적절히 혼합되어 있어야 합니다. 1분 안에 골대에 공을 3번 넣기 과제를 성공하고 나면 의례 다음의 목표는 4번 넣기가 되어버립니다. 아직 3번 넣기가 능숙하지도 않은데 말이에요. 아이는 더 잘해서, 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음 목표로 4번을 외칠 거예요. 특히 실제 자신의 연령보다 빠른 발달을 보이는 아이들의 경우, 아이 자신의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와 그에 부응하고자 하는(아이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 엄마의 욕구가 합해져, 점점 과제와 도전의 난이도가 높아지기 쉽습니다. 가능한 한 앞 단계의 도전이 완전히 마스터되는 것의 즐거움을 경험한 후,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엄마가 조절해주세요.
위의 네 가지 원칙은 앞서 설명한 대로 '아이를 행복하게 키워낸 엄마들이 가지고 있던 역할의 특징'입니다. 문제는 한 사람의 엄마가 네 가지 역할 모두를 완벽하게 해내기가 어렵다는 것이지요. 아주 잘 훈련된 치료사도 짧은 치료 세션 동안 네 가지 역할을 균형 있게 수행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하물며 아이와 24시간 함께 지내면서 일상을 보내야 하는 엄마에게는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일 수도 있습니다.
엄마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내가 어떤 양육 원칙에 가장 익숙하고, 편안해하는가'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루 중 가장 시간을 덜 투자하고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도 찾아보세요. 스스로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자신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시고, 주변 사람들(남편, 가족, 이웃, 친구 등)에게 조언도 구해보세요. 어떤 엄마는 하루 종일 아이를 물고 빨고 아이의 신호에 반응해주지만, 엄마 자신이 규칙에 취약해서 생활 전반이 다소 무질서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엄마는 아이에게 잘 안내하고 지시하면서 집에서 아이에게 기대대는 역할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려주지만, 아이의 안전에 대해 불안한 기분이 들어 아이의 도전을 매번 저지하고 있을 수도 있지요.
엄마가 가지고 있는 강점 원칙은 지금 그대로 유지해주세요. 엄마는 엄마의 역할 중 그 부분이 강하고 유능한 엄마입니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근사한 엄마예요. 아이는 엄마의 강점 역할에 좋은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니 그 역할을 결코 포기하지 마세요. 다른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내 강점을 포기하지 마세요.
대신 엄마의 약점 원칙들은 하루에 한 번씩만 다시 살펴보세요. 그리고 지금 나와 아이의 생활에서 어떤 행동을 더하면 이 역할을 강화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주세요. 가령 엄마의 약점이 따뜻하고 다정한 역할이라면, 아침에 어린이집에 가는 아이에게 과장되지 않은 부드러운 볼뽀뽀를 해주시는 거예요. 자기 전에 편안한 다리 마사지를 해주시는 것도 좋을 테고요, 아이 손과 발에 촉촉한 로션을 매일 한 번씩 발라주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엄마의 약점이 반응적인 엄마라면, 혼자 놀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아이의 표정을 따라 해보세요. 물론 아이가 눈치챌 수 있어야 하지요. 아이가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면 큰 소리로 즐겁게 웃어주세요. 아이가 방긋 웃으면 엄마가 더 크게 미소지어주세요. 약점의 역할에 해당하는 행동들을 한 가지, 한 가지씩 더하다 보면 어느 날엔가는 가장 큰 약점인 역할이 바뀌어있을 수도 있어요.
아이는 엄격하고 구조적인 엄마 아래에서 자라도 좋고, 자유롭고 관계를 중시하는 엄마 아래에서도 잘 자랍니다. 엄마가 잘 하고 있는 역할을 접고서, 익숙하지 않은 역할의 옷만 입으려 하면 엄마의 마음도 힘들어지지만, 아이도 편안하지 않아요. 내게 약점이 되는 엄마 역할과 관련된 행동을 하루에 딱 하나씩만 더해도 괜찮습니다. '나는 주로 질서 있고 엄격한 엄마이지만, 의식하고 애써서 오늘 한 번은 아이와 마주 보며 웃었고, 한 번은 아이의 등을 쓸어주었으며, 한 번은 아이가 혼자 화분에 물 주는 것을 지켜보고 지지해주었다'로 충분합니다.
잠자리에 누워 하루를 마감할 때, 아이에게 잘못한 것만 떠올리지 마시고, 나의 약점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노력했던 것도 기억해내어 나를 인정해주세요. 내게 익숙하지 않은 역할이지만 애썼던 것을 칭찬해주세요.
무엇보다도, 아이는 엄마의 양육에 의해 쉽게 망쳐지지 않습니다. 물론 아이의 생애에서 아이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은 엄마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아이의 타고난 기질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아주 작은 부분이기도 해요. 우스갯소리로, 부모가 자녀에게 영향을 미치는 순간은 배란과 수정 단계뿐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니까요. 아이가 보이는 한 가지 한 가지의 행동이나 태도에는 덜 연연하고 덜 흔들리시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중심으로 한 궁극적인 엄마의 역할을 하루하루 해나가신다면, 어느새 훌쩍 커 있는 아이와, 아이와 잘 상호작용하고 있는 엄마를 발견하실 거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