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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게시물ID : readers_1266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낯선상대
추천 : 1
조회수 : 19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4/14 12:05:16
"사랑해."

품속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아기를 바라보며, 
어머니가 된 여자의 손을 꼭 쥔 채, 
남자가 말했다.

"나, 진짜 철들 때가 온 것 같아."

남자는 아기를 꼭 끌어안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


"내 말이. 우리 아내는 애를 무슨 유리잔처럼 다루더라니까?
애들은 원래 사고도 좀 치고 그러면서 자라는 게 정상인데."

남자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그제야 자식을 찾기 시작했다.
당당하게 차도 위에서 놀고 있던 아이를.

경악, 후회, 전력질주.
경적, 제동 장치, 바퀴, 마찰.

기도, 고함, 비명.

행운, 안도.
염려, 사죄.
울음, 자책.

남자는 힘겹게 자식을 달래며 맹세했다.

"앞으로 절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네게서 떨어지지 않을게."

남자는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


"네. 창피해요."

자식 쪽에서 떨어져 달라고 요구했다.

남자는 이해했다.
언제까지나 자식을 아기 취급을 해서는 안 된다. 
모든 새끼는 언젠가 독립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자식이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과를 학습해나가야 한다.

그런데 기껏 내린 선택이라는 게 탄식을 자아내고 
학습할 결과의 처참함이 눈앞에 비디오로 펼쳐지는데도?

남자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자식 머리에 억지로 쑤셔 넣으려 들었다.
자식은 그 경험과 지식의 가치를 무시했다.

"알았다. 앞으로 함부로 네 일에 껴들지 않으마."

남자는 입을 닫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


"내 그럴 줄 알았다."

자식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자식은 그간의 경험을 통해 얻어낸 교훈과 인맥의 값어치를 역설했다.
남자는 보잘것없는 수확과 소모된 자원을 비교하며 그 효율성을 비판했다.

그렇게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말싸움이 시작되었다. 
머잖아 주장의 타당성이 이를 제기하는 사람의 개성과 관련이 있다는 억측이 제기되었고,
이와 동시에 비판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비웠다.
격한 몇 마디가 더 오간 다음에는 비난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자식이 성질을 부리며 밖으로 나갔다.
어머니는 남자의 등짝에는 발그스름한 손바닥 자국을,
자식에게는 돌아올 장소를 남겼다. 

술 몇 잔을 들이켜자 창피함이 씻겼고 
안주를 씹자 입속의 칼이 무뎌졌기에
자식과 남자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대화다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우며 남자는 여자에게 고백했다.
자식을 향한 생각의 변화, 그리고 자식을 향한 믿음.

"이제부터 걔 걱정은 뚝! 앞으로는 내 여자랑 어떻게 살지나 걱정할래."

여자는 까르륵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


"저 왔어요. 아버지."

남자는 자식과 자식의 배우자를 맞이했다.
이번에도 무거워 보이는 짐을 한 아름 싸왔다.
혹시 적적하지는 않으냐는 물음에
남자는 자식이 남 걱정할 여유도 있느냐며 공연히 너스레를 떨었다.

오히려 이제 막 아기가 생긴 쪽이야말로 걱정할 것 많지 않냐며 묻자
자식이 농담 속에 뼈가 들어있는 넋두리를 털어놓았다. 

남자는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며, 은근슬쩍
자식이 배우자에게 절대 안 털어놓았을만한 자식의 어두운 역사를 언급했다.
역력히 당황하는 자식은 무시하고 대놓고 즐기는 자식의 배우자 말만 들으며
남자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남자는 오랜만에 행복했다.

다시 오겠다는 자식의 말에, 남자는 신경 쏟을 곳이 부족하면 직장이나 자녀한테나 쏟고,
정 효도할 기운이 넘쳐나면 홀아비 한 명 있는 집보다는 
효도할 사람 많은 다른 집이나 신경 쓰라며 보내주었다.
자식이 돌아가고 난 뒤, 남자는 쓸데없이 크기만 한 자기 집을 돌아보았다. 

'도움이 안 될 거면 방해는 하지 말아야 할 것 아니야."

남자는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


"정리는 다 됐다. 이젠 나만 가면 돼."

자식은 정색하며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괜히 무안해져서 물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수전증을 걱정하는 남자의 마음을 읽었는지
자식이 빨리 물을 따라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

남자는 물을 들이켜며 자신이 죽을 병실을 둘러보았다.
괜스레 착잡해진 남자가 손을 내리자
수전증이 기다렸다는 듯 물 몇 방울을 흘렸다.

남자가 몸을 뒤척이기 위해 기운을 모으는 사이
자식이 손수건을 꺼내더니 순식간에 물기를 닦아냈다.
자식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장난스레 말했다.

도대체가 하는 말부터가
 ==> 기운이 없음 
 ==> 정신머리를 못 차림. 
 ==> 이대로 가다간 상태 악화.
 ==> 계속해서 의사가 손자 손녀 못 들어오지 말라고 할 듯.

그런데 손자 손녀를 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 즉 기운을 차려야 한다.
 ==> 기운을 보존해야 한다.
 ==> 그때까지 시중을 들 거라 자식이여?
 ==> 자식을 자신의 몸종으로 삼으려는 사악한 음모임이 틀림없다!

남자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동시에 자식에게 도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그리고 그래도 된다는 사실도.

남자는 괜히 들켰다는 시늉을 한 다음
턱을 위로 치켜들며 말했다.

"당연하지. 맨날 부려 먹을 테다!"

남자와 자식은 마주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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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장도 아닌데 책 게시판에 창작 글을 올려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요. 
그냥 자유게시판에 올리는 쪽이 더 나을까요? 글의 질로 따지자면 똥게 확정인데... 
애니메이션 게시판에 창작 만화가 올라오는 걸 보면 괜찮지 않을까 싶기는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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