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대단합니다 이게 미완성작이라는게 너무 아쉬울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네요 같이 봐요 ㅋㅋ --------------------------------------------------------------- 지옥이 꽉 찼다. 좀비영화 '새벽의 저주'에서 나온 말이지만, 그 표현보다 더 적합하게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어떤 의미에선 평화롭기도 했다. 죽은 사람들이 좀비가 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것도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죽어갔고, 똑같은 신생아들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 과정에 아주 묘한 엉클어짐이 가미된 결과, 산부인과의사들은 막 태어나자마자 기묘한 목소리로 고래 고래 말을 내뱉은 신생아들은 받아내게 되었다. "아파! 씨발, 아프단 말이야!" 갓 태어난 쭈글 쭈글 아기가 찢어져라 내뱉는 욕설이 수술실에 크게 울려퍼졌다. 산모는 기절하고 의사는 굳은 표정으로 고무호수를 목 안으로 집어 넣었다. "이게 무슨 지랄같은 일이람" 막 레지던트 과정을 끝내고 정식의사로 개원한 블롭이 욕지거리를 내뱉었지만, 간호사나 주변 서브들조차 아무런 말 없이 묵묵히 일했다. 이 아기역시 기억이 지워지지 않은 채 태어난 거다. 어떤 사람이었을까. 전생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은 채 이생에 다시 태어나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것과 상관없이 브롭은 의사였고, 고래고래 욕설을 지껄이든 어떻든 상대는 새로 태어난 아기였다. 마땅히 축복해주어야 할 생명인 것이다. 물론 축복해주기 전에, 여린 성대가 찢어지기 전에 방음용 고무튜브를 목 안으로 집어 넣어야했다. 그래야만 그 조숙한 아기들이 고함을 지르지 않았으니까. 아기들은 눈도 뜨지못했지만 어색하고 높은 톤으로 생생한 언어를 지껄였다. "탯줄 제거하고 인큐베이터에 넣어요, 고무호스 빼는거 잊지말고. 산모가 심적충격 받았을 테니까, 본인이 원하기전까지는 아기를 볼 수 없도록 하고" 브롭은 피에 젖은 고무장갑을 벗고, 수술실 밖으로 나섰다. 세상이 미친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방금 태어난 저 아기는 산모와 무언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죽은 아버지거나, 할아버지, 아니면 애인이라던가. 그렇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대해 분석하는 많은 학자들은, 본래 본인과 가장 연관이 먼 사람이 그 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나는 것이 본래 규칙이었으리라 추측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잉태하여 출산하는 딸이라, 갓 태어난채 딸의 이름을 부르는 신생아의 아버지라. 재회의 기쁨? 씹어먹으라지. 남는 건 생경한 역겨움이었다. 낙태수치는 지금 역대 세상 최고 기록을 달리고 있다. "베이비 카운슬러 준비 됐나요?" "예, 지금 바로 오셨습니다." 마침 카운슬러가 브롭의 데스크로 들어왔다. 브롭은 마시던 커피를 뿜을 뻔 했다. 다크서클이 문신처럼 내려앉은 두 눈이 연신 불안한듯 주위를 흘끔거리고 있었다. 기름기에 전 머리카락은 부분 부분 뭉쳐 매우 지저분해 보였다. 그녀의 직업을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가여움보다는 혐오감이 먼저 드는 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아기는 저 방에 있습니다." 카운슬러는 화들짝 놀라며 손을 부르르 떨었다. 오늘 몇명의 아기를 카운슬링 했을까. "잘 부탁드립니다. 산모와의 관계, 전생에 무엇을 했었는지... 모조리 기록해주세요. 차후에 산모와 마주치지 않게 해야할 수도 있으니까요." "아, 알겠습..니다." 여자는 떼가낀 검은 가죽 주머니에서 조그만 양철 술병을 꺼내 한모금 꿀꺽 삼켰다. 브롭이 앉아있는 곳까지 술냄새가 훅 끼쳐왔다. 굉장히 독한 보드카였다. 브롭이 방음유리가 달린 곳에서 방안을 지켜보는 가운데, 베이비 카운슬러가 천천히 아기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아기는 생후 5개월 째였다. 정부가 고안해낸 성대보호기를 착용하면 얼비슷하게 말을 할 수 있는 시기다. 성대보호기를 낀 채 생생한 언어로 이야기를 하는 아기의 모습은... 그 소리를 생각하며 브롭은 침을 꿀꺽 삼켰다. 사이렌이 앵앵대는 듯한 소리, 짓눌린 후두암 환자의 소리. "아, 안녕하세요?" 그녀가 아기에게 고개를 숙이며 정식으로 인사했다. 아기가 우습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빌어먹을, 꼬라지하고는..." 기분나쁘게 앵앵대는 목소리가 아기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이름이.. 이름이 뭐였죠?" "닉 마쿠스" "저, 아기로 태어나기 전에는... 전에... 어떤 사람이였나요?" "나? 사형수였지!" 그녀의 눈이 불안하게 떨렸다. "아.. 그렇군요.." "그래! 아스텔 주의 주립 교도소에서 목이 매달렸어. 한번에 떨어져서 목뼈가 부러졌지... 낄낄낄. 바로 빨간색 벽이 보이더니 어떤 년의 밑구녕으로 내가 바로 빠져나오더라고 킬킬킬킬킬!" 카운슬러의 다리가 눈에 보이게 후들후들 떨렸다. 금방이라도 넘어질것 같았다. 브롭은 그 대화를 들으며 수첩에대 메모를 했다. 역시 당국의 추측은 사실이다. 아기가 잉태한 상태, 즉 어머니의 자궁안에 있을 때는 영혼이 없다. 태어나는 순간에, 영혼이 어딘가에서 날아들어와 신생아의 몸 속으로 저당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장 죽은 사람이 순식간에 살아나듯 아이의 몸으로 들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저러한 추측으로 볼 때, '지옥이 꽉 찼다.' 라는 표현은 그야말로 적합하다. 대기인원이 없으므로 모든 작업이 날림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기억이 지워지지도 않고, 연관된 사람과 최대한 떨어뜨려 환생되지도 않고, 죄값이 치뤄지지도 않는다. 죽은 영혼이 바로 던져져 지상에서 들끓게 되는 것이다. 베이비 카운슬러, 그녀는 서서히 미쳐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겨우 죄목이 뭐였느냐고 물었다. "나? 강간이었지! 난 소아성애자거든! 스무살이 넘어버린 여자에게서는 전혀 성욕이 느껴지지 않더라고. 열일곱살짜리 끝내주는 동양인 아이 하나를 따먹었다가, 빌어먹게도 체포 됐지. 소아 강간만 헤아릴수가 없는지라 바로 교수형이 되더라고. 하지만 봐, 난 다시 태어났어. 이 젖비린내 나는 몸이 자라나는 즉시 다시 내 정액을 뿌리고 돌아다닐 수 있다는 소리야. 다시 죽여도 상관없어! 얼마든지! 킬킬킬킬킬!" 베이비 카운슬러가 이윽고 기절했다. 다른 카운슬러를 고용해야 할 것이다. 저 여자는 너무 심약하다. 브롭은 '닉 마쿠스' 라는 이름으로 신상정보를 찾았다. 그리고 강간 피해자 여성중, 가장 마지막에 있는 안소연(17)이란 표명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산모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강간 대상자를 다시 아이로 잉태하고 낳은 것이다. 브롭은 일기를 마치고, 이 세상을 다시 정화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는지 생각했다. 1. 모두다 죽는다. 지구의 생태계는 리셋되고, 인간은 영원히 영적인 지옥에 갇힌다. 2. 천국이 꽉 찰때까지 모든 인간을 계몽한다. 모든 것이 불가능했다. 그는 펜을 마주 집어들고, 이 난관을 헤쳐나갈 방법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고민했다. *1년여전쯤에 구상했던 단편입니다. 다른 글을 잡으면서 도저히 풀어지지 않도록 남았네요. 기회가 된다면 더 길게 써보고 싶지만, 글에 집중하려 할 때마다 불편해져서 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재밌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웃대 초록환타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