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함은 긍정적인 것을 배워왔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실 우리에게 성실함의 이미지는 긍정성을 뛰어넘어 선(善)이다.
성실함은 장점임과 동시에 본받을 점으로 통하는 것이다.
책임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대개 책임감이 투철한 사람을 그냥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존경받을 사람으로 간주한다.
지금까지 그렇게 배워왔고 받아들여 왔다.
그러나 보통 성실함이나 책임감을 말할때 자주 수식되는 말이 있다.
"주어진 일을 성실히 수행하여 맡은바의 책임을 다하였다." 뭐 이런식이다.
그러니까 성실함의 성실은 남에게서 주어진 일에 대한 성실함인 "남일성실함"이지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성실함인 "자기성실함"이 아니다.
책임감도 마찬가지로 "남일책임감"이지 "자기책임감"이 아니다.
좋고 옳은 의미로 통하는 남일성실함이 투철하다는 것은 자기일에 나태함을 뜻하고,
반대로, 나쁜,틀린 의미로 통하는 남일성실함이 떨어지는사람은 자기일에는 성실한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정리하면, 지금까지 학습되어온 긍정적이고 숭고한 이미지의 성실함은 사실 "남일성실함"이다.
자기일을 팽개치고 남, 또는 위에서 시킨일을 묵묵히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을 어떤 이유에서 인지 아주 긍정적인 것으로 학습되어 온것이다.
자기 생각은 버리고 위에서 주어진 일을 불만없이 열심히 충실히 수행하다보면
힘들고 어려움도 있겠지만 결국에는 좋은 결과를 맞이하게 될것이다같은 식으로 말이다.
반대로 남이 시키는일보다는 자기 좋을일을 쫗고 남이 시키는일에 회의를 품으면
일면 좋아보이지만 결국은 자기나 모두가 망하게 된다는 식이다.
대표적인 것이 개미와 배짱이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어찌되었건 국민들이 이렇게 학습을 받고 믿고 있다면, 좋은 것은 정권이다.
정권이 국민을 부려먹기가 좋게 된다는 뜻이다.
이런 관념을 선으로 받아들이는 국민들은 국가가 까라면 까야되는줄 알고 그것이 올바른 것으로 생각한다.
국가가 족쳐서 부당한 손해를 보더라도 국가 전체를 위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올바른 것인줄 안다.
나는 누가뭐라해도 이나라의 경제발전에 박정희의 역할이 크다고 본다.
그당시 박정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도 이렇게 할수 있었다고 한다면 나는 과연 그럴까 라는 생각이 든다.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박정희가 한 일이라고는 외부의 지시나 생각들을 바탕으로 약자 국민들을 족친것 밖에 없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성실함은 좋은것이고 옳은것이며 숭고한 것이라고 세뇌를 시켜 억울한 피해에 대해서 아무소리 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만약 "(남일)성실함=선" 이라는 세뇌가 없었다면 아마도 경제발전을 위한 박정희의 강압정치는 먹히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만약 박정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강압정치를 할수가 없었을 것이고 경제발전은 그만큼 천천히 진행되었을 것이다.
물론 강압정치 없이 천천히 깨끗하게 진행되는 것이 백배 맞다.
그러나 그러다가 정권이 바뀌고 세상이 바꼈다.
이제는 더이상 위에서 자신에게 뭔가를 해야만 하는 비인권, 비인간적인 강압적인 지시가 없다.
그러나 시키는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데 익숙했던 많은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당황스러운 상황이다.
그들은 자기를 위한 일을 해본적이 별로 없거니와, 본질적 자기를 위한것이 무었인지조차도 별로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들은 오히려 남이든 위에서든 누군가가 자기가 성실하게 할수 있는 그것이 무었이 되든 뭔가를 시켜주기를 바라는 줄도 모르겠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오히려 더 익숙하고 편하니 말이다.
아마도 마음속이 삭막할 정도로 공허한 그들에게 사실 뭔가 자기를 위한 일이 뭔지를 생각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사실은 귀찮거나 무능해서 못하면서 마치 자기를 위한 일을 하는 것은 이기적이고 비양심적인 일이기 때문에 안하는 모양새를 내세우기도 한다.
그러면서 남을 위한 일에 열심히 헌신해야 한다면서, 맹목적적인 무언가에 성실히 매진할 대상을 찾는줄도 모르겠다.
거기에다 자기 삶에 가치를 부여하고 자신은 제대로 가치있게 살아가고 있다면서 안정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