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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날씨좋은날, 성북동 나들이 (스압)
게시물ID : deca_5786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마스터빌더
추천 : 4
조회수 : 68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10/21 05:3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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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날씨 좋은 어느날, 카메라를 들고 성북동에 다녀왔습니다. 

서울 지하철 한성대 입구역 6번 출구로 나가서 버스 정류장을 찾아가면, 바로 뒤에 이런 현수막이 걸려있습니다. 

오늘의 일정에 만해 한용운 선생님의 자택 '심우장'도 포함되어 있기에, 예사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경건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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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너댓 정거장 쯤 가서 내려 마을 초입을 둘러보다, 기억에 남는 입구가 보여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 사립미술관이라고 하는 간송미술관 입니다. 

대학교때 한국미술사 수업을 들으면서 과제를 하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처음 찾아왔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봄과 가을에 약 2주씩 정도밖에 관람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현재 공사중이라고 해서 들어가보지는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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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기억하는 성북동 동네의 분위기는 아래 사진처럼 독특합니다. 산자락의 주택들, 기사식당, 레스토랑, 카페, 그리고 저멀리 조선시대의 성곽과 높은 하늘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오늘은 저 성벽쪽을 향해 있는 주택가 사이로 들어가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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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들 사이로 가파르고 좁은 계단을 올라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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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과 성벽 맞은편으로 탁 트인 광경을 마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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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홍익사대부속고등학교, 홍익사대부속초등학교가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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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위로 올라가면, 아래와 같은 산책로가 펼쳐집니다. 사실 가벼운 산책로라 하기에는 다소 경사가 있고 꽤 길기 때문에 등산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지만, 서울에서 두세시간 코스로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좋은 코스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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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의 좌측으로 내려다보면, '북정마을' 이라는 큰 마을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마을에는 현수막이 걸려있는데요, 이 마을을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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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날이 엄청 더웠기 때문에, 물 혹은 아이스크림을 정말 간절히 사먹고 싶었지만, 마을 꼭대기에 있는 '북정카페' 라는 조그마한 슈퍼 겸 식당이 영업을 하지 않더군요.

저 천원짜리 아이스크림이 대체 뭘까 정말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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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정마을에서 지도어플로 '심우장' 가는길을 검색해보니, 몇십미터만 가면 된다고 나오더군요. 마침 이정표(?)가 있어 참고해서 다시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아래 사진처럼 좁고 미로같은 길을 지나다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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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장 가는 길에 있는 작은 공원에 '성북동 비둘기' 시가 적혀있네요. 이 시를 배운 것이 중학교 때인지 고등학교 때인지 잘 기억이 나질 않네요. 시를 공부해서인지, 성북동은 처음부터 왠지 완전히 낯선 동네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시를 배우면서 머릿속에 떠올렸던 '성북동'의 이미지 - 공사현장의 먼지, 차가운 시멘트, 집(?)을 잃은 비둘기의 표정 - 과는 다른 모습이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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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시 이어지는 좁은 길을 따라가다보니, 이내 제법 넓은 마당을 가진 집이 하나 보입니다. 이 곳이 심우장이라는 느낌이 오네요. 

저는 사전 정보가 거의 없이 와서인지, 3.1운동때 민족대표 33인중 한 분 이셨던 민족의 시인 만해 한용운 선생님의 자택은 당연히 너른 길가에, 제법 웅장한 규모의 집일꺼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저를 새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용운 선생님의 자택인 심우장은, 경사가 가파르고 골목이 좁은 마을의 한가운데 자리한 자그마한 집이었습니다. 


그렇죠.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가, 해방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의 자택이 그 얼마나 대단할 수 있었겠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이 짧았던 제 자신을 반성해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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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을 들어가게 되면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장면입니다. 파란 조끼를 입으신 분은 '문화재 관리인' 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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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 선생은 1933년에 이 집을 지어, 1944년 입적하실 때 까지 가족들과 함께 이 곳에서 사셨다고 합니다. 당시 집을 북향으로 지었는데, 남향으로 지으면 조선총독부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 싫어서였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집은 특히 겨울에 굉장히 추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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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신 분이 계실 것 같아 심우장의 내부 사진을 보여드려요. 안내판에는 신을 벗고 들어가서 자유롭게 돌아볼 수 있고, 사진도 자유롭게 찍을 수 있다고 적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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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에서 가운데 쯤에 곧게 보이는 향나무가 한용운 선생이 직접 심으신 것이라고 합니다. 선생은 저 나무를 심으면서, 그리고 그 나무 곁에 서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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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곳에 한용운 선생의 자취가 실제로 얼마나 남아있는지가 궁금해서, 문화재 관리인분께 질문을 드렸습니다. 

아래처럼 심우장 내의 천장을 보면서, (어릴적 할머니댁에서 보았던 천장과 비슷하더라구요) 이런 것도 당시 선생이 쓰던 그대로인지를 여쭈어보았습니다. 

그때부터 관리인분께서는 엄청난 열변을 토하며, 저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이것 저것을 설명해주셨습니다. 실제로 질문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을 제게 다 해주시는 것 같았어요. 물론 저는 재미있었죠. 


당시 (1933년) 이 집을 지을때 땅값과 건축비를 합해 천원의 돈이 들었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44년 선생이 입적하신 뒤 따님 (당시 부인이 있으셨고 자녀도 있으셨다고 합니다) 등 계속 이 집을 사용했기 때문에, 삶에 편리하도록 이곳 저곳을 보수해서 사용해서 실제로 집에는 당시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합니다. 방에 나있는 창과 문들도 당시에는 (추위를 막기위해) 없었던 것들을 (환기를 위해) 새로 낸 것들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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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장에서 내려오는 골목길에는, 선생의 말씀들이 줄지어 붙어있습니다. 다시한번 마음이 다소 무겁고 경건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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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좁다란 골목길을 내려오면 차도를 만나게 됩니다. 사진 아래쪽으로 심우장을 안내하는 표지판과 한용운 선생의 동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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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쯤되니 배가 엄청 고팠습니다. 

이 동네는 꽤 오랜 역사를 가진 유명한 식당들이 있어서, 무엇을 먹을지 행복한 고민을 시작합니다. 유명한 왕돈까스 집이 있고, 연탄불고기집도 있고, 돼지갈비집도 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저는 루리인이므로(?) 돈까스집을 찾아가기로 합니다....


.... 그런데 예전부터 가보고 싶던 금*돈까스집은 오늘이 마침 휴무일이라네요.. 


그래서 또 다른 돈가스집을 검색해보니 약 1킬로 정도만 가면 된다고 합니다. 1킬로는 십여분이상을 걸어야 하는 꽤 먼거리이지만, 마음속에는 이미 따듯하고 촉촉하며 달콤하고 부드러운 돈까스를 향한 열망이 가득하기 때문에 오로지 목표를 향해 직진합니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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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까스집이 있어요!! 오***네 왕돈까스 라는 집입니다. 

저는 들어가자마자 9천원짜리 정식을 주문합니다. 일반왕돈까스는 8천원. 9천원은 꽤 비싼 가격이지만 그때 보이는 대부분의 손님들이 정식을 드시고 계시더라구요. 

이 곳은 특이하게 반찬으로 오이냉국과 맵지않은 고추를 주시더군요. 돈까스와는 참 잘어울렸습니다. 덕분에 돈가스를 전혀 느끼하지 않게 먹었네요.


주문한 정식이 채5분이 되지 않아 나왔습니다. 

생선가스, 함박스테이크, 돈가스 반장. 크기가 가늠되실지 모르겠는데, 돈가스가 담겨있는 접시의 크기가 어마어마 합니다. 정말 어지간한 세숫대야만합니다. 저 스프가 담긴 그릇이 파스타 접시만 해요;;

어지간히 잘먹는 저입니다만 양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죠. 배가 엄청 고팠거든요. 근데 결국은 남겼습니다;;


맛있습니다. 물론 배가 고픈 탓도 있었겠지만, 소스가 어릴때먹던 동네 돈가스집의 그런 맛이었어요. 돈가스가 엄청 두껍거나 하진 않았지만 씹는 맛도 좋았고 생선가스와 함박스테이크도 부드럽고 맛있었습니다. 물론 멀리서 찾아갈만한 맛집이라고 까지는 생각지 않지만, 근처에 간다면 다시 한 번 찾아보고 싶은 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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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아름다운 까스(?)들.. 하지만 생선가스의 크기에 비해 타타르/타르타르(?) 소스의 양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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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도 든든히 채웠겠다, 저는 오늘 성북동에서의 마지막 여정인 길상사를 찾아가기로 합니다. 심우장에서 바로 갔다면 가까운 거리였겠지만, 돈까스집에서 길상사는 거리가 꽤 되더군요. 하지만 칼로리도 소모해야 하므로, 여유로운 마음으로 출발합니다. 저는 마을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마을로 걸어올라가서 찾아갔더니, 다시금 미로같은 골목길들이 펼쳐진 동네로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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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 구석구석을 구경하면서 걸어왔더니 약 삼십분쯤 걸은 것 같네요. 오른편으로 길상사가 보입니다. 한성대입구역에서 마을버스를 타면 바로 절 앞에서 내릴 수 있는 것 같았습니다. 

좀 전에 다녀왔던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는 북정마을과 거리가 채 얼마되지 않는데, 이 곳의 분위기는 전혀 다르더군요. 담장이 높은 저택들이 줄지어있고, 그 한복판에 길상사가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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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길상사의 멋진 사진을 담은 글이 베스트에 가기도 했고, 길상사가 워낙 유명한 절이라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이 절에 대해 간략히 설명을 드리면


1932년 요정에 들어가 기생이 된, '김영한' 이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가무 뿐만 아니라 문학면에서도 특출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함양요정에 있을 시기 함흥영생여고 영어교사였던 잘생긴 젊은 청년 백석을 만나게 되고,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 백석은 그녀에게 '자야'라는 애칭을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정말 사랑했지만 백석은 부모님의 성화를 이기지 못하고 다른 여인과 결혼을 하게 되고, 자야도 그의 미래를 위해 떠나게 되지만 백석은 결국 자야에게 돌아오게 되고 둘은 3년동안 애틋한 사랑을 하게 됩니다.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도 백석이 그녀를 떠올리며 쓴 시라고 하죠. 하지만 다시 부모님의 뜻에 따라 결혼식을 올리고 자야에게 도망쳐오고서, 백석은 자야에게 만주로 함께 떠나자고 하지만, 자야는 백석의 앞길에 걸림돌이 되기 싫어 거절합니다. 만주로 건너간 백석은 최고 시인으로 이름을 높이게 되고, 자야는 당시 최고의 요정인 대원각의 주인이 됩니다. 백석과의 3년간의 사랑을 잊지 못한 자야는 남은 평생을 기생으로 홀로 살았다고 합니다. 자야(김영한)는 1995년 당시 시가 1000억원에 달하는 대원각의 부지를 법정스님을 네번이나 설득한 뒤 무상기증하게 되고, 원래 대법사였던 절의 이름도 1997년 자야의 법명 '길상화'를 따서 길상사로 바꾸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1938)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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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정말 파랗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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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마리아성모상과 같은 느낌의 보살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위 사진에 있는 석탑에도 인근의 교회에서 제공해준 머릿돌이 있었고, 이 절과 관련해서 천주교와도 교류가 많아 김수환 추기경님께서도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하시더군요. 

이 절의 주지셨던 법정스님과 김수환 추기경님 모두 계시지 않지만, 그 분들이 보여주셨던 조화와 어울림은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봅니다. 


이 보살상에는 아래와 같은 설명이 쓰여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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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세음보살상은 길상사의 뜻과 만든이의 예술혼이 시절인연을 만나 이도량에서 이루어진것이다. 이 모습을 보는 이마다 대자대비한 관세음보살의 원력으로 이 세상 온갖 고통과 재난에서 벗어나지이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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