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Battle Royale(배틀로얄) - 친구들간의 살인게임 by
게시물ID : freeboard_12691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필교야불꺼aA
추천 : 1
조회수 : 158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05/01/07 20:42:10
Battle Royale(배틀로얄) - 친구들간의 살인게임 by. [熱血]ⓐnti〃비류
<Battle Royale 01>
어느 날 가현고등학교 1학년 2반으로 날아온 제부도행 티켓 39장.
그것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가현고등학교 1학년 2반 학생들은 어디서 보내주었는지도 모르는 버스를 타고 제부도로 향했다.
그렇지만 그것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모두 여행에 들떠 있었지만 그 중에서 민경훈[남자 11번]만은 얼굴이 굳어져 있었다.
경훈의 옆에 앉아 있던 신혜성[남자 13번]이 경훈의 어깨를 흔들며 경훈을 불렀다.
"야, 민경훈!"
"아, 응..."
"무슨 생각을 하길래 부르는 것도 대답을 안 해?"
"아, 그냥... 딴 생각 좀 하느라."
"인상 좀 펴.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래."
"죽으러 가는 걸수도..."
"뭐?"
"아무것도 아냐."
경훈이 그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생각한 혜성은 경훈의 그 말을 지나쳤다.
그런데 갑자기 묘한 공기가 흐르고 반 아이들이 하나씩 쓰러져 잠들었다.
혜성은 눈을 감지 않으려 애썼지만 결국 잠이 들고 말았다.
혜성이 눈을 뜬 곳은 버스 안이 아니라 낡은 교실이었다.
혜성은 머리를 어루만지며 몸을 일으켰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아이들도 하나씩 깨어나서 다른 아이들을 깨우고 있었다.
혜성은 곁에 쓰러져 있는 경훈을 흔들어 깨웠다.
"야, 민경훈! 일어나!"
"아... 신혜성."
"여기 좀 봐! 여기가 어디야?"
"말 안해도 알게 될거야..."
그때 누군가가 들어오고 반 아이들의 시선이 그 쪽으로 쏠렸다.
<Battle Royale 02>
반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된 그 사람은 수많은 시선을 느끼자 얼굴이 붉어졌다.
혜성은 한순간 그가 꽤 귀엽다고 느꼈었지만,
오래지 않아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며 심각한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안녕하세요! 저는 가현고등학교 1학년 2반을 맡게 된 새로운 담임,
Nathan Lee라고 합니다! 그냥 편하게 Nathan이라고 불러주세요."
자기를 Nathan Lee라고 소개한 중학생 정도로 되어 보이는 아이.
겉으로 보기에는 티없이 맑고 순수해 보이는 자그마한 꼬마아이 같았다.
그러나 그 순수해 보이는 얼굴로 전한 소식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여러분들은 제 5회 Battle Royale 선정 학급에 당첨되셨어요. 축하드립니다~"
"자, 잠깐. 그게 뭐지?"
"아... Battle Royale이란,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서로를 죽이는 살인게임이랍니다.
지금까지 모두 잘해왔으니, 여러분도 최선을 다해주세요."
Battle Royale, 말하자면 친구들간의 살인게임.
친한 친구들을 살기 위해 죽여야 하는, 그런 살인게임이다.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그런 상상에만 존재할 줄 알았던 그런 게임이 현실에서 이뤄진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이건 말도 안 된다고!"
흥분한 심창민[남자 14번]이 절규했다.
창민이 Nathan에게 달려들려 하자 주위에 있던 김호경[남자 8번]과 윤은혜[여자 8번]가 창민을 붙잡았다.
"창민아, 그만 해!"
"야! 그만 안 둬?"
"이거 놔! 놓으라고!"
그렇게 한참을 호경과 은혜에게 잡혀 바둥대던 창민이 무언가를 보더니 얌전해졌다.
그것은 바로 Nathan이 들고 있는 소형 리모콘이었다.
"후훗, 이것의 용도를 아시나 보죠? 이것은 여러분들의 목에 감겨 있는 목걸이를 폭발시킬 수
있는 장치로서, 목걸이는 잡아빼려고 해도 폭발하죠~"
그제서야 혜성은 자신의 목을 손으로 만져본다.
혜성의 손에 금속성의 무언가가 만져졌다.
"저기, Nathan이라고 했지?"
고지용[남자 1번]이 Nathan을 불렀다.
"네~ 그런데요?"
"난 이 프로그램 참가를 거부하겠어.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해."
"후훗, 이 프로그램 참가를 거부하는 사람은 100% 죽는답니다."
"그럼 죽여."
지용의 말이 끝나자마자 지용의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나왔다.
지용의 목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그 주위에 앉아 있던,
장성재[남자 17번]와 문정혁[남자 10번]에게 튀었다.
지용의 시체가 바닥에 쿵 하고 쓰러지자, 이바니[여자 9번]가 비명을 지르려 했다.
그러자 성재가 바니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죽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하라고..."
"......!"
"와아~ 현명하시군요, 장성재 학생."
Nathan은 겁에 질려 떨고 있는 학생들의 반응을 재미있다는 듯 살폈다.
혜성은 만난 지 몇 분 되지는 않았지만 Nathan의 행동에 짜증이 나려 하고 있었다.
"자, 그럼 이름을 부를 테니 나와서 나눠 주는 가방을 받아가세요!"
이제부터 게임 시작인가.
+ 남자 1번 고지용 사망 [남은 인원 38명] +
<Battle Royale 03>
"자, 이제 좀 조용해진 것 같으니까 규칙 설명을 하겠어요~
여기는 여러분이 알고 계신 대로 제부도랍니다!
여기 있던 섬 주민들은 모두 밖으로 내보냈으니 구조 요청 같은 거 하지 마시고,
가방 안에는 여러분들이 필요한 무기와 식량, 물, 지도, 손전등 같은 것들이 들어있습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남자 1번 고지용 학생이 죽었으니, 남자 2번부터 가죠~
남자 2번, 김윤성 학생 나와주세요~!"
김윤성[남자 2번]은 벌벌 떨고 있다가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깜짝 놀랐다.
조심스럽게 앞으로 걸어온 윤성은 갑작스럽게 자신에게 날아온 녹색 가방을 맞고 쓰러졌다.
평소에도 몸이 약했던 터라 자주 쓰러지곤 했었는데 이번 충격이 심각한 모양이다.
쓰러진 윤성을 호경이 일으켜 세웠다.
"이건 너무하잖아! 윤성이는 몸이 약하다고!"
"후훗, 배틀로얄에서 인정을 바랬던 게 잘못 아닌가요?"
"씨..."
윤성이 겨우 일어나 녹색 가방을 들고 복도 쪽으로 사라지자 다시 이름을 호명했다.
"남자 3번, 김재중 학생~!"
겉보기에도 불량스러워 보이는 김재중[남자 3번]은 터벅터벅 걸어와서,
던져주는 녹색 가방을 받더니 복도로 뛰어나갔다.
Nathan이 이름을 계속 부르고, 남은 남자 아이들도 줄어갔다.
"남자 13번, 신혜성 학생~"
드디어 혜성의 차례다.
혜성은 조심스럽게 나가서 녹색 가방을 받는 척 하다가 다시 Nathan의 얼굴에 던졌다.
난데없는 가방 공격을 받은 Nathan은 섬뜩한 목소리로 말했다.
"쓸데없는 짓 하면 죽는 수가 있습니다."
그 섬뜩한 목소리에 기가 죽은 혜성은 그냥 조용히 가방을 받고 나왔다.
<Battle Royale 04>
혜성은 기다란 복도를 걸어나와 밖으로 나왔다.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혜성의 손목시계는 12:00 이라는 시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혜성은 이것이 배틀로얄이라는 것을 생각해내고 재빨리 풀이 우거진 곳에 숨었다.
숨소리도 내지 않고, 움직임도 조심스럽게 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혜성은 Nathan이 강제로 던져 준 녹색 가방을 생각해냈다.
혜성은 가방을 열고 물품들을 꺼냈다.
손전등, 지도, 학생 명단, 필기도구, 물, 식량, 그리고...
무기로 보이는 듯한 사물 하나가 있었다.
3등분으로 나뉘어져서 접힐 수 있게 되어 있는 1m 플라스틱 자, 이것이 혜성의 무기였다.
"이게 뭐야? 이걸로 사람을 죽일 수는 있는 거야?"
혜성은 어이가 없었다.
무기라도 제대로 걸리기를 바랬건만, 하늘은 그의 편이 아니었나 보다.
혜성은 아예 무기가 없길 바라며 플라스틱 자를 등뒤로 높이 던졌다.
"아악!"
그런데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땅을 짚은 혜성의 손에 차가우면서도 미끌한 느낌이 들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혜성이 자신의 손을 보고 경악했다.
혜성의 손에 묻은 그것은 바로 누군가의 피였다.
불길한 예감이 든 혜성은 소리가 난 쪽으로 달려갔다.
혜성이 있던 자리에서 별로 멀지 않은 5m쯤 되는 거리에 김준수[남자 6번]가 쓰러져 있었다.
혜성이 보기에 준수는 이미 죽은 것 같았다.
하지만 준수가 죽은 이유는 플라스틱 자 때문이 아니라 혜성이 던진 자를 맞고,
준수가 들고 있다가 놓친 식칼 때문이었다.
운이 나쁘게도, 그 식칼이 준수의 심장을 관통해버린 것이다.
그 때, 혜성의 뒤에 있던 풀숲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혜성은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고 바니를 발견할 수 있었다.
"너...!"
"다가오지마!"
"아니, 그게 아니라고...!"
"시끄러워!"
"야!"
혜성이 붙잡기도 전에 바니는 저멀리 도망쳐버렸다.
혜성은 준수의 심장에 깊숙하게 박혀 있는 식칼을 빼 내었다.
"미안하다, 김준수. 하지만 나는 바니를 구해야겠어."
자신의 말을 듣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혜성은 준수의 시체에 대고 말했다.
그리고, 곧장 바니가 도망쳐 간 방향으로 뛰어갔다.
+ 남자 6번 김준수 사망 [남은 인원 37명] +
<Battle Royale 05>
혜성은 그렇게 한참을 달려 바니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바니는 혜성을 발견하지 못한 듯 넓다란 바위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다.
바니가 발견하지 못한 것은 혜성 뿐만이 아니라, 그녀를 노리고 있는 재중이었다.
재중은 그녀의 등 뒤에서 무언가를 손에 쥐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바니가 위험하다는 것을 느낀 혜성은 플라스틱 자를 던져 재중의 관자놀이에 명중시켰다.
거기가 급소였던지, 재중은 혜성의 플라스틱 자를 맞자마자 기절했다.
재중이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은 바니가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보았고
헐떡거리는 혜성과 바닥에 쓰러져 있는 재중, 그리고 플라스틱 자를 발견했다.
"너... 너!"
"니가 생각하는 그게 아니래도. 난 그저... 김재중이 뒤에서 널 노리고 있길래...
반사적으로 저걸 던져서 맞힌 것 뿐이야."
혜성이 플라스틱 자를 가리키며 변명했다.
"이 살인자!"
"뭐라고?"
"이건 그렇다쳐도, 김준수는! 그건 살인이잖아!"
"야, 이바니!"
"내 말이 틀려? 틀리냐고!"
"김준수는 그냥 사고였어! 김준수도 저걸 맞고서... 그게...
식칼이 우연치 않게 심장에 박혀서 즉사했던 거라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인거 알아.
그래도 믿어주면 안되겠니?"
"......"
"얼른 여기서 도망쳐. 여긴 위험지역이야."
"어째서 날 구해주려고 하는 거지?"
"왜냐니, 우린 같은 반 친구사이라고."
혜성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재중의 상태를 살피려고 재중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런데 갑자기 재중의 손이 혜성의 손목을 꽉 잡았다.
기절한 줄 알았던 재중이 연극을 한 것이었다.
<Battle Royale 06>
혜성의 손목을 잡은 재중이 자신의 무기인 전기충격기로 혜성의 손목을 지졌다.
혜성은 비명을 지르며 재중에게 잡힌 손목을 빼 보려 하지만 재중이 너무 꽉 잡고 있어
도저히 빠지지 않았다. 어쩌면 혜성은 재중에게 죽음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때 혜성의 뇌리에 가방 안에 넣어둔 준수의 식칼이 스쳐갔다.
혜성은 잡히지 않은 반대 손으로 가방을 뒤져 준수의 식칼을 꺼내었다.
그리고 재중에게 휘둘렀다.
재중이 비명을 지르더니 그제서야 혜성의 손목을 놔주었다.
재중의 얼굴에 빨간 혈선이 그어졌다.
"크으..."
재중이 손으로 얼굴을 더듬어 피가 나오는 것을 알아챘다.
재중은 자신의 얼굴에 상처를 남겼다는 것에 화가 나서 혜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혜성은 침착하게 1m 플라스틱 자로 다시 재중의 관자놀이를 세게 쳤다.
재중이 신음을 흘리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혜성은 이번에도 연극을 하고 있을지 몰라 만반의 준비로 식칼을 재중의 얼굴에 대고
상태를 살폈다. 이번에는 정말 기절한 듯하다.
"미안해. 나 때문에..."
"아니, 니 잘못이 아닌걸."
"고마워, 신혜성."
"뭘 그 정도 가지고."
이렇게 해서 바니와 혜성은 당분간 같이 다니기로 결정했다.
한편...
<Battle Royale 07>
최정원[남자 21번]은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그는 아직도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배틀로얄, 그리고 친구들간의 살인.
"최후의 생존자만이 이 섬을 나갈 수 있다고?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릴..."
"돼."
어느새 정원의 옆에 정혁이 와 있었다.
정원은 불안했지만 그래도 친구를 만났다는 사실에 반가워했다.
"안녕, 정혁아. 여기서 보니까 더 반가워."
"나도."
"정혁이 너는 사람 죽였니?"
"아니."
"나는 말야, 이런 일 진짜... 상상에서나 가능할거라고 생각했었어."
"......"
"너는 사람 진짜 죽일 수 있어?"
"응."
정원이 눈치채지 못한 그 순간에 정혁은 자신의 무기인 서브기관총을 정원의 머리에 겨누었다.
정원이 두려운 눈빛으로 정혁을 쳐다보았지만 정혁은 싸늘한 눈으로 정원을 말없이 쳐다볼 뿐이다.
"저, 정혁아... 장난치는 거지?"
"아니."
정혁은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정원의 머리에 총을 난사했다.
정원의 머리는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게 짓이겨졌다.
정혁은 정원의 가방에서 정원의 무기로 보이는 듯한 단검을 꺼내 자신의 가방에 넣고 그 자리를 떠났다.
+ 남자 21번 최정원 사망 [남은 인원 36명] +
<Battle Royale 08>
재중이 깨어났을 때는 이미 해가 뜨고 있었다
재중은 혜성이 자로 친 관자놀이 부분을 쓰다듬었다.
"으... 내가 얼마나 여기에 누워 있었던 거야?"
재중이 이런 말을 주절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가 멀리서 재중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재중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바로 박유천[남자 12번]이었다.
재중은 유천을 보자 심술궃게 쏘아붙였다.
"야, 박유천! 너 이리 와 봐."
"......?"
"빨리."
유천이 재중에게 가까이 다가오자 재중이 유천의 복부를 주먹으로 때렸다.
난데없는 재중의 공격에 유천은 대처할 새도 없이 당할 뿐이었다.
"이 자식! 내가 배틀로얄이라서 봐줄 줄 알아? 내가 너한테 살려달라고 그럴 것 같아?
난 절대로 그러지 않아! 알아?"
"알아."
평소와 다른 싸늘한 유천의 말투에 재중이 한순간 경직되었다.
그리고 재중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유천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햇빛에 반짝이는 금속성 물체, 바로 잭나이프였다.
"너... 너! 설마 나를...?"
"왜 그래? 한번 죽는 것도... 너한테는 그저 놀잇거리일 텐데?"
"아, 안돼~!"
유천의 잭나이프가 재중의 가슴에 정확히 꽂혔고 재중의 피가 유천의 얼굴과 교복에 튀었다.
유천이 얼굴에 묻은 피를 닦으며 말했다.
"다음은 심창민, 바로 너다."
+ 남자 3번 김재중 사망 [남은 인원 35명] +
<Battle Royale 09>
이민우[남자 16번]은 나무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의 표정은 두렵다거나, 떨리는 표정이 아니었다. 아무런 걱정도 없이 편안한 표정이었다.
그의 앞으로 지금까지 3명이 지나갔다.
호경을 찾으려고 민우에게 길을 물어본 윤성, 심각한 표정의 경훈, 스쳐 지나간 성재.
아무도 민우에게 살기를 띄우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 없었던 건지, 아니면 민우의 편안한 표정에 눌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민우는 가현고등학교에 전학온 지 10일 정도 된 전학생이다.
그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민우의 앞으로 4번째 사람이 다가왔다. 바로 문정혁이다.
"안녕, 이민우."
"안녕."
"뭐해?"
"그냥... 바람쐬고 있었어. 날 죽이러 온 거니?"
"......"
"그렇다면 그냥 가줘.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 제발..."
"...... 한번만 더 눈에 띄면 죽이겠다."
민우의 애처로운 마음을 알았는지 정혁은 민우를 두고 그냥 갔다.
민우는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민우는 절대로 죽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민우가 만나야 하는 그 사람은 바로... 민우의 하나뿐인 동생이었다.
<Battle Royale 10>
김태우[남자 7번]와 유수영[여자 7번]은 깎아내릴 듯한 절벅에 겨우 서 있었다.
떨고 있는 수영과는 달리 태우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절벽 아래의 파도가 치는 바다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일까.
갑자기 태우가 무서운 눈빛으로 뒤에 있던 한 나무를 째려봤다.
"거기서 나와, 문정혁."
태우가 말한 대로 나무 뒤에서는 정혁이 나왔다.
태우와 수영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정혁이 냉소를 지으며 총을 태우와 수영에게 겨누었다.
그 때 태우가 잽싸게 수영을 팔로 끌어안고 절벽 아래로 떨어져내렸다.
절벽이 꽤 높았던지 떨어지는 데 몇 초가 걸렸다.
그 몇 초 동안 태우는 수영의 귀에만 들리게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니가 다른 사람한테 죽는 게 싫었을 뿐이야... 용서해 줘."
"태우야..."
곧, 풍덩 소리를 내며 그들의 형체는 물 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 남자 7번 김태우, 여자 7번 유수영 사망 [남은 인원 33명] +
<Battle Royale 11>
창민은 꽤 오랫동안 기절해 있었다.
갑자기 뒤에서 전기가 오르는 듯한 찌릿한 느낌이 들며 정신을 잃었던 것이 2시간 전 일이었다.
창민이 기절에서 깨어나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올리려고 손을 움직였으나 허세였다.
손이 나무둥치 뒤에 밧줄 같은 것으로 단단하게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창민이 줄을 풀려고 바둥거리고 있을 때 유천이 나타났다.
창민은 유천을 보자 반가운 마음도 들었지만 두려운 마음도 자리잡고 있었다.
유천이 자신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창민은 유천이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외쳤다.
그게 자폭행위라는 것이라는 위험을 안은 채...
"야, 박유천!"
"후훗..."
유천은 줄을 풀려고 바둥거리는 창민을 보며 웃고만 있었다.
다급해진 창민은 유천에게 더 크게 외쳤다.
"야, 박유천! 이리 와서 이것 좀 풀어줘!"
"후훗, 내가 왜? 내가 힘들게 묶어 놨는데 왜 또 귀찮게 풀어야 하지?"
"뭐, 뭐라고?"
"세상에는 항상 인과성(因果性)이 작용하지. 너와, 죽은 김재중, 그리고 정윤호, 이민우...
그리고 나와의 엮여진 관계 말이지... 후훗, 이제 너는 그 인과성대로 죽는 거야."
"야, 야! 나를 제발 살려줘... 다시는 안 그럴게!"
"이 세상에 자기 마음대로 되는 건 거의 없어... 나는 걱정 없이 살고 싶었는데,
너희들은 나에게 무슨 짓을 했는 줄 알아? 죽어버려... 죽어버리라고!"
유천의 강한 비명과도 같은 절규와 함께 유천의 손에 들린 잭나이프가 앞으로 나갔고,
그 잭나이프가 창민의 목을 찔렀다.
창민의 목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목을 뚫린 창민이 1분 동안 옅은 신음을 흘리다가 눈을 뜬 채로 죽자
유천은 다음 목표를 향하여 자리를 떠났다.
유천의 다음 목표는 과연 누구인가?
+ 남자 14번 심창민 사망 [남은 인원 32명] +
<Battle Royale 12>
노유민[남자 9번], 은지원[남자 15번]은 빈 창고에 조용히 숨어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죽일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함께 뭉쳐 다니기로 했다.
배틀로얄 전부터 뜻이 자주 맞아서 모여 다녔으니 말이다.
지원이 주위를 살피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부터 계획을 설명할게... 잘 들어. 이 창고 안에는 너희들이 알다시피 고무 보트가 있어.
그 고무보트에 바람을 넣어서 바닷가로 아무도 눈치 못 채도록 끌고 가는 거야..."
"그 다음에는 보트를 타고 탈출하면 되는 거지?"
"맞았어... 그러면 우리는 자유가 되는 거야. 노유민, 너는 바람을 넣는 펌프를 구해 와.
여기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 거야. 알았지?"
"알았어. 그 동안 너는 뭘 할 거지?"
"나는 혼자서 할 일이 있어. 어서 가!"
지원은 유민을 내쫓다시피 나가게 했다.
지원이 혼자서 해야만 했던 일은 무엇일까.
권보아[여자 1번], 옥주현[여자 6번], 이정현[여자 11번]은 바다가 탁 트인 절벽에 서 있었다.
그들은 여기서 자살할 계획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들의 무기는 모두 권총이었다.
정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무서우리만큼 조용한 침묵을 깼다.
"그럼... 하나, 둘, 셋 하면 동시에 쏘는 거다... 알았지?"
"알았어."
"하나, 둘, 셋!"
정현의 카운트다운이 끝남과 동시에 한발의 총성이 들리더니 정현이 뒤로 고꾸라졌다.
정현의 이마 중심에 구멍이 뚫려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주현이 불길함을 느끼고 보아를 바라보았다.
보아가 미소를 지으며 총구를 주현에게 겨누고 있었다.
주현이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보아에게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야!"
"후훗, 나는 끝까지 살고 싶어. 니들과는 달리 말야."
"그럼 너...! 설마 우리를 속였다는...!"
"나는 속아달라고 한 적 없어. 바보같은 너희들 자신을 원망하라고..."
보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총성이 또 들리고 주현이 쓰러졌다.
보아가 쓰러져 있는 주현에게 다가가 죽었는지 확인하려고 무릎을 꿇는 순간...
주현이 보아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보아는 주현의 힘이 실린 주먹을 맞고 쓰러졌다.
운이 좋게도 주현은 왼쪽 어깨에 총을 맞아서 목숨은 건진 것이었다.
"권보아... 니가 남자친구 잘못 사귀더니 완전히 미쳤구나?"
"재중이가 어때서! 너는 그런 남친도 없잖아!"
"내가 이럴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넌 여기 있으면 안되. 죽어..."
"내가 잘못했어, 살려줘..."
보아의 울먹이는 말에 주현은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그 때를 놓치지 않고 보아가 다시 총을 잡아 주현에게 겨누었다.
"후훗, 이래서 니가 바보라는 거야."
다시 총성이 울리고 주현의 왼쪽 가슴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보아는 주현과 정현의 권총을 집어들고 그 자리를 떠났다.
+ 여자 6번 옥주현, 여자 11번 이정현 사망 [남은 인원 30명] +
<Battle Royale 13>
혜성과 바니는 나무 기둥에 기대어 서 있었다.
벌써 시간은 새벽 6시를 향하고 있었다.
밤새 풀잎에 생겨난 이슬 때문에 혜성의 교복바지 끝이 이슬에 젖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내리기 시작해 우산이 없는 혜성과 바니는 비를 맞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때 뒷산 정상에 설치되어 있던 스피커에서 Nathan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겨우 6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이 Nathan의 목소리는 생소했다.
[자~ 모두 안녕하세요? Nathan입니다~ 앞으로 6시, 12시, 18시, 24시에 이렇게
사망자 명단을 발표할 거에요~ 모두 아시겠죠?
지금부터 부르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니 나눠드린 학생 명단에 체크하세요~ 알았죠?
번호 순서대로 불러드릴게요~ 편하게 말이죠~!
남자 1번 고지용, 3번 김재중, 6번 김준수, 7번 김태우, 14번 심창민, 21번 최정원.
여자 6번 옥주현, 7번 유수영, 11번 이정현. 이상 9명입니다~
모두 남은 시간만큼 열심히 싸워 주세요~ Fighting!]
Nathan은 그렇게 자기 할 말만 하고 방송을 끝냈다.
겨우 6시간 사이에 9명이나 죽었다는 사실에 혜성은 놀랄 뿐이었다.
혜성은 반 아이들을 믿고 있었다.
배틀로얄이 일어나도 희생자는 없을 거라고 예상했었다.
혜성은 나무둥치를 주먹으로 세게 치며 읊조렸다.
"제길..."
언제부터 이렇게 뒤틀려 버린 건가.
무엇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무기를 겨누고 있는가.
왜 그렇게 남을 죽여서라도 살려고 발버둥을 치는가.
그 모든 물음의 해답은 이 배틀로얄의 끝에 있는 것인가.
혜성은 혼란스러움에 머리를 감싸쥐었다.
점점 피비린내가 익숙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는 혜성이었다.
"뭐하는 거지?"
한탄하는 혜성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혜성은 뒤를 돌아보고 나서야 반가운 마음에 외쳤다.
"민경훈...!"
"오랜만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유로움을 잃지 않은 경훈이었다.
<Battle Royale 14>
혜성은 경훈을 만난 지 겨우 6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시간이 아주 길게 느껴졌다.
그래서 경훈이 더 반가웠는지도 모른다.
혜성을 제외하고 모든 아이들을 적대시하는 바니가 보기에도 경훈은 누구를 죽일 것 같지는 않았다.
그만큼이나 경훈의 얼굴에는 선함이 묻어나 있었다.
경훈은 배틀로얄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평온한 모습이었다.
혜성은 경훈을 만나자 반가운 마음에 활짝 웃었다.
"민경훈, 아직 살아있었네?"
"그러는 너야말로. 아직 살아있네."
"뭐, 나야 그렇지 뭐..."
"신혜성, 너 아까... 실수로 김준수 죽였지?"
"그건..."
혜성은 놀랐다.
분명히 Nathan은 누가 죽었다고만 말해 주었을 뿐, 누가 죽였는지는 말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어떻게 경훈은 혜성이 준수를 죽였다는 것을 알고 있던 것인가.
바니가 날카롭게 경훈에게 쏘아붙였다.
"그걸 어떻게 알지? Nathan은 그런 말 한 적 없었어."
"아, 그건... 내가 직접 봤거든. 너희들은 몰랐겠지만..."
"니 무기는 뭐지?"
"내 무기? 아... A4용지 10장... 이제 안심하겠어?"
경훈이 자신의 무기인 A4용지를 보여주며 신경이 날카로워진 바니를 안심시켰다.
그러다 갑자기 경훈이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경훈이 가방에서 재빨리 이상한 약통을 하나 꺼내더니 뚜껑을 열고 약을 삼켰다.
그러자 경훈의 기침은 잦아들었다.
혜성은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별거 아니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 때 그들 앞으로 유민이 지나갔다.
유민은 무거워 보이는 공기펌프를 땅에 끌면서 힘들다는 듯이 땀을 비오듯 흘리고 있었다.
유민의 행동을 알 수 없었던 혜성이 유민에게 소리쳤다.
"야! 노유민!"
"응? 아... 신혜성이구나."
"무슨 일이야? 그건 또 뭐고?"
"이거? 우리는 섬에서 탈출할 거야. 그럼 바빠서."
유민은 자기 할 말만 하고 다시 무거운 공기펌프를 운반하기 시작했다.
혜성은 유민이 했던 '우리' 라는 말을 되뇌었다.
그렇다면 유민에게는 일행이 있다는 소리였다.
혜성은 유민에게 몇 번이고 소리쳤지만 유민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공기펌프를 옮기는 데 너무 집중해서 혜성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했다.
그 때, 정윤호[남자 18번]의 비명소리가 메아리쳐 들려왔다.
경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또 시작인가, 문정혁...?"
<Battle Royale 15>
경훈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말투였다.
윤호의 비명소리는 몇번을 메아리치다 사라졌지만 혜성의 귀에서는 계속 윤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때 갑자기 나무 위에서 이상한 형체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바로 윤호의 잘려진 머리였다.
눈을 크게 치켜뜨고 입은 벌려진 채 목이 잘려서 죽은 윤호.
정말 이런 짓을 한 사람이 정혁이라면...?
혜성은 이 배틀로얄이 친구들의 숨겨져 있던 추악한 본성을 끄집어올리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다.
윤호의 머리가 나무 위에서 떨어지고 곧바로 잘려진 윤호의 머리의 관자놀이를
일본도같이 생긴 것이 그대로 찔러내렸다.
그리고, 정혁이 뛰어내렸다.
정혁의 발에 윤호의 머리가 밟혀 물컹하고 뼈가 부서지는 듯한 기분나쁜 소리가 났다.
난데없는 정혁의 등장에 혜성은 순간 공포를 느꼈다.
자기도 저기 저렇게 있는 윤호처럼 저렇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정혁은 계속 혜성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윤호의 머리에 박혀 있던 칼을 뽑아내 혜성의 목에 살짝 대었다.
혜성은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대로 죽어버리면 편해지리라, 그렇게 생각하고 마음을 가다듬는 순간...!
"야, 이 자식아!"
누군가가 달려와 정혁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정혁은 그대로 쓰러졌다가 피를 닦으며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는 바로...
+ 남자 18번 정윤호 사망 [남은 인원 29명] +
<Battle Royale 16>
그는 바로... 호경이었다.
경훈이나 혜성, 바니를 공격하지 않고 정혁만 노리는 걸로 봐서는
경훈이 하던 얘기를 듣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호경이 가방에서 호경의 무기로 보이는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바로 날이 시퍼렇게 서 있는 손도끼였다.
아직 한 번도 쓰지 않은 듯, 손도끼는 아주 깨끗했다.
호경이 절규 비슷한 고함을 지르며 정혁에게 달려들었다.
"너만 죽어주면... 이 살육의 사슬은 끊을 수 있어!"
호경의 이런 절규에 피식 웃어버리는 정혁이다.
하지만 호경은 그런 정혁의 웃음도 보지 못했지만 또 발견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정혁이 한쪽 손으로 서브기관총을 집어드는 것을...
정혁이 단 한마디 말을 끝내자마자 호경의 머리는 여러 발의 탄환으로 완전히 짓이겨졌다.
"아냐."
호경은 신체가 바닥에 닿기도 전에 죽었다.
혜성이나 경훈, 바니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호경이 너무 생각을 급히 했다는 것을.
호경에게는 호경을 기다리며 찾고 있는, 호경의 보호가 필요한 윤성이 있었다.
정혁에게는 정혁을 기다리며 찾고 있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
그랬기에 정혁은 무차별적으로 마음놓고 살육을 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정혁은 이미 숨이 끊어져버린 호경의 시체에게 뭐라고 중얼거렸다.
혜성은 정혁의 중얼거림을 정확히 들을 수 있었다.
"나를 죽인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어... 여기, 이 제부도에 갇힌 아이들은 이제 곧...
추악한 그 본성을 드러낼 테니까..."
+ 남자 8번 김호경 사망 [남은 인원 28명] +
<Battle Royale 17>
정혁은 그 말만을 남기고 저멀리 사라졌다.
그리고 경훈이 정혁을 뒤쫓으려 했다.
혜성은 왠지 불안해서 경훈의 손목을 잡았다.
"그냥 놔둬..."
"안돼. 저 녀석을 뒤쫓아야겠어. 24시간 후에 내가 너한테 오지 않으면
난 죽은 것으로 알아둬. 알겠지?"
"알았어... 제발 살아라."
"뭐 좀 빨리 죽는건데 뭐 어때. 간다!"
경훈은 24시간 뒤에 혜성에게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정혁을 쫓아갔다.
이제 혜성과 바니뿐이다.
배틀로얄도 결국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것인가.
사실 이 사회도 그렇듯, 모든 일은 남이 대신해주지 않는다.
결국에 이 사회를 살아가는 것도 나 자신 아닌가?
혜성이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나무 위에서 어떤 사람이 또 떨어졌다.
그는 바로 성재였다.
성재는 어깨에 상처투성이의 기절한 듯한 윤성을 둘러메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성재가 윤성을 내려놓고 보니 성재의 교복이 윤성의 피로 물들었다.
혜성이 놀란 듯이 성재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고문하고 있었어... 윤성이를, 정훈이가."
"뭐?"
"김정훈 그 자식, 새디스트였어..."
갑자기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늘 학교에서 모범적인 모습만 보여주었던 정훈이 새디스트라니.
혜성은 이 배틀로얄에서 나타나는 아이들의 본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Battle Royale - 혜성 Story>
혜성은 제부도로 향하는 버스 안에 타고 있었다.
분명히 자신은 배틀로얄을 하고 있는 제부도에 있어야 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몇시간 전 이상한 공기를 마시고 모두가 잠이 들었던 그 현장이었다.
그리고 혜성은 보고 말았다.
1학년 2반 아이들 외에 검은 옷을 입은 남자 둘이 학생들을 세고 있는 것을.
"하나, 둘, 셋, 넷... 서른여덟이군."
"서른아홉인데?"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 중 하나가 혜성을 가리키며 물었다.
"쟤는 왜 빼는데?"
"상관없어. 가자."
혜성은 그 때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쳤었다.
눈이 핏빛으로 물들어 있던 그 남자의 눈빛은 공포스러웠다.
혜성이 아이들을 깨우려고 일어나는 순간, 혜성은 잠에서 깨어났다.
<Battle Royale 18>
혜성은 성재가 어깨를 잡고 흔드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꿈 속에서 봤던 검은 옷을 입은 남자의 핏빛을 띈 눈동자는 잊을 수 없었다.
"괜찮아?"
"아, 응."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쓰러지고..."
"너무 긴장했나봐... 걱정하지 마."
"다행이다."
성재는 나무둥치에 윤성을 앉혀놓고 윤성의 상의를 조심스럽게 벗겨냈다.
새하얀 몸에 가득한 채찍 종류에 의한 상처같은 것이 끔찍하리만큼 많았다.
성재가 윤성의 상처를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젠장, 김정훈 이 자식은 대체 어떻게..."
성재는 자신의 가방 안에서 붕대와 연고를 꺼냈다.
성재가 윤성의 상처에 연고를 조심스럽게 바르자 윤성이 가늘게 신음을 흘렸다.
몸이 약한 윤성에게 이 정도의 고통은 견디기 힘들 듯 했다.
연고를 바르고 나서 붕대를 천천히 감았다.
"다 됐다... 이제 윤성이가 깨어나기를 바랄 뿐이야."
"그런데, 윤성이가 이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까?"
"난 윤성이를 믿어. 윤성이는... 그렇게 약하지 않아."
유천은 목이 잘려있는 윤호의 시체 앞에 서 있었다.
자신이 윤호에게 직접 복수를 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분노가 유천의 마음속에 끓어오르고 있었다.
유천은 이미 심장이 멎어 딱딱하게 굳어버린 윤호의 시체를 발로 마구 걷어찼다.
"왜 벌써 죽어버린 거야, 왜! 내가 직접 널 죽였어야 했다고!"
"박유천... 너..."
"너...!"
<Battle Royale 19>
유천은 자신을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유천을 부른 그는 바로, 민우였다.
민우는 윤호의 목이 없는 시체를 발로 차고 있는 유천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왜냐하면, 윤호의 시체는 유천이 너무 발로 차서 배가 찢어져 내장이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유천... 니가 어떻게 이런 짓을?"
"실망한 건가? 왜 이제야 나에게 관심을 가져 주는 거야, 왜!
내가 도와 달라고 그렇게 도움을 청했을 때도 너는... 너는...! 왜 날 도와주지 않았어!"
유천이 민우에게 그 동안의 불만을 전부 털어놓으려는 듯 민우에게 절규했다.
그런 유천을 민우는 편안한 표정으로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다.
유천은 그런 민우에게 갑자기 화가 나서 소리질렀다.
"어째서 너는 그런 표정을 하고 있지? 내가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게 좋아?"
"박유천, 아니... 유천아, 이제서야 이런 말 하게 되네... 미안해..."
그 때, 유천이 민우에게 울음을 터뜨리며 달려와 안겼다.
민우는 유천을 말없이 안아 주었다.
그런데, 민우가 갑자기 배를 움켜쥐며 쓰러졌다.
민우가 움켜쥔 부위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민우는 유천을 바라보며 힘겹게 말을 꺼냈다.
"유천아... 너... 나를..."
"이제 와서 친한척 해 봐야 나에게는 안 통해."
"너... 날 모르겠니...?"
한편, 지원은 풀숲을 마구 달렸다.
그리고 지원이 도착한 곳은 유천과 지원이 있는 곳이었다.
피를 흘리며 나무에 기대 있는 민우와, 그런 민우를 바라보는 유천...
지원이 인상을 구기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젠장, 내가 너무 Double Take(늦은 반응)였어..."
"은지원... 넌 뭐야?"
"박유천, 너 진짜 이민우를 몰라? 민우는..."
<Battle Royale 20>
윤성은 기절에서 깨어났다.
윤성이 몸을 움직여 보려는 순간 길다란 무언가가 윤성의 머리 위에서 툭 떨어졌다.
그것은 바로 성재의 팔이었다.
성재가 윤성의 간호를 하다가 지쳐 윤성의 머리에 팔을 얹고 잠이 든 것이다.
혜성이나 바니도 평온하게 자고 있었다.
윤성은 자신을 위해 이렇게나 고생해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왠지 좋았다.
윤성도 그들처럼 평온한 표정으로 잠이 들었다.
완벽해 보이는 정혁도 달리기에서는 경훈을 앞지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얼마 안 가 경훈은 정혁의 앞길을 막아섰다.
경훈이 차분한 표정으로 정혁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드디어 잡았어, 문정혁."
"뭐냐..."
"이제 너만의 살인게임은 여기서 끝내는 게 어때?"
"닥쳐."
"칫, 안 통하는군. 그렇다면 내가 애들한테 다 떠들어줄까? 너의 비밀을."
"......!"
정혁이 몸을 움찔했다.
살인귀 정혁이라도 경훈이 알고 있는 그 비밀 앞에서는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경훈은 그런 정혁을 보며 피식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그 때 정혁이 나무 위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몇초도 지나지 않아 흔적없이 그 곳에서 사라졌다.
경훈은 다 잡았었는데 아깝다는 표정으로 정혁이 올라간 나무 위를 바라보았다.
"이런, 놓쳤네... 난 다시 돌아가야겠어."
경훈이 혜성이 있던 곳으로 돌아와서 처음 본 풍경은...
피투성이로 기절한 듯 보이는 윤성과 그 옆에서 잠들어 있는 성재,
맞은편 나무둥치에 기대어 자고 있는 혜성과 바니였다.
경훈은 자신이 없는 중에 무슨 일이 생겼던 것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경훈은 첫눈에 정훈이 새디스트라는 것 쯤은 단번에 알았기 때문이다.
"푸훗..."
경훈은 그들을 깨우지 않기로 했다.
왠지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평화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민우는 이미 유천의 잭나이프에 찔렸고, 곧 있으면 죽는다.
지원은 자신이 한발 늦었다는 죄책감에 무릎을 꿇었다.
"뭐야, 은지원! 이민우가 대체 뭐냐고!"
불길한 느낌을 받은 유천이 지원에게 다그쳤다.
지원은 모두 체념한 듯한 말투로 유천에게 힘없이 말했다.
"이민우는 어릴 적 헤어졌던 니 형이었어... 내가 너무 늦었던 거야..."
"하아... 뭐? 마, 말도 안 돼. 쟤는 이민우, 나는 박유천. 성이 다르잖아!"
"민우 본명은 박유한... 입양되면서 이름을 바꾼 거지... 너희 둘은 고아원에 있었으니까."
"아니야, 이건 아니라고! 이민우! 뭐라고 말해봐! 아니라고 말하란 말이야! 제발!"
유천이 피를 흘리고 있는 민우를 마구 흔들어댔다.
유천이 사정없이 흔들자 민우가 잠시 눈을 떴다.
"아... 아니지? 은지원이 한 말, 사실 아니지? 응? 말해봐!"
"맞... 아..."
"왜 맨처음부터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어!"
"그건... 나중에 알게 될 거야... 나는 널... 무척이나 소중하게 생각했으니까...
너는 윤호 패거리한테 괴롭힘을 당했지만... 심하게는 하지 않았잖아...?
내가... 부탁하느라...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나중에 대가를 치르기는 했지만...
난... 니가... 나 없이도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어..."
"그건 아니야! 이제야 형을 만났는데... 제발 눈좀 떠봐! 제발...!"
하지만 민우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것이 민우의, 마지막으로 유천에게 전하는 말이었다.
민우의 손이 허리 아래로 툭, 하고 떨어져내렸다.
유천은 자신이 친형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절규했다.
지원의 마음도 편하지 않았다.
자신이 조금만 빨랐더라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지도 모르니까.
하늘은 끝까지 유천의 편은 아니었나 보다... 슬프게도.
+ 남자 16번 이민우 사망 [남은 인원 27명] +
<Battle Royale 21>
혜성은 무언가 불길한 일이 있었음을 직감했다.
봄인데도 불구하고 비가 장마철때처럼 세차게 쏟아져내렸다.
가까이에 있는 창고로 달려가 피했지만 혜성은 불길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왠지, 세차게 내리는 비에 슬픔이 묻어 있는 듯 했다...
최동욱[남자 20번]은 언덕 위에서 세차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서 있었다.
그리고 그런 동욱을 빤히 지켜보고만 있는 정려원[여자 15번].
"비가... 많이 오는군..."
"저, 동욱아."
"......?"
"저, 그게..."
"날 좋아한다는 거겠지? 전부터 알고 있었어. 하지만, 어차피 우리 둘 다 죽어.
쓸데없는 생각은 집어치워. 여기서는 이렇게..."
려원의 목이 갑자기 조여져왔다.
동욱이 려원이 모르게 낚시줄을 감아두었던 것이다.
려원이 숨이 막히는듯 목에 감긴 낚시줄을 풀어보려고 손톱으로 목을 마루 잡아뜯었다.
"커억... 동욱... 이것 풀어줘..."
"내가 왜?"
오히려 낚시줄을 더 세게 잡아당기는 동욱이었다.
려원은, 자신이 저렇게 잔인한 사람을 좋아했다는 것이 분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숨이 막혀 점점 죽어가는 려원을 보며 동욱은 미소짓고 있었다.
동욱의 미소는 정말 놀라울 만큼 섬뜩했다.
동욱이 낚시줄을 점점 세게 당기자 려원도 결국 생명의 끈을 놓고 말았다.
려원의 시체가 힘없이 쓰러졌다.
동욱은 려원의 시체를 흘끗 보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리를 떠났다.
+ 여자 15번 정려원 사망 [남은 인원 26명] +
<Battle Royale 22>
그렇게 세차게 내리던 비가 그쳤고 강렬한 햇빛이 쏟아져 내렸다.
혜성 일행은 잠시 몸을 피해 있던 창고에서 나왔다.
비를 너무 맞았기 때문인지 몰라도 혜성의 시계는 고장이 나서 시간이 멈춰 버렸다.
그 때 스피커에서 다시 Nathan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정오가 된 것이었다.
성재가 미간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으... 난 이제 저 녀석 목소리만 들어도 미치겠어."
[안녕하세요~ 모두 열심히 하고 있겠죠? 지금부터 6시부터 12시까지의 사망자를 알려드릴게요~
역시나 표시하기 쉽도록 번호순으로 불러드릴게요~ 저 착하죠~ 헤헷~!
남자 8번 김호경, 16번 이민우, 18번 정윤호, 여자 15번 정려원 이상 4명입니다~
지난번에 비해서 페이스가 떨어지는데요? 더 분발해주시면 감사하겠어요!
그럼, 다음 방송시간에 봅시다~ 안녕~!]
혜성은 학생 명단에 있는 사망한 아이들을 하나씩 지워갔다.
확실히 지난번보다는 사망한 학생 수가 줄었다.
하지만 언제 또 사망자 수가 급격히 늘어날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성재가 자신의 가방에서 학생 명단을 찾는 걸 포기했는지 혜성에게 말했다.
"우리도 자리를 옮겨야겠어. 한 곳에 오래 있으면 좋지 않아."
"하지만, 민경훈이..."
"민경훈 걱정은 안 해도 돼. 그 녀석은 걱정 없으니까. 그런데..."
"왜 그래?"
"Nathan Lee...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야. 어디서 봤더라...?"
성재는 Nathan의 얼굴을 어디서 봤는지 기억해내려 애썼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시감일지도 모르겠지만 성재는 분명히 어디선가 봤다고 확신했다.
성재는 생각하기를 체념한 듯 혜성 일행과 길을 떠났다.
유천은 절벽 위에 곧 쓰러질 듯 서 있었다.
그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유천에게는 더 이상 살아 갈 이유가 없는 듯 했다.
민우를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는 충격이 매우 큰 듯 했다.
유천의 옆에 정혁이 와서 가만히 섰고, 유천이 입을 열었다.
"문정혁..."
"뭐지?"
"제발 부탁이니까... 날 죽여줘..."
"싫다."
살인광처럼 사람을 마구 죽이고 다니던 정혁이 거절을 하다니.
유천은 힘없이 물었다.
"어째서지...?"
"난... 깊은 상처를 가진 사람은 죽이지 않는다."
"......!"
"괴로운 감정을 죽음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죽는 것보다는 죽이는 게 낫겠지... 아무리 깊은 상처라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
어쩌면 이민우도 너의 기억에서 잊혀지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지."
"......"
"자살같은 바보같은 짓 하지 말고 살아라. 그게 나의 충고다."
정혁은 그 말만 남기고 훌쩍 떠났다.
유천은 정혁도 자신과 비슷한 상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깊은 상처를 지니고 있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
정혁의 조언을 들어서인지, 유천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유천은 민우를 위해서라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Battle Royale 23>
혜성 일행은 방금까지 있던 곳을 떠나 그늘진 언덕 아래로 이동했다.
같은 곳에 오래 있으면 좋지 않다는 성재의 의견 때문이었다.
혜성 일행은 최대한 몸을 숨길 수 있는 자세를 취하고 언덕 위를 경계했다.
그 때, 언덕 위에서 이상한 검은 형체 두 개가 움직였다.
그들은 바로 장나라[여자 14번]와 황보혜정[여자 18번]이었다.
나라의 손에는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성재는 자신이 늘 목에 걸고 다니는 쌍안경으로 나라의 손을 주시했다.
"저건 확성기야! 젠장, 저 애들 도움을 청하려나 봐!"
"뭐?"
"아...!"
바니가 그들에게 도망치라고 비명을 지르려 했다.
그러자 성재가 바니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소리치면 너도 죽어..."
"......!"
나라가 확성기를 입에 가져다 대고 제부도에 있는 학생들 귀에 모두 들릴 정도로 크게 외쳤다.
"얘들아! 모두 듣고 있지? 나 나라야! 지금 혜정이랑 언덕 위에 있어!"
"나라 말대로 나와 나라는 언덕 위에 있어! 이렇게 서로 죽이는 건 무의미한 짓이야!"
"맞아! 우리 서로 도와서 섬을 빠져나가자! 여기는... 컥!"
나라가 손에 들고 있던 확성기를 떨어뜨리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혜정이 뒤를 돌아보았을 때, 이미 목이 잘려진 나라와 피묻은 일본도를 쥐고 있는 정혁이 보였다.
혜정은 비명을 질렀고 그 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제부도 곳곳에 울려퍼졌다.
그 소리를 듣고 그 때까지 성재의 등에 업혀 기절해 있던 윤성이 깨어났다.
"뭐... 뭐야...?"
"젠장, 문정혁..."
성재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때, 정혁의 다른 쪽 손에 들린 서브기관총에서 불꽃이 마구 튀었고,
혜정의 등에서는 피가 마구 관통해 나왔다.
혜정은 그대로 쓰러졌고 정혁은 혜정의 시체를 발로 뻥 찼다.
그리고 정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모습을 감췄다.
혜성은 정혁이 저렇게 무표정으로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처음 본 거라 더 충격이 컸다.
역시 배틀로얄이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죽기 싫으면 죽이던가, 죽던가 이 두 방법뿐이야."
"저기, 장성재."
"갑자기 왜 그러는데, 신혜성."
"그렇게 말하는 너도... 왜 우리를 죽이지 않지?"
혜성의 물은에 성재가 잠시 침묵을 유지했다.
이유가 없는 것인가, 아니면 말할 수 없는 이유인가는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혜성은 그 질문은 잠시 덮어두기로 했다.
한차례 살인의 폭풍이 휘젓고 간 이 곳은, 성재의 등에 업힌 윤성의 잦은 기침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 여자 14번 장나라, 여자 18번 황보혜정 사망 [남은 인원 24명] +
<Battle Royale 24>
혜성은 눈 앞에서 벌어진 살인에 충격을 받아 한참동안 멍하니 있었다.
그런 혜성의 어깨를 성재가 세차게 잡고 흔들었다.
"야, 야! 정신차려!"
"아, 응..."
"겨우 이런 것 가지고 얼이 빠져있으면 어떡해?"
혜성은 마음을 가다듬으려고 했지만 아까 나라의 목이 잘리던 그 순간이 자꾸만 떠올랐다.
문정혁, 그는 어째서 그렇게 아무런 감정도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인가.
윤성에게도 아까의 살인은 충격이었는지 윤성도 혜성처럼 얼이 빠져있었다.
성재는 왜 이런 광경을 보고도 냉정할 수 있을까?
그 때, 뒤에서 누군가가 혜성의 등을 탁 쳤다.
"야, 여기서 뭐해?"
"어, 민경훈! 금방 왔네."
"거 봐, 내가 안 죽을 거라고 했잖아."
죽기는 커녕 상처 하나 없이 돌아온 경훈이 혜성에게는 반가운 존재였다.
혜성은 경훈이 정혁을 만나 어떤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돌아와서 기쁜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무사히 돌아온 거야?"
"아무리 강한 존재도 약점이 잡히면 약해지는 법이야."
성재와 경훈은 배틀로얄 이후 첫 대면이라 처음에는 어색해했다.
그러나 몇 분쯤 지나자 스스럼없이 서로를 대하는 것이 역시 친한 친구사이다웠다.
경훈은 성재의 등에 업힌 윤성을 보더니 풀숲에서 이상한 풀을 뽑아서 윤성의 상처부위에 댔다.
혜성은 경훈이 의학 지식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가만히 있었다.
그 때, 뒤에서 혜성 일행이 아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찾았다."
"너... 넌?"
"난 여기서 반드시 살아남을 거야. 죽어!"
혜성은 그가 겨눈 권총을 보고 이제 죽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이제 이 배틀로얄도 끝인가...
<Battle Royale 25>
혜성은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까딱하면 그가 겨눈 총에 그대로 즉사일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혜성은 마구 심장이 뛰었다.
잘못하다가 제부도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시체들처럼, 그렇게 될 수도 있었다.
혜성에게 권총을 겨누고 있는 그는 바로, 동욱이었다.
동욱의 본성도 이 배틀로얄에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인가...
그 때, 혜성의 목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의해 조여왔다.
동욱이 려원을 죽일 때처럼 혜성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목에 낚시줄을 걸어 놓았던 것이다.
동욱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혜성은 목이 조여와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날아온 무언가에 의해 동욱이 잡고 있던 낚시줄이 끊어졌다.
그 덕분에 혜성은 낚시줄에게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혜성의 목을 조여오던 낚시줄을 잘라준 것은 바로 성재였다.
성재의 손에 들려 있는 드로잉 나이프(Throwing Knife)가 그 사실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성재는 당황하는 동욱에게 차분히 말했다.
"이게 바로 내 무기, 드로잉 나이프다. 최동욱, 너도 역시..."
"날 죽일 셈인가, 장성재?"
"글쎄, 너 하는 거 봐서...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고."
"후훗... 장성재, 칼보다 총이 더 빠르다. 그건 아냐?"
"그래? 하지만 어쩌나... 한번 쏴 보지 그래?"
동욱이 성재를 향해 권총을 쐈다.
그러나 권총 안에는 탄환이 한 발도 남아있지 않았다.
동욱은 려원이 다 써버린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성재는 자신의 손을 펼쳐보였다.
성재의 손 안에는 동욱의 권총에 들어갈 탄환이 쥐어져 있었다.
성재가 동욱이 눈치채치 못하게 탄환을 빼 놓았던 것이다.
"아니, 어떻게?"
"최동욱, 니가 신혜성의 목에 낚시줄을 걸 때 내가 슬쩍했지."
"젠장..."
"이제 어떡할래? 도망치면 사는 거고... 아니면 죽는 거고."
동욱은 잠시 망설이는 듯 했지만 이내 풀숲 안으로 사라졌다.
동욱에게 있어서 그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을 지도 모른다.
혜성은 성재가 아니었으면 죽을 게 뻔했기 때문에 성재에게 고맙다는 뜻을 전했다.
그 때 경훈이 무언가를 감지한 듯 했다.
혜성은 경훈의 눈동자가 한순간 붉은 빛으로 변했다가 다시 갈색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
혜성이 무슨 일이냐고 물을 틈도 없이 경훈은 또 그렇게 어디론가 가 버렸다.
혜성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무슨 일이지?"
"민경훈 저 자식, 혼자서 또 무슨 일을 꾸미려고..."
"장성재, 너 아까 봤어? 민경훈의 눈..."
"봤어... 민경훈, 도대체 정체가 뭐지?"
<Battle Royale 26>
경훈은 방금 자신에게 향한 엄청난 살기를 느끼고 그 근원지로 달려갔다.
경훈이 숲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살기는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경훈은 그 엄청난 살기를 퍼뜨리고 있는 한 여학생을 발견하였다.
그녀는 바로 김윤아[여자 3번]였다.
윤아는 밀짚으로 된 인형에 마구 바늘을 꽂아넣고 있었다.
경훈은 일부러 윤아가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를 냈다.
"누굴 저주하는 거지?"
"아니? 넌 뭐야? 어떻게...?"
"설마 너... 날 저주하고 있었던 거야?"
윤아는 자신이 경훈을 저주하고 있었는데도 경훈이 아무 반응이 없자 당황했다.
윤아의 저주 실력은 학교를 떠돌 정도로 강했다.
그런 윤아의 저주가 통하지 않는다면 경훈은 윤아보다 더 강할지도 모른다.
윤아는 경훈의 눈동자가 붉은 빛으로 변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경훈이 윤아를 향해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섬뜩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저주란 말이지... 이렇게 하는 거라고."
경훈은 자신의 가방에서 A4용지 한 장을 꺼내 사람 형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사람 형상을 한 종이를 윤아의 앞에 대고 흔들었다.
"이 종이로 만든 사람은 바로 너야. 감히 주술사 가문의 후손인 나를 저주하려 들어?"
경훈은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그 사람 형상을 한 종이를 불에 조금씩 태웠다.
그러자 윤아는 갑자기 몸이 타는 듯이 뜨거웠다.
윤아는 마치 화상을 입고 죽을 것처럼 마구 뒹굴었다.
윤아는 그냥 이대로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경훈이 그냥 단번에 끝내주기를 윤아는 간절히 바랬다.
"자... 어떻게 해 줄까? 이대로 그냥 죽여 버릴까?"
"차라리... 죽여... 죽이라고!"
"그럼 소원대로 해 주지."
경훈은 사람 형상을 한 종이의 목을 손으로 찢었다.
그러자 윤아가 몇 초동안 목을 잡고 고통스러워하더니 이내 풀숲에 쓰러졌다.
경훈의 눈동자는 붉은 빛으로 변했다가 다시 다갈색으로 돌아왔다.
경훈은 윤아의 시체를 발로 툭툭 건드려 보고는 다시 혜성이 기다리는 곳으로 향했다.
+ 여자 3번 김윤아 사망 [남은 인원 23명] +
<Battle Royale 27>
혜성은 그렇게 말없이 떠난 경훈을 기다리고 있었다.
혜성은 왠지 불안했다.
방금 전, 숲속에서 윤아의 고통에 겨운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만약 경훈에게도 무슨 일이 일어났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혜성의 걱정은 몇 분도 채 안 되어 깨지고 만다.
경훈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상태로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다.
혜성은 경훈에게 다시 인사를 건네려 입을 열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경훈의 교복 와이셔츠에 묻어있는 단 한 방울의 빗자국이 혜성의 눈에 띄었다.
몇 분 전만 해도 그 핏자국은 없던 것이었다.
그 핏자국은 윤아가 고통스러워하면서 토해낸 피가 튄 것이었지만
경훈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혜성의 얼굴이 햐앟게 질리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한 경훈이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너... 설마..."
혜성이 경훈의 와이셔츠에 튄 핏자국을 가리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경훈이 그제서야 자신의 옷에 윤아의 피가 튄 사실을 눈치챘다.
경훈은 웃으며 혜성에게 대답했다.
"아, 이거? 풀에 묻어있던 피가 그새 묻었나 보다."
"너... 그 숲에서 무슨 짓을 한 거야?"
"흐음... 종이 한 장 찢어버리고 왔어. 그게 다야. 그런데 신혜성 너...
설마 지금 나를 의심하는 거야?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
"아니, 의심하는 게 아니라..."
"변명은 필요없어. 이제부터 갈라지자. 서로 방해되니까."
경훈의 갑작스럽게 차가운 태도로 대하자 혜성은 할 말을 잃었다.
경훈은 말없이 다시 풀숲 속으로 사라졌다.
혜성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생각이 나지 않았다.
사실 혜성은 잘못한 것이 없었다.
경훈의 페이스에 혜성이 말려들어 그런 착각을 일으키게 만든 것이다.
사실, 이 배틀로얄에서 가장 두려운 인물은 문정혁이 아니라 민경훈일 수도 있다.
내면을 드러내지 않는 정혁과 경훈, 둘의 대립의 결과는 과연 어찌될 것인가.
성재는 경훈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경훈이 사라진 곳을 흘겨보며 마구 투덜거렸다.
"민경훈 뭐야? 왔다가 그냥 가버리다니..."
"내가 뭘 잘못했지?"
"넌 잘못한 거 없어. 아무래도 민경훈이 김윤아를 죽인 것 같아. 내 생각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설마 민경훈이 그러겠어?"
"너는 아직도 애들을 친구라고 믿고 있는 거야? 문정혁, 최동욱, 박유천... 얘들을 봐."
"......"
"민경훈도 그렇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어."
성재의 말대로 경훈도 점점 그 추악한 본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껏 친구라고 믿어왔던 아이들이 점점 살인마로 둔갑해가고 있는 이 상황에,
경훈이라고 변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혜성은 믿고 싶었다.
경훈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경훈은 절대로 살인을 저지를 리가 없다고...
<Battle Royale 28>
은혜는 절벽 끝에 위태로운 포즈로 서 있었다.
그녀는 곧 자살할 생각이었다.
죽이고 싶은 마음도, 죽임을 당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 때문이다.
은혜가 바다를 향해 한발 한발씩 걸어가고 있을 때 그녀를 저지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윤은혜!"
은혜는 뒤를 돌아보았다.
은혜의 뒤에는 놀란 표정으로 서 있는 김종민[남자 5번]이 있었다.
종민이 숨을 헐떡거리는 것으로 보아 한참을 뛰어온 것이 분명했다.
"역시... 여기 있었구나."
"어떻게 내가 여기 있을 줄 알았지?"
"그건..."
종민의 말문이 턱 막혔다.
은혜는 종민이 자신을 죽이러 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뒤로 조금씩 조금씩 가다가 마침내 절벽 아래로 떨어져내렸다.
은혜는 이제 모든 게 전부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때, 종민의 손이 은혜의 팔을 덥석 잡았다.
은혜는 놀라서 종민을 올려다보았다.
"어째서 나를..."
"니가 좀전에, 니가 어떻게 여기 있는 줄 알고 있는지 물어봤었지?"
"어? 응..."
"그건... 난 널 잘 아니까. 널 좋아하니까..."
종민은 오래 전부터 은혜를 마음에 담고 있었다.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은혜를 대했던 종민...
"하지만 살아남는 건 한 명뿐이야. 우리가 남는다쳐도, 우리는 서로를 죽일 수밖에 없어."
"그런 소리 말고 어서 올라와! 점점 힘이 빠지고 있으니까..."
"이미 늦었어, 김종민... 다 끝이야."
은혜는 날카로운 손톱으로 종민의 팔을 꾹 찔렀다.
종민의 인상이 구겨지고 종민의 팔에서는 피까지 흘러나왔다.
종민은 그런데도 은혜의 팔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종민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종민의 팔의 힘이 점점 풀렸다.
결국, 종민의 손은 은혜의 팔을 놓쳐버리고 은혜는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안돼!"
종민이 절규했다.
그 때, 종민의 복부를 누군가가 쏜 탄환이 관통했다.
종민은 뒤를 돌아보고는 외쳤다.
"문정혁!"
"그렇게 안타까우면, 같이 가지?"
정혁은 종민의 머리를 서브기관총으로 마구 난사했다.
종민은 그렇게 한순간에 생명의 끈을 놓쳐버렸다.
정혁은 종민의 시체를 절벽 아래로 떨어뜨렸다.
"사랑이라... 그딴 감정이 뭔데..."
+ 남자 5번 김종민, 여자 8번 윤은혜 사망 [남은 인원 21명] +
<Battle Royale 29>
성재는 가방에 든 물건을 하나하나씩 꺼내어 바닥에 펼쳐 놓고 있었다.
물건을 하나씩 꺼내면서 성재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갔다.
혜성이 보기에는 성재가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 했다.
마침내 물건들을 가방에서 전부 꺼내자 성재가 한숨을 쉬었다.
참다 못한 혜성이 성재에게 물었다.
"왜 그래?"
"휴... 아까 내가 최동욱한테서 빼앗은 탄환들이 없어졌어."
"뭐?"
"분명히 여기 가방 안에다가 넣어 두었는데..."
한참을 중얼거리며 가방을 수십번씩 뒤져보던 성재도 탄환이 없다는 것을 이미 확인하고는 포기했다.
성재가 무언가 생각난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젠장..."
"이번엔 왜 그래?"
"김윤성이랑 이바니가 없어졌어!"
그러고보니 바니와 윤성이 어느샌가 사라졌다.
바니는 일방적으로 윤성을 끌고 도망쳐 나왔다.
더 이상 구속받고 싶지 않았을 뿐,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누구 손에 죽던간에 구속받는 것은 싫었다.
바니는 점점 구속에 익숙해지는 자신이 싫어서 도망쳐 나왔던 것이다.
그 때, 풀숲에서 누군가가 윤성을 덮쳤다.
힘이 없는 윤성은 그대로 엎어졌다.
그는 바로 김정훈[남자 4번]이었다.
"찾았다, 김윤성... 크큭... 이번에는 한방에 죽여주마..."
"......!"
바니는 그 다음 장면을 미리 예상하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숲 전체에 윤성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메아리쳤다.
혜성과 성재는 윤성의 비명소리를 듣고 말았다.
성재가 먼저 불길하다는 예감을 안고 입을 열었다.
"이 소리는... 김윤성?"
"설마... 김정훈한테 당한 건가?"
"이번에는 죽었을 거야... 이바니 혼자 해결할 수 있을려나..."
성재는 나무둥치에 걸터앉아 평화롭게 흘러가는 구름만을 쳐다볼 뿐, 아무 말이 없었다.
어쩌면 이미 체념한 듯한 눈빛의 성재였지만, 잘 보면 아니었다.
"이 게임에 익숙해지는 내가 싫어..."
성재의 한탄이었다.
+ 남자 2번 김윤성 사망 [남은 인원 20명] +
<Battle Royale 30>
윤성의 비명소리는 이미 사라졌지만 혜성의 귀에서는 자꾸만 메아리쳐 들리고 있었다.
성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혜성에게 말했다.
"가자, 무슨 일인지 알아봐야겠어."
"아니, 너 혼자 가."
"갑자기 무슨 일이야?"
"분명히 내가 김윤성의 시체를 보면 충격을 받을 거야... 그러니까 혼자 가. 어서!"
"신혜성... 알았다,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려."
성재는 그 말만을 남기고 윤성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곧장 뛰어갔다.
혜성은 이 배틀로얄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혜성만의 착각이었나 보다.
혜성은 아직도 이 배틀로얄에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귀에서 자꾸 메아리치는 윤성의 비명소리를 무시한 채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윤성은 심장마비로 죽었다.
윤성의 몸이 약하다는 것은 정훈도 물론 알고 있었기에 겁을 줘서 죽인 것이다.
정훈은 사실 아무 짓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윤성이 너무 놀라는 바람에 심장마비로 죽어버린 것이다.
사실 윤성에게는 살아있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나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정훈이 윤성을 얼이 빠진 듯 쳐다보고만 있는 바니를 보더니 눈빛이 달라졌다.
정훈의 눈빛을 느낀 바니가 얼굴을 돌려 정훈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그리고, 정훈의 팔에 자신의 무기인 가위를 냅다 꽂았다.
정훈이 비명을 지르더니 팔에 박힌 가위를 손으로 잡고 뽑아냈다.
"이, 이게 무슨 짓이야!"
"너야말로 이게 무슨 짓인데?"
"칫..."
정훈은 이렇게 피가 철철 흐르는 팔로는 안되겠는지 곧장 도망쳤다.
정훈이 가버린 뒤, 바니는 눈을 뜬 채로 죽어 있는 윤성의 눈을 감겨주었다.
그 때 마침 성재가 도착했다.
성재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는지 바니에게 물었다.
"뭐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김정훈이 김윤성을 놀라게 해서 심장마비로 죽었어. 그리고 그 자식이 나한테 다가오길래
내가 가위로 그 자식 팔을 찔러서 도망치게 했지."
"너 생각보다 대단한걸."
"뭐 이 정도 쯤이야..."
성재의 칭찬에 괜시리 기분이 좋아졌던 바니였다.
혜성은 성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혜성의 앞에 누군가가 걸어왔다.
혜성은 혹시 성재인가 해서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성재가 아니라, 바로 정혁이었다.
정혁은 혜성의 머리에 서브기관총을 천천히 겨누었다.
혜성은 이번에야말로 죽는다고 생각하고는 차분하게 정혁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정혁은 서브기관총을 쏠 수가 없었다.
사실 쏘지 못하는 것이었지만 정혁은 알 수가 없었다.
정혁은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와 머리를 감싸쥐었다.
"젠장, 어째서..."
그 말만을 남기고 정혁은 사라졌다.
혜성은 살았다는 안도감보다 왜 정혁이 자신을 쏘지 못했는지가 더 궁금했다.
<Battle Royale 31>
유천은 그 동안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동료를 만들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어느 면으로는 그것이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동료라고 해도 자기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다른 동료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말이다.
그 때 유천에게 다가오는 누군가가 있었으니 바로 동욱이었다.
동욱에게 무기란 성재에게 탄환을 몽땅 빼앗긴 권총 한 자루와 낚시줄뿐이었다.
그렇지만 동욱은 유천이 권총에 탄환이 없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총을 조심스럽게 겨누는 동욱을 유천은 너무나도 침착하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유천의 너무나도 침착한 태도에 당황한 건 동욱이었다.
그 때, 갑자기 유천은 몸에 무언가가 들어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유천은 바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유천의 몸은 아직도 멀쩡했으니, 꼭 누군가가 조종하는 듯 했다.
아니면 다른 사람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일 수도 있다.
유천, 아니 유천의 몸에 있는 다른 의지가 입을 열었다.
"건들지 마..."
"... 뭐?"
"유천이... 건들지 말라고..."
유천의 입에서는 유천의 목소리가 아닌 촥 깔린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유천의 동공은 기절한 듯 풀려 있었지만 다른 의지에 의해 조종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동욱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설마... 이민우?"
<Battle Royale 32>
동욱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다.
유천의 육체에 민우의 영혼이 들어와 있는, 흔히 말해서 빙의라고 불리는 이 현상을...
동욱은 놀라서 손에 들려 있는 권총을 놓칠 뻔 했지만 동욱은 권총을 꽉 잡았다.
유천, 아니 민우는 동공이 풀린 눈으로 동욱을 노려보고 있었다.
동욱은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힌 채 유천의 몸에 들어와 있는 민우에게 말을 걸었다.
"이민우... 니가 어째서 박유천의 몸에 들어와 있는 거지? 너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잖아...!"
댓글 분란 또는 분쟁 때문에
전체 댓글이 블라인드 처리되었습니다.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