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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기억의 전이 – 귀도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귀담, 괴담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왜 우리는 그런 이야기에 끌리는 것일까. 주동근 작가는 <귀도>를 통해 그 질문과 해답을 동시에 내놓는다. 본작은 우리네 전통 괴담에 어린 얼을 계승하는 동시에 오늘날의 사회적, 역사적 문제의식을 자연스럽게 담아내고 있는 수작이며 작가가 시도한 ‘액자식 구성의 한국적인 괴담’의 성공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이 만화가 보통의 공포웹툰, 혹은 해마다 만나는 B급 공포영화와 확연한 차이를 갖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미 대중은 요즈음 공포물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너무 뻔하고 자극적이기만 한 연출과 그 연출에만 집중한 나머지 빈약해진 이야기 구성 때문이다. 이는 사람들이 공포물, 그 중에서도 괴담에 끌리는 이유를 창작자들이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탓이다. 미지의 공포는 탈일상적인 자극을 주고 호기심을 자아내며 잘 빚어낸 괴담들은 이 호기심을 해결해주는 동시에 여운이나 깨달음을 준다. 주동근 작가는 이 과정 중에 어느 한쪽으로도 편중되지 않고 능수능란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최신 유행의 애니메이팅 기법까지 동원했음에도 자극적인 연출은 딱 필요한 정도만 쓴다. 귀신은 괴성과 함께 갑작스럽게 튀어나오지 않고 그저 슥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게 전부인데 온몸에 오한이 서린다. 또한 작가는 이야기의 비밀을 숨기려 하지 않고 호기심을 자연스럽게 해결해준다. 바깥 이야기가 어떤 상황인 지 몇 가지 대사로 쉽게 전달했고 독자들은 댓글을 통해 일찍 상황을 공유했다. 그리고 독자들의 예상은 후반 에피소드에서 적중한다. 하지만 적중의 감탄을 느낄 새도 없이 우리는 소름끼치는 전체 이야기 결말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작가와 우리는 주인공 소녀(주은)가 귀신이라는 사실보다 ‘왜 주인공은 귀신이 될 수밖에 없었을까’라는 이유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몸이 식어가던 소녀는 그 이유 중 하나를 담담히 밝힌다. “저승에서 만나고 싶은 가족 따위는 없었으니까” 공포 이야기에 그럴 수도 있겠나 싶겠지만 “저 귀신이 되서 피눈물을 흘리는 여자가 무섭지 않다...가슴이 아파서 눈물이 나올 지경”라고 고백한 독자(송붕기 – dana****)처럼 많은 이들이 공포마저 잊고 소녀의 아픔에 함께하기도 했다.
귀신 이야기에서 사연(왜 귀신이 되었는가, 왜 귀신은 기행을 하는가)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인데 소홀하게 취급받는 때가 있다. <기찻길 옆> 에피소드처럼 귀신의 짓궂음, 무질서를 비추기 위해서도 있지만 보통은 사연을 호기심을 해결하는 장치로만 여기다 놓쳐버리는 경우다. 그렇게 자극에만 집중하다 사연은 맨 마지막에 겨우 소개되고 독자들은 허술한 결말에 실망을 하거나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와 달리 주동근 작가는 대중이 공유하는 사회의식을 소환해 이야기 전반에 골고루 뿌려놓는다. <반지하괴담>를 보는 내내 떠오르는 비극적인 가족동반자살사건*이 그렇고, <요양병원>의 무대인 오래된 외딴 요양병원과 이에 에피소드 내내 대비되는 젊은 가십(gossip)군중들이 그렇고, 일본의 군국주의화가 지속되는 정세에 등장한 일제강제징용 시설의 현장인 <이누나키 터널>이 그렇다. 우리 사회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흉악범죄는 말할 것도 없다(<골목길 그 여자>, <산행길>).
전체 이야기의 사연은 사회의 더욱 더 깊고 어두운 문제를 복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토막 살인이라는 충격적인 사건 이전에 가려진 가정폭력, 가출청소년, 성노예 문제는 폐쇄적 환경에서 일어나거나 터부시되는 경향이 있어 그 심각함과는 대조적으로 정부나 언론의 진단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눈 감은 시스템 속에 흐름이 정지된 사회. 그 구성원이 어떤 일까지 겪을 수 있는 지, 그리고 그 권역 밖에 선 사람이 금수 이하로 퇴보하고 귀신보다 무서워질 수 있다는 것을 전체 이야기를 통해 엿볼 수 있다.
*14년에 있었던 세 모녀의 자살 사건은 <반지하괴담>의 동기 소재로 추정된다. 이 사건은 서울 송파구 단독주택 지하 1층에 살던 두 딸의 어머니가 14년 2월에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번개탄으로 동반자살을 한 사건이다. 두 딸은 에피소드의 자매와는 다르게 살아나오지 못했다.
왜 귀신 이야기와 사회문제는 동반되는 것일까. <소류지 괴담> 마지막에서 낚시꾼의 추측을 전달하는 대사를 통해 귀신 이야기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알 수 있다.
미지의 현상 중에서도 공포현상은 비극적인 상상력과 맞물려 귀신 이야기를 낳는데 이 비극적인 상상력의 토대가 바로 비극적인 사회현상들이다. 일상에서는 불편하거나 피하고 싶은 현실의 단면들이 얄궂게도 흥미진진하고 소름 돋는 이야기가 되어 다시 대중을 만난다. 그것은 우리가 잊고 싶지만 잊어선 안 되는 기억들이 전이되는 하나의 길인 것이다. 그 길이 올해는 귀도로 통한다.
사진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 '귀도 주동근'
작품 수위: 만화 시작할 때 소개에는 충격적인 장면이 있다고 했지만 심한 편은 아닙니다. 스토리가 원체 좋아서 공포물을 안 좋아하는 분들도(저도 안 좋아함) 한 번 시도해보면 좋겠습니다.
아쉬운 점: 전체 이야기의 인물들이 총 다섯 명인데 남자 세 명의 캐릭터가 외모 빼고 구분이 안돼서 생동감이 좀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크게 신경쓰이는 부분은 아닙니다.
퀴즈: 이 웹툰은 10개의 제목 아래 각각 10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작가님 말로는 이 중 5개가 실화를 차용한 것이고 나머지 5개가 창작 괴담이라고 합니다. 어떤 게 창작괴담으로 보이시나요? 제 생각으론
<반지하 괴담>
<요양병원>
<골목길 그 여자>
<저승사자가 되는 방법>
<저승문>
요 다섯 개인 것 같네요. 뒤에 두 개는 전체 이야기라 창작이 확실하고, 실제 목격담은 약간 밋밋한 구성일 거 같아서 나머지 구성이 복잡한 세 개를 골라봤습니다~
주동근 작가님 귀도 완결을 축하드립니다 ㅎㅎ 다음 작품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