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의 적들은 최소한 그 자리에 걸맞는 무언가는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등등...
오해마세요. 이 사람들이 잘했다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잔인함이든 뻔뻔함이든 교활함이든 치밀함이든 이들은 어떤 한 가지만큼은 분명히 평범한 사람들 이상으로 갖고 있었고, 그것이 이들을 그 자리에 있게 했습니다.
만약 "악인의 미덕"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분명 이들은 그것을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이 사람들은 분명 범인(凡人)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에게 사람 위에 군림할 자격이 있다는 걸 이들은 분명 어떤 형태로든 입증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최순실 게이트는 어떤가요.
자기 소신도 없이 이리저리 치이기만 하는 병신 닭대가리 새끼는 논외로 두더라도, 배후실세라는 최순실이라는 자의 실체도 알고 보니 참 기가 찹니다. 연설문에서 보이는 천박한 단어사용, 많고 많은 나라 중에 하필 독일을 도피처로 삼는 멍청함, 기밀정보가 든 PC를 고스란히 남겨놓고 튀는 부주의함까지... 세련됨이라고는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악행이란 것들도 참 단순하고 일차원적입니다. 딸아이 성적이 안 나오자 대학 쳐들어가서 교수진 압박하고, 연설문이나 국정운영을 걍 지 꼴리는 대로 뜯어고치고, 기업들한테 돈 바치라고 협박하고... 하는 짓이 동네 아줌마 수준을 벗어나질 못합니다. 아니 실제로도 힘이 좀 쎘다는 걸 빼면 그냥 동네 아줌마지요.
이런 게 배후에서 몇년 간 대한민국을 갖고 놀았던 자들의 실체랍니다. 탐욕스러운 자본가도 비밀스러운 지하조직도 아닌, 그냥 무당 아줌마.
이전의 적들에 대해서 우리는 분노했습니다. 그들의 행동에 대해 저주하고 증오하고 이 씨발새끼들 하고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악으로서 일류였기 때문입니다. 뻔히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악행에 무력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맞서고 있는 상대는 삼류입니다. 대통령, 새누리당을 포함해 모두가 삼류 양아치 시정잡배들입니다. 이들이 최순실 게이트를 덮으려는 방식도 참 졸렬합니다. 단식이라는 꼼수, 개헌이라는 꼼수... 아니 꼼수를 쓸거면 쥐새끼처럼 좀 판세를 잘 읽고 교활하게 쓰던가요. 효과는 효과대로 못 보고 비웃음만 남았습니다.
제가 이 사건이 너무나도 허탈한 이유가 그것입니다. 이전의 적들은 증오할 가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그럴 가치마저 느껴지지 않습니다. 너무나도 하는 행동들이 하찮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일개 방송사 하나가 정치판을 좌지우지 하겠습니까? 같은 악이라도 급수라는 게 있는 법인데 이들은 급으로서도 한참 뒤떨어집니다.
이런 작자들이 대한민국을 갖고 놀았습니다. 일반인 이상의 잔인함도 뻔뻔함도 교활함도 치밀함도 없는 삼류 양아치들이요. 대체 대한민국의 수준은 어디까지 떨어진 걸까요?
물론 이들이 치밀하고 빈틈없었다면 우리는 그 꼬리조차 잡지 못했을 테죠. 혹은 삼성처럼 알면서도 손쓸 수가 없던가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그 멍청함에 감사해야겠습니다만...
그래도... 역시 좀 그러네요. 자괴감과 허탈함이 밀려옵니다. 이런 저질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라는 것에 그저 한숨만 나올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