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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백승종 님의 페북 포스팅 - 사이비 교단 영세교/영생교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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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무사이
추천 : 11
조회수 : 96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10/28 11:4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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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교단 영세교/영생교의 종말


1.

나는 오랫동안 <정감록>을 연구했다. 조선의 국시 성리학에 저항한 ‘대항이데올로기’의 실체를 탐구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나는 <정감록>의 여러 얼굴을 발견하게 되었다.

2.

동학, 증산교, 원불교로 이어지는 보편 종교의 뿌리가 <정감록>에 있었다. 그런 사실을 의문의 여지없이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 내게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3.

<정감록>의 저변에는 풍수지리설, 천문(점성술), 음양오행설 못지않게 ‘미륵하생신앙’의 맥맥한 기운이 일관하고 있다. 그와 같은 종교 사상적 전통을 발견한 것도 보람 있는 일이었다고 믿는다.

4.

그러나 나는 <정감록>의 연구를 통하여, 많은 사이비 종교의 교주들의 맨얼굴과 마주쳤다. 그들은 ‘혹세무민’의 주역이요, 세상의 암 덩어리들이었다. 보편적 진리를 담보한 신종교와 사이비 교주의 차이는 무엇인가?

때로 나는 두 집단의 흐릿한 경계선상에서 판단의 길을 잃을 뻔하였다. 종교/사이비종교의 경계는 고장된 것이 아니다. 여러 모로 그것은 모호하고, 유동적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사이비를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결코 아니다.

이른바 교주란 사람이, 그 교단이란 것이 추종자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무엇을 보장하는가? 거기에 답이 있다. 돈과 지상의 권력과 무병장수를 거래하자면, 그것이 사교요, 사이비인 것이다.

5.

지금 문제가 되어 있는 최태민 일가는 누구인가? 그들 역시 <정감록>에 기댄 사람들이다. 미륵신앙에 줄을 댄 사람들이기도 하다. 백교회통(百敎會通)의 전통에 슬며시 올라탄 이들이다. 1970년대 초반까지도 최태민은 계룡산 일대를 어슬렁거렸다. 불교, 기독교, 동학(천도교), 그리고 샤마니즘을 버물러, ‘진인(眞人)’과 미륵 또는 ‘정도령’으로 불리던 구세주를 꿈꾸었던 자가 최태민이다.

구한말부터 1970년대까지 계룡산 일대에는 ‘1인 교단’이 수천을 헤아렸다. 하루에도 몇 개가 새로 들어섰고, 몇 개가 사라져갔다. 최태민의 영세교/영생교도 그 가운데 하나였음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계룡산 포교에 실패한 황해도 출신 전직 경찰관 최태민은 서울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대박을 쳤다. 마치 1882년 임오군란을 피해 충주로 피신한 명성황후(민비)를 찾아간 무당 진령군처럼 말이다. 최태민에게 많은 신자는 없었지만, 당대의 ‘귀인’ 하나가 먹잇감이 되었다.

정조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문양해라는 도사에게 한양의 대갓집 자제 홍복영이 머리를 조아리며 삶의 방향을 물었다. 갑작스런 대갓집의 정치적 몰락으로 패닉에 빠진 이 불쌍한 양반은 전생을 들먹이는 평민(중인) 문양해에게 전 재산을 바쳤고, 사제관계를 맺었다.

6.

최태민은 우여곡절 끝에 갔다. 그러나 그의 영세교/영생교는 살아남았다. 여러 딸 가운데 하나가 그의 역할을 계승했다. 문제의 ‘귀인’은 새로운 교주와의 관계를 이어나갔다. 직간접의 증거는 차고 넘친다. 김재규 씨의 최후진술, 김종필의 격한 한 마디=‘최태민의 아들까지 낳았으면서’ 운운, 박근영/지만 자매가 노태우에게 보낸 편지,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쟁 때 이명박 캠프에서 경쟁자의 이력을 검토한 정두언의 증언, 최근의 박영선 및 박지원의 공적 발언 등이 그러하다. 그들의 발언과 증언은 귀인과 신구 교주와의 밀접한 관계를 입증하는 것이다.

나도 그렇지만 대다수 시민들이 지금 대단히 당황해 하고 있다. JTBC를 비롯해 심지어는 <TV 조선>까지도 연일 ‘구중심처’(九重深處)의 감춰진 비밀을 조명하고 있어서다. 명백한 ‘국정농단’의 정황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 도저히 정상적인 사고로는 불가능한 일들이, 지난 여러 해 동안 버젓이 자행되어온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

이십 년 넘게 <정감록>을 연구해온 나로서도 미쳐 짐작할 수 없었던 일들이다. 영세교/영생교 사이비종교라는 점은 처음부터 명백하였다. 그래도 이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세상을 철저히 농락할 수가 있는가?

이것은 대를 이은 사이비교주의 특별한 능력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이 참극은 미리 막을 수가 있었다. 검찰도, 언론도, 정치권도 사태의 본질을 이미 오래 전부터 파악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침묵하였다. 그들 자신의 이익을 지키고, 키우기 위해 눈감아버린 것이다. 나는 그렇게 판단한다.

7.

괴기스럽고 못난 사이비교단의 교주가 금번 사태의 핵심은 아니다. 고장난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문제이다. 알고도 대충 넘겨버린 우리사회의 지배층, 그들을 감시하고 견제할 기능을 포기한 언론이 더욱 큰 문제다. 정말 역설적인 상황이지만, 손석희라는 종편 사장 한 사람이 우리사회를 정상화하는데 얼마나 큰 기여를 하고 있는가. 믿음직한 손석희 한 사람의 역할을 보더라도, 우리가 나아갈 길은 명확하다. 건강한 시민사회의 회복, 이것이 답이다.

영세교/영생교의 지배는 이미 끝났다. 그와 더불어 대를 이은 독재자의 꿈도 물거품이 되었다. 우리사회는 해방이후 막대한 희생을 통해 일구어온 민주사회 구현의 길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세상의 주인은 우리들 시민이다. 미륵도 진인도 구세주도,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우리 시민사회 자체인 것이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fehlerhaft?fref=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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