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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대기근
게시물ID : humorbest_127190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etropolis
추천 : 60
조회수 : 7832회
댓글수 : 113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6/06/29 12:52:17
원본글 작성시간 : 2016/06/27 20:3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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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시에 위치한 조각상



1847~1852 사이에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대기근. 이 대기근으로 당시 아일랜드 전체 인구의 4분의 1가량이 아사하거나 해외이주를 하게 된다. 아일랜드는 12세기부터 지속적으로 잉글랜드에게 침탈 당해 왔다. 16세기 잉글랜드는 아일랜드에게 가톨릭 대신 성공회를 믿을 것을 강요하였고, 아일랜드인들은 이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였다. 잉글랜드는 이를 무차별적으로 진압하고, 토지를 몰수해 잉글랜드인이나 성공회로 개종한 아일랜드인에게 뿌려버렸다. 나머지 대다수의 아일랜드인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해버렸고, 먹고 살기 위해 '감자'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이 감자를 등에 업고 아일랜드의 인구는 850만까지 늘어나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아일랜드는 정식으로 영국에 합병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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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2년, 미국 동부에서 감자역병이 돌기 시작했고, 이는 배를 타고 유럽으로도 급속히 번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845년, 아일랜드 감자 수확과 함께 기근이 시작되었다. 영국은 밀을 직접 공급하는 한편, 관세를 철폐하는 등의 방법으로 아일랜드로의 식량 공급을 확대하였지만 이를 구매할 여력이 없는 아일랜드의 빈민들에게는 별 소용이 없었을 뿐더러, 이미 기근이 유럽 전역을 휩쓸고 있었기 때문에 식료품 가격은 더 폭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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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846년, 영국 정권이 자유당으로 교체되고 영국은 아일랜드의 구제에 아예 신경을 끄게 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1846년과 47년 겨울, 폭설과 한파가 몰아쳤고 이 때 많은 수의 사망자가 나온다. 뒤늦게 1847년, 구제소를 마련하고 구제에 나서보았지만 자유방임주의에 의해 정부가 직접 개입하면 안되었기 때문에 지역 납세자, 즉 지주들에게 책임을 지우게 된다. 지주들은 이를 감당하기 위해 지대를 낼 여력이 없는 소작농들을 내쫒았지만 이미 지대를 감당할 수 있는 소작농은 아일랜드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결국 지주고 소작농이고 다 망하기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아일랜드 인구는 장기적으로 줄어 독립했을때의 인구는 약 400만 가량이 되었다.
여담으로 대기근 당시 오스만 제국은 아일랜드를 구제하기 위해 1만 파운드를 보내기로 하였으나 빅토리아 여왕이 자기는 2천 파운드만 보냈으니 너네도 조금만 보내라고 해서 1천 파운드를 보내게 된다. 대신 식료품을 실은 배 3척을 몰래 보냈고, 영국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에 이를 전달했다고 한다.




출처 참조 - https://namu.wiki/w/아일랜드%20대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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