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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수와 문세광
게시물ID : sisaarch_68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민주회복
추천 : 0
조회수 : 109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11/01 06:48:26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5.3.20.] 


육영수와 문세광


제 1 부 : 중앙정보부는 문세광을 알았다


문세광의 마지막 탄환은 육영수 여사를 맞혔는가? - 총성, 화면분석 전격 공개!

'배후의 인물' 김호룡, 30년만의 단독 인터뷰 - “나는 배후가 아니다”

경찰 책임자와 청와대 경호관의 증언 - “장관을 만나러 온 사람”?

문세광의 가족과 친구들의 증언- “오사카 요주의 인물 1호 문세광” 

사건 당일 중앙정보부는 문세광을 알고 있었다 - 당일 중정 기록 공개!


1974년 8월 15일 오전 10시.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제 29회 광복절 경축 기념행사가 시작됐다. 

곧이어 울린 7발의 총성과 함께 육영수 여사가 숨을 거뒀다. 

범인은 23살의 재일동포 문세광. 배후는 북의 사주를 받은 조총련 정치부장 김호룡. 

문세광은 대법원 사형선고 3일 만인 12월 20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리고 32년. 

2005년 1월 20일 사건관련 한일 외교문서 공개.

2월 24일 사건 수사기록 공개, 3월 15일 문세광 공소장 공개. 

관련 문서의 잇따른 공개는 사건에 대한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 문세광에겐 육영수를 쏠 탄환이 남지 않았다?

** 30년 만에 입을 연 배후의 인물 “김호룡”

** “장관을 만나러 온 사람입니다”

** 오사카의 요주의 인물 1호 “문세광”

** 8. 15 사건 당일, 중앙정보부는 문세광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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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5.3.27.]


육영수와 문세광


제 2 부 : 문세광을 이용하라


육영수 저격사건의 범인 문세광의 본거지 오사카에는 이 사건이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증인들이 있다. 

문세광의 가족과 한청 동료, 오사카 중앙정보부 정보원들의 증언은 한국의 수사기록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인권탄압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면서 국제적으로 고립됐던 박정희. 

특히 DJ 납치사건은 한일관계까지 악화시켰다. 

이 때, 육영수 저격사건이 일어났다. 

한일관계는 역전됐고 박정희는 난국을 돌파했다. 

과연, 육영수 저격사건은 한일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중앙정보부의 공작이었을까.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문세광의 일본 행적을 좇아 사건의 진실을 추적했다.  


** 사형 20일 전 문세광 면회한 아사히 신문 타메나 기자 단독 인터뷰!   

** 문세광의 자필 활동 수첩 최초 공개!

** 미스터리의 열쇠, 사라진 한 통의 편지

** 조작된 배후,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

** 얼굴 없는 배후, 사라진 금융업자 Y씨

** 오사카 중앙정보부는 문세광을 이용했다?

** 한일관계의 역전, 박정희가 얻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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