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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의 윤리학은 존재하는가
게시물ID : phil_1274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nagarjuna
추천 : 0
조회수 : 1198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5/11/23 20:44:31
앞선 게시물에서  kunstredner님이 타인의 글삭제문제는 단시 사실판단의 문제일 뿐 규범이나 당위의 문제가 아니다라고하는 반론에 대한 논증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타자와의 관계를 가정하는 모든 철학적 문제는 윤리나 규범의 문제로 환원될 수있다고 생각합니다. 논거의 제시를 위해 딱히 바람직한 방법은 아닙니다만 저의 독창적 사유에만 기대기에는 저의 능력이 부족하므로 레비나스와 칸트의 윤리학을 근거로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레비나스의 윤리학에 대해서는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09474 를 참고하시면 되겠네요)

레비나스에 의하면 타자는 동일성 혹은 유한성으로서 존재하는 나의 영역을 초과하는 대상이나 영역입니다. 내가 인식할수있거나 판단 할 수있는 영역으로 존재하는 동일성의 영역과는 달리 타자는 내가 지배할수 있는 영역 너머에 존재합니다. 타자는 내가 알수있 대상이나 영역이 아니므로 칸트적인 물자체이거나 혹은 알수없는 무엇이기에 무한에 대응하는 존재라는 것이죠. 타인의 (댓)글삭제 문제와 관련시켜서 생각해보면 더욱 명확해집니다. 우리는 타인이 나의 글삭제 행위에 동의할지 동의하지 않을지 알수 없습니다. 나의 어떤 "상황"에 따라 타인 즉, 타자가 그것을 용인할 수 있을지의 여부는 오직 타자와의 만남 혹은 부딪힘이라는 사건을 통해서만 사후적으로 경험되는 일일 뿐이지 그것의 용인여부를 우리는 타자의 개입을 배제하고 나 혼자 미리 알 수 없는 영역인 것입니다. 

이처럼 자의적으로 판단불가능한 타자에 대해 동일자의 논리를 강제(자의적 논리로 타인의 글을 삭제하는 행위와 같은)하는 것은 타자에 대한 동일자의 폭력이 될 수있습니다. 레비나스는 서구의 전체주의적 폭력과 식민지배의 역사는 이런 동일자의 타자에의 억압과 지배의 역사였다고 보고 이를 타자의 부름 혹은 호소에 응답하는 환대의 윤리를 제시합니다. 레비나스의 환대의 윤리는 칸트적인 상대적 환대(칸트는 내가 목적으로 존중받을 권리가 있는 것과같이 타인도 동등하게 그런 존중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하는 권리중심적, 상호관계적 환대의 윤리라고 볼수있죠. 주관의식과 객관의식의 상호관계성을 중시하는 헤겔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를 조건부적 환대라고 평가하면서 자신의 환대개념을 "무조건적 환대"로 규정합니다. 타자에 대한 응답의 의무는 주면 받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호소가 있으면 무조건적으로 환대한다는 차원에서 자신의 환대개념을 규정한 것이죠. 

아울러 레비나스는 하이데거의 존재개념은 존재라는 "중립성"가장한 사실상의 동일자의 논리의 연장에 불과하다고 비판합니다. "존재에 집착하게 되면 내것을 지키려하고 독점하려는 타산적 속성"이 개입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레비나스가 보기에 "내가 존재하는 자리"는 이미 타자가 이전에 존재했던 자리를 찬탈함으로써 유지되는 자리이기에 우리는 이 존재성을 넘어서야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무한으로 존재하는 그럼으로써 그 무한으로 내가 존재하는 자리의 유한성이 존재가능하게 되는 무한의 선차성을 주장하게 되는데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는 동일자의 논리로는 알수 없는 관계성에 있으므로 오로지 타자의 호소에 환대해야하는 윤리를 이야기할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죠. 

다시 타인의 글삭제문제로 돌아와 봅시다. 우리는 타인 혹은 타자와 관계했을때 그 즉시 윤리라는 문제와 부딛히게 됩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이 타자와의 관계를 의미하는 행동이 된다면 그것이 아무리 나의 자유라는 명분으로 이루어진다하더라도  그 행동이 타자의 생각을 미리 알고 하는 행동이라기보다 스스로의 행동을 타자에게 임의적으로 주입하는 행동이 될수밖에, 동일자의 타자에 대한 폭력과 같은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것이 타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내가 처한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레비나스가 말한 것처럼 타자가 나라고 하는 유한성을 가능케하는 무한이라기보다 나와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가지는 상호성으로서의 관계라는 칸트적 윤리로 봤을때도 마찬가지 결론이 나옵니다. 내가 글삭제를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면 타자도 동등하게 글삭제를 당하지 않을 권리를 가집니다. 내가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해야만 하는 하나의 인격체라면 타자도 이와 동일하게 대우해야하는 것이 칸트의 윤리학인것이죠. 아울러 칸트의 윤리학에는 알수없는 존재로서의 타자라는 개념이 함축되어있습니다. 칸트 도덕법칙의 정언명령에 의하면 "너의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 타당할 수 있도록 행위하라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주의해야할 부분은 시작은 너의 (주관적)의지의 준칙이라는 점입니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는 타자에대해서는 "물자체"로서만 대응할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는 "보편적 입법의 원리에 타당"할 수있도록 요구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주관적 준칙을 보편적 입법원리화하는 도약이 존재하는데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게 하는 것은 타자에 대해서는 알수없지만 내가 나에게 정당하다라고 생각하는 준칙를 타인에게도 똑같이 상호적으로 적용하라는 윤리성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결국 칸트도 타자와의 우연한 만남이 존재하게 되는 상황에서는 정언명령과 같은 윤리적 실천이성을 요구하였던 것입니다. 

결론내려봅니다. 오유에서의 게시판 글쓰기활동을 포함한 모든 활동은 타자가 개입되지 않는 개인의 활동이 아니라 타자와의 만남을 전제로하는 공공적 성격을 가진 활동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타자와의 관계성을 가지는 순간 우리는 바로 그에 따르는 규범성을 이야기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따라서 제 결론은 예상하시는 바와같이 타인의 (댓)글삭제의 문제에도 규범이라는 윤리나 당위의 문제가 기초로 될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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