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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과 죽창, 그리고 촛불
게시물ID : freeboard_13863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도루코막토
추천 : 0
조회수 : 32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11/05 16:05:45
4.19혁명과 더불어 동학혁명은 미완의 혁명이라고 합니다.
참 이름가지고도 고생이 많았죠. 제가 어린 시절에는 동학란이라고 부르다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니
식민사관을 탈피하고 깨인 지식인들이 동학혁명의 원대한 뜻을 인정하고 
동학농민운동에서 동학농민전쟁까지 그 호칭이 격상되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 한국사 수업을 들었는데, 그때 교수님이 동학혁명이라는 표현을 쓰시면서
아래와 같은 설명을 해주셨지요. (91학번입니다.)
교수님도 비교적 젊은 분이었습니다. 83학번이라고 하셨던가?
이승만을 말씀하시면서 분노와 증오에 이글거리는 표정을 하셨는데, 그 눈빛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이승만 얘기는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집강소라는 행정기관을 두고 민정을 직접 다스렸기에 실질적으로는 완성된 혁명이다.
민비와 썩은 정치인들에 부른 외세에 의해 제대로 된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으나
동학혁명에 외세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조선은 그렇게 무기력하게 식민지화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참가자와 계승자들에 의해서 3.1운동 및 무장독립전쟁부터 정신적으로는 4.19혁명까지 이어졌으니
미완의 혁명이지만 절대로!!! 끝난 혁명이 아니다.
관군과의 전투에서는 연전연승하였으나 압도적인 신식무기를 앞세운 왜놈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죠.
또한, 붙잡혀서 포로가 된 사람보다 전사한 사람이 월등하게 많은 이유는,
왜놈들이 월등한 화력을 바탕으로 썩은 관군(지금도 있지요? 떡찰과 떡검을 말하는 겁니다.)과 더불어 
수많은 병력을 동원하여 쥐몰이 하듯이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하여 잡는 족족 살육한 이유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동학농민군은 외세앞에 풍전등화같은 나라를 구하고자, 
목숨을 아끼지 않고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마지막 한명까지 끝까지 저항했기 때문입니다.
도망가려면 충분히 도망갈 수 있었다고 봅니다. 전국토를 완전히 봉쇄할 수는 없었겠지요.
동학농민혁명군이 사용한 주된 무기는 죽창입니다.  
화승총과 관군에게 노획한 무기를 더러 사용하기는 했으나 수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요.
곧뻗은 대나무를 베어다가 여러 번 삷아서 더 단단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죽창으로 날카롭게 가는거지요.
주변에서 대량으로 구할수 있는데다가 군사훈련을 전혀 받지 않은 농민군이 
비교적 용이하게 다룰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긴 죽창을 들고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저돌적으로 돌격하는 농민군에, 
훈련되고 비교적 근대식 무장화된 관군은 모두 연전연패! 아주 작살이 났지요.
"앉으면 죽산 서면 백산" 이라는 고사는 여기서 나옵니다. 
농민군이 흰옷을 입고 죽창을 들고 전쟁에 임했기에
모두가 서 있으면 흰 물결이 보이고, 앉아 있으면 죽창이 보였다는 연유입니다. 
그렇게 수많은 농민들이 참가하였습니다. 물론, 당시의 서민 절대다수는 농민이었구요.
저는 전투경찰출신입니다. (1407기입니다.)
연세대부터 한양대를 비롯해서 숱한 대학과 철거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곳에 나갔습니다.
팔에는 굵직한 화상흉터도 하나 있습니다. 제 나이무렵의 전투경찰 출신은 흔히 하나씩 가지게 됩니다.
처음 대학로에 나가서 시위대를 마주했을 때의 감정을 생각하면 지금도 두려운 생각도 듭니다.
제대하고 정치에 거의 관심을 안가지고 지내다가 노무현대통령님이 탄핵반대 촛불집회에 참석하게 전부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줄곳 외국에 떠돌고 다녀서 한국에 없었다는 것은 핑계고
전투경찰 후배들과 만나기 싫었다는 이유도 적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더불어민주당 권리당원 등록하고 푼돈으로 당비를 보내면서 대리만족하고 지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미칠듯한 분노로 정말 참을 수가 없습니다.
백여년전 왜군과의 전투에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뛰어 들어간 농민군의 심정을 이제는 알거 같습니다.
왜놈의 기관총 앞에 의지하는 것은 단지 대나무로 만든 죽창이었지만 
그렇게라도 안하면 정말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했을거 같습니다.
4.19는 태어나지 않았고, 80년에는 광주에 없었고, 87항쟁은 어렸다는 핑계를 대면 되지만
만약에…..내 딸내미가
 "아빠! 2016년도에 뭐 했어요? 독재자의 딸이 무당의 꼭두각시로 나라를 말아먹었다면서요?"
혹은
 "왜 그때 바꾸지 않았어요? 안한거에요? 못한거에요?" 
라고 한다면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아빠는 그때 서울에 갔고, 많은 사람들이 참가해 주었단다. 
  민족반역자와 권력의 기생충들이 모두 사라지고 대한민국이 바로 선 것은 바로  
  2016년 11월부터야. 그래서 우리가 "11월운동"이라고 부르고 있는거지."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기득권이 너무 강하고 그들을 물리칠수가 없으니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공생하자."
"김대중, 노무현을 걸쳐 10년 동안에도 못했는데 어떻게 지금 마무리를 짓냐?"
"(언론과 재벌을 포함해서) 그들은 너무 강하다 어떻게 이길 수가 있냐?"
동학농민혁명군도 부패한 관료와 양반을 모두 잡아다가 9족을 멸하고 사형에 처한거 아닙니다.
그들도 원한건 개혁과 공존입니다. 일부 양반층도 호응한 이유가 바로 그렇습니다.
시간이 다소 걸리지만 우리가 먼저 바뀌고, 올바른 역사의식과 사명을 가지고 그들의 의식구조를 바꾸고 
궁극적으로는 모두 바꾸는 겁니다. 10년이 부족하면 20년, 20년이 부족하면 30년 쓰면 됩니다.
다행히도 기득권이라는 민족반역자와 권력의 기생충들이 대한민국의 5%도 되지 않으며
젊은 시절부터 세뇌를 강요받고, 나이 들어서 푼돈에 분쟁을 일으키는 어버이연합도 모두가 노인네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이 진정한 피해자입니다. 정신과 육체를 모두 빼앗긴 사람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더군다나 불의는 그렇게 오래가지 못합니다.
저는 1베충을 그렇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먹이감을 계속 던져주기에 쥐떼처럼 몰려들어서 썩은 먹이감과 진실을 파먹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도 계몽해야 합니다. 박멸이 아니고 계몽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힘이 강하고 다수입니다.
썩은 권력은 그것을 가끔식 까먹고 우리를 허수아비나 바보취급을 하는데
그 대가는 잔인할 정도로 아팠지요. 프랑스혁명, 러시아혁명 등등
다행히도 지금은 우리의 혁명에 외세가 끼어들 분위기가 아니며
설마 80년 광주에서처럼 총질을 또 해대겠습니까? 우리 모두를 죽일 수는 없겠지요
(이 말을 쓰고나서 왜이리 마음이 불안하지요? ㅎㅎㅎㅎㅎㅎㅎㅎ)
어제는 시내에 있는 공원에 갔습니다.
공원중턱에 대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길래 큼직하게 큰 놈을 쓰다듬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오래 있었나봅니다. 
마누라가 거기거 뭐하냐고 소리를 버럭 지르더군요.
그리고 저녁에 나온 메뉴가 죽순요리입니다. ㅎㅎ
우리는 우리의 대통령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가 가신 후에도 그 빈소를 끝까지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를 위해서 충분히 묵념도 못해보고 울지도 못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힘들게 만들어낸 민주국가가 지금 다시 침탈을 당했습니다.
무식한 무당 하나가 나라가 송두리째 흔들었고
권력의 개와 기생충들은 대부분 모른척하거나 
자신의 권력과 부를 잃지 않으려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아침부터 마음 속에 대나무를 하나 반듯하게 세워놓고 날카롭게 깎고 있습니다.
그 옆에는 활활 타오르는 횃불도 하나 있구요.
불과 얼마 전에 우리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촛불을 
그들이 어떻게 밟아버리고 꺼트렸는지 저는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마음속에 깎은 죽창과 횃불이지만
저들이 그래도 민심의 외침에 불응한다면
저는 다시 대나무밭을 찾아가겠습니다.
이번에는 마음속에 깎아 놓은 관념이 아니라 진짜로 대나무를 베어다가 깎겠습니다.
우리의 선조들이 그리하였듯이 죽창을 들고 죽을때까지 전진하겠습니다.
어쩌면 우리 세대의 유일한 기회인지도 모릅니다.
다음 세대까지 또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지 모르며, 
암흑이 역사가 진실인양 오보되고 둔갑하여 역사책에 남을지 모릅니다.
두렵습니다.
그리고, 흥분됩니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우리가 힘이 있음을 스스로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힘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시간과 기회는 충분히 줬습니다.
아니, 지나치게 줬습니다.
여전히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들은 2016년 11월 전국의 시내에서 수백만의 횃불을 든 죽창부대를 만나게 될것입니다.
남은 것은 하나입니다.
끝까지 싸우고 항거하고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것!!!!
아직은 제 손에 촛불을 들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것을 알아 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제 마음속에 훨훨 타오르고 있는 횃불과
서슬프르게 날이 서있는 죽창도 봐 주었으면 합니다.
저희 선조가 임진왜란때 길주에서 의병을 일으켜서 왜군의 주력부대인 가등청정을 몰아내고
북관대첩을 승리로 이끈 정문부 장군입니다.
(학번에 성씨에 전경 몇기까지 알렸으니 내일 아침에 국정원에서 연락이 오겠네요. ㅎㅎ 죽창 만들어놔야겠습니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에게 이런 말을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집에 구전되는 이야기라고 해야 하나요?
"첨에는 왜놈들이 무서웠다고 한다. 피갑칠을 하고 사람을 죽여대니 사람처럼 안보였지.
얼굴에는 귀신가면을 쓰고, 조총을 쏴대면서 사람보다 큰 칼을 휘둘려 대는데 그게 사람으로 보이겠냐?
근데 말이야. 
의병이 악에 받쳐서 곡괭이로 찍었는데 한방에 고꾸러져 뒈지더란 말이지.
알고보니 왜놈들이 강한게 아니라 농민들의 두려움이 컸던거야"
박근혜=최순실=새누리=떡찰과 떡검
출처 본인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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