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과 더불어 동학혁명은 미완의 혁명이라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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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름가지고도 고생이 많았죠. 제가 어린 시절에는 동학란이라고 부르다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니 |
식민사관을 탈피하고 깨인 지식인들이 동학혁명의 원대한 뜻을 인정하고 |
동학농민운동에서 동학농민전쟁까지 그 호칭이 격상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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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들어가서 한국사 수업을 들었는데, 그때 교수님이 동학혁명이라는 표현을 쓰시면서 |
아래와 같은 설명을 해주셨지요. (91학번입니다.) |
교수님도 비교적 젊은 분이었습니다. 83학번이라고 하셨던가? |
이승만을 말씀하시면서 분노와 증오에 이글거리는 표정을 하셨는데, 그 눈빛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
이승만 얘기는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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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강소라는 행정기관을 두고 민정을 직접 다스렸기에 실질적으로는 완성된 혁명이다. |
민비와 썩은 정치인들에 부른 외세에 의해 제대로 된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으나 |
동학혁명에 외세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조선은 그렇게 무기력하게 식민지화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하지만, 그 참가자와 계승자들에 의해서 3.1운동 및 무장독립전쟁부터 정신적으로는 4.19혁명까지 이어졌으니 |
미완의 혁명이지만 절대로!!! 끝난 혁명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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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군과의 전투에서는 연전연승하였으나 압도적인 신식무기를 앞세운 왜놈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죠. |
또한, 붙잡혀서 포로가 된 사람보다 전사한 사람이 월등하게 많은 이유는, |
왜놈들이 월등한 화력을 바탕으로 썩은 관군(지금도 있지요? 떡찰과 떡검을 말하는 겁니다.)과 더불어 |
수많은 병력을 동원하여 쥐몰이 하듯이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하여 잡는 족족 살육한 이유도 있지만, |
더 중요한 것은, 동학농민군은 외세앞에 풍전등화같은 나라를 구하고자, |
목숨을 아끼지 않고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마지막 한명까지 끝까지 저항했기 때문입니다. |
도망가려면 충분히 도망갈 수 있었다고 봅니다. 전국토를 완전히 봉쇄할 수는 없었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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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군이 사용한 주된 무기는 죽창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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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승총과 관군에게 노획한 무기를 더러 사용하기는 했으나 수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요. |
곧뻗은 대나무를 베어다가 여러 번 삷아서 더 단단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죽창으로 날카롭게 가는거지요. |
주변에서 대량으로 구할수 있는데다가 군사훈련을 전혀 받지 않은 농민군이 |
비교적 용이하게 다룰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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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긴 죽창을 들고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저돌적으로 돌격하는 농민군에, |
훈련되고 비교적 근대식 무장화된 관군은 모두 연전연패! 아주 작살이 났지요. |
"앉으면 죽산 서면 백산" 이라는 고사는 여기서 나옵니다. |
농민군이 흰옷을 입고 죽창을 들고 전쟁에 임했기에 |
모두가 서 있으면 흰 물결이 보이고, 앉아 있으면 죽창이 보였다는 연유입니다. |
그렇게 수많은 농민들이 참가하였습니다. 물론, 당시의 서민 절대다수는 농민이었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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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전투경찰출신입니다. (1407기입니다.) |
연세대부터 한양대를 비롯해서 숱한 대학과 철거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곳에 나갔습니다. |
팔에는 굵직한 화상흉터도 하나 있습니다. 제 나이무렵의 전투경찰 출신은 흔히 하나씩 가지게 됩니다. |
처음 대학로에 나가서 시위대를 마주했을 때의 감정을 생각하면 지금도 두려운 생각도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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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하고 정치에 거의 관심을 안가지고 지내다가 노무현대통령님이 탄핵반대 촛불집회에 참석하게 전부입니다. |
대학을 졸업하고 줄곳 외국에 떠돌고 다녀서 한국에 없었다는 것은 핑계고 |
전투경찰 후배들과 만나기 싫었다는 이유도 적지 않습니다. |
최근에는 더불어민주당 권리당원 등록하고 푼돈으로 당비를 보내면서 대리만족하고 지냈습니다. |
부끄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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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
이제는 미칠듯한 분노로 정말 참을 수가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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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년전 왜군과의 전투에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뛰어 들어간 농민군의 심정을 이제는 알거 같습니다. |
왜놈의 기관총 앞에 의지하는 것은 단지 대나무로 만든 죽창이었지만 |
그렇게라도 안하면 정말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했을거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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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는 태어나지 않았고, 80년에는 광주에 없었고, 87항쟁은 어렸다는 핑계를 대면 되지만 |
만약에…..내 딸내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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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2016년도에 뭐 했어요? 독재자의 딸이 무당의 꼭두각시로 나라를 말아먹었다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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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
"왜 그때 바꾸지 않았어요? 안한거에요? 못한거에요?" |
라고 한다면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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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
"아빠는 그때 서울에 갔고, 많은 사람들이 참가해 주었단다. |
민족반역자와 권력의 기생충들이 모두 사라지고 대한민국이 바로 선 것은 바로 |
2016년 11월부터야. 그래서 우리가 "11월운동"이라고 부르고 있는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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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
"기득권이 너무 강하고 그들을 물리칠수가 없으니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공생하자." |
"김대중, 노무현을 걸쳐 10년 동안에도 못했는데 어떻게 지금 마무리를 짓냐?" |
"(언론과 재벌을 포함해서) 그들은 너무 강하다 어떻게 이길 수가 있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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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군도 부패한 관료와 양반을 모두 잡아다가 9족을 멸하고 사형에 처한거 아닙니다. |
그들도 원한건 개혁과 공존입니다. 일부 양반층도 호응한 이유가 바로 그렇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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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다소 걸리지만 우리가 먼저 바뀌고, 올바른 역사의식과 사명을 가지고 그들의 의식구조를 바꾸고 |
궁극적으로는 모두 바꾸는 겁니다. 10년이 부족하면 20년, 20년이 부족하면 30년 쓰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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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기득권이라는 민족반역자와 권력의 기생충들이 대한민국의 5%도 되지 않으며 |
젊은 시절부터 세뇌를 강요받고, 나이 들어서 푼돈에 분쟁을 일으키는 어버이연합도 모두가 노인네입니다. |
(어떻게 보면 그들이 진정한 피해자입니다. 정신과 육체를 모두 빼앗긴 사람들……) |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더군다나 불의는 그렇게 오래가지 못합니다. |
저는 1베충을 그렇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
먹이감을 계속 던져주기에 쥐떼처럼 몰려들어서 썩은 먹이감과 진실을 파먹고 있을 뿐입니다. |
그들도 계몽해야 합니다. 박멸이 아니고 계몽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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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힘이 강하고 다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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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권력은 그것을 가끔식 까먹고 우리를 허수아비나 바보취급을 하는데 |
그 대가는 잔인할 정도로 아팠지요. 프랑스혁명, 러시아혁명 등등 |
다행히도 지금은 우리의 혁명에 외세가 끼어들 분위기가 아니며 |
설마 80년 광주에서처럼 총질을 또 해대겠습니까? 우리 모두를 죽일 수는 없겠지요 |
(이 말을 쓰고나서 왜이리 마음이 불안하지요? ㅎㅎㅎㅎㅎㅎ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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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시내에 있는 공원에 갔습니다. |
공원중턱에 대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길래 큼직하게 큰 놈을 쓰다듬고 있었는데 |
생각보다 오래 있었나봅니다. |
마누라가 거기거 뭐하냐고 소리를 버럭 지르더군요. |
그리고 저녁에 나온 메뉴가 죽순요리입니다.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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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의 대통령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
그가 가신 후에도 그 빈소를 끝까지 지키지 못했습니다. |
그를 위해서 충분히 묵념도 못해보고 울지도 못했습니다. |
그가 그렇게 힘들게 만들어낸 민주국가가 지금 다시 침탈을 당했습니다. |
무식한 무당 하나가 나라가 송두리째 흔들었고 |
권력의 개와 기생충들은 대부분 모른척하거나 |
자신의 권력과 부를 잃지 않으려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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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마음 속에 대나무를 하나 반듯하게 세워놓고 날카롭게 깎고 있습니다. |
그 옆에는 활활 타오르는 횃불도 하나 있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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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얼마 전에 우리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촛불을 |
그들이 어떻게 밟아버리고 꺼트렸는지 저는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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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마음속에 깎은 죽창과 횃불이지만 |
저들이 그래도 민심의 외침에 불응한다면 |
저는 다시 대나무밭을 찾아가겠습니다. |
이번에는 마음속에 깎아 놓은 관념이 아니라 진짜로 대나무를 베어다가 깎겠습니다. |
우리의 선조들이 그리하였듯이 죽창을 들고 죽을때까지 전진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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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 세대의 유일한 기회인지도 모릅니다. |
다음 세대까지 또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지 모르며, |
암흑이 역사가 진실인양 오보되고 둔갑하여 역사책에 남을지 모릅니다. |
두렵습니다. |
그리고, 흥분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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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
우리가 힘이 있음을 스스로 깨닫는 것입니다. |
그리고, 그 힘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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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기회는 충분히 줬습니다. |
아니, 지나치게 줬습니다. |
여전히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
그들은 2016년 11월 전국의 시내에서 수백만의 횃불을 든 죽창부대를 만나게 될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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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것은 하나입니다. |
끝까지 싸우고 항거하고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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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제 손에 촛불을 들고 있습니다. |
그들이 그것을 알아 주었으면 합니다. |
그리고, 제 마음속에 훨훨 타오르고 있는 횃불과 |
서슬프르게 날이 서있는 죽창도 봐 주었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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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선조가 임진왜란때 길주에서 의병을 일으켜서 왜군의 주력부대인 가등청정을 몰아내고 |
북관대첩을 승리로 이끈 정문부 장군입니다. |
(학번에 성씨에 전경 몇기까지 알렸으니 내일 아침에 국정원에서 연락이 오겠네요. ㅎㅎ 죽창 만들어놔야겠습니다.) |
어린 시절에 아버지에게 이런 말을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
뭐라고 해야 하나? 집에 구전되는 이야기라고 해야 하나요? |
"첨에는 왜놈들이 무서웠다고 한다. 피갑칠을 하고 사람을 죽여대니 사람처럼 안보였지. |
얼굴에는 귀신가면을 쓰고, 조총을 쏴대면서 사람보다 큰 칼을 휘둘려 대는데 그게 사람으로 보이겠냐? |
근데 말이야. |
의병이 악에 받쳐서 곡괭이로 찍었는데 한방에 고꾸러져 뒈지더란 말이지. |
알고보니 왜놈들이 강한게 아니라 농민들의 두려움이 컸던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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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새누리=떡찰과 떡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