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프랑스 베르됭에서 전사하는 순간의 한 프랑스군>
위 사진은 제 1차 세계대전 당시의 가장 큰 전투 중에 하나였던
베르됭 전투에서 적진을 향해 진격하던 한 프랑스 병사가 전사하는 순간을
찍은 사진으로 제 1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알리는 얼마 안되는
아주 귀중한 사진 중에 하나이다.
적진을 향해 포격을 퍼부은 뒤 아군 참호에서 병사들이 나와서 적진을 향해 진격하면
적군의 참호에서 기관총이 불을 뿜어 진격하던 병사들은 엄청난 희생만 내고 쓰러져
다시 물러서야만 했던 전진도 후퇴도 없는 끊임없는 소모전..........
운이 좋은 병사는 적진에 도달하였으나 그곳에는 적의 총검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
이것을 양측이 번갈아서 시도하였고 그때마다 얻는 것은 희생자의 증가였을 뿐 서로
한치의 땅도 더 차지하지 못하여 시체의 산만을 높이고 있었다.
아아 정녕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던가...
신이여 어서 빨리 이 전쟁을 거두소서..........
이렇게 전쟁터에서 죽이는 자도 죽임을 당하는 자도 모두 귀중한 한 생명이 아니었던가....
전쟁 반대!!!!!!!!!!!!!!!
<참고> 베르됭 전투
제 1차 세계대전 중 있었던 가장 규모가 큰 전투중의 하나..
독일이 프랑스 파리를 점령하기 위하여 1916년 3월 엄청난 희생을 무릅쓰고
베르됭 방면의 프랑스군 진지를 향해 총 공격을 퍼부음으로써 시작되었다.
하지만 프랑스군은 페탱 장군의 지휘아래 독일군의 가공할 만한
공격을 막아내었으며 이 전투에서만 무려 프랑스군 35만명, 독일군 33만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그리고 이 전투는 양쪽 모두에게
베르됭의 지옥이라고 불렸다.
<프랑스에 있는 한 독일 병사의 묘지, 1915년 3월 15일 여기 잠들었다고 적혀있다.>
이 병사는 전사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과연 이 전쟁은 누구를 위한 전쟁이며 누구에 의한 전쟁이었단 말인가?
"참호 안에는 아주 끔찍하게 죽어있는 병사가 있었다. .......
우리는 구역질이 나려는 것을 참고 스스로를 억눌러야만 했다.
참호 곳곳에 피가 고여 있고 독일군과 프랑스군의 시체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통로는 거의 다 박혀 걸어다니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시체들을 넘어다녀야만 했다."
<23세의 나이로 이 전쟁에 참가했던 아우구스트라는 병사가 보낸 편지 중에서..
이 병사도 이 편지를 보낸 뒤 17일 후에 전사하였다.>
"우리는 빨리 가서 폭탄에 바로 맞은 그 병사를 구조하려고 했다.
그 병사의 하체는 완전히 빨간 피로 물들어있었다.
그 병사의 바지를 신속하게 찢어보니 그것은 사람의 다리가 아니라 차라리
포탄파편과 뼛조각을 섞어 만든 살 죽이라고 하는 것이 맞은 것 같았다.
비명을 지르는 이 병사도 이제 몇 시간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레마르크의 소설 서부전선 이상없다 중에서...
레마르크는 본인이 직접 이 전쟁에 참가했으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다.>
"독일이 세계 최초로 독가스를 사용한 것이었다.
영국과 프랑스의 병사들은 젖은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감싼채 질식되어 고통스럽게 죽어갔으며 이에 질세라
영국과 프랑스도 신속하게 독가스를 개발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가장 잔인하다는 화학전이 벌어진 것이다."
<서양의 역사 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