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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생명은 존엄하며 존중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게시물ID : phil_147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에가오데스
추천 : 3
조회수 : 1301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6/11/09 07:42:38
생명은 정말 존엄한것일까요?
존엄한 생명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초등학교때 과학선생님이 이런 문제를 내신적이 있습니다.
오토바이는 어째서 생명체가 아니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지금이라면 '오토바이는 유기체가 아니다'정도의 답을 내놓겠지만
당시에는 생명의 정의같은건 전혀 몰랐기때문에 밥(기름)을먹고 소화(연소)를 시켜서 움직이는 오토바이는 생명체와 다를바가 없다는 궤변에 아무도 반박을 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누군가 '오토바이는 생각을 하지 못하잖아요' '감정이 없잖아요'라고 반론하자 선생님은 '나무나 식물도 감정이 없다. 하지만 그것들은 생명체다'라고 되돌려주었습니다.
누군가 과학선생님의 오토바이에 장난을 쳐서, 재발방지목적으로 유쾌한 훈계를 하신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에게 있어서는 아직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문제입니다.
 
1.그렇다면 인간은 과학적인 정의의-자극에 대한 반응이나, 세포의 분열/성장같은- 카테고리에 속하는 존재를 생물로 인정하고 그것들에 대한 존엄성만을 인정하면 되는것일까요?
그렇게 되면 식물의 생명또한 존엄하다는것을 인정해야하며, 그것역시 다른 생명과 경중없이 대해야할것입니다.
동물학대법옆에는 식물학대법이 자리잡아야 할것이며 충분한 햇볕을 받지 못하며 자라는 식물에 대한 학대혐의가 인정되어 그 주인에게 징역형이나 벌금형을 내려야 겠지만...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이야기죠.
식물의 생명과 동물의 생명사이에 무게차가 생기는 차이는 무엇일까요?
 
2.그렇다면 감정이 중요한것일까요? 감정을 가지지 못한 생명과, 감정을 가진 생명은 그 무게가 차이가 있는것일까요?
과학적인 생명의 조건중에서는 자극에 대한 반응이란 것이 있습니다.
감정이란것이 어떠한 자극에 대하며 뇌가 내뿜는 화학물질의 변화라고 정의한다면, 뇌가 없는 식물의 생명은 굳이 존중해줄 가치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시들어가는 화분속의 꽃에 대한 연민은 개인의 감수성에 국한될 문제이지 사회적인 문제는 결단코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곤충이나 어류는 어떻습니까? 그것들은 개체차는 있을지라도 분명히 뇌가있으며, 화학반응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죽어가는 물고기에 대해서 지켜지지 못한 생명의 존엄성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정말이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단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을 도끼로 죽이다.
개를 도끼로 죽이다.
나무를 도끼로 부수다.
벌레를 도끼로 죽이다.
물고기를 도끼로 죽이다.
 
다섯가지 문장은 분명히 경중이 있습니다.
어째서일까요?
개를 죽인사람이 뭇매를 맞아도 벌레를 죽인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생명'은, '생명의 존엄성'은 어째서 그 자체로 평등하지 못할까요?
 
제 나름대로 답을 도출하기를, 우리는 결국에는 인간이고, 인간중심-정확히는 자기중심-에서밖에 생각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합니다.
나무는 차치하고, 벌레나, 물고기도 슬퍼하여 운다거나, 죽음의 공포로 발버둥친다고 한들 인간은 느끼지 못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같은 인간의 눈물이 제일 먼저 와닿을 것이며, 그 다음으로는 감정체계가 가장 유사한 포유류들의 눈물이 와 닿을 것입니다.
때문에 그들에게 '생명'이 있다는 것을 실질적으로 느낄 수 있으며 그에대한 공감과, 그들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 대해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을 동일시하려는 경향을 가지고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해봅니다.
나머지는 그야말로 초월적인 이해력-혹은 감수성-이 필요한 개체들이기 때문에, 그만큼 존중과 존엄에서 멀지 않나 싶습니다.
바위도 나름대로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모순이 생깁니다.
 
 
3.생명의 존엄을 부여하는것이 인간이라면, 과연 그 경계는 어디까지일까요?
피그말리온은 상아상을 사랑하여 인간과 똑같이 생각하고, 사랑했으며 종내에는 여신이 감탄하여 살아서 움직이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상아상이 생명을 가지는 시점은 여신의 은총이 닿기 전에 있을까요? 후에 있을까요? (판타지적인 이야기입니다만.)
 
여기서 한가지 더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주변인들의 시선입니다.
당시에 살던 사람들(어디까지나 상상으로)은 상아상에게 말을거는 피그말리온을 비웃었고, 여신의 은총이 내려진 후에야 기적에 감탄했을것입니다.
그들이 상아처녀를 생명으로 인정한 시점은 어디까지나 은총이후겠죠.
그렇다면 생명의 존엄에는 다수의 인간의 인정이 필수불가결합니까?
그 다수란 어느정도의 숫자입니까?
 
존엄이란 것은 결국 그 생명자체가 스스로 획득하지 못하는 성질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만들어낸 무형의 가치중 하나가 존엄이란 개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사회의 직접적인 구성원인 인간을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의 존엄성은 결국 그 존엄성을 존중해줄 인간이 결정한다는 이야기가 되는걸까요?
그 숫자의 다소가 생명의 존엄을 결정한다면, 소수의 의견도 존중하는 민주사회에서나 존재하는것이 모든 생명의 존엄이란 말입니까?
 
개의 생명이 존엄을 가지며 그것이 생명의 천부적인 존엄이 아니라 단지 인간이 부여한 사회적인 의미의 존엄이라면 우리는 개의 생명을 존중하는것입니까? 아니면 개의 주인의 성향을 존중하는것입니까?
 
그렇다면 상아상을 생명이라고 생각하는 정체불명의 컬트집단이 그 숫자를 불려나간다면 상아상은 존엄성을 가지게 될까요?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상아상을 존중하는걸까요? 아니면 그 컬트집단을 존중하는걸까요?
아니라면, 존엄성은 생명이후에 있는것일까요?
 
그렇다면 만약 인간의 과학이 고도로 발전하여 정말 인간과 분간이 안가는 로보트를 만들고, 그 로보트가 인간과 똑같은 감정표현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생명을 가지지 못한 로보트라도 존엄성을 가질 수 있을까요?
없다면, 인간과 똑같은 로보트를 도끼로 패부수는 인간을 보며 우리는 손가락질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 생명체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존엄성을 부여하고 존중으로 이어진다면, 생명은 결국 절대적으로 존엄한것이 아닐지도 모르는걸까요?
개의 생명이 존엄성을 잃고, 강아지풀의 생명이 존엄성을 얻으며, 생명이 없는 상아상이 존엄성을 얻을지도 모르는 세상이 올지도 모르는걸까요?
도끼로 장작을 팼다는 문장과 도끼로 개를 팼다는 문장이 동일한 무게를 가지게 될지도 모르는걸까요?
그중에 인간의 존엄성은 끝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요? 혹은,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전제하라면 다른 생명체에 대한 존중을 내버려도 되는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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