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대표팀이 10일(한국시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라운드 훈련지인 미국 애리조나에 입성했다. 9일 아시아라운드(A조) 1, 2위 결정전에서 숙적 일본을 1-0으로 꺾은 기쁨을 채 만끽할 겨를 도 없이 부리나케 도쿄 하네다공항으로 이동해 전세기를 타고 장장 11시간의 비행 끝에 애리조나 피닉스 공항에 도착했다. 애리조나에서 훈련캠프를 차린 한국은 오는 14일 샌디에이고로 이동해 16일부터 B조(쿠바 멕시코 호주 남아공) 1,2위와 2라운드 경기를 치른다.
몸은 고단했지만 비행기에 몸을 실은 선수들은 일본에 통쾌한 설욕전을 마친 뒤 승리에 대한 뒤풀이가 없을 수 없었다. 전세기의 실내를 개조해 전원이 비지니스석에 탑승한 선수들은 숙면을 취할 수도 있었지만 한일전 승리의 감흥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쉴새없이 이야기 꽃을 피웠다. 아시아라운드를 마치고 전세기에 오른 선수단의 뒷얘기를 풀어봤다.
◇봉중근 어필은 미리 짜여진 각본이었다
봉중근은 비행기안에서 9일 일본전의 숨겨진 비화를 털어놨다. 일본전 선발로 나온 그는 1회 말 첫 타자 스즈키 이치로 타석 때 관중석에서 카메라 조명을 터트리며 투구 방해작전을 펼치자, 피칭을 그만 두고 주심에게 항의했는데 이게 우연히 나온 게 아니었다. 양상문 투수코치와 사전에 짠 각본대로 한 행동, 즉 작전의 하나였다는 설명이다. 일본과 2차전에서 힘을 내세워 서두르다가 실패한 김광현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상대의 호흡을 끊고 기선을 제압하기로 미리 약속했던 것. 4회 말 나카지마 히로유키의 안타 뒤 보크 때 2루심에게 유창한 영어로 항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봉중근은 같은 소속팀인 양 코치에게 일본전 선발 등판을 시위해 결국 뜻을 관철시켰다. 물론 일본이 김광현 류현진 분석에 집중하고 봉중근에는 등한시한 것을 코칭스태프가 역이용한 것이다.
◇임창용, " 번트해줘 고마웠다 "
전날 일본전에서 8회 말 류현진에 이어 1사후 주자 이치로를 1루에 두고 마운드를 넘겨받은 임창용은 일본 2번타자 나카지마가 보내기번트를 댄 상황을 얘기하며 만면에 웃음을 지어보였다. 타석의 나카지마는 타격감이 가장 좋은 선수고, 이치로는 발 빠른 주자였던 터라 내심 경계를 크게 했다고 고백했다. 1사후 상대의 보내기번트로 아웃카운트 하나를 더 쉽게 잡고 나니 마운드에서 투구하기 수월했다며 " (일본이) 번트를 해줘서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 며 신이 나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한국 대이동 작전, 전세기 출발 하루 미뤄질 뻔
한국은 일본과의 순위결정전이 끝난 뒤 인터뷰 등을 끝내고 오후 10시30분 도쿄돔을 떠났다. 그리고 30분만에 하네다 공항에 도착해 다시 30분만인 11시30분 예정대로 미국으로 떠났다. 1시간 만에 이동과 수속 등을 모두 하기에는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일. 주최측과 공항의 절대적 협조가 있었다. 만약 경기가 조금만 늦어졌다면 전세기를 탈수 없었다. 하네다공항은 11시반 폐쇄되고 다시 문을 여는 새벽 3시반에나 출국할 수 있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하루를 손해볼 수 있었다.참으로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애리조나에 도착한 정금조 한국야구위원회 운영부장은 " 피를 말리는 대 이동작전이었다.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 고 긴박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한·일 어색한 조우
한국 선수들은 하네다 공항에서 출국을 위해 대기하는 짧은 시간에 역시 미국행 비행기를 타러가던 일본 선수들과 어색한 만남을 가졌다. 화기애애한 한국 선수들과는 달리 일본 선수들은 궂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채 옆을 스쳐갔다고 설명하며 선수들은 " 자칫 우리가 패했으면 어쩔 뻔했느냐 " 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