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내가 아름다움에게 욕설을 퍼부어주었더니 이번엔 랭보가 내 따귀를 때렸다.
게시물ID : readers_268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거세된양말
추천 : 0
조회수 : 23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11/10 22:19:21
옵션
  • 창작글
자기소개: 아마도 글쓴지 10년 이상 되는 아저씨입니다. 근데 아저씨가 될때까지 이룬게 없네요.
오늘의 한마디: 도스토옙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는 읽을때마다 작가가 제 얼굴에 침을 촥촥 뱉는 것 같아요.


쌍싸다구!
(2016년10월)

나의 한 명



너는 그곳에 서있어. 흰색의 램프를 들고, 밤새 도시의 어두운 길목에서. 밤의 도시만큼 빛의 대비가 뚜렷한 곳은 달리 없지. 그러니 넌 그곳에 서있어. 나의 미친 발은 시각소자를 가진 기계처럼 마구잡이로 훨훨 날지. 나는 가장 눈부신 곳에서 가장 어두운 곳까지 몇 번이고 걸음을 반복해. 그 램프의 기름도 도시의 금화로 산 거야. 그러나 너는 부디 아무것도 느끼지 말아줘. 그저 그곳에서, 가장 어두운 길목에서 신성을 잃은 우상처럼 서 있어줘. 깊은 새벽에도 사람들은 가끔 칠흑의 골목 속으로 사라져. 너는 그들을 비춰줘. 그들이 어둠 속에서 머뭇거릴 때, 그들이 담뱃불이나마 제대로 붙일 수 있도록 빛을 비추어줘. 그들이 자본주의자건, 공산주의자건, 개인주의자건, 사회주의자건, 낡은 거죽 걸친 빈민이건, 유망한 경제가건. 누구든 호주머니의 담뱃갑을 제대로 꺼낼 빛 정도는 필요하니까. 나는 저쪽으로 갈게. 지친 야생마처럼 목적 잃은 걸음으로 사방을 쏘다닐게. 밤의 도시에서 밝은 곳은 너무 추워. 네온사인에서 흘러나오는 욕망들은 얼음처럼 나를 쪼아. 24시간 영업하는 편의점 안쪽에서 치고 들어오는 눈빛은 까마귀가 되어 내 살을 쪼아. 소위 야간생활자들이라는 족속들은 밤에도 모자를 눌러쓰고, 내 손가락을 관찰해. 그 손가락의 형태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그들은 알아야만 해. 그러나 너는 아무 걱정도 말고 그곳에 서 있어줘, 동이 트고 램프의 기름이 다 떨어질 때까지, 타고 남은 담배필터로 하얀 반점이 점점이 찍힌 검은 도로를 밝게 비춰. 내 살은 이미 다 파먹혀 백골이 드러났지만, 내 인생에서도 이 넓은 욕계에서도 그리 대수로운 일은 아니야. 램프를 들고서, 지나가는 행인들의 얼굴을 가끔씩이라도 보도록 해. 무어 굳이 감상을 묻지는 않을게. 그저 그 낯과 낯들을 봐주었으면 해. 조금 뒤면 나는 <사람>들이 떨어트린 금화를 주우러 갈 거야. 운이 좋다면 내일도, 그 금화로 네 텅 비어있을 램프에 기름을 채울 수 있겠지.
안녕. 새벽이 끝나면 데리러 올게.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