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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들려주는 전두환 시절 이야기
게시물ID : sisa_78433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바쿵혜쿵해쪄
추천 : 17
조회수 : 56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11/12 08:32:35
저희 어머니는 전두환이 집권할 당시 대학생이었어요. 
그래서 그 당시 대학생들이 그러하듯 열심히 데모를 하셨어요. 

글솜씨가 없어서 어머니랑 한 대화를 그대로 적을게요. 

나: 나 12일에 광화문 가려고

엄마: 엄마랑 같이가. 

나: 엄마 지금 아프잖아. 엄마는 충분히 했으니까 이제 내가 할게

(지금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세요. 건강할 때는 광우병, 세월호 등 열심히 나가셨는데)

엄마: 친구들이랑 가려고?

나: 아니 내 친구들은 관심없어해. 관심 있는 애들은 지방 살아서
     못 올라와. 혼자 가려고

엄마: 혼자 가면 위험한 거 아니니? 엄마랑 같이가자. 

나: 요즘 시위가 옛날 시위에 비하면 무슨 시윈가?
      그냥 좀 행사 분위기지. 그러니까 걱정마셔

엄마: 그건 그렇지. 우리 때는 정말 인권이라는 개념도 부족해서
        심각했지. 

나: 그때 얘기느 해줘요. 

 
엄마: 처음에 전두환이 정권 잡으니까 대학생들이 데모를 했어.
        그때는 거의 대학생들만 시위에 참여했어. 
        신촌쪽 학교들이랑 대학로쪽 학교들이랑 막 행진을 해서 
그때는 시청 앞 광장, 광화문 광장 이런 게 없어서 서울역 광장에서 만나서 계속 데모를 하는데
헬리콥터로 하늘에서 최류탄을 떨어뜨려. 그게 막 빙글빙글 돌면서 내오는데 그걸 지랄탄이라고 그랬어. 그 파편에 맞아서 피 나는 사람들도 있고, 최류탄이 정말 독해서 몸에 있는 구멍이란 구멍에서는 물이 나와. 

그리고 경찰들이 방망이를 들고 쫓아오는데
잡히면 뒤지게 쳐 맞고 닭장차로 끌려가. 
그때는 인권 이런 개념도 부족하니까 잡히면 정말 험한꼴 보는 거야. 여자라고 봐주고 이런 것도 없고. 

데모가 한창인 곳에서 벗어나면 의대생들이 준비하고 있다가 부상자를 치료해줬어

나: 그때 의대생이랑 눈이 맞았어야지. 

엄마: 눈이 맞고 뭐고가 어딨니? 최류탄 때문에 눈물, 콧물로 범적이지, 잡히면 죽을정도로 맞으니까 내 옆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인지도 못하고 그냥 막 뛰어서 도망가는 거야. 

도망가다가 신발도 잃어버리고 

다음날 학교에 가면 잡혀가서 못 온 애들도 있고 머리에 붕대 감고 온 애들도 있고

나: 광주가 고향인 애들은 가족을 잃었겠네?

엄마: 5월 초에 대학교 휴교령 내리고 그 후에 광주 일이 
        벌어진 거라 광주 사는 대학생 애들은 집으로 내려간 상태였어. 

나: 그러면 안 나온 동기도 있었겠네?

엄마:  그 당시에는 여자는 대학을
         잘 안 보내줬거든.  지방에서 서울로 진학하려면 학비에 자취비도 드니까 스스로 벌어서 다니기도 힘들고, 집이 정말 잘사는 경우가 아니면 여자는 거의 안 보냈지. 그래서 엄마가 아는 동기 중에는 광주 출신은 없었어. 뭐 광주 출신 중에는 못 돌아온 사람들도 있었겠지.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초기에 그걸 막 폭도들 진압하는 거라고 티비에서, 공포심을 심어주려는 의도였는지, 여과없이 보여주는데 
그렇게 끔찍할 수가 없었어. 

대학생들은 그게 폭도가 아니란 걸 알았지. 


그리고 나서 정권 안정됐다가
정권 말기이 박종철 사건 터지면서 그때는 이제 넥타이부대라도 직장인들도 우르르 나온 거야. 

그 직장인들이 사실은 전두환 집권 초에 대학생이었던 사람들이거든. 우리들이 대학 졸업하고 직장인 되어서 또 우르르 나온 거지.  






나: 나도 나중에 내 자식이 물어보면 엄마만큼은 아니여도
     엄마도 그 현장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부모가 되기위해
     나가려고 :)

엄마: 너 갈때 패드(등산 아줌마들이 들고 다니는 깔개?) 
         가져가야한다.  




저같은 초짜하고는 역시 다른 어머니. 
정말 존경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제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를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거라고 생각해요. 제 친구들이나 지인들 부모님 중에 저희 어머니처럼 역사의 현장에서 투쟁했던 사람 한 명도 없거든요. 
그때 뭐 전국민이 데모하고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해요. 
대학생들이 위주로 데모하고 관심 없는 사람들도 진짜 많았다고

 그래서 저는 이런 어머니를 둔 게 굉장한 자랑거리에요. 
 
저도 미래의 제 아이가 "우리 엄마 저 때 있었대" 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도록 역사에 무임승차하지 않으려고요.
이따 봐요.  다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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