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자락에 위치한, 지금은 작은 공원이 되버린 그 곳,
친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시는 방 두 칸 짜리 작은 집에서, 우리 부모님의 신혼생활은 시작됐다.
1년 후 내가 잉태되고, 부모님은 지금의 재개발되기전 구파발, 창문하나 딸린 반지하방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한다.
그 무더운 여름들과 추운겨울을 견디면서 부모님은 갓난아기인 내몸에 땀띠하나 나게하지 않았다며 내 할머니는 아직도
엄마를 칭찬하신다.
그렇게 힘든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우리집이 생겼다고 한다.
파주 촌동네 끝자락,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작은 놀이동산 마주편에 자리한 작은 아파트 한채.
거기가 내 어린시절 기억의 시작이다.
그 자그만 동네에서 살면서도 엄마는 힘들었다고 했다.
다달이 나오는 관리비가 무서웠고, 주변 이웃들과 쉽사리 어울리지 못했다고 한다.
나는 달랐다. 친구들과 어울려 뛰놀고, 그 작은 아파트단지를 뛰어댕기면서 신나게 놀았다.
아빠는 내게 슈퍼맨이었다.
매일 저녁, 밤 늦게,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았던 나는 아빠를 기다렸다.
지친 몸과 강한 향수냄새,담배냄새, 이따금 술 냄새를 풍기며 온 아빠는, 낡은 정장 안주머니에서
항상 포케몬 스티커를 꺼내며, 털이 조금자란 턱을 내 얼굴에 문지르며 웃곤 하셨다
난 아빠보다 아빠가 가져올 포켓몬 스티커가 더 기다려졌었다.
따가운 아빠얼굴을 밀쳐버리고, 오늘은 어떤 스티커를 가져오셨나 그것만 궁금했다.
이미 있는 스티커를 가져오시면 토라졌고, 새로운 스티커를 가져오면 그저 좋아 들떴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난 포켓몬 스티커를 다 모았다.
스티커로 가득채운 바인더를 들고 동네 놀이터에 앉으면 난 최고로 인기있는 아이였다.
근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왜 아빤 항상 포켓몬 스티커를 가지고 들어오신걸까?
왜 그생각이 지금에서 날까?
회사가 어려웠었나 보다,
빠리바게트 뚜레쥬르도 아닌 편의점에서 파는 포켓몬 빵으로 직원들이 점심을 때웠다고 한다.
아들이 좋아한다니 직원들이 먹은 빵에서 나온 스티커까지 전부, 아빠는 모아오셨다.
그것도 모르고 난 아빠가 아니라 스티커를 기다렸나보다.
물론 지금 우리 집 사정은 훨씬 좋다.
나는 외국에서 대학을다니녀 공부를 할수 있고, 아빠는 더 이상 빵으로 끼니를 대신하지 않으신다.
근데 오늘, 한인마트에서 본 샤니 크리미빵을 보니까
갑자기 생각이 난다.
아빠가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