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조선시대만 해도 쌍커풀 없는게 미인이었는데 뭔 지금이나 그때나 별차이가 없어요. 애초에 지금 '미인'의 기준은 '서양 미인'이 기준인데.
미인의 조건은 시대, 지역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진다. 그 시대의 미인상은 앳된 얼굴에 초승달같이 가느다란 실눈썹과 쌍꺼풀이 없는 고운 눈매, 다소곳한 콧날에 단정하게 다문 좁은 입과 앵두같이 붉은 입술이 대표적이다. 또 귀밑에 하늘거리는 머리털, 가늘고 긴 흰목과 좁은 어깨 역시 조선시대 전형적인 미인의 모습이다. 따라서 이 당시엔 쌍꺼풀이 없어도, 또 현재 많이 나타나는 서구형의 미인이 아니더라도 미인이라고 일컬어졌다. 경국지색의 미인이라 알려진 당나라의 양귀비도 오늘날 깡마르고 모든 여자들의 선망의 대상인 ‘44사이즈’의 미인이 아니라 꽤나 풍만한 몸집이었다고 한다.
<img src='data:image/png;base64,iVBORw0KGgoAAAANSUhEUgAAAAEAAAABCAYAAAAfFcSJAAAAAXNSR0IArs4c6QAAAARnQU1BAACxjwv8YQUAAAAJcEhZcwAADsQAAA7EAZUrDhsAAAANSURBVBhXYzh8+PB/AAffA0nNPuCLAAAAAElFTkSuQmCC' width='532' height='800' filesize='56758' data-original="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611/147963622770b2cc5478db4d63af558c525b874189__mn652349__w532__h800__f56758__Ym201611.jpg" class=" lazy"> 말씀하신 비너스상입니다. 예쁩니까? 몸매, 얼굴, 전부 지금 현재의 기준으로 봐서 '미의 여신'이라고 할 정도로 아름답습니까? 솔직히 제 눈에는 시노자키 아이가 한 300배 정도 예뻐보이는데요?
미인의 기준은 시대마다 다르고 문화마다, 지역마다 다릅니다. 역사속의 미인을 그리는 그림들도 시대마다 그 모습이 계속 바뀝니다. 화가는 "그때 당시의 미인'을 기준으로 그리기 때문이죠.
서시는 전국시대가 아니라 춘추시대 말기 사람 이며 범려와의 로멘스는 중국인 특유의 소설이죠. 왕소군은 원래 이름이 왕장 이였는데 호아냐 선우가 황족을 원했으므로 원제의 황후인 왕정군의 동생으로 만들기 위해 소군 이라고 했으며, 그림 이야기도 사실이 아니죠. 중국에서 유교가 국교가 된것은 서한의 무제 유철이 동중서의 건의를 받아들여 국자감을 세우면서 부터인데, 무제 자신은 유교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도교에 빠져 신선이 될 궁리만 하다가 말았죠. 실제로 유교를 받아들인 황제는 무제의 증손, 즉 사황증손으로 시정에서 자란 유순이 황제가 되자 역시 시정에서 허광한의 딸과 결혼해 태어난 아들 유석을 태자로 세우니 이가 바로 원제 인데 이사람이 유학에 심취해 유교적 생활을 하고자 해서 궁녀를 백인 이내로 줄이는등, 검소하기 짝이 없는 한 사람 입니다. 그런 사람이 궁녀 그림을 그리게 해서 즐겼다는 이야기는 사실과 다른 것이죠. 초선 이야기는 진수의 삼국지에는 딱 여덟자 나오는데 그것을 가지고 책을 한권 만든 것이니 논할것도 없으며, 양귀비는 원래 궁녀로 들어간것이 아니라 18황자인 수왕의 비 였는데, 아름답다고 소문이 나자 며느리를 뺏은거죠. 당왕조 이씨가 선비계 대야(大野)씨 라는 것이 이런 사실로도 확인 할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