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얼마요?"
"9만원입니다."
"여기요. 오늘부터 하면 되죠?"
"네. 하루 세타임 가능하시고여 남자 탈의실은 저쪽입니다."
오늘부터 댄스를 배운다.
세 번째 수능을 치고 대입 전까지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함이랄까, 츄리닝으로 갈아입고 강의실에 들어갔다.
두 벽면이 거울로 되어있는 넓찍한 공간, 거기 남자는 나 혼자였다.
좌측 뒤에 서서 강사님을 기다린다.
첫 타임. 강사님이 들어오시고 시키는 대로 했다.
내가 몸을 좀 움직일 줄 아나보다. 시키는 대로 곧 잘 따라한다. 첫 타임이 끝나고 땀이 살짝 났다.
나름 재밌네.
두 번째 타임. 문이 열리고는 들어오라는 강사님은 안들어오시고 왠 빛이 총총 걸음으로 들어왔다.
어찌 된 일일까, 거울을 통해 자세히 봤다.
학창시절 팔랑거리며 남자들을 꽤나 울렸을법 한 여인이 큰 컬의 웨이브머리를 쓸어넘기며 강의를 시작하고 있었다.
전 강의처럼 강사의 동작을 보며 따라하려 했지만 그녀만 보일 뿐 그녀의 동작이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쉬운 동작에도 버벅거리곤 했는데 그때마다 그녀는 거울로 나를 보며 두세번 씩 동작을 반복해 주었으나 내 몸은 삐걱거렸다.
학원에 몇 주 다니다 보니 친해진 사람들이 생겼다. 늘상 붙어다니는 삼인조 누나들.
나와 나이차가 좀 있는 이 누나들은 일주일에 서너번 씩 편하게 함께 술을 마셨고 그러던 중 흔한 질문을 나에게 던졌다.
"야, 넌 학원 수강생 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 없어?"
"응? 아 뭐.. 학생들 중엔 딱히,"
"그럼 쌤들 중에 있단 말이네?"
"누군데? 말해봐~ 이어줄게."
그랬다.
포스가 넘치는 이 세 누님들은 보쌈을 해서라도 나에게 한명을 데리고 와줄 법한 분들이었다.
"아,, 그게, 다른 쌤들은 유부녀고.."
"여진쌤?"
"언니, 그분은 얘 스타일 아니야. 너 수진쌤 좋아하지?"
"그게 좋아한다기 보단.."
"맞네, 너 수진쌤 좋아하네. 얘 당황하는거 봐라."
"우리가 이어줄까?"
"아니아니 아니요 절대"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휘저었다.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해본 적 없던 나는 그녀의 바운더리 안에 들어가려고 하는거 조차 뭔가 두려웠다.
그렇게 누나들에게 마음을 들키고 얼마 뒤 학원에 공고가 붙었다.
[크리스마스 파티 공연]
한달 뒤 크리스마스에 있을 파티공연을 위해 강사별로 학생들을 모아 공연 연습을 시작한다는 공고였다.
몇몇 강사들은 학원 내 유일한 남학생인 나에게 같이 하자고 제안했으나, 그녀는
"저랑 하실 분은 저한테 따로 말씀해주세요."
라고 말할 뿐 날 딱히 원하지는 않았다.
그녀와는 단 한번도 말을 섞어본 적 없는데, 같이 하고 싶다고 말을 어떻게 꺼낼지 생각만 해도 땀이 났다.
이틀 뒤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카운터에 그녀 혼자 앉아있었다. 별 것 아닌거에 큰 용기를 내어 작게 말했다.
"선생님, 저 선생님 공연 같이 할게요."
"네! 고맙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환하게 웃는 모습을 그녀는 보였다. 나는 예상치 못한 리액션에 놀라 당황하여 황급히 뛰쳐나왔다.
그날 집가는 길에 동그란 것들은 다 천사의 함박웃음이 오버랩되어버렸다.
크리스마스 파티때 세 팀의 공연을 했던 나는 뒷풀이 회식에 자연스럽게 초청됐다. 즐겁게 오늘 공연얘기를 하던 중, 포스 세 누나 중 한명이 갑자기 주의를 끌었다.
"수진쌤! 얘가 쌤한테 관심있대요~"
그녀는 벌떡 일어나 옆자리를 비우며 "이리오세요 이리로"라며 날 옆에 앉혔고, 그 자리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바로 옆에서 천사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 술자리 내도록 행복했으나, 그녀에게 말을 제대로 걸지도 못했다.
다음 날도 학원에 갔고 마치면 세 누나와 술을 마셨으며 수진쌤은 여전히 빛으로 보였으나 먼 존재였다. 마치 어제의 술자리는 없었던 것 처럼.
그러던 어느 날 학원마치고 나오니 한 여자애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저기, 오빠."
수강생 중 한명인 주연이다. 파티 때 같은 팀으로 공연은 했지만 딱히 대화해 본 적은 없던 아이.
주연이 땅을 보며 말했다.
"오빠가 절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응? 무슨.. 그냥 아는.. 그게 왜 궁금하지?"
"전 오빠가 좋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