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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팬픽] The dragon within.(1)
게시물ID : humorbest_128043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18
추천 : 21
조회수 : 2611회
댓글수 : 4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6/07/18 23:17:20
원본글 작성시간 : 2016/07/16 04:53:37

더 이상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없는 나는.

짐승인가, 아니면 그저 고철덩이에 덧씌워진 망령일 뿐인가.

내 안에 흐르던 것은 사람의 붉은 피가 아니라, 시뻘건 혀를 날름거리는 복수심이었구나.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 믿었던 아침햇살이 겐지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그것은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이었다.

살점이라곤 하나도 붙지 않은 팔다리를 가지게 된 후에는 그나마 남아 있는 살갗마저도 감각을 잃은 것처럼 느껴졌으니.

허나 따스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얼굴 언저리뿐이었다. 여전히 몸의 많은 부분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팔 다리에 느껴지는 차가움이나 따스함이 숫자로 변환되어 머리에 박히는 것은 구역질나는 경험이었다.

적들의 피를 뒤집어쓰고 있을 때는 그런 것에 신경을 쓸 겨를조차 없었고, 겐지에게는 그것이 더 편했다.

그러나 새삼 불쾌한 기분을 되새기게 되었다는 것은, 적어도 그가 총탄과 칼날이 난무하는 세계에서 한발자국 떨어져 나왔다는 것을 뜻했다.

온몸에서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머리에 심어진 컴퓨터는 사지가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었다.

그는 사라진 오른팔 대신 왼팔로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그를 둘러싼 것은 손바닥 만한 크기의 편평한 돌을 켜켜이 쌓아 만든 벽이었다. 그가 익히 보아오던 강철이나 콘크리트로 된 벽과는 달랐다.

 

여기는...”

 

제멋대로 생긴 판자를 얼기설기 이어붙인 문이 열리고, 새까만 머리에 빠알간 볼을 한 계집아이 하나가 들어왔다. 아이는 연신 콧물을 들이마시며 자리에서 일어난 겐지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아이의 시선이 그의 몸으로 향하는 것과 동시에, 그도 자신의 몸을 훑어봤다.

이곳저곳 망가지긴 했지만 어마어마한 근력과 내구력을 자랑하는 전투 사이보그의 몸이었다. 겐지는 얼굴이 훅,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역시 나는 도망치지 못했구나.

 

젠야타 아저씨를 불러올게요!”

 

계집아이는 무엇이 좋은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위쪽 앞니 두 개가 빠져 있었다.

겐지가 무어라 만류할 틈도 없이, 아이는 그대로 방을 빠져나갔다.

그는 기억을 더듬었다.

제 손으로 목숨을 끊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아 히말라야의 만년설에 파묻히려 작정했다.

행여나 눈사태라도 일어나 소리소문없이 자신을 감추어 주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를 안고서 네팔을 찾았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합금으로 만든 관절이 뿌득거리며 얼어붙는 것을 느끼며 새하얀 눈밭 위에 무릎을 꿇었다.

원하는 것은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는데, 죽음만큼은 내 뜻대로 이루는구나.

겐지는 눈을 감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허나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자가 그의 계획을 망친 모양이었다.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겐지는 아마도 이 집의 주인임이 분명한 그를 보고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방문자는 인간이 아니었다.

도무지 의중을 읽을 수 없는 조그마한 눈. 이마에는 승려들의 상징인 계인(戒印)이 찍혀 있었다.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둔탁한 회색으로 빛나는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의 정체에 비해 목과 어깨 언저리에 둥둥 뜬 주먹 만한 구슬 몇 개는 그리 신기한 구경거리가 되지 못했다.

 

옴닉 수도승이라...’

 

겐지는 얼마 되지 않는 맨몸 중 하나인 머리가 망가진 것이라고 여길 뻔 했다.

 

깨어나셨군요. 걱정했습니다.”

 

옴닉 수도승은 높낮이가 거의 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겐지는 걱정했다는 그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누가 나를 걱정한단 말인가?

 

여긴... 어딥니까...?”

샴발리 수도원입니다. 눈 속에 쓰러져 계신 것을 리따의 아버지가 발견하여 모시고 왔습니다.”

 

옴닉 수도승 뒤에 숨어 있던 계집아이가 앞으로 나서서 가슴을 쭉 펴고 헤, 웃었다.

겐지는 반달모양으로 휘어진 아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쓸데없는 참견을 하셨군요.”

세상의 모든 행동에는 의미가 있는 법입니다. 쓸데없는 참견이 되었을지는 두고 보면 알 일이지요. 시장하지 않으십니까?”

이 몸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사람처럼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몸이 아닙니다.”

 

겐지는 자신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을 곱씹었다.

사람처럼. 사람처럼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몸.

항상 그의 뇌리에 박혀 있던 말이었지만, 스스로 내뱉고 나니 썩 유쾌한 말은 아니었다.

 

그럼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사양말고 말씀하십시오. 몸을 추스르실 때까지는 여기를 당신의 집이라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

 

이 옴닉 수도승은 왜 거슬리는 말만 골라 한단 말인가?

내 집?

겐지는 아랫배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가 복수심에 불타는 무사였다 할지라도 검을 들이댈 곳과 들이대지 않을 곳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다.

그가 분을 삭이며 고개를 숙이는데, 리따가 옴닉 수도승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젠야타 아저씨, 저 아저씨도 로봇이에요?”

 

겐지는 아이의 말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자각했다.

로봇도, 인간도 아닌 그 무엇. 그의 주변에도 신체의 일부를 기계로 대체한 사람은 있었지만, 인간인 부분의 비율이 훨씬 높았다.

복수를 위해 온 몸을 무기로 바꾼 것은 오로지 겐지뿐이었다.

부끄러움인지 분노인지 모를 감정을 느낀 겐지는 이불을 집어 던진 뒤 몸을 일으켰다.

멀쩡한 오른다리가 그의 몸을 지탱했지만, 발목 아래가 사라진 왼다리가 그의 몸을 휘청이게 만들었다.

볼썽사나운 꼴로 넘어질 뻔한 것을 젠야타가 붙잡았다.

 

놓으십시오.”

알겠습니다. 허나 그 전에 몸부터 추스르시지요. 필요한 것은 저희가 준비하겠습니다. 리따, 아버지에게 가서 이 분이 쓰실 목발을 만들어 달라고 하겠니?”

 

겐지의 눈빛을 읽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던 소녀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일단 안정을 취하는 게 좋겠습니다. 목발이 준비되면 리따를 시켜 가져다 드릴 터이니, 그 때까지만 계십시오.”

 

젠야타는 살며시 겐지를 내려놓았다. 겐지는 망연한 얼굴로 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이제는 정말로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구나. 어쩌면 하늘은 그에게 가장 치욕적인 벌을 내린 것일 수도 있었다.

젠야타가 조용히 방을 빠져 나간 후에도 겐지는 무력한 자신에 대한 실망감을 곱씹었다. 몇 시간이 지나고 난 뒤, 리따가 나무의 모양을 그대로 살려 만든 목발 하나와 수소전지 하나를 가지고 겐지 앞에 나타났다.

리따는 겐지 앞에 물건들을 내려놓은 뒤 무릎을 꿇고 앉았다.

겐지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에게 해줄 말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저기... 아저씨. 내가 그런 말해서 화난 거죠? 아저씨는 로봇이 아니니까요. 미안해요.”

“...”

 

겐지는 리따의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자포자기한 상태였지만, 아직까지는 자신의 분노를 드러낼 상대를 고를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화를 내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후 그를 더욱 난감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리따와 비슷한 나이의 여자아이와 대화해 본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의 눈동자는 빨려들어갈 것 같은 검은 색을 하고 있었다. 겐지는 아이의 눈에서 형제의 어릴 적 모습을 보았다.

황급히 고개를 돌린 겐지는 적당히 얼버무리려 애썼다.

 

고맙구나. 이제 가도 좋다.”

젠야타 아저씨가 그랬어요. 말을 할 때는 내가 저 사람이라면 기분이 어떨까?’하고 생각해야 한다고요. 기분이 나빴을 것 같아요. 미안해요.”

가도 좋다. 얘야. 이제 괜찮으니.”

알았어요! 필요한 게 있으면 이야기 하래요. 아빠가.”

 

아이는 용수철이 튕겨 오르듯 몸을 일으켜 휑하니 방을 빠져나갔다.

겐지의 앞에는 적어도 일주일은 생활할 수 있을 만한 용량의 수소전지 하나와 못생긴 목발 하나가 남았다.

 

하늘이 내게 벌을 내리는 모양이구나...”

 

수소전지를 내려다보던 겐지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도무지 어울릴 수 없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던져 넣다니, 겐지는 하늘이란 놈의 심보도 고약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것이 내 업보라면 받아들여야겠지. 그것뿐이다.”

 

그는 투박한 목발을 왼쪽 겨드랑이에 끼고 몸을 일으켰다.



the dragon within.(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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