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있을 댄스동아리 공연 준비를 위해 오늘도 연습실을 간다.
신입생 대표로써 내가 기획한 신입생팀 공연이었기에 연습을 주도했다.
1학기 때 축제공연을 한 번 해봤던 경험(?)을 살려 연습은 잘 이뤄졌고, 본무대에서도 우리는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쳤다.
남녀 짝을 지어 춤을 췄던 공연, 내 파트너는 나에게 그때까진 그냥 '매력있는 동기여동생'이었다.
얼마 후 신입생 회식을 제안했고 대부분은 참석했다. 물론 그녀도.
우리 십수명 모두 즐거웠던 1차 술자리를 마치고 들어간 2차 노래방.
거기서 그녀와 나는 자연스럽게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한 명씩 돌아가며 노래 부르고 박수치고가 반복되며 노래방기기는 일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지만,
마이크를 잡지 않고있는 대부분은 회식 2차 술집을 온 마냥 담소 나누기에 즐거웠다. 매우 익숙한 모습.
물론 나도 한 곡을 했다.
"오빠 노래 잘하시네요?"
"아 그래? 오늘 컨디션이 좀 좋나봐. 너 듣기 좋아하는 노래 있어? 불러볼게"
노래방 책을 가져와 펼치며 보여줬다.
펼쳐진 책은 우리 둘의 허벅지 하나씩의 위를 공유해 올라가있다.
우리 상체와 머리는 더 붙었다.
그녀의 향이 느껴진 순간 내 손은 노래방 책을 빨리 넘기기를 거부했다.
노래방 책의 페이지는 정독을 하는 속도로 넘어갔지만, 난 떨려서 정독할 수가 없었다.
잠시후 그녀도 비슷한 감정일거라 나는 확신했다.
몇분이 지나도 그녀는 노래를 고르지 않고 나에게 기대어 있었으니까.
신입생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형이 우릴 보더니 웃으며 한 마디를 툭 던진다.
"둘이 신혼집 차렸구만"
우린 둘 다 못들은 척 책만 뚫어지게 봤다.
사실 난 고개를 들 수 없었고, 그 말을 농담으로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어둡고 시끄러운 노래방이라서 다행이었다.
빨개진 얼굴과 미칠듯 뛰는 심장을 들키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3차로 간 술집에 잠시 들어갔다가 기숙사 통금이 있는 난 인사하고 먼저 나왔다.
아쉬웠다. 뭔가 너무 아쉬웠다.
터덜거리는 걸음으로 기숙사에 다다른 나는 그대로 누워 생각에 잠겼다.
'아까...'
(부르르르)
진동소리에 휴대폰을 보았다.
'13기 장은서'
그녀다.
"여보세요"
"오빠, 어디예요?"
그녀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기숙사지."
"하아.... 지금 잠시 나올 수 있어요?"
평소같으면 '왜? 무슨일 있어?'라고 물었을 것이다. 허나 난 그런 질문따위는 하지 않았다.
"잠깐만, 내가 기숙사에 개구멍 있나 찾아볼게."
전화를 끊지 않은 채로 지하부터 옥상까지, 화장실 샤워실 기계실 다 뒤졌으나 나갈 방도는 도무지 없었다.
"은서야, 기숙사 정문으로 와볼래?"
"네? 네.."
얇은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그녀는 햇빛이 꺼진 곳에, 나는 전등빛이 꺼진 곳에 앉아 마주했다.
내가 거기서 나온 후 약 30분동안 그녀가 그리웠기에 반가움에 눈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동자 아래에 물이 차오르더니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
'무슨 일로 왔어?'라고 묻고싶던 내 입은 그대로 닫히고 그저 옅게 웃었다.
"드라마 같네."
"헤헤"
내가 수화기로 말을 던졌고, 그녀가 거기로 웃음소리를 넘겨주었다.
1시간 가량 이어진 대화동안 '좋아한다' '설렌다' 등의 소재의 발언은 일절 없었다.
그냥 담백하고 소소한 얘기들.
그녀의 씁쓸한 미소는 이어졌지만 눈에 고인 눈물은 걷혀졌다.
"오빠, 나 이제 갈래요. 부탁이 하나 있어요."
"..."
"오늘 제가 여기 왔던거,, 무덤까지 비밀로 해주세요."
"그래. 꼭 그럴게."
"내일 봐요"
그렇게 그녀는 여전히 슬픈 미소로 인사하고 뒤돌아 멀어졌다.
내가 기숙사로 올때만큼 터덜거리는 걸음으로.
그날 그녀가 날 찾아왔던 이유는 결국 듣지 못했다.
예상은 할 법 했지만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나도, 그녀도.
그걸 아는 유일한 사람은 그날의 그녀뿐일 것이다.
그녀와의 드라마는 여기까지일것 같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