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 날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는 거. 신촌역이었지 싶다. 아니구나, 이대역이다. 지하철 계단을 다 올라와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하늘은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그때의 꾸깃꾸깃한 기분, 아랫배 깊은 곳에서 으윽.... 으윽.... 음울하게 신음하던 검은 소용돌이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물론 잊고 싶지도 않다.
" 돈 몇 푼 받은 걸로 사람이 말야... 자살이나 하고 말야... 그릇이 그거 밖에 안 돼. "
당시 내가 근무했던 회사의 사장이 내 면전에서 뱉은 말이다. 그리고 나는 아마도 - 태어나 처음으로 이른바 [윗사람]을 들이받았다.
" 맨날 하도 돈 처먹고 다녀서 그거에 익숙한 새끼들이야 그렇겠죠. "
고분고분하던, 일 시키면 시키는 대로 야근도 불사하던 늠의, 그래서 그 회사 비리 두어개 쯤은 알고 있던 늠의 ' 뭐라고 이 새꺄? ' 라는 눈빛에 저어기 당황하던 그 사장의 얼굴도 여전히 기억에 선명하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세상에서 좀 살아보자.]
단지 그 바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내게 있어 상식의 소멸을 뜻했다. 그래,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세상에서 제발 좀 살자.
앞에서는 환한 웃음으로 악수를 나누고 사진 찍으며 뒤로는 그를 욕하는 소리에 동조하는 자를 신뢰할 수 있나? 내 상식으론 그런 사람 신뢰할 수 없다.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동료는 친구가 되고 신뢰할 수 없는 동료는 단순 계약관계로 남는다. 단지 그것이다.
한번 무너진 신뢰를 다시 회복하려면 그 열 배 백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고들 한다. 하물며, 십 년도 넘게 물건을 고를 때면 그게 어느 회사 제품인지 기어이 귀퉁이에 감춰둔 이름을 찾아내는, 몇 년 전부터 유행하는 말로 " 꼼꼼하기 그지 없는 " 마음새를 가진 이를 상대라면 오죽할까. 누가 그때 탄핵에 찬성했는지, 누가 그때 후단협이었는지, 누가 민집모였는지, 누가 무슨 개소리 지껄였는지 잊었을 거 같은가? 잊을 거 같은가?